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 ․ 1978년
1
하늘 한곳에서 어머니는 늘 아팠다
밤 이슥하도록 전화하고 깨자마자
누이는 또 전화했다 혼인날이 멀지 않은 거다
눈 감으면 노란 꽃들이 머리 끝까지 흔들리고
시간은 모래 언덕처럼 흘러내렸다
아, 잤다 잠 속에서 다시 잤다
보았다, 달려드는, 눈 속으로, 트럭, 거대한
무서워요 어머니
-얘야, 나는 아프단다
2
어제는 먼지 앉은 기왓장에
하늘색을 칠하고
오늘 저녁 누이의 결혼 애기를 듣는다
꿈 속인 듯 멀리 화곡동 불빛이
흔들린다 꿈 속인 듯 아득히 기적이 울고
웃음 소리에 놀란 그림자 벽에 춤춘다
노새야, 노새야 빨리 오렴
어린 날의 내가 스물 여덟 살의 나를 끌고 간다
산 넘고 물 건너 간다 노새야, 멀리 가야 해
3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흔들리는 무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더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연히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보아야 했다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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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제가 쓴 시입니다.
모래내 이야기
친구가 모래내로 오라고 했다 서울 가좌동이라고 했다
나도 못살지만 너도 참 못사는구나
친구는 누나 집에서 법전을 끼고 살았다 고시 패스로
집안을 일으켜보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손바닥만 한 마루에서 대여섯 명이 한 프라이팬에 놓인 제육볶음을 먹었다
모래내에 별빛이 쏟아졌고 둘은 철길만 왔다갔다했다
어른이 모래내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분도 참 어렵게 사시는구나 착각이었다 그곳에 그의 작은 건물이 있었다
모래내 시장 횟집에서 풀코스로 얻어먹다가 만취했다 어른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택시를 잡아주었다
나 홀로 모래내를 가야 했다 세검정에서 시작했다
홍제천을 따라 걸으며 모래내 시장에 도착했다 허기가 졌다 쓰러져 가는 저곳 어디 가서 무얼 먹을까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나는 삶을 보며 얼른 그곳을 떠났다
친구는 고시 패스에 실패했고, 어른은 고인이 되었다
무작정 집어 탄 버스는 가좌동 고층 아파트를 구석구석 다녔다 고픈 배에는 아픔만 그득 차올랐다
(-김서정)
(위 시 그대로입니다. 모래내에 가면 두 사람이 생각납니다. 친구는 9급 공무원이 되어 잘 살고 있지만, 어른은 퇴직 후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많이 슬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