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명견만리 2권. ④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시대
도대체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제품만 만들지 말고, 플랫폼을 만들어라. (Don′t just build a product, build a platform.)”
실리콘밸리에서 통용되는 이 말처럼,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혁신 코드는 플랫폼이다. 오늘날 산업은 빠르게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플랫폼의 막강한 힘은 전 세계기업의 순위를 바꾸어놓았다. 애플을 포함해 오랫동안 플랫폼에 투자해온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과 같은 IT 기업들이 기존의 경쟁 구도를 재편했다. 국내외 많은 기업이 플랫폼에 투자하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플랫폼은 본래 기차역의 승강장을 지칭하지만, 오늘날에는 더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어떠한 계획이나 목적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場)이 형성되면 그것을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이는 전통시장은 개방과 공유가 바탕인 훌륭한 플랫폼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토론회장이나 회의실 같은 장소도 플랫폼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플랫폼이 지금과 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과 모바일 덕분이다. 물리적 한계가 분명한 오프라인 플랫폼에 비해,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이룩한 가상공간에서의 플랫폼은 개방과 공유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시간과 장소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의 SNS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구글, 네이버 같은 검색 플랫폼에서 엄청난 정보를 찾으며,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아니라 아마존 등의 다양한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더 많은 쇼핑을 즐긴다.
플랫폼은 오늘날 단순한 대인 간의 만남의 공간 그 이상의 의미다. 플랫폼 위에서 서비스와 서비스가 만나고 기술과 기술이 만나는 등 무궁무진한 새로운 가치로 확장되고 확산한다. 더 이상 제품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가시적인 실체도, 손에 잡히는 그 무엇도 없는 플랫폼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 혁명의 핵심은 하드웨어적 사고가 아닌 소프트웨어적 사고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누구나 참여해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하나의 천재가 아닌 다수가 참여하여 순식간에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플랫폼 혁신은 지금 어떤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플랫폼적 혁신을 이루는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첨단기술 산업단지 실리콘밸리, 이곳에 구글, 페이스북, 애플, 트위터, 페이팔 등 스마트 혁명을 주도한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모여있다. 그런데 불과 15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당시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이 세계를 장악했고, 미국은 ‘일본에 졌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개방과 공유의 플랫폼 정신으로 혁신을 이루었고, 결국 폐쇄적인 일본의 제조업 문화를 압도했다. 실리콘밸리가 개방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모바일이라는 시대적 전환 속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플랫폼적 혁신을 이루었을까? 그 배후에는 열린 개발자 생태계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주자인 애플은 매년 6월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 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를 개최한다. WWDC에서는 애플의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기술들이 공개된다. 애플은 매년 5,000여 명 이상이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 개발자들과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해왔다.
구글은 더 나아가 운영체제 특허 기술 API를 전면 공개하는 등 매우 개방적인 플랫폼을 구축해놓았다. 구글이 오랜 시간 투자 및 개발한 독자적인 특허 기술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보였다. 이 특허 기술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모두 공개하자 새로운 장(場)이 열렸다. 개발자들은 기술을 활용해 누구나 자유롭게 애프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그렇게 개발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즐기기 위해 구매자들이 모여들었으며, 이것은 다시 플랫폼을 풍성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형성했다. 이것이 열린 생태계의 힘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구글의 ‘카드보드’ 또한 아이디어 공유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진 사례다. 골판지 종이와 광학렌즈로만 이뤄진 카드보드에 스마트폰을 끼우고 특정 앱을 실행하면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구글은 카드보드의 정식도면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이를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만들어 쓰고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을 믿고 자신의 특허 기술을 개방하고 공유할까? 대한민국의 대표 1세대 벤처 기업인인 카이스트 이민화 교수는 신뢰 문화가 근저에 있다고 말한다.
“내가 내 것을 열면 상대방도 자기 것을 열 것이라는 신뢰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가 플랫폼을 만들면 그 플랫폼 운영자가 탐욕스럽게 자기 이익만을 취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죠. 이러한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아요. 투명하게 선순환하는 구조 속에서 형성됩니다.”
즉, 누군가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누군가가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해 함께 나누는 선순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것, 새롭게 창출된 가치를 혼자 독식하지 않고 분배하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기에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가능했다. (114쪽)
개방과 공유는 어떻게 전체 산업을 바꾸는가
(115쪽) IT 산업으로부터 촉발된 개방적 플랫폼 혁신은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에서부터 스마트 시계와 같은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까지, 각 산업 분야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기술을 공유하는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2014년 6월,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모터스는 배터리 과열 방지 기술과 급속충전 기술인 슈퍼차저(supercharger) 기술을 포함해 자사가 보유한 전기차 특허 기술 1,400여 개를 무료로 공개했다. 토요타 또한 2015년 1월 세계전자제품박람회(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 CES)에서 수소차 특허 5,680개를 전면 공개했다. 이들이 엄청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 개발한 자사의 독점기술을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요타 북미법인의 부사장인 니하르 파텔은 동반 성장의 가치에 주목했다. “우리의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더욱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그 혜택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3년 설립 이래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테슬라의 파격적인 행보는 단연 화제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독점적 기술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라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테슬라가 전기차 시대를 여는 촉매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기술 공개 이유를 밝혔다.
“다른 회사들의 문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의 전기차 특허를 쓰라고 했어요.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특허를 사용하는 것이 기쁩니다.”
영화 <아이언맨>이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한 일론 머스크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21세기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테슬라가 2018년 출시를 앞둔 ‘모델3’은 사전 예약자 수만 37만 3,000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전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다.
‘모델 3’은 테슬라 전기차의 최종 목적지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 개발 3단계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완성시켜왔다. 2008년 출시한 테슬라의 첫 자동차 ‘로드스터’는 전기차는 느리고 주행거리도 짧으며 성능도 안 좋다는 편견을 일거에 깨부수었다. 2단계로 출시된 세단형 ‘모델 S’(2012)와 SUV 차량 ‘모델 X’(2015)는 ‘비싼 장난감’이 아닌 매일 타고 다니는 운송수단으로서의 자동차였다. 그리고 마침내 대량 생산용 중저가형 전기차 ‘모델 3’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모델 3’을 연간 50만 대씩 생산하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계획에 화석연료 자동차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유와 개방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가치 창조는 문화 산업에서도 나타난다. 2014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가인 <렛잇고(let it go)>의 엄청난 인기에는 ‘공유’의 힘이 작용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기존의 저작권 개념에서 벗어나 <렛잇고>의 리메이크를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팬들이 음악을 리메이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제한된 권한을 공개한 것이다. 이로써 유튜브 등 인터넷상에 다양한 버전의 <렛잇고>가 퍼져 나갔고, 이것은 <겨울왕국>의 인기로 선순환됐다. 공유가 없었다면 <렛잇고>도 <겨울왕국>도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 명의 천재가 이끄는 시대에서
공동 창조의 시대로
훌륭한 플랫폼은 창조의 패러다임마저 변화시킨다. 개방과 공유의 플랫폼은 한 명의 뛰어난 천재가 이끄는 시대에서 공동 창조의 시대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고 지금은 다수가 함께 창조한 결과가 더 큰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여기, 개방과 공유의 플랫폼에서 이루어진 공동 창조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효과적인지 잘 보여주는 기업이 있다. 2011년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 기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애리조나에 로컬모터스라는 작은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미래적이고 매우 뛰어납니다. 단지 변화의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속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적응하고 혁신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2015년 세계 4대 모터쇼 중 하나인 북미국제오토쇼 현장에 오바마 대통령이 극찬한 기업 로컬모터스가 있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3D 프린팅으로 만든 전기차 ‘스트라티’의 제작과정을 공개하고 시범 운행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44시간 만에 3D 프린터로 실제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의 차체가 완성되었다.
보통 자동차에 2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데 비해 ‘스트라티’에는 단 40여 개의 부품만이 들어간다. 기계장치를 제외하고 보디와 섀시를 비롯해 대시보드, 콘솔, 후드 등 차체의 주요 부분까지 한꺼번에 인쇄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볍고(약 200킬로그램) 고장도 적다. 게다가 탄소섬유와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리사이클링(recycling)이 가능하다.
(120쪽) 즉, 재료를 다시 녹여 다른 차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혁신적인 전기차는 충돌테스트 등 미국 자동차 관련 안전규격 인증을 획득한 뒤 2016년 말부터 판매될 계획이다.
더욱 혁신적인 점은 ‘스트라티’가 수백 명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공유를 통한 공동창조의 결과물이다. ‘스트라티’는 로컬모터스의 커뮤니티 회원이자 디자이너인 미켈레 아노예가 설계했고, 206명의 커뮤니티 회원이 함께 만들었다. 로컬모터스의 CEO 존 로저스는 “공동창조야말로 혁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後略)
(이 책은 2016년 11월 10일 판이라 지금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