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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계춘(季春) 볕 좋았던 끝 봄,
김천에서 함양거쳐 함안까지 이틀동안,
경남 서부의 풍경좋은 누정을 돌아다녔습니다...
마음 맞는 벗들과 함꼐 다녔던 이틀동안 행복했습니다^^
마침 볕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봄치고는 심지어 약간 덥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허락되어 이틀 내내 좋은 답사가 되었네요^^
이번 답사에서 원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엉겁결에 낭독했던 한시의 추억이 개인적으로는 각별했네요^^;;
잠깐 브리핑 후, 향기로운 풀이 돋은 방초정 연못을 둘러보며, 그 어느 늦은 봄날의 비극을 곱씹어봅니다...
방초정 자료집에 수록했던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 선생의 '방초정에 걸려 있는 시판에 차운하여 시를 짓다(芳艸亭次板上韻)' 라는 시입니다...
방초정 그 풍경이 다시금 아름다와, 뜰 가득 돋은 풀을 보니 옛 사람 생각나네.
芳草名亭麗景新 。 滿庭芳草憶前人 。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온통 화목한데, 살펴보니 그 해 봄의 일을 헤아리겠네.
至今一室團和氣 。 認是當年子諒春 。
길지않은 답사의 다음 행선지는 합천 농산정입니다.
의외로 산 하나를 꿀떡! 넘어서야 이 멋진 홍류동 계속의 농산정을 겨우겨우 볼 수 있습니다...
농산정, 예전의 독서당에서, 지금의 번듯한 기와 누정은 아니었겠지만, 초가집에 걸터않은 최치원이 읊었슴직한 시 하나가 귀에 계속 걸려 낭송했었습니다. @@
우렁차게 귀를 가득메우던 계곡 물소리와 함께, 한심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최치원의 심정도 헤아려보기도 했네요..
題伽倻山讀書堂
가야산 독서당에 제하다
狂奔疊石吼重巒 。 人語難分咫尺間 。
첩첩이 바위에 미친 듯 부딪고 겹겹이 산 속을 포효하니, 옆 사람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
常恐是非聲到耳 。 故敎流水盡籠山 。
세상의 시빗거리 귀에 닿을까 늘 두려웠더니, 부러 물을 흘려보내 온통 산을 에워쌌구나.
훗날 가야산 해인사를 들렀던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선생은 이 터에 머물렀던 최치원 선생과 시를 떠올리며 감상을 읊었습니다.
憶孤雲
고운(孤雲)을 떠올리며
林間冠屢去茫茫。誰識儒仙本不亡。
숲 속에 갓과 신을 두고 헛헛히 떠났으니, 누가 알까, 본디 선생은 죽지 않은 것을.
流水籠山吟已遠。風雲猶護讀書堂。
그 옛날 '물을 흘려 산을 에워쌌구나' 시를 읊었음에, 바람, 구름은 여지껏 독서당을 돌보네.
당대의 문호였던 점필재 김종직의 시심 속에 최치원은 여전히 싯귀로 선명했던가 봅니다...
題詩石用孤雲韻
고운 선생의 시에서 운을 따와 시석에 제하다.
淸詩光燄射蒼巒 。墨漬餘痕闕泐間 。
불꽃 같은 맑은 싯귀 푸른 봉우리 비추는데,
새긴 돌 틈 먹 자욱은 흔적만이 남았네.
世上但云尸解去 。那知馬鬣在空山 。
신선되어 떠났다 온 세상이 수근거리지만,
산 속 이렇게 무덤 있는 줄은 알지 못하네.
농산정과 점심 식당, 고바우식당은 지척입니다.
바쁘게 길을 재촉해서 들른 해인사 초입 상가단지의 터줏대감답게, 맛난 비빔밥을 맛볼 수 있게 되어 감사~
이 산골에 걸맞게 작은 장농 문에는 또 멋들어진 한시가 베풀어져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여, 답사 후 찾아봤더니,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선생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9권 춘명일사(春明逸史)에 채록한 향악부(鄕樂府) 한 편 중 일부를 장롱에 새겼네요^^;;
향악부(鄕樂府)
此詩登於鄕樂。高低淸濁自合調律。必是解音響者所作。而錦江之上有月峯。余五十年前聽於湖南。後遍於八路。
이 시는 향악(鄕樂)에 올려졌었는데, 고저(高低)와 청탁(淸濁)이 음률에 부합하여, 필시 음조를 잘 아는 자가 지었음에 틀림없다. 금강(錦江) 가에는 실제로 월봉(月峯)이 있으며, 내가 50년 전에 호남에서 들었는데, 이후 팔도(八道)에 두루 퍼졌다.
십 년들여 마련한 누옥 몇 칸, 금강가 월봉 앞이라네.
十載經營屋數椽 。錦江之上月峯前 。
이슬 젖은 복숭아꽃으로 붉게 물들인 물 위, 회오리 바람에 버드나무꽃 하얗게 뒤덮힌 배.
桃花浥露紅浮水 。柳絮飄風白滿船 。
오솔길 스님 돌아오는 산 그림자 밖엔, 안개 속 강가 모래톱엔 빗소리에 졸고 있는 백로.
石逕歸僧山影外 。煙沙眠鷺雨聲邊 。
혹여 여길 마힐(摩詰)이 노닐었다면, 분명 그 해엔 망천도(輞川圖)를 얻지 못했으리.
若令摩詰遊於此 。不必當年畫輞川 。
맛난 점심 이후, 또 산넘고 물건너 거창 요수정으로 향합니다. 주차장의 위치를 두고, 약간의 혼선이 있었지만, 무사히 요수정 앞에서 합류하던 찰나, 마침 요수정에서는 마치 이백년전에서나 베풀어졌을 법한 국악의 향연이 @@ 무척이나 행운이었던가 싶네요^^;;
'수승대에서 즐기는 정원문화' - 딱 우리 답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맞춤 공연이었네요!!! 마치 우리가 맞춰 섭외했어도 이렇게 했을 듯한 국악 공연을, 어떻게 우리 맘을 알았을지, '거창국악협회' 주관의 상설 공연이 마침 또 답사일 기준 오늘부터 시작되었었네요~~ ㅎㅎㅎ
그 날은 잘 몰랐지만, 프로그램은 총 네곡, 천년만세, 산조, 남도굿거리, 민요연곡 이렇게 가야금과 해금 연주로 베풀어졌었다고 하네요^^;; 까막귀라~
퇴계 이황(1501-1570)은 '寄題搜勝臺'에서 수승대와 요수정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읇었습니다. 1543년 퇴계 이황은 안의 영송마을에 사는 장인을 뵈러 와 설을 쇠었는데, 그 기회에 요수 신권(1501-1573) 선생이 머물던 수송대(愁送臺)가 절경이라 하여 꼭 들르고 싶어 하였는데, 빼어난 풍광과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지, 수승대(搜勝臺)라고 바꾸자 했다고 하네요.. 정작 왕명을 받잡는 통에 여기를 들르지는 못하고 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搜勝名新換。逢春景益佳。 遠林花欲動。陰壑雪猶埋。
'수승(搜勝)'이라 새 이름이 되어, 봄맞이 경치 더욱 더 아름답네. 저만치 숲 속엔 꽃망울 터지려는데, 그늘진 이 골짜기 눈에 뎦혔네.
未寓搜尋眼。唯增想像懷。 他年一尊酒。巨筆寫雲崖。
여기 같이 할 안목 여적 못 찾으니, 떠오를수록 회한만 더 더해지네. 언제 술 한 동이 두고 큰 붓 들고 구름 속 절벽 그려보리라.
이 시에 신권은 다음과 같이 화답하며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搜勝臺奉和退溪韻
수승대에서 퇴계선생 운에 화답하여
爲掃臺邊路 。遮望華駕臨 。詩來人不至 。無意獨登臨 。
바위 옆 길 쓸어낸 것은 반가운 가마 보이지 않을 하였음에,
시는 받았되 사람이 아니 오니, 무심히 홀로 올라 보네.
林壑皆增采 。臺名肇錫佳 。勝日樽前値 。愁雲筆底埋 。
골짜기 우거진 녹음은 짙어가는데, 비로소 바위에 아름다운 이름지었네.
화창한 날 술독 앞에 놓고, 시름겨운 구름은 붓 끝에 감추었네.
深荷珍重敎 。殊絶恨望懷 。行塵遙莫追 。獨倚老林崖 。
진중한 가르침은 무거운 짐이 되고, 품은 그리움에 끊어질 듯 한스럽네.
속세에 헤매느라 멀리 쫓지도 못하니, 벼랑 위 노송에 홀로 기대어 있네.
이름 따윈 무심했을 바위의 의중은 온데간데 없이 수백년간 수승대니, 수송대니 두 집안이 아웅다웅했다는 일화도 잠깐 접어두고, 지금 우리는 퇴계와 요수 선생이 만났다면 그 만남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봅니다...
참고로 '요수정'이란 이름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의 한 구절인, "智者藥水仁者藥山(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라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농월정 들어가는 길은 어느덪 더위가 조금씩 꺾여가던 오후였습니다.
울산 작천정 앞에 베풀어졌던 눈부신 너럭바위 위를 거닐 생각하면 발길이 절로 빨라집니다^^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 1571-1639) 선생에게 농월정은 호란에 더럽혀진 조선 선비의 기개를 온전히 숨길 수 있는 적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題弄月亭
농월정에서 제하며
路傍誰識別區幽 。山若盤回水若留 。
길 옆, 누구도 모를 그윽한 별세계. 산은 소반인 듯, 휘도는 냇물을 머금은 듯.
暎砌池塘澄更滿 。撲窓嵐翠捲還浮 。
섬돌 비친 연못은 맑은 기운 가득하구나. 창 두드리는 산바람에 물총새 휘돌아 앉았네.
兒飢不慍饘糊口 。客至寧嫌屋打頭 。
굶주린 아이는 죽으로 허기를 달래고, 손님 들이다 머리 찧어도 괘념치 않는다네.
莫道散人無事業 。晩專邱壑亦風流 。
한가한 이라 하릴없다 말하지 말게나, 늙으막 이 골짜기 뿐이라도, 이 또한 풍류라네.
구한말의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선생은 느즈막히 들른 농월정의 절경에, 여길 머물렀을 선배의 시상에 화창하여 시를 남겼다고 하네요.. 여기 싯귀를 찾아 같이 읊어봅니다.
弄月亭用原韻
농월정에서 원운으로 읊다
玄圃瑤池逈且幽 。巨靈移向此間留 。
우거진 밭에 옥빛 연못, 멀고도 그윽한데, 강의 신령이 이 계곡으로 와 머물렀네
洪濤碾過氷紈滑 。亂瀑瀠回雪乳浮 。
큰 물결 맷돌로 간 듯 어름 비단마냥 매끄러우니, 폭포수같이 어지러이 휘도니 눈발이 떠있는 듯하니,
狂叫可堪同拍手 。苦吟時復爲搔頭 。
미친 듯 외치다가 함께 박수도 쳐보고, 시를 읊다 막히면 때때로 머리를 긁적이곤 한다네.
也知弄月吹簫侶 。合是當年第一流 。
벗이 있어 달을 희롱하며 퉁소를 부니, 이거야말로 올해 제일가는 풍류로다.
화림동의 많은 누정을 다 둘러볼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우리 팀은 농월정과 거연정을 대표격으로 맛만 보기로 했었습니다. 농월정을 지질학과 학생들과 같이 노닐고 난 후, 우리는^^ 거연정으로 향했습니다.
거연(居然)이란 이름은 주자(朱熹, 1130-1200)의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 중 첫 수 정사( 精舍)의 한 구절 ‘居然我泉石’에서 따왔습니다...
이를테면 이 화림동계곡은 시상에서는 무이구곡인 셈이네요..
朱熹 - 武夷精舍雜詠
주희 - 무이정사잡영
精舍
정사
琴書四十年,幾作山中客。一日茅棟成,居然我泉石。
거문고와 책과 함께 40년여, 몇 번이나 산 속을 머물렀던가.
어느 날 띠 집 하나 지으니, 내 자연 속에 고요히 머무른다네.
仁智堂
인지당
我慚仁知心,偶自愛山水。蒼崖無古今,碧澗日千里。
인지(仁知)를 헤아리지 못해 부끄러우나, 우연희도 절로 산수(山水)를 아끼게 되었다네.
푸르른 절벽은 고금(古今)에 그대로인데, 파란 강물은 하루에 천리를 가네.
隱求齋
은구재
晨窗林影開,夜枕山泉響。隱去復何求,無言道心長。
새벽에는 창에 걸린 숲 그림자, 간 밤엔 베갯머리에 울리는 샘물 소리.
은거(隱去)에 또 무얼 도모할까 ? 말없이 도심(道心)만 깊어가네.
止宿寮
지숙료
故人肯相尋,共寄一茅宇。山水為留行,無勞具雞黍。
서로 찾던 벗이 있어, 같이 띠 집에 머물렀네.
산수에 머무르다 갔는데, 소소하게 닭잡고 기장밥 내왔다네.
石門塢
석문오
朝開雲氣擁,暮掩薜蘿深。自笑晨門者,那知孔氏心。
아침에는 구름이 에워싸고, 저녁에는 무성한 담쟁이 덩쿨이 감싸네.
새벽 문에 기대어 홀로 웃는 자여, 공자의 마음이야 어찌 알겠는가 ?
觀善齋
관선재
負笈何方來,今朝此同席。日用無馀功,相看俱努力。
책보따리 지고 어디서 왔는지, 오늘 아침 이렇게 자리를 함꼐 하네.
날마다 남김없이 공부에 매진하니, 서로 다독이며 힘써 정진할 뿐이라네.
寒棲館
한서관
竹間彼何人,抱甕靡遺力。遙夜更不眠,焚香坐看壁。
대 숲 사이 저이는 누구인가, 껴앉은 항아리 기울이며 잔을 따르는구나.
긴긴 밤새 잠 못 이루니, 향 사르며 앉아 벽만 바라보네.
晚對亭
만대정
倚筇南山巔,卻立有晚對。蒼峭矗寒空,落日明影翠。
지팡이 짚고 오른 남산 마루, 저 멀리 만대봉(晩對峰)이 솟아 있구나.
차디찬 푸른 하늘 속 가파르게 치솟으니, 저녁 노을 밝게 비춰 푸르르구나.
鐵笛亭
철적정
何人轟鐵笛,噴薄兩崖開。千載留馀響,猶疑笙鶴來。
어떤 이 철적(鐵笛)을 불어대니, 옅게 뿜어나와 절벽 양쪽으로 퍼지네.
천년을 울려 소리가 남았으니, 오히려 선학(仙鶴)이 날아오는 듯하네.
釣磯
조기
削成蒼石棱,倒影寒潭碧。永日靜垂竿,茲心竟誰識。
깍아지른 푸른 암벽 치솟으니, 푸른 그림자는 찬 연못에 비스듬히 비치네.
하염없이 낚시 드리우자니, 누가 이 마음을 알아줄까.
茶灶
다조
仙翁遺石灶,宛在水中央。飲罷方舟去,茶煙裊細香。
신선이 남겨놓은 돌 아궁이, 물 가운데 완연하구나.
다회를 파하고 배 돌려 가려니, 은은한 향내 품은 차 연기가 몽글거리네.
漁艇
어정
出載長煙重,歸裝片月輕。千巖猿鶴友,愁絕棹歌聲。
갈때는 짙은 연기 뿜으며 나아가더니, 올적엔 가벼이 조각달 실었네.
수많은 바위엔 원숭이, 학들이 벗하고, 뱃노래 소리에 근심 덜어내네.
이제 답사는 함양 시내로 접어듭니다... 시내에 또 다른 최치원 유적지가 있고, 그 이름도 학사루, 뭔가 문향을 드러내는 편액을 당당하게 걸고 있는 시내 대표 건물답습니다... 혹시나하는 주차걱정 했었긴 했지만, 의외로 수월하게 주차하고, 학사루 공원 잔디밭을 거쳐 학사루 2층으로 올라가 봅니다...
경회루가 그리 쓰였던 것처럼, 학사루도 이 고을에서는 공식적인 행사, 연회장, 그렇게 공권력의 위신에 걸맞는 규모와 짜임새를 자랑합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고을 수령이었던 김종직 선생과 당시 상관이었던 유자광의 못내 걸맞지 않았던 자존심 대결 이야기, 지금에 와서야 시인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두 사람 간 무슨 자존심 싸움이었을지...
자료를 찾아 수록했던 학사루의 점필재 김종직의 ' 齊雲樓快晴 六月十六日( 6월 16일 제운루의 쾌청함을 읊으며 )'을 다시 읊어 봅니다.
齊雲樓快晴 六月十六日
6월 16일 제운루의 쾌청함을 읊으며
雨脚看看取次收。輕雷猶自殷高樓。
어느덧 빗발은 점점 걷히는데, 아직도 천둥소리 가벼이 누각을 울리네.
雲歸洞穴簾旌暮。風颭池塘枕簟秋。
골짜기 들어선 구름에 주렴은 어두워지고, 못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자리가 서늘해지네.
菡萏香中蛙閣閣。鷺𪆁影外稻油油。
연꽃 향기 속엔 개구리가 개굴개굴, 해오라기 그림자 밖엔 벼가 반질반질.
憑欄更向頭流望。千丈峯巒湧玉虯。
난간에 기대어 두류산 다시 보니, 천 길 봉우리는 옥룡 솟은 듯하네.
이제 우리는 어탕 먹으러 함양집으로 갑니다...
나름 내력있는 함양 맛집, 크게 늦지 않게 도착하여, 푸짐한 한 상 뚝딱하고는 숙소 일두고택을 향하는 길..
조금 서두르면 저물지 않은 볕의 일두고택을 한바퀴 둘러볼 수 있으리라 계획도 했었지만, 아무래도 첫날 답사의 빡빡한 일정이 그거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네요^^;;
뭐가 그리 급하게 해가 뉘엿뉘엿 지는지, 체크인하고, 간식 들여오고, 잠깐의 회포를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아 헤매는 동안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맥주에 치킨을 곁들이며, 이런저런얘기를 밤 늦도록 나누다보니, 열내며 정세를 논하기도 하고, 오만 세상 근심 우리가 도맡아 끌어안은 듯^^;; 그렇게 허세를 부리면서 첫날 답사를 마무리합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고택을 둘러보고는 함양 시내로 아침먹으러 나가야 합니다...
방을 나누어 자느라, 저와 주심도리님이 머문 방은 이렇듯, 왕흥사지 사리함 명문과 사진으로 꾸민 접시가 장식되어 있었고, 찍어놓지는 못했지만, 숙흥야매잠 병풍이 또 그렇게 우리 눈을 즐겁게 했네요^^
어디서 구하셨던지 우계 성혼 선생 친필의 숙흥야매잠이 당당하게 방 한 칸 가득 채우고 있고, 그 글귀를 읽어보는 안복을 아침에 누렸네요..
하루하루 이루어가는 자기 수양의 길을 궁구하는 숙흥야매잠의 내용을 참고삼아 올려봅니다.
진백(陳柏) - 夙興夜寐箴(숙흥야매잠)
鷄鳴而寤 。思慮漸馳 。盍於其間 。擔以整之 。
닭 울음에 깨어나면, 생각이 차츰 일어나게 되니, 그 사이에 조용히 마음을 정돈해야 한다.
或省舊愆 。或紬新得 。次第條理 。瞭然黙識 。
혹은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혹은 새로 깨달은 것을 모아서, 차례와 조리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本旣立矣 。昧爽乃興 。盥櫛衣冠 。端坐斂形 。
근본이 섰으면 새벽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갖추어 입고 단정하게 앉아 몸을 가다듬는다.
提掇此心 。皦如出日 。嚴肅整齊 。虛明靜一 。
마음을 끌어 모으되 밝게 떠오르는 햇살같아야 하고, 몸을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정돈하며 마음을 비운 듯하면서도 밝고 고요하게 한결같아야 한다.
乃啓方冊 。 對越聖賢 。夫子在坐 。 顔曾後先 。
책을 펴 성현을 대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회와 증자가 앞뒤로 있을 것이다.
聖師所言 。親切敬聽 。弟子問辨 。反覆參訂 。
성현의 말씀을 친절하게 귀담아 듣고, 제자들의 질문과 변론을 반복하고 참고해서 바르게 고쳐야 한다.
事至斯應 。則驗于爲 。明命赫然 。常目在之 。
일이 생겨 응할 경우 실천으로 증명할 것이며, 천명은 밝게 빛나는 것이니 항상 눈을 거기에 두어야 한다.
事應旣已 。我則如故 。方寸湛然 。凝神息慮 。
일에 응하고 난 후 나는 변함없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정신을 모아 사사로이 생각하지 않는다.
動靜循環 。惟心是監 。靜存動祭 。勿貳勿參 。
움직임과 고요함이 순환하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만 보이며, 고요할 때는 이 마음을 잘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잘 관찰해서 마음이 둘 또는 셋으로 나뉘면 안 된다.
讀書之餘 。間以游詠 。發舒精神 。休養情性 。
글을 읽다가 틈이 나면 간혹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활짝 펴고 성정을 아름답게 가다듬어야 한다.
日暮人倦 。昏氣易乘 。齋莊整齊 。振拔精明 。
날이 저물어 피곤해지면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 쉬우므로, 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어 정신을 맑게 이끌어야 한다.
夜久斯寢 。齊手斂足 。不作思惟 。心神歸宿 。
밤이 깊어 잠잘 때는 손발을 가지런하게 모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과 정신을 잠들게 해야 한다.
養以夜氣 。 貞則復元 。念玆在玆 。日夕乾乾 。
밤의 기운으로 마음과 정신을 잘 기르면 끝은 처음으로 돌아가니, 이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
사랑채에 당당히 걸려 있던 이 네 글씨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주원장이었다고 하네요.. 어떻게 어떻게 중국으로부터 받아온 글씨를 써붙여 집안의 모토이자, 후손의 경계를 삼았었네요...
사랑채 한쪽 켠에는 여덟 폭 병풍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글귀가 궁금하여 나중에 찾아보니, 멋진 한시 여덟수를 옮겼던 거였었네요^^
儲光羲 - 寄孫山人盛唐
저광희 - 손산인에게 부치다
新林二月孤舟還,水滿清江花滿山。
2월 신림포로 작은 배로 돌아오니, 강은 맑은 물로 가득하고, 꽃이 온 산에 만발하네.
借問故園隱君子,時時來往住人間。
묻노니 고향에 숨어사는 군자여, 때때로 오가며 세상에 머물렀던가 ?
劉禹錫 - 楊柳枝
유우석 - 양류지
煬帝行宮汴水濱,數枝楊柳不勝春。
수양제 행궁 변수(汴水) 물가, 몇 그루 버드나무가 봄을 이기지 못하여,
晚來風起花如雪,飛入宮牆不見人。
날 저물어 바람 부니 꽃잎이 눈 내리듯, 궁 안으로 날아드나 사람은 보이지 않네.
劉長卿 - 新息道中作
유장경 - 신식으로 가는 길
蕭條獨向汝南行,客路多逢漢騎營。
쓸쓸히 홀로 여남(汝南) 가는 길, 한기병 옛 성채를 많이도 마주치네.
古木蒼蒼離亂後,幾家同住一孤城。
난리에 흩어져도 고목은 창창한데, 이 외로운 성 안에 몇 집이 모여 살까 ?
羅隱 - 西施
나은 - 서시
家國興亡自有時,吳人何苦怨西施。
나라 흥망엔 오직 때가 있으니, 어찌 오나라 사람들 서시를 원망할까 ?
西施若解傾吳國,越國亡來又是誰。
정녕 서시가 나라를 망쳤다면, 월나라를 망하게 한 이는 도대체 누구인고 ?
韋應物 - 登樓寄王卿
위응물 - 누각에 올라 왕경에게 부치다
踏閣攀林恨不同,楚雲滄海思無窮。
누각에 오른들 숲이 묻혀 산들 함께 못함이 한이 되니, 초나라 하늘 구름에 끝없는 바다 끝에 끝이 없는 생각들.
數家砧杵秋山下,一郡荊榛寒雨中。
가을 산 아래엔 집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여기저기 우거진 가시 덤불엔 차가운 비 내리네.
張籍 - 秋思
장적 - 추사
洛陽城裡見秋風,欲作歸書意萬重。
낙양성에 이는 가을바람에, 집에 쓸 편짓글에 만 겹 사연 쌓이네.
忽然恐匆匆說不盡,行人臨發又開封。
급히 서두르다 못한 말 있을까 염려되어, 가는 이 떠날 때 다시 봉투 열어보네.
杜牧 - 寄題宣州開元寺
두목 - 선주 개원사에 들러 제하다
松寺曾同一鶴棲,夜深台殿月高低。
何人為倚東樓柱,正是千山雪漲溪。
王維 - 九月九日憶山東兄弟
왕유 - 9월9일 산동의 형제를 그리며
獨在異鄉為異客,每逢佳節倍思親。
홀로 타향에 낯선 객이 되어, 명절이면 부모형제 더 그립구나.
遙知兄弟登高處,遍插茱萸少一人。
지금이면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가, 나 없이 모두 수유가지 꽃았겠구나.
귀한 공간을 답사객에 내어주신 문헌공 후손 가족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예정한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함양 시내로 들어갑니다....
역시나 내력있는 식당 중 아침이 되는 곳이 몇 안되어, 칠구식당이 딱 적!격!이었는데, 이 날 아침 맛본 순두부찌개는 우리가 원했던 바로 그 맛이었네요^^;;
이제 우리 답사는 막바지를 향해 갑니다...
함양에서 진주까지 한시간여 다소 먼 길을 다다른 곳은 진주 촉석루입니다....
앞서 함양 학사루와 함께 이번 답사코스에서 만나게 될 두 곳의 관영 건축물 중 더 큰 규모의 본격적인 연회장이자,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그 빼어난 경관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마침 촉석루 마당에는 촉석루를 읊은 가장 오래된 한시가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미처 자료집에도 수록하지 못했던 시라, 한동안 읽어보기도 했네요.. 이 시는 촉석루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김지대 선생이 상주 목사 최자 선생에게 지어준 것인데, 동문선 제 18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金之岱 - 寄尙州牧伯崔學士滋
김지대 - 상주(尙州) 목백(牧伯) 최자 학사에게 부치며
去歲江樓餞我行。今年公亦到黃堂。
작년 강루에서 나를 전별하던 이, 올해엔 그대 또한 황당(黃堂)에 왔군요.
曾爲管記顔如玉。復作遨頭鬂未霜。
일찍이 얼굴이 백옥같았다던 그대, 다시금 오두(遨頭)되어도 귀밑머리 안 새었네.
洛邑溪山雖洞府。晉陽風月亦仙鄕。
낙읍(洛邑)의 산천도 신선이 머무는 도읍이오마는, 진양(晉陽)의 풍월 또한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오.
兩州歸路閒何許。一寸離懷久已傷。
두 고을 돌아가는 길에 얼마나 허락될지, 찰나에 헤어지는 회한은 상싱한지 오래라네.
欲把琴書尋舊要。况看簾幙報新涼。
가야금과 책을 갖고 옛 벗을 찾으려니, 주렴을 보아하니 어느덧 서늘한 가을 알려오네.
嗟公虛負中秋約。更約重陽飮菊香。
추석날 약속 저버린 것 아쉬워, 다음번 중양(重陽) 때엔 꼭 국화주를 나누세
정이오(鄭以吾, 1351-1434) 선생은 이색, 정몽주의 문하생으로 길재와는 친구 사이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진주향교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고 하니, 아마도 그 인연으로 여기에 멋진 시를 남겼던 게 아닐까 싶네요..
鄭以吾
정이오
興廢相尋直待今 。 層巓高閣半空臨 。
흥망이 돌고 돌아 지금을 기다렸던가, 층암절벽 높은 누각 반공에 다다랐네.
山從野外連還斷 。 江到樓前闊復深 。
들판 너머 산줄기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누각 앞에 다다른 강물 넓고 깊어지네
白雪陽春仙妓唱 。 光風霽月使君心 。
그 어려운 백운양춘(白雪陽春) 기녀들이 불러준 들, 광풍제월(光風霽月) 평온한 선비라네.
當時古事無人識 。 倦客歸來空獨吟 。
옛적 일 아는 이 없는데, 고달픈 객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아름다운 붓꽃과 담장을 보니, 네즈미술관의 오가타 코린(尾形光琳, 1658-1716)의 붓꽃 병풍이 떠오르네요^^;;
이제 둘째날 점심은 안의에서 맛 봤어야 했을(??) 안의갈비탕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그렇게 맛집이었던지, 문전성시여서, 예약시간 조금 이른 도착도 큰 도움이 안될 정도로 홀에는 손님으로 북새통이었네요^^;; 그래도 그리 많이 늦지 않게 차려진 점심 갈비탕 상차림에 맛도 좋아서 다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다음 목적지 함안으로 향합니다....
함안 땅에서 우리는 무진정과 무기연당을 들릅니다... 이틀동안 김천-함양-함안으로 연결하는 기나긴 동선은 좀 무리이긴 했지만, 이렇게 어렵게 들른 정원들의 느낌을 모아보려 욕심을 부렸네요^^;; 힘겨운 답사의 끝이 조금씩 보입니다==;;
무진(無盡) 조삼(趙參, 1473-1544) 선생의 자취를 기려 조성된 무진정 정원은, 아름다운 연못가를 걸어보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언덕 위의 무진정 동정문(動靜門)의 풍광을 누리는 게 꽤 큰 포인트였는데, 꼭 이 날 공사장이 되었네요==;; 동정문에서 내려다보는 섬, 그 위의 정자, 그렇게라도 여기 멋진 정원이 있음을 눈도장 찍는 데 의의를 두어야 했던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무진정의 풍광과 내력을 한번 곱씹어보기 위해, 자료집에서는 옮기지 못했던 주세붕(周世鵬,1495-1554) 선생의 무진정기를 옮겨봅니다.
周世鵬 - 無盡亭記
주세붕 - 무진정기
頭流山東走三百里。其橫截半空。鬣振浪湧。作鎭於咸安者。曰餘航。
지리산 동쪽으로 삼백리를 달려, 허공을 가로로 반 끊어내, 말갈기를 터는 듯, 파도가 솟구치듯 오른 산이 바로, 함안의 진산(鎭山), 여항산(餘航山)이다.
其一肢翩翩飛來。未十里。伏而又起。如紫鳳護雛而有城跨其上者。郡也。
그 산 줄기 하나가 훨훨 날아 내려 앉았다가 십리 못 미쳐 다시 솟아나, 마치 자줏빛 봉황이 병아리를 품 듯, 그 터에 자리잡은 고을이 바로 함안이다.
城山左臂蜿蜿蟺蟺。逶迤西北。奮驤作氣勢。緣擁郡城。遂東赴淸川。
성산(城山)이 꿈틀꿈틀 왼팔을 뻗다, 서북쪽으로 비틀비틀, 말이 뛰어오르듯 일어나 읍성을 둘러싸고는, 마침내 동쪽 청천(淸川)에 다다르니,
如渴蛟飮水而昂頭。有棟架其頂者。無盡亭也。
목마른 교룡(蛟龍)이 물을 축이며 고개를 쳐드는 듯한 그 꼭대기에 도리와 서까래를 얹으니, 바로 무진정(無盡亭)이다.
亭距郡一牛鳴地。卽吾趙牧使先生新居之東皐也。
무진정과 고을은, 소 울음소리가 들릴만큼 지척인데, 곧 조삼(趙參) 선생이 옮겨 오신 동고(東皐)이다.
先生得是皐而因家焉。其始也。爲大道傍之一荒丘。又當邑居之劇。
선생은 이 언덕을 얻어 머무셨는데, 처음엔 큰 길가 버려진 언덕이었는데, 이제는 오가는 고을 사람들로 시끌시끌하다.
自阿那伽倻開國。以至于今。天不祕地不藏。路於是者日千百。
본디 아라가야(阿那伽倻)가 개국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딱히 하늘이 숨겨놓은 땅도 아니었던 이 길을 오가는 이가 하루 수천이었어도,
然而未聞有知是勝而亭之者。唯先生一覷而得之。刊荊榛化堂宇。顧不幸歟。
미처 그 풍광을 알아보고 누정 짓고자 하는 이 없었는데, 오직 선생이 한 번 보시고는 땅을 얻어, 잡목을 걷어내고 누정을 지었으니, 다행이 아닐수 없다.
移舊路蒔嘉樹。以開蔣氏之徑。花竹掩映。飛甍翔翥。藏獲之家羅樸皐外。 行者望之。若羽人居。
옛 길을 옮기고 수려한 나무를 심고는, 장후(蔣詡)의 오솔길을 몰래 냈더니, 꽃과 대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언덕 위 정자는 빽빽한 숲속에 가려 용마루만 훨훨 날아오르는 듯 하여, 보는 이마다 신선이 머무는 곳같다 하였다.
先生謂余曰。我以無盡名之。子爲我記之。某於先生。每有謁。輒引登。遂得縱觀其形勝也。
선생이 내게 말하길, "내가 무진(無盡)이라 이름지었는데, 자네가 기문(記文)을 써주겠나?" 하셔서, 나는 매일같이 선생을 뵈었던 터라, 선뜻 따라 올라가, 마침내 그 형세와 장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其制凡二棟。西爲燠房。東北皆窓。窓外有壇如玉局。其下蒼壁。
무릇 두칸 집을 지었는데, 서쪽에 온돌방을 두었는데, 동쪽과 북쪽으로 모두 창을 냈으며, 창 밖으로는 바둑판처럼 기단을 쌓았는데, 그 아래는 깍아지른 절벽이다.
大川之自南來者。滙如明鏡。縈如玉帶。鏘如璆佩。環壁北注。入于楓灘。
남쪽에서 흘러온 큰 냇물이 돌아 흐르매 맑은 거울같고, 굽이 돌아나가니 구슬띠같으며, 물소리는 풍옥과도 같아, 암벽을 따라 돌아 부딪치며 북쪽으로 흘러 풍탄(楓灘)으로 흘러나간다.
川外有碧梧可千株。東望諸峯。皆松檜蔥鬱十里許。
시냇가 울창한 벽오동은 천여그루는 족히 되고, 동쪽으로는 보이는 산봉우리마다 소나무며 전나무며 십리를 한없이 뻗어간다.
先生嘗曰。是吾乘化之所歸也。
선생이 일찍이 나한테 말하기를, “이 곳이 바로 내가 자연 섭리를 따르며 돌아와 머물 곳이구나."라고 하셨다.
南望有山。突兀柱昊。莫有間簉。直與亭相對者。曰巴山。
남으로는 여러 산이 우뚝 솟아 하늘을 찌를 듯 가득한데, 누정과 바로 마주보는 산이 바로 파산(巴山)이다.
北望大野目極千里。麥秀而翠浪掀天。稼熟而黃雲蓋地。
북으로는 너른 들판이 천 리를 펼쳐져 있고, 보리밭은 푸른 빛으로 일렁이며 하늘을 흔들다가, 이삭이 영글 때면 온통 황금빛 구름으로 뒤덮힌다.
冬而閉戶。愛日可曝。夏而開窓。炎歊莫近。通三島之紫翠。挹十洲之煙光。
겨울이면 문을 닫아 따뜻하게 볕을 쬐고, 여름이면 창을 열어 무더위를 물리치니, 마치 자주빛, 비취빛(紫翠) 기운이 가득한 삼신산(三神山) 골짜기인 듯, 신선이 사는 십주(十洲)에 아지랑이가 비친 듯,
淸風自來。明月先到。不出跬步。萬像咸集。信乎造物者之無盡藏也。
맑은 바람은 절로 불어오고 밝은 달빛이 먼저 비쳐, 반 걸음도 못 미친 이 곳에 온갖 만물이 모여드니, 실로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이라 할 만 하다.
先生歷典五州。早賦歸去來而高臥於其中。
선생은 다섯 고을의 수령을 맡으셨다 일찌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이 곳에 은거하셨으니,
以靑山白雲爲宴屛。以淸風明月爲儐介。發曾詠。舒陶嘯。
푸른 산, 흰 구름이 병풍이 되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이 손님이 되어, 흥겨이 시도 읊고 느긋하게 휘파람도 부르면서,
蕭然而幽。寂爾而曠。悠焉而樂。煕煕如也。其樂也無盡。雖萬鐘之卿相不足以易此。
쓸쓸한 듯 그윽한 듯, 고요한 듯 적막한 듯, 한가하면서도 즐거워, 화목해하셨으니, 그 즐거움이야말로 억만금의 녹봉과도, 고관대작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만하였다.
夫宦海雖榮而有辱。故君子以勇退爲貴。
무릇 벼슬살이가 영화로우나 욕됨이 있어, 군자는 용감히 물러나는 것을 귀히 여겼으니,
姑以一邑之事言之。李元帥芳實。以蓋世之忠。
잠시, 고을의 일을 말하자면, 원수(元帥) 이방실(李芳實,?-1362) 장군은, 충(忠)으로 세상을 구하여,
克復京城。濟三韓於魚肉。功莫大矣。而生罹橫及。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적들을 어육(魚肉)으로 만들어 삼한(三韓)을 평정하였으니, 그 공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도, 뜻밖의 횡액(橫厄)이 목숨을 앗아갔고,
魚相國世謙。以華國之文。黼黻王猷。
상국(相國) 어세겸(魚世謙,1430-1500) 선생은, 문장으로 나라를 빛내고, 도리로 왕을 받들며,
爲多士之楨榦。名莫高矣。歿亦不免。
많은 선비들의 버팀목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죽은 후 명망이 스러짐은 면하지 못하였다.
方之先生之樂。不亦有愧乎。豈先生有見於斯歟。
선생의 풍류 또한,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어, 선생은 이미 이를 내다보시고는,
且先生指眼前山。爲身後計。是能知命也。
앞산을 가리키며 죽은 뒤를 도모하셨으니, 능히 천명(天命)을 아셨다 하겠고,
能知命。故能勇退。能勇退。故能有是樂。
능히 천명을 알아 용감히 물러나는 것이요, 능히 용감히 물러남으로써 이렇듯 즐거움이 있게 된 것이라 하겠다.
亭之景無盡也。而先生之樂亦無盡也。
누정의 경치가 끝이 없어 선생의 즐거움 또한 끝이 없으니,
以無盡會無盡。亭之名與先生之名。俱無盡也審矣。
끝없음이 끝없음을 만나, 누정의 이름이나 선생의 이름이나, 모두 끝없음을 알겠구나.
先生諱參。字魯叔咸安人也。
선생의 휘는 삼(參), 자(字)는 노숙(魯叔), 함안(咸安)사람이다.
眞厚德長者也. 爲官以淸謹鳴
진실로 후덕한 장자(長者)로, 관직에 있음에 깨끗하고 삼가하여 이름을 날렸고,
兄弟七人三桂一蓮 棣萼相輝鄕團榮之 某何幸托名於玆亭。
일곱 형제 중 셋은 대과(大科), 한 명은 진사의 영예를 입어, 그 화목함이 빛나 고을을 빛냈으니, 나도 어찌 운좋게 이 누정에 이름을 걸게 되었으나,
然厥今文章大手。上下比肩。必有能盡其無盡之義者矣。
지금은 문장의 대가라면 필히, 위아래를 견주어, 능히 '무진(無盡)'의 뜻을 알려 줄 것이니,
冒爲之說。不亦僭乎讓不獲。則姑書始末而歸之。
무릅쓰고 여쭙는 것 또한 분에 넘치지 않을까 했으나, 차마 사양하지 못해, 그 자초지종을 써놓고 돌아가노라.
嘉靖二十一年夏六月日。豐基郡守周世鵬。記。
가정(嘉靖) 21년 (1542)년 여름 6월, 풍기군수(豐基郡守) 주세붕(周世鵬) 적다.
이제 마지막 답사지, 무기연당을 향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또다른 낙원, 무우와 기수의 고사를 따와 이름지은 별천지, 무기연당을 뵈러 마을 바깥쪽 주차장에 모여 다같이 걸어 올라갑니다...
연당의 이름을 무기로 지은 연유를 논어 선진편을 공부하면서 곱씹어봅니다... 이 이름과 풍욕루 이름도 연결해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네요^^;;
論語 先進篇
논어 선진편
子路、曾皙、冉有、公西華侍坐。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
子曰:「以吾一日長乎爾,毋吾以也。居則曰:「不吾知也!』如或知爾,則何以哉?」
공자가 말하길, “내가 너희보다 하루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답을 어려워 하지 말아라. 평소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하고 있으니 만일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무엇으로 세상에 쓰이고자 하는가?”
子路率爾而對曰:「千乘之國,攝乎大國之間,加之以師旅,因之以饑饉;由也為之,比及三年,可使有勇,且知方也。」夫子哂之。
자로가 경솔하게 답하기를, “천승의 나라가 대국 사이에 끼어 침략을 당하며, 잇따라 기근이 들 때에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3년 안에 백성들이 용기있으면서도 의를 쫓는 방도를 알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공자는 빙그레 웃었다.
「求!爾何如?」對曰:「方六七十,如五六十,求也為之,比及三年,可使足民。如其禮樂,以俟君子。」
“구야 너는 어떤가?” 이에 대답하기를, “사방 60~70리 되는 나라나 혹은 50~60리 되는 나라를 제가 다스린다면 3년 안에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고, 만약 예악에 있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赤!爾何如?」對曰:「非曰能之,願學焉。宗廟之事,如會同,端章甫,願為小相焉。」
“적아 너는 어떤가?” 이에 대답하기를, “잘한다고 여겨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종묘에서 제사를 올리는 일, 아니면 제후들의 회맹에 현단복(玄端服)을 입고 장보관(章甫冠)을 쓰고서 나아가 소상(小相)이 되고자 합니다.”
「點!爾何如?」鼓瑟希,鏗爾,舍瑟而作。對曰:「異乎三子者之撰。」
“점아 너는 어떤가?”, 이에 비파를 몇 번 튕기다가 덩그렁 하며 비파를 내려놓고 일어나 대답하기를, “세 사람이 말씀드린 것과는 다릅니다."
子曰:「何傷乎?亦各言其志也。」
공자가 말하기를, “무슨 해가 되겠느냐,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한 것이다.”
曰:「莫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이에 말하기를, “늦봄에 봄옷을 짓고 나면 대여섯 명 어른과 여닐곱 명 어린이와 더불어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단(舞雩壇)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면서 돌아오겠습니다.”
夫子喟然歎曰:「吾與點也!」
공자께서 크게 탄식하시면서 말하기를, “나는 증점(曾點)과 함께 하겠다.”
三子者出,曾皙後。曾皙曰:「夫三子者之言何如?」
세 사람이 나가고 남아 있던 증석이 묻기를, “세 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子曰:「亦各言其志也已矣。」
공자가 말하기를, “또한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한 것뿐이다”
曰:「夫子何哂由也?」
이에 말하기를, “어찌하여 선생님은 자로의 말에 웃으셨습니까?”
曰:「為國以禮,其言不讓,是故哂之。」
말하기를, “예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그의 말은 겸손하지 않아 웃은 것이다.”
「唯求則非邦也與?」
“구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니었습니까?"
「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
“사방 육칠십 리 되는 나라와 혹은 오륙십 리 되는 나라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디서 보았느냐?”
「唯赤則非邦也與?」
“공서적이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니었습니까?”
「宗廟會同,非諸侯而何?赤也為之小,孰能為之大?」
“종묘에서 제사를 드리고, 제후들의 회맹에 나아가는 것이 제후의 일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적이 소상(小相)이 된다면 누가 대상(大相)이 될 수 있겠는가?”
이 풍광좋은 곳에서 바람 쐬고, 목욕하기 좋은 그런 별천지를 지은 주재성 선생의 자취를 되짚어보자니, 노론과 소론의 정쟁, 숙종, 경종, 영조에 걸친 골육상쟁으로 이어지면서, 소론의 명맥이 끊어져가는 그 스펙타클함이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이인좌의 난의 모순적인 갈등도 그렇고, 자꾸만 소모적인 정쟁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 때 그날의 정치배들과 지금 우리가 겪는 정치의 모습의 데자뷰...
일요일만이라도 온전히 함께 해주셨던 미소님, 풀꽃님, 촉석루에서 반갑게 뵈었던 호걸님도 무기연당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고, 행복한 답사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추억만 챙기시고, 혹여 아쉽거나 서운했던 추억은 삭혀서 다음 답사의 즐거움에 밑거름되기를 소망하며, 모두들 행복한 하루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