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요 16:7~13
제목: 성령이 오시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 기독교는 진리의 성령께서 성도의 안으로 오시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신앙입니다. 성령의 절대적 속성은 진리의 영이신 것입니다.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데요. 성부와 성자로부터(필리오케) 나오셔서 성도의 안에 내주하시는 영이십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위격은 셋으로 구분(별)되며 세 위격은 상호 간에 교류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위격은 성부의 위격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을 수 있고 성자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성자의 말씀을 성도에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부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은 물론이고 ‘성부와 성자의 뜻’을 알려 주실 수도 있습니다.
요16: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성부의 것은 다 성자의 것이고 성부와 성자의 것은 성령에 의하여 성도들에게 가르쳐지고 전달됩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로서 성도들을 돕고 진리를 전하는 영이신데 성도와 영원히 함께 있는 분이십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보혜사이시고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로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성으로 이 땅에 계셨다가 성부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신 예수님보다 어느 면(항상 함께 하심)에서는 더 유익함을 주시는 위격이 성령이십니다. 아래 말씀이 그 유익한 면을 강조합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성도들과 함께 하시던 보혜사 예수님이 성도들을 떠나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시면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오시는데, 옆에 나란히 함께 계신 정도가 아니라 성도들의 안에 내주(內住)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더욱 유익한 것을 말씀하실 때 실상(實狀)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실상(實狀)을 영어로 보면 진리(truth)입니다. 성령의 속성은 진리의 영이신데 성자 예수께서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이 오신다는 실상(實狀)을 말씀하시는 것도 진리이십니다. 진리는 진실(眞實)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NIV) But I tell you the truth: It is for your good that I am going away. Unless I go away, the Counselor will not come to you; but if I go, I will send him to you. |
진리=실상=진실을 가지고 오시는 보혜사 성령이 전하시는 진리의 핵심은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입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것이 무엇인자 다음 문단에서 살펴보도록 합니다.
●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말씀할 때의 책망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며 바로잡아주시는 것입니다(요16:8).
현대인의성경) 그분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공동번역) 그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
“죄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모두 죄입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살인∙강도∙간음 등은 육체적으로 분명히 드러난 죄이지만, 예수님이 성경적으로 직접 정의하신 죄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 모두’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을 볼 시간을 빼앗아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는 것도 죄이고 기도할 시간을 빼앗아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마음을 온통 빼앗아가는 중독들이나 집착들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중독과 집착으로 굳어진 죄는 매우 견고한 진(陣, 요새)처럼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이 되지요. 그래서 성경은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
“의에 대하여하 함”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으로는 성부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예수님을 육안으로는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거나 혼합되지 않고 결합(연합)되어 있는데요. 인성으로 계신 예수님의 육체는 사도신경에 나오듯이 성부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 앉아계십니다.
요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이것이 성경적인 의(義, righteousness)입니다. 사도신경은 십계명과 주기도문 등 핵심 진리를 요약하고 집대성한 공적 신앙고백인데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의 내용이 참된 의(義)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사탄이 심판을 받는 것인데요.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
이 내용은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세상을 죄악으로 몰아넣은 사탄이 심판과 정죄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이 와중에 예수를 구원자(그리스도)로 믿지 아니 한 모든 자들은 요16:9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고 사탄과 함께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외에도 알아야 할 진리와 중요한 교리들이 많습니다만, 일단 이 최소한의 3 가지는 기초로서 확실히 알아야만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
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 최소한의 기초를 넘어선 깊고 심오한 진리에 대해서도 성도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알려 주십니다.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진리의 성령이 참 성도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최소한의 기초 3 가지 외의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에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예수를 증언’하는 것(요15:26)이 보혜사의 직무이며 성도를 보호하고 위로해 주시는 직무도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보혜사 성령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그 인도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진리 안에서 안정되고 참 확신을 갖게 됩니다.
첫댓글 초신자나 바쁘신 분들은 성경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됩니다. 이외에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아래에 여러 댓글과 주석의 설명을 첨부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 그리스도의 작별이 제자들에게 주는 이익(요한복음 16:7-15)
구약의 예언에서 교회(이스라엘 민족을 뜻함)가 재난을 당하고 있을 때 메시야에 대한 약속으로 교회를 위로하였듯이(사 9:6; 미 5:6; 슥 3:8), 이제 메시야가 오시자 그의 교회에세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교회에 용기를 넣어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본문에 뵤혜사의 내님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Ⅰ. 보혜사가 오시기 위하여 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떠나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이 말씀되고 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믿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평상시보다 더욱 분명히 이 사실을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한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사실이 비록 그가 우리에게 믿도록 강요하지는 않으시더라도 진실임을 믿어야 낳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자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1.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원칙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교훈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 말씀은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하겠다. 그는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떠나가는 것이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도 유익이라."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고 또 믿기도 싫어하였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표면적으로는 우리에게 슬픔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들이 실질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유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우리가 우리의 갈 길을 마치고 이 세상을 작별할 때 더욱 그러하다.
(2) 우리 주님 예수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우리를 위하여 가장 유익한 것만을 언제나 준비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선택하는 어리석은 방법대로 살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은혜롭게도 우리의 선택을 통제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먹기 싫어하는 약을 주신다. 왜냐하면 그 약이 우리에게 유익한 줄로 아시기 때문이다.
2. 그가 떠나시는 것이 유익함은 그러므로 성령을 보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의 가심은 보혜사의 내림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1] 이 말씀은 부정적인 문귀로 표현되고 있다. 즉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다. 왜 그가 떠나시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실 수 없을까?
첫째,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 사건에 대하여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 방법이 변경될 수는 없었다. 이는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욥 18:4)는 욥기의 말씀과도 통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다른 선물을 주시기 전에 우리가 넣기 싫다고 하여도 먼저 준 선물을 거두어 가기도 하신다.
둘째, 상주(常住)할 외교관들이 오기 전에 교섭을 위하여 온 특별 대사는 소환당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셋째, 성령을 보내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그 대가를 치루시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그의 죽으심 곧 그들에 대한 그의 작별이었던 것이다.
넷째,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통 속에서 그렇게 간구하셨기 때문이었다(14:16 참고). 성령의 오심에 대하여 우리가 큰 비중은 두는 것은 이 선물이 우리 주님 예수에 의하여 그 대가가 치루어진 것이요,
또한 그가 간구하신 것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다섯째,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사 거기서 영접받으셔야 성령께서 떳떳이 세상에 증거할 수 있으시겠기 때문이었다(10절; 7:39 을 참조하라).
여섯째,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함께 하시는 어린 아이의 상태를 벗어나야 되겠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함께 하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이 내리시는 성령의 도움과 위로를 맏을 준비를 채 갖추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이 그가 떠나셔야만 하는 이유였다.
[2] 또한 긍정적인 어조로도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내가 떠나도 너희에게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방책을 세울 것이니 아를 믿으라"는 뜻의 말씀이다. 영광을 받으신 구세주는 지상에 있는 그의 교회에 대하여 절대 무관심하지는 않으시며, 또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시지 않고 교회를 떠나시는 일도 없으시다. 그는 떠나시지만 그는 보혜사를 보내신다. 그러므로 그가 떠나시는 것은 보혜사를 보내 주시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주름잡던 교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 자리에 또 다른 교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서게 마련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후계자들이 늘 유지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계시는 것보다 그의 성령이 그의 교회에 계시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떠나시고 보혜사를 보내 주시는 것이 우리를 위하여 참으로 유익하다는 말이다. 그가 육신으로 계신다면 그는 한 시간에 한 곳에만 나타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령은 같은 시각에 어디서나 동시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즉 "그의 이름으로 두 셋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함께 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현존은 사람들의 시선을 만족케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의 성령의 현존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케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죽이는 것은 문자요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말씀과도 통하는 내용이라 하겠다.
Ⅱ. 성령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과업을 수행하시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이 말씀되고 있다(8절). 그러므로 본문에 evlqw.n evkei/noj - 즉 그가 와서라고 기록되고 있다. 성령은 보냄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스스로 오시기를 원하셨다. 그가 오셔서 먼저 하실 일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또 어떤 난외주(註)에 의하면 너희의 사역을 통하여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에 확증하려고 오셨다"고 하였다.
1. 이젠 본문을 통하여 성령의 직능이 무엇인지 그가 보냄을 받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자.
(1) 책망하기 위하여 그는 오셨다. 말씀과 양심을 통하여 성령은 우리를 책망하시는 분이시다. 교역자들은 직책상 책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교역자들을 통하여 책망하는 일을 수행하신다.
(2) 확증하기 위하여 그는 오셨다. 이것은 법적은 용어로써 증서를 수집하여 사건을 분명하고 참된 증거에 의거해 오래 조사하여 사건을 귀결짓는 판사의 직능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확증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 말씀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후계자들의 반대자들을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거짓됨과 허위를 드러내 보이심으로 꼼짝 못하게 하시며, 그들이 반대하고 있는 자들의 참됨과 확실함을 보여 주신다"는 내용인 것이다. 확중하는 일이 성령이
하시는 일임을 기억하자. 그는 이 일을 효율적으로 이루어 내신다.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도 이 일을 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다면 어떤 계기를 이룰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여시는 것은 오직 성령뿐이시다. 성령은 7절에서 보혜사라고 칭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그가 확증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아마 확증한다는 말 때문에 그의 위로는 냉정할 것이라 여길 사람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처음에는 확증하시고 다음에 위로하시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방법이다. 그는 처음에는 상처를 헤집어 놓으시고 그런 다음 치료제를 투입하신다. 또는 어느 것이 옳은지를 보이시기 위하여 먼저 확실한 증거를 찾으신다는 것은 성령의 위로가 확실하며 진리에 근거한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2. 그가 책망하고 확증하시는 대상이 어떠한 자들인가를 살펴 보자. "세상"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곧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1) 성령께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통하여 세상에 확증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세상에 나아가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하므로 큰 결실을 거두겠기 때문이다.
(2) 성령께서는 복음에 대한 세상의 반대와
나쁜 편견을 제거하시고 그들로 입을 다물게 하실 능력을 가지고 나가실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말씀대로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확증당하고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아"(고전 14:24)믿음에 귀의함을 볼 수 있다.
(3) 성령께서는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믿게 하심으로 그들로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 즉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또한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개종할 것이라고 한다. 제자들이 당할 곤난이 말씀된 데 비하면 이 말씀은 그들에게 큰 격려가 되는 말씀임을 깨달을 수 있다.
[1] 그들이 신나는 일을 보게 될 것인데 사탄의 나라가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리라 하신다. 이것은 성령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기쁨이 될 것이다. 비록 사악한 세상일지라도 성령께서는 역사하실 것이며 죄인들이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은 신실한 교역자들의 위로가 되리라고 한다.
[2]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는 것은 제자들의 섬김과 그들이 당하는 고난의 결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섬김과 고난은 아름다운 복음 사역에 다대한 공헌을 한다.
(1) "죄에 대하여" 성령이 증거하실 것이다(9절).
이는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 때문이라고 한다.
[1] 성령께서 보냄을 받은 것은 죄인들에게 죄에 대하여 단순히 알리고자 하신 것이 아니요, 죄를 확증시키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즉 죄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결과를 초래함을 확증시키려 오신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죄에 대하여 증거해 주시고 그들로 그 죄를 그들이 소유하고 있음을 시인하게 하고자 성령은 오신 것이다. 8장 9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양심의 가책을 받게 하시며" 그들의 추행을 그들로 깨닫게 하고자" 하신다. 성령은 죄의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신다. 곧 그는 우리가 이러이러한 죄를 저질렀음을 입증하신다. 그는 또한 죄의 실책에 대하여 곧 우리가 죄를 지으며 행한 잘못을 입증하신다. 성령은 죄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곧 우리가 올바른 이성에 거슬려 행한 사실을 밝히시며 우리의 본래의 관심이 어디 있는가를 밝히신다. 그는 또한 죄의 추잡함에 대하여 곧 죄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불결하여졌음을 입증하시며 죄의 근원인 우리의 부패한 본성에 대하여 입증하신다. 마지막으로 그는 죄의 결과에 대하여 곧 그 결과는 사망임을 증거하신다. 성령께서는 모든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드러내 주시며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죄있음을 보여 주신다.
[2] 성령께서는 특별히 그들의 불신의 죄 곧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을 문책하신다.
첫째, 그 이유는 불신의 죄가 가장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본래의 양심에 의해 살인이나 도적질이 죄임을 사람들은 깨닫는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복음에 의해 제공된 구원을 거절하는 것이 조임을 사람들에게 확증시키시는 것은 성령의 초월적인 역사이다. 자연 종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하여도 구원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자연 종교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과제는 언제고 신의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그것이 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충분히 입증되면 우리가 그것을 용납하고 그 계시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범하는 자는 곧 말씀하신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은 죄가 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은 사람을 가장 크게 멸망시키는 죄이기 때문이다.
모든 죄는 그 자체의 성격상 파멸의 요소를 지닌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없다. 죄가 죄되는 것은 오직 불신을 통해서이다. 이 불신 때문에 죄인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 불신 때문에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로 불신이야말로 치료를 불가능하게 하는 죄인 것이다.
셋째, 불신은 모든 죄의 기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칼빈도 불신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세상에게 죄가 그들 가운데서 지배하고 있는 참된 이유는 그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기 때문임을 확실히 알려 주신다. 그러므로 칼빈은 No putimus vel guttam unam rectitudinis sine Christo nobis inesse - 즉 그리스도를 떠나서 우리가 잠시라도 정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2) "의에 대하여" 성령이 증거하실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겠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10절).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겠다.
[1]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에 대하여 증거하실 것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f라고 한 것과 같이 성령께서 나사렛 예수는 의로운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으로 알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요일 2:1). 그리스도의 적들은 그를 세상에서 제일 악한 인물로 몰아 버렸고 따라서 군중들도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사실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또한 그가 악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성령에 의하여 의롭다 하심을 입으신다"(딤전 3:16).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는 사기군이 아닌 의인임이 판명된다. 그리고 성령의 이러한 증거는 실효를 거두었던 것이다. 확실히 그는 위대한 구속자이시든지 굉장한 사기군이든지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절대 사기군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무슨 근거에 의하여 주 예수의 신실하심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실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고찰해 보자.
첫째, 그들이 주님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그들의 편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욕된 육신의 형체
곧 종의 형체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바로 그가 종의 형체를 입으셨으므로 그들이 그를 경시하였던 것이다. 실상 모세도 죽은 후에야 죽기 전보다 더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셨다는 사실이 그리스도의 의를 완전히 확증케 하여 주는 사실이었다. 약속에 따라 성령이 오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영광되이 앉으신 증거였다(행 2:33). 또한 이 사실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나타내 주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기군을 그의 우편에 앉히실 리는 절대 없겠기 때문이다.
[2]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알리신 것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니엘 9장 24절에 보면 메시야께서 입으신 의는 영원한 의인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성령께서는 이 영원한 의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증거하실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그들의 죄를 알려 주심으로 그들에게 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리라고 하신다. 그는 그들의 죄의식이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어디서 이 의를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들이 의롭게 될 수 있는가를 알리고자 하셨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떠나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용납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하신다. 실상 "힘써 자기 의를 세우려 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를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롬 10:3).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승천하신 사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확실히 알리는 가장 좋은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그리고 그가 나를 영접하신 증거로 너희가 나를 다시는 못보리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명을 조금이나마 완성치 못하고 떠나셨다면 그는 다시 보냄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확신하는 것처럼 그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입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3) 성령께서 "그의 심판에 대하여' 증거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11절).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이 세상의 주권자"인 악마는 심판을 받았고 굉장한 사기군이요 파괴자로 규탄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단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심판은 이미 행하여졌고 부분적으로 벌써 그들은 처형을 당하였다.
사단은 이방 세계에서 추방당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신탁은 맞아 떨어지지 않고 그의 제단은 폐허가 되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거하는 많은 사람들의 몸에서 쫓겨났다. 사단이 쫓겨나는 기적적인 능력은 교회 안에서 오랫 동안 지속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사람들의 영혼에서 추방당하고 만 것이다. 즉 그는 "하늘로부터 번개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2] 이 말씀은 성령께서 심판에 대하여 세상에게 증거하시는 데 더 없이 좋이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하여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말씀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성결에 대하여 세상에 증거하시는 데 더 없이 해주었은 근거가 된다(마 12:18). 즉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사단보다 강하시며 그러므로 그는 사단의 무장을 해체하고 쫓아내시며 사단의 폐허가 된 나라 위에 자기의 보좌를 세우실 수 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
둘째, 이 말씀은 성령께서 이 세상에게 그리스도께서 새롭고 더 좋은 것을 공급해 주시리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거하시는데 더 없이 좋은 근거가 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명은
만물의 위치를 바로 정립하시며 개혁과 신생의 시대를 세상에 전파하고자 하신 것임을 보여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시므로 실정을 되풀이하는 장본인들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받고 추방당할 것임을 세상에 증명하신다.
셋째, 이 말씀은 성령께서 주님 예수의 권세와 지배에 대하여 세상에 증거하시는데 더 없니 좋은 근거가 된다. 성령께서는 "모든 심판이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세상에 증거하실 것이다. 그가 이 세상의 임금을 심판하셨고 "뱀의 머리를 쳐 죽이사 죄의 세력을 가지고 나라를 황폐케 하는 그를 멸하셨다는" 사실에 의하여 주님께서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굴복당하면 다른 어떤 권세도 그리스도 앞에 서 있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으리라.
넷째, 이 말씀은 성령께서 마지막 심판날에 대하여 세상에 증거하시는 데 더 없이 좋은 근거가 된다.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나라의 거만한 원수들은 최후를 맞이할 것인데 이는 그들의 주모자인 악마가 심판을 당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Ⅲ. 성령의 오심은 제자들 자신들에게는 더 없는 유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적들에게 그의
심판을 증거하며 그들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들과 그의 대행자들에게는 교훈하시며 위로하시는 분으로 역사하신다.
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그들의 현재의 연약함을 애석하게 여기시고 계심을 그들에게 알리신다(12절).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스승이셨는가를 생각해 보자.
(1) 가르침의 풍부함에 있어서 그와 같은 분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것을 말씀하셨으나 아직도 하실 말씀이 많이 있으셨다. 그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보배가 감추어 있었다. 고로 우리가 자신에게 얽매이지 않고 그 안에 거하면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이다.
(2) 그만큼 연민이 많으신 분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관하여" 더 많은 것을 말씀하셔야 했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자기를 거부할 것과 고로 이방인들이 소명될 것을 말씀하셔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말씀을 감당할 수 없음을 그는 아셨다. 이 말씀이 그들에게 만족을 주기보다 당혹과 거침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는 이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았다.
그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하여"말했었다. 그때 그는 그들에게 "성령의 오심을" 말씀하셨고 성령이 오시므로 지금은 그들이 감당치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권세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부으심으로 그들이 만족할 만한 협조를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현재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실수가 많음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인데 이제 그들의 주님마저 그들을 떠나신다면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그들에 대하여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가 안심해도 될 것이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그대로 이루어져서 성령은 사도들을 인도하셨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시고 계신 것이다.
(1) 성령이 사도들을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자.
[1] 이 말씀은 성령께서 사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돌보겠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너희를 인도하시리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이 광야를 지날 수 있도록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인도하시겠다는 말이다. 과연 성령께서는 말을 하는 데 있어서
또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그들이 실수함이 없도록 그들의 혀와 펜 끝을 인도하셨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 주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도움과 돌보심으로 우리와 함께 가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보내진 분이시다(롬 8:14).
[2] 이 말씀은 성령께서 사도들이 그들의 목적을 망각하지 않도록 돌보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일등 항해사가 배를 예정된 항구로 인도해 내듯이 "그가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본문에 말씀되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받는다는 말씀은 단순히 진리를 안다는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말씀은 진리와 아주 가깝게 그리고 경험적으로 사귀고 있다는 뜻의 말씀이며 진리에 감화를 받아 경건하게 되어간다는 뜻이 말씀이다. 다만 머리 속에 진리에 대한개념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진리의 향기와 능력과 위안을 간직한다는 말이다. 즉 점진적으로 진리를 발견함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는 말이다. 즉 본문은 "성령께서 너희를 처음에는 쉽고 분명한 진리에 의하여 인도해 내시므로 보다 어려운 내용도 깨닫게 하시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어떻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수 있는가?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말씀은 그들의 사명과 관계있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하시겠다는 뜻을 지닌다. 그들의 직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아는 것이 필요하거나 또 유용한 것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그 내용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진리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며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시며 그 진리를 설명하거나 변호하게 하시겠다는 뜻의 말씀이다.
둘째, 이 말씀은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에로도 그들을 인도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의 뜻은 "그가 너희를 인도하는 모든 곳이 진리일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요한 일서 2장 27절에도 "기름 부음이 참되다"고 하였다. 그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란 말씀을 다음에 나오는 내용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이 사실을 증거하신다.
a. "성령께서 진리 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시지 않을 것인데 그가 나의 가르침과는 다른 교훈을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리라.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알아 오직 그것만을 말하리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아래와 같은 뜻을 지닌다.
(a)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된 성령의 증거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고 통달하시며" 또 사도들은 바로 그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고전 2:10, 11) 우리가 성령의 말씀에 우리의 영혼을 의뢰하여도 좋다는 말이다.
(b) 성령의 증거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일어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의로 말씀하지 않고 그리스도와는 별다른 자기만의 관심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본질상 따라서 나타난 기록에 있어서도 그가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이시기 때문이다"(요일 5:7). 인간의 말과 뜻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영원하신 말씀과 성령에게는 결코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으시다.
b.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치실 것이며 너희를 위하여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보류하시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가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신다. 성령께서는 사도들 가운데서 예언의 영으로 일하셨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리란 사실이 구약에 예언되었고(욜 2:28) 말씀대로 그는 사도들을 통하여 예언을 하셨다. "성령은 장래 일을 그들에게 알리셨다"(행 11:28; 20:23; 21:11). 그 성령이 또한 "후일에" 있을
이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딤전 4:1). 또한 성령 안에 거하였던 요한도 장차 있을 일을 환상 가운데서 보았다. 이제 이러한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은 사도들의 마음에 만족을 줄 수 있었으며 그들의 행동에 유익을 주었으며 그들의 사명에 대한 확신을 안겨 주었다. 한 얀센주의의 추종자(Jansenius)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유익한 말을 남겨 놓았다. "우리는 성령께서 현재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사도들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보여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저 세상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만으로 만족하게 여기자,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장코뱅 상세하고 긴 설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리코레시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연합
닛사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yssa)는 바실레오스의 동생이었다. 그는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인 것은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기본 신학이었다. 그는 삼위가 서로 상호 침투한다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를 공식화하여 창조 전 만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보았다.
서철원, 「하나님론」, 서철원박사교의신학 II (서울: 쿰란출판사, 2018), p.135.
https://cafe.daum.net/1107/YDR0/24
다시 한번 복습을 합니다.
소요리문답이 설명하는 조금 쉬운 삼위일체
소요리문답 문6. 하나님의 신격에는 몇 위가 계십니까?
답. 하나님에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있는데 이 셋이 한 하나님이며 본질이 같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합니다.
- 마 3:16-17, 28:19, 빌 2:6
이외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https://cafe.daum.net/1107/YcL1/14
이 정도는 초신자도 감당할 수 있고 그래서 소요리 문답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성도는 삼위일체를 알고자 한다
정통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발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때는 beget-begot-begotten을 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독생자(獨生子, the only begotten Son)라고 합니다.
https://cafe.daum.net/1107/Y4OQ/66
추가적인 좋은 설명을 다시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보혜사로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셨고, 성령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로서 성부로부터 그리고 성자로부터 함께 나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이끄시고 보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씀을 우리에게 일러 주셨고,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써 곧 성부와 성자의 말씀을 증언해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해주시는 정말 또 다른 보혜사이신 게 확실하군요.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 이것은 세상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거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고, 세상에 의인은 없고 예수님만이 의인이시라는 것, 마귀와 세상에 대한 심판을 예수께서 하실 거라는 것이죠. 그래서 성령을 진리의 영, 곧 예수(진리)를 증거하시는 분으로 일컫는다는 것 등을 두루두루 기독교 정통신학을 핵심적으로 잘 가르쳐 주셔서 유익합니다. 클래식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잘 요약해 주시고 좋은 댓글 달아 주셔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
성령에 대햐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좋은 포스팅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