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이, 흥
…… 진한 땅 6부 촌장들이 모여 임금 모실 궁리를 하다가 버들 산(楊山 양산) 밑 댕댕이우물, 혹은 담쟁이우물
(蘿井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진 것을 보고 달려갔다. 가 보니, 흰말 한 마리가 무릎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곁에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박혁거세 탄생 신화의 첫머리다.
열쇠말은 ‘버들 산’이다.
“저는 하백(河伯), 곧 강신(江神)의 딸입니다. 이름은 ‘버들꽃(柳花 유화)’입니다……
압록강의 ‘곰마음 못(熊心淵 웅심연)’에서 놀다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분을 따라가 ‘곰마음 산’ 밑에 있는 압록강변에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고주몽 신화의 첫머리다. 열쇠말은 ‘버들꽃’이다.
“왕건이 궁예를 섬기는 장군으로 군대를 이끌고 정주를 지나다가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처녀가 길 옆
시냇가에 서 있었다……”
태조 왕건 설화에는 버드나무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왕건이 물을 청하자, 처녀가 바가지로 물을 깃고 그 위에다 버들잎을 훑어넣어 왕건에게 건네주었다는 대목이다.
박문수 이야기에도 이 버들잎이 등장한다. 우리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다.
“왕후가 부끄러워서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어귀에 이르렀을 때 태동하여 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고 죽었다.
성종이 유모를 택하여 아이를 양육하였는데 장성하여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현종이다.”
(김재용 이종주 공저 ‘왜 우리 신화인가’에서 재인용)
또 버들이다. 버들(버드나무)이 이처럼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인가?
먼나라 그리스의 신화에도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신성한 결혼의 여신 헤라는 버드나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헤라는 사모스 섬 암브라소스 강둑 버드나무 아래서 태어난다.
제우스는 뻐꾹새로 둔갑해서 접근하고, 헤라는 비에 젖은 뻐꾹새가 애처로워 가슴에 품어주었다가 순결을 잃게
되는데, 이들이 첫 정을 나눈 곳도 바로 비오는 봄날의 버드나무 밑이었다(파우사니아스).
민요의 노랫말 중에는 별 의미도 없는 사실을 평면적으로 서술한 것일 뿐인데도 끈질기게 불리는 노랫말이 여럿
있다.
가락국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구지가(龜旨歌)’의 노랫말(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이 그렇고,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가득찬다’는 ‘도라지 타령’의 노랫말이 그렇다.
아무리 불러 보아도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불린다.
영국민요 ‘런던 다리 떨어진다(London bridge falling down)’가 매우 암시적인 시사를 던진다.
런던 다리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런던 다리 떨어진다, 아이고, 우리 아가씨(My fair lady)……
노랫말은 단순하기 그지없는데도 영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런던 다리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게 떨어졌으니 우리 ‘아가씨’는 과연 큰일 아닌가?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독하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랫말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민요가
줄기차게 불리는 것은, 그 노랫말이 생산적인 성적 행위를 암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안 삼거리’의 노랫말(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이 흥……)도 나는 그렇게 푼다.
‘삼거리에 늘어진 능수버들’에서 나는 ‘벌거벗고 누운 번듯이 드러누운 여성의 치모’를 상상한다.
신화는 성적인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상징적인 의미를 빌려 행간에다 녹여 놓을 뿐이다.
옛 이야기꾼들은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왼, 비속한 희시(戱詩) 한 구절이다. 지은이는 잊었다.
나는 이 시에서도 한 엉큼한 남성이 밤과 버들을 빌려 그려내는 여성 성기의 속성을 읽는다.
“북산의 누런 밤은 작대기로 때리지 않아도 절로 벌어지고
남산의 푸른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홀로 습하다
(北山黃栗不棒石木 북산황률불봉탁
南山靑柳不雨濕 남산청류불우습)”
김재용(원광대), 이종주 교수(전북대)가 함께 펴낸 ‘왜 우리 신화인가’에 놀랄만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만주족의 창세 신화 중에 ‘천궁대전(天宮大戰)’, 즉 하늘에서 벌어진 큰 싸움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아홉 개 ‘모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진족 토착어인 ‘모링’은 ‘차례’, 혹은 ‘회(回)’를 뜻한다고 한다.
‘모링’은 ‘산모퉁이 휘어둘린 곳’을 뜻하는 우리말 ‘모롱이’를 연상시킨다.
경상도 북부에서는 ‘산 모롱이’를 ‘산 모링이’라고 한다.
이 ‘천궁대전’에 따르면 이 세상에 가장 먼저 있었던 것은 물거품이다.
바로 이 물거품에서 ‘아부카허허‘가 탄생한다. 여성인 아부카허허는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생명의
원초적 시원이다.
‘아부카’는 하늘, ‘허허’는 여성을 뜻한다. 바로 하늘 여성이다.
그런데 이 ‘허허’는 ‘여성 성기’와 ‘버드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생명이 여성의 성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에 따라
창조 여신 ‘아부카허허’의 이름은, ‘하늘 여음(天女陰 천녀음)’, ‘하늘 버들(天柳樹 천류수)’, ‘하늘 어머니(天母神)’
라는 3중적 의미를 지닌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주족 시류 풍속 중의 하나라는 ‘버들쏘기(射柳 사류)’다.
무당이 큰 산의 오래된 버드나무에서 아홉 가지의 싱싱한 버들가지를 꺾어 와 높은 나무에 묶으면 마을 사람들이
돌화살을 교대로 쏘는데, 버들가지를 맞추는 사람이 바로 창조 여신 ‘아부카허허’의 간택을 입는다는 것이다.
고주몽이 활을 잘 쏘아 백보(百步) 떨어진 곳에 늘어진 버들잎을 맞추었다는 설화는,
그러면 고주몽의 활솜씨를 과장한 것이 아닌가?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은 ‘버들꽃’ 부인이 ‘해를 품고 주몽을 잉태하여’, ‘왼쪽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존귀한 자는 남성이 뿌린 씨앗에서 잉태해서는 안 되는가?
신화는 남성의 씨앗을 행간에다 묻는다. 해모수가 머리에 쓰고 있었다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까마귀 깃털 관
(烏羽冠 오우관)’, 해모수가 허리에 차고 있었다는 역시 태양신을 상징하는 ’용광검(龍光劍))’이 바로 남성 성기의
은유다. 바로 그 빛줄기가 여성 성기의 상징일 수 있는 ‘버들꽃’, 혹은 버들잎에 꽂힌 것이다.
존귀한 자는 여성의 성기를 통해 나올 수 없는 것인가?
신기하고 이상한 사적을 꾸미는 이들은 이렇듯이 ‘왼쪽 겨드랑이’를 좋아한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이 선도산 성모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일연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야 부인의 왼쪽 옆구리로 나왔다는,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좌액탄생설(左腋誕生說)을 흉내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브 역시 아담의 옆구리 ‘출신’이다. 하느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으니’,
부처님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천지 창조 시대에 벌써 전례가 있었던 셈이 아닌가?
주1)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뿌리내리는 버드나무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좁으장하고 갸름한 버드나무 잎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