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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15
일평생 여호와 앞에 / 이기석 목사
오늘은 열왕기상 15장 9절에서 15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일평생 여호와 앞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돌아가 14절 말씀을 보면 '오직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 일평생 여호와 앞에' 라는 말씀을 그대로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일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산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자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어떻게 일평생을 본문의 아사왕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사왕이 일평생 야웨 앞에 온전하였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일평생 정직한 생활 (9-12)을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정직하다'고 하면 '나는 평생 거짓말 한 적이 없고, 나는 배고파 죽을 망정 남의 것을 훔쳐먹는 일이 없으니 정직하다'라는 의미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직이라는 말의 단어적인 의미는 "남을 속이지 않고 마음이 곧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속이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정직하게 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직한 삶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 사회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직은 도덕적 규범에 불과할 뿐입니다. 도덕적인 가치기준입니다. 사회윤리적인 가치기준입니다. 여기에는 구원도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는 길을 지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정직이라는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정직이 도덕적 가치기준에 의한 그런 뜻이라면 성경을 공자가 썻으면 간단할 것 아닙니까? 차라리 성경을 없애고 공자가 한 말을 설교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러한 가치기준은 지금도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가정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종교라고 까지 하기에는 뭐하지만 굳이 종교라고까지 한다면 유교의 중심주제가 바로 "사람이 이땅에서 올바르게 사는 길"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 가치규범입니다." 사회과과목으로 말한다면 윤리과목이나 도덕과목으로 우리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정직"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정직이라는 말은 어떤 물건을 훔친 일이 없거나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단순한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정직"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난 그 어떤 의미에서도 정직이라는 말은 그저 사회윤리적인 정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왕의 신앙과 삶을 우리는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왕하18:3에서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야웨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대에서 대대적인 종교회복운동을 일으켰던 요시야왕에 대해서도 성경은 왕하22:3에서 "요시야가 야웨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형통함을 주셨던 웃시야왕 역시 성경 대하26:4을 보니까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야웨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야웨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정직이라는 말은 그 어원이 "카라트"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야솨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카라트라는 말은 잘라내다, 베어내다는 뜻입니다. 야솨르라는 말은 곧다, 곧게하다는 뜻입니다.
잘라내야 곧아질 수 있습니다. 곧게되는 것은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목재소나 제재소에서 쓸만한 재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베어온 나무를 잘라내고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라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잘라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기 위함입니다. 역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삶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이 우리의 삶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길로 인생이 곧게 뻗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9절에서 12절을 보면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제 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라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하나님을 잘 믿었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과 이스라엘나라를 축복하셔서 가장 강대하고 가장 부강한 시절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중에 일천번제를 드린 왕은 이 솔로몬 밖에 없습니다. 3년동안 날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정해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은혜를 따라서 일천번제기도회를 드리기도 합니다. 3년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 권사님과 전도사님도 우리교회의 개척을 위해서 일천번제 기도를 했습니다. 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은 솔로몬과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을 가지고 솔로몬은 노년에 이방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3천명이나 되는 후궁들을 들였으니 이 솔로몬의 마지막이 얼마나 하나님을 떠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3천여명의 후궁들은 한결같이 이방족속의 여인들입니다. 유대나라 여인들이라해도 보톤 문제가 아닐 것인데 이우상을 섬기는 이방여인들이 이스라엘에 오면서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들을 믿는 풍속을 궁중에서부터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온통 우상숭배의 집산지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온나라가 가는 곳마다 굿을 해대고 가는 곳마다 우상숭배하는 우상숭배의 서식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격노하심으로 솔로몬의 아들 때에 가서 두나라로 나뉠 것임을 예언자를 통해서 예언을 하셨고 이후 나라는 그렇게 두동강이 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입니다. 르호보암은 유대나라 왕이 됩니다. 르호보암은 그래도 신앙중심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피에서는 그래도 히스기야나 요시야나 웃시야와 같은 귀한 왕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이 아사왕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우상숭배만 하다가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왕이 되었습니다. 이 여로보암은 우상숭배하는 왕입니다. 본격적으로 국가적으로 공개적으로 우상숭배했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중에서 가장 싫어했던 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들이 죽을 때 우상숭배하던 가는 왕들은 한결같이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갔더라"고 마지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여로보암의 영향으로 북이스라엘은 몇몇 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책망과 함께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아들은 아비얌이요, 아비얌의 아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사왕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가 자기 조상 다윗같이 정직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이 많고 많은데도 그 중에 최고가 다윗이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을 잘 믿다 간 왕은 그 마지막에 "그가 그 조상 다윗의 길로 갔더라"하고 끝나고 있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사왕도 다윗을 본받았습니다. 최고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왕 다윗을 본받았습니다.
아사왕이 야웨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실례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의 퇴폐적인 모든 요소를 정리했습니다.
향략,쾌락 일변도의 사회를 잘라 내어 버린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남색하는 자를 소탕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색이 무엇입니까?
결혼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원리를 따라서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색이라고 하는 것은 남자끼리 성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 시대가 해괴망측하고 문란했으며 우상숭배가 극도에 치달았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회라면 저주 그 자체인 것입니다. 볼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사왕을 세우셔서, 아사왕을 도구로 세우셔서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개인적으로 영적이지 못하고 거룩하고 경건치 못하고 세속적이면서 정욕적인 향락과 쾌락을 즐겨하려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신앙이 구멍이 생기고 비가 샙니다. 바람이 듭니다. 실제적으로 삶에는 가정이 깨집니다. 가정이 깨지고 부부가 깨지면 그것은 바로 자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겉도는 청소년들은 한결같이 가정에서 상처를 받은 자녀들입니다. 그러한 애들이 돈만 주면 원조교제가 이루어 집니다. 사회가 타락합니다. 사회가 병이 듭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충만 받아 세속적인 것들을 잘라내시기 바랍니다. 잘라내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해 집니다. 하나님 기뻐하십니다.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아사왕은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없애버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정희대통령이 고마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신을 전부 타파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영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이 나라가 깨어나고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붙잡고 미신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민족이 5천년동안 미신만 섬겼습니다. 무당, 점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지몽매하고 가난과 핍박 저주와 고통이 이 민족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우상의 잠에서 깨지 않는 한 이 민족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외국 한 번만 갔다오면 그것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프리카나 네팔이나 그런 나라, 그런 민족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한 숨이 나옵니까? 무슨 일만 있으면 점이나 치고 있고 무슨 일만 있으면 무당이나 불러서 굿이나 하고 있는데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 선교사님들이 왔을 때 이 땅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감기하나 걸려도 굿을 합니다. 애가 더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더 시끄러워서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스피린 하나면 끝나 버리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약도 이러한 의술도 모두가 하나님을 잘 믿는 기독교국가에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개발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아사왕은 솔로몬과 여로보암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전부 타파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꼴을 보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것들을 전부다 없애 버렸습니다. 모두 잘라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우상이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우상을 잘라내시기 바랍니다. 그 우상을 섬기느라 교회를 못나옵니다. 그 우상을 섬기느라, 나 좋은 것 하느라 주일을 어깁니다.
우리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의 자여로서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좋아해야 합니다.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만금이 쏟아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편에서 살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리하는 생활이 정직한 생활입니다 (13-)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아사가 왕자로 있을 때 자기 어머니가 아세라 신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복을 달라고 자꾸 빌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아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찌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괘씸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그렇게 미워하는 아세라 신상을 그냥 놔둘 수 없다하여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고 그것을 끌고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기드론 시냇가에 가서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태후라고 하는 자리에서 폐하여 버리고 평민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머니가 태후의 자리에 앉아 있는 한 그 권세를 이용해서 또 우상을 섬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것입니다.
아들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육은 사망이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
자기의 어머니의 자리인 태후도 폐했습니다.
영적인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변으로 가꾸어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을 아주 깨끗이 단행하였습니다. 주변정리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집사쯤 되었으면 나는 안주만 먹는다고 술자리에 따라 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오징어 안주만 집어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가 계속되면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한 잔 두 잔 하게 되고 그것을 계속하다보면 술 주정꾼이 됩니다. 세상일에 아무리 도움을 준다고 할지라도 믿음에 손해를 주는 일은 가차없이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그렇게 믿음 생활을 할 때 그 믿음 생활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아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내 주변을 정리하면서 믿고 살아야 한다는 본문의 교훈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경도에 김승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면장이 되어 세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없던 그 동네에 도율림 선교사가 전도를 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배당을 다 짓고 헌당식을 할 때 면장과 그 동네 유지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맥도날드 선교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습니다.
공자 맹자가 아닙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뭔가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들은 김승명은 그 날 예수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큰 잔치를 열었으나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술친구들 그리고 소작인들과 면직원들을 청하여 술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오늘부터 예수 믿소. 지금까지는 예수 없이 살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예수와 새롭게 인연을 맺는 잔치요. 여러분들도 오는 주일날부터 교회에 나오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오면 친구가 되지만 끝까지 나오지 않으면 여러분들과 이별해도 좋소"라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첩살이를 했고 주색잡기를 즐겼는데 그 날로 모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저 건너편에 있는 첩의 집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주색잡기를 전부 끊어버리고 예수 믿기를 출발했더니 얼마나 믿음이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충성되이 잘해서 나중에는 교회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다섯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셋째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어 목사가 되게 합니다. 바로 그 셋째 아들이 목사가 되어 이승만 대통령 당시 초대 군종감을 지낸 분입니다.
여러분 주변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한 것은 없습니까? 주변을 정리해야 할 것을 정리하지 못한 일은 없습니까? 정리하지 못하고 10년 20년 교회 나왔다고 한들 그 믿음이 됩니까? 빨리 주변을 정리하시고 일평생 하나님 앞에 온전히 믿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성별의 생활 (14-15)
오늘 본문보니까 15절을 보면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은과 금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명은 무엇입니까? 기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구별하여 드리지 않겠습니까? 기명은 그릇을 뜻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금 그릇과 은 그릇은 다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말입니다. 아사왕의 아버지 아비얌은 금 그릇과 은 그릇만 생기면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여 따로 구별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배운 아들 아사왕 역시 금 그릇만 생기면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라 구별하여 하나님의 전에 드렸습니다.
성별이란 말은 구별한다는 말입니다.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아내와 네 아내를 구별해야 합니다. 내 남편과 네 남편을 구별해야 합니다. 인생의 길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술취하면 내집인지 네집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큰 변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다 먹어도 좋으나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침범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기본적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주일 중 주일날 하루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일성수라는 말은 주의 날은 거룩하게 지킨다라는 뜻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땅을 보게 되면 공시지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땅의 값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 공시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공시지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알리는 것이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4계명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야웨의 안식일인즉..."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 4계명을 지키는 것은 위의 1,2,3계명을 행함으로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 58:13-14에서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야웨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행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야웨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야웨의 입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내 좋아라 하고 설악산에 가거나 대천해수욕장에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다른 날과는 구별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얻은 것의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복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고 우리는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만큼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받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바로 이 고백이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할 때 우리가 감사하는 것과 십일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10분의 1을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드리고 10분의 9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것 처럼 수입의 그 가운데 십분지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의 축복은 십일조생활입니다.
저는 많은 목회기간은 아니지만 분명히 목회하는 동안 느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믿음은 열심히는 아니지만, 개인형편이나 사정으로 평상이 모임이나 기도회나 교회생활에 많은 참석을 하지 못하지만, 신앙생활 열심히는 못하지만 언제나 주일성수잘하고 십일조만 착실히 잘해도 하나님의 복을 반드시 받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구별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지키는 자, 하나님의 것을 지킬 줄 아는 자를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구역장님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전도하고 하는데도 삶에 열매가 없습니다. 나중에 분명히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적당히 주일성수를 걸를 때가 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아시지요, 보시지요"할 때가 있습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헤아려 주시 않겠습니까?
그런데 눈치가 그것이 아닙니다. 주일을 드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의미로 "하나님 아시지요, 하나님 보시지요"하고 맙니다. 십일조도 때를 따라 걸를 때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우리의 분량으로 주신 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 건드리지 마십쇼. 반드시 빵꾸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빵구 우습게 여기지 마십쇼. 가던 차도 빵구나면 큰 사고 나는 것입니다. 하와가 설마하면서 건드렸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저주와 고통과 땀흘림과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그저 쉽게 하나님의 것 구별하지 않았다가 그 결과는 너무 큰 아픔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사왕은 평생에 정직한 생활을 했습니다. 다윗을 본받아 정직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항상 정리하며 살았습니다.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별의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별할 줄 알고 또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