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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에세이 시리즈] 국가의 역할과 개별 삶의 공정성: 공적인 지표를 통해 돌아보다 ☞ 박명림 연세대 교수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의 자살과 저출산 1위 국가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쌍둥이 금메달의 장기 독점은 매우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실업자와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을 포함한 개별 인간 삶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 사회를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국가 역할의 실종이다. 적절한 국가 역할의 붕괴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성과 공공성, 평등과 분배는 일반 경로에서 현저히 일탈하였다. 촘촘한 복지 체제 역시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공공 지출 비율, OECD 수준 한참 밑돌아 국가의 정당한 역할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는 개별 삶들의 높은 수준의 사사화와 자영화와 불안화를 말한다. 이 문제는 GDP 수준과는 관계가 없다. 개별 삶의 집합적 경로성과 국가 성격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국민 1인당 GDP 2만 달러의 동일 수준에서 공공 사회 지출을 비교해보자. 스웨덴 29.4%(1994), 영국 19.6%(1996), 미국 13.1%(1988)를 포함해 OECD 전체 평균은 19.9%였다. 그러나 2만 달러 시점의 한국(2004) 공공 지출은 스웨덴의 5분의 1,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1%였다.(이하 모든 통계는 국가별로 균형적인 종합 비교를 위해 가장 최근의 것은 반영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의 기업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복지 포퓰리즘’ ‘좌파 정부’라 공격받던 시점의 한국 사회의 평등성, 공공성, 복지성의 객관적 지표였다. 그들 국가가 한국보다 앞선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분배와 평등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명백히 아니었다. 평등의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지배적 담론과는 반대로 국가 역할과 예산 구조에 비추어 한국은, 개혁파 정부가 집권했을 때조차 OECD 국가들 중에 가장 우파적 보수적인 사회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OECD 최저 수준의 공공성과 사회성조차 더욱 탈공공화, 기업화, 사사화하였다. GDP 대비 공공 사회 지출 비율 추이를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1991, 1995, 1999, 2003, 2007, 2011년에 각각 2.7%, 3.2%, 6.2%, 5.4%, 7.7%, 9.2%를 기록하였다. 지속적으로 일정한 확대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원체 낮았었음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증가조차 크게 부족한 것이었다. 같은 기간 OECD와 EU의 평균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공공 사회 지출의 비율은 너무 크게 차이가 나고 있어 같은 OECD 국가라고 분류하기조차 어색할 정도다. OECD 최근 통계가 GDP 대신 국민순소득(NNI) 기준으로 바뀌어 있으나, 전체 추세를 보여주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1990, 1995, 2000, 2005, 2010년 기준으로 같은 해를 비교할 때 한국, OECD, EU의 공공 사회 지출 비중은 각각 2.8%, 17.5%, 21.5%(이상 1990년), 3.2%, 19.5%, 23.9%(1995년), 4.8%, 18.9%, 22.7%(2000년), 6.5%, 19.7%, 24.3%(2005년), 9.2%, 22.0%, 26.8%(2010년)으로서 한국은 낮아도 너무 낮아 극적으로 대비된다. 인간 평등을 위한 역할에 관한 한 거의 국가라고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안보 · 발전 국가로서 성공 비해 민주 · 복지 국가로선 부실 오랫동안 큰 정부, 강한 국가로 인식되어온 한국에서 공적 지출을 통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매우 미약하다는 점은 커다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1950년대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안보 국가와 발전 국가로서는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한 한국의 국가는 민주 국가와 복지 국가로서는 —비교적 관점에서 볼 때— 자기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는 부실 국가인 것이다. 한국전쟁의 극복과 전후 남북 경쟁에서의 승리, 식민 경험 국가로서의 신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안보 국가와 발전 국가의 역할은 세계 지평에서 보더라도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민생 국가와 복지 국가로서의 역할은 기록적으로 낮았다. 실제 가장 분배 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했다고 평가받는 노무현 정부 시기 2006년 현재 소득 재분배액이 가계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OECD 통계에 따를 때, OECD 평균 21.4% 대 한국 3.6%로서 OECD 평균의 겨우 6분의 1에 불과하였다. 공공성과 형평성을 향한 국가 역할이 OECD의 6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같은 해 소득 재분배액이 가계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스웨덴 32.7%, 프랑스 32.9%, 일본 19.7%, 미국 9.4%를 기록하였다. 분배에 관한 한국에서는 국가 역할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적 경쟁에서의 패배는 곧 모든 개인이 각자도생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것을 뜻한다. 두렵고 공포스러운 한국적 개인 삶의 현실이 수치로 증명되는 것이다. 1992년의 OECD 공공 사회 지출 평균은 19.4%였다. 반면 20년이 지난 시점의 한국의 공공 지출은 1992년 OECD 국가들의 2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9.3%였다. 개인들의 패배가 곧 국가 부재 상태나 마찬가지인 실존 상황을 우리가 과연 아직도 선진 문명 사회의 국가라고 불러야 할까? 안정적(stable)이라는 말은 국가(state)라는 말과 동일한 어원을 갖는다. 즉 국가 안에 들어가면 직립할 수 있어 안정된다는 뜻을 포함한다. 직립할 수 없는 상황, 즉 국가로부터 이탈하는 상황이 곧 불안정(unstable)인 것이다. 그러니 국가 안에서조차 수많은 삶이 불안정한 사실상의 국가 없는(stateless) 난민 상태인 사람들에게 국가는 실종된 것이 분명하다. 이를 보면 한국 사회의 보편화, 선진화 영역이 어디여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국가의 공적 역할의 회복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공적 역할에 관한 한 한국의 후진성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주의’ ‘좌파 정부’ ‘복지 망국’을 비판하는 한국 보수 담론의 글로벌 준거는 대체 무엇인지 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OECD 최하 수준의 공공 지출을 보여주고 있다. 오직 세 나라, 즉 칠레, 한국, 멕시코만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근년 평균에서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 한 나라뿐이다. OECD 거의 모든 국가들은 이 세 나라와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15% 이상이다. 16개국은 2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 국가와 비교조차 시도하면 안 될 수준인 것이다.
선(先) 성장, 후(後) 분배라는 허구적 담론 그런데 한국의 공공 지출을 심층 분석하면 세 가지 숨은 지점을 간취하게 된다. 먼저 보수파 정부와 개혁파 정부 사이에 뚜렷한 차이다. 김영삼 정부 동안의 전체 증가는 0.8%였다. 김대중 정부는 1.4%가 증가하였고, 노무현 정부는 2.6% 증가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1.6%였다. 보수파 정부들이 평균 1.2% 증가한 데 반해, 개혁파 정부들은 평균 2.0% 증가하였다. 적극적인 국가 역할을 통한 개혁파 정부들의 공공성 제고 노력이 2배 가까이 더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5.1%에서 7.7%까지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여주었다. 둘째 한국과 선진 복지 국가들의 격차가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 빠른 경제 발전의 성과가 전혀 복지 격차의 극복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즉 ‘선(先) 성장, 후(後) 분배’라는 지배적인 담론이 허구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들은 경제 발전으로 복지 정책이 강화되었다는 허황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과 OECD 평균 사이의 격차는 14.8%(1990년 2.8% 대 17.6%)에서 12.8%(2010년 9.2% 대 22%)로 단지 2%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한국과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격차 역시 같은 기간 18.7%(2.8% 대 21.5%)에서 17.6%(9.2% 대 26.8%)로 단지 1.1% 줄어들었을 뿐이다. 한국의 복지 비중은 이미 복지 국가 단계에 도달한 선진국들보다 전혀 더 빠른 증가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공공성, 국가 역할 증대, 복지에 관한 한, 글로벌 경제로 빠르게 도약하는 시기 동안, 한국의 주류 담론이 복지 정책으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비판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가 발전의 방향 전환이나 비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한국에서 복지 지출은 현저하게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 주목할 점은 한국보다 공공 지출이 훨씬 높은 나라의 구성이다. 그들 중에는 헝가리, 포르투갈, 폴란드, 슬로베니아,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등 한국보다 1인당 GDP가 크게 낮은 나라들이 많다. 복지 수준은 경제 발전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민주화의 역사마저 한국보다 훨씬 짧은 나라들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한국의 공공성 수준은 1인당 GDP의 규모나 민주화의 지속 기간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만큼, “너무 오랫동안 너무 낮은 수준”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회 만들기 위한 시민으로서 의무 강화해야 사실 낮은 공적 지출의 문제는 정부 정책과 예산 배분의 문제인 동시에 낮은 담세율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국민 부담률은 OECD와 비교하여 현저히 낮다. 우선 GDP 대비 조세 수입은 OECD 국가의 평균에 비해 한국이 아주 낮다. 2010년의 경우 한국의 담세율은 25.06%로서 OECD 최하 수준이다. OECD 평균 33.77%에 한참 모자란다. 주요 선진 국가들의 담세율은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이탈리아, 노르웨이, 프랑스,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이 40%를 넘는다. 한국 정도로 낮은 세금을 부담하면서 높은 공적 지출을 통해 복지 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처럼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이 높고, 재벌의 경제 과점으로 극도로 불평등한 나라에서 낮은 담세율은 재벌과 상류층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일반 국민들의 세금 부담 역시 크게 낮다. 실제로 한국은 면세자 비율이 너무 높다. 그러나 이들은 극심한 불평등으로 인해 상당수가 세금조차 내기 어려운 저소득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 말은 세금의 징수와 사용 두 측면 모두에서 정부의 공적 형평 역할의 실종을 동시에 드러내준다. 공평한 세금 부담 없이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 실종과 부유층 및 기업의 책임 회피는 함께 엄중히 비판받아야 한다. 일반 국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민들은 자녀의 공공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16만 원 세금은 ‘세금 폭탄’이라며 거부하지만, 160만 원의 사교육비와 1600만 원의 해외 어학 연수비는 주저 없이 부담한다. 전자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적 국민으로서의 의무이나 거부하지만, 사적 개인으로서 부담하는 후자는 기꺼이 감당한다. 공적 의식 대신 사적 욕망이 지배하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좋은 체제를 만들 가능성은 없다. 공적 의식이 결여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기들보다 더 좋은 공동체를 물려줄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가장 낮은 담세율을 고려하여 약간의 부자 증세만 하려 해도 ‘세금 폭탄’ ‘좌파 정부’라는 허위 공격을 가하는 보수 정당과 언론의 태도는 국가와 국민의 공적 책임을 모두 방기하도록 강요하는 사실 날조나 다름없다. 형평 국가와 복지 국가로의 건전한 발전과 그를 통한 국민 삶의 안정화를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적 왜곡 역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좀 더 강화하지 않고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가 없다. 따라서 공적 지출 자체가 작은 상황에서 재벌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크게 경감시켜준 이명박 정부의 조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업들은 감세만큼의 투자나 고용을 이행하지 않았다.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서민들의 삶만 더 힘들게 한 것이다. 정부는 서민 복지와 재벌 이익 중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 크기 아닌 책임 의식과 적절한 공적 역할 복지 강화와 관련해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점은 소위 ‘큰 정부’ 담론이다. 복지 강화에 대한 비판은 특히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시장주의와 보수 담론의 핵심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담세 수준과 공적 지출 규모를 비교하여 한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결코 큰 정부가 아닐뿐더러 매우 작은 정부라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다른 중요 비교 지표를 더 검토해보자. GDP 대비 중앙정부의 지출 비율이다. 2009년 한국은 중앙정부의 지출 비율이 30.45%로서 OECD 최하 수준이다. OECD 평균은 46.24%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그리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등은 중앙정부 지출 비율이 50%를 넘는다. 한국보다 중앙정부 지출이 낮은 나라는 칠레와 멕시코뿐이다. 한국은 사실상 너무 작은 정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정부와 공공 부문의 고용 비중은 어떠한가? 이 지표 역시 한국은 크게 작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공공 부문 고용 비중은 5.7%로서 OECD 최하다. OECD 평균은 15.0%로서 한국의 3배에 육박한다. 선진 복지 국가들, 이를테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등은 20%를 넘는다. 특히 앞의 세 나라는 고용의 4분의 1 정도가 중앙정부와 공공 부문일 만큼 큰 정부를 갖고 있다. 이를 볼 때 한국의 ‘큰 정부’ 비판과 ‘작은 정부’, ‘민영화’ 담론은 허구인 것이다. 한국은 지금 OECD 최소 규모일 만큼 작은 정부 및 작은 공공 부문을 갖고 있다. 문제는 공공 부문의 책임 의식과 적절한 공적 역할이지, 기업 제일주의와 작은 정부 담론이 주장하듯 크기가 전혀 아닌 것이다. 자살과 저출산 1위를 계속 고수하는 동시에 수많은 청년들이 희망 없는 미래를 말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개별 삶들을 규정하는 공적 지표를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세심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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