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청견사에는 조선통신사들이 남긴 그림과 편액들이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꾸가와정권은 조선과 선린우호관계를 맺고 통신사 파견을 요청한다.
통신사들은 한양을 출발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를 지나 내해를 거쳐 오사카에 도착한다.
교토를 방문한 뒤에 동해도 길을 따라 에도,오늘날 도쿄까지 걸어갔던 것이다.가는 길에는 53개의 역참이 있는데 대부분이 불교사원이었다.
53개의 역참은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구도여행에서 만난 53선지식을 상징한 것이다.그길을 지금은 신간센이 지나간다.기차의 이름은 히카리이다.빛처럼 빠르다는 뜻도 있지만 화엄경에 나오는 빛의부처 비로자나불을 나타낸 것이다.신간센을 타면 법신불의 품에 안긴다는 상징도 있다.
조선통신사들이 머무는 중간숙소에 임제종 청견사가 있다.이절의 종루에는 경요세계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있다.1634년에 이곳을 방문한 통신사 일행중 박안기라는 사람이 남긴 것이다.
경요의 경과 요는 아름다운 구슬이라는 뜻이다.경요세계는 아름다운 두개의 구슬이 서로를 비춰 한층 더 밝아져서 무한하게 퍼져가는 화엄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두개의 구슬은 당시 조선과 일본을 나타낸다.이글을 썼던 박안기는 조선과 일본이 서로 존중하며 신뢰와 정성으로 계속 교류한다면 함께 빛나는 세계로 발전할 것으로 믿고 글을 남겼던 것이다.
청견사 산문에는 동해명구라는 편액이 걸려있다.1711년 조선통신사 현덕원의 글씨이다.
효종 6년에 조선통신사로 청견사를 방문했던 정사 조행의 글씨도 편액으로 남아있다.흥국이란 興國 두글자뒤에 조선정사 취병이라 적었다.
김계천이 남긴 잠룡실은 서원에 걸려있다.
청견사가 소장한 최고 보물은 서암 김유성이 남긴 금강산도와 낙산사도이다.
그는 도화서의 화원으로 첨정벼슬을 지냈다.1763년 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가서 청견사 풍경을 보고 감탄한다.이곳의 풍경이 우리 동해의 낙사사와 비슷합니다.그말을 들은 청견사 주지가 낙산사 풍경을 그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때 남긴 작품이 낙산사도와 금강산도이다.머리속에 그려진 풍경을 사절단으로 순방중에 그려준 그의 필치가 놀랍다.
청견사는 해동의 경승
다시 찾으니 정은 더욱 깊어만 가네
이미 속세를 뛰어 넘으니 어찌 한조각 티끌인들 범할수 있을까
깊은 계곡물 흘러 폭포 이루고 기화요초 우거져 숲을 이루네
여행하는 수레 문밖에 세워둔채
해가 이미 서산에 진줄도 모르네
계미중추 나산거사
다시 청견사를 찾아 붓을 달려 시를 남기다.라는 제목으로 1643년 8월 보름에 김유성이 남긴시이다.
오사카에 가면 간사이 공항에 내린다.간사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세가지 간사이에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세가지 간사이다.세가지 간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오늘 나에게 인연 맺어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을 통해서 너와 나,두 개의 구슬이 서로 밝아지기를 기원한다.
사진 1.2번 청견사의 보물 금강산 그림과 낙산사 그림
사진 3번 청견사 산문에 걸린 경요세계
사진 4번 청견사 서원에 걸린 흥국
사진 5번 청견사의 불전
일본인들은 조선통신사가 도착하면 칙사로 대접하고 글씨와 그림을 부탁하여 기록문화에 큰 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일본에서 조선에 왔던 일왕사에 대한 기록은 알려진것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온 사절단들은 모두 일본 선종의 승려들이었다.
일본 막부시대에 시를 쓰고 외교문서를 작성할수있는 지식인은 승려들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일본사절단의 기록을남기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