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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돈만 보고 달린 ‘살인봉고’
춘천 주부 납치사건의 범인들이 범행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이들은 주부 외에도 카페 여주인을 살해하는 등 여러 건의 살인극을 벌였고 추가 범행을 시도하려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붙잡혔다.
지난 2006년 7월 21일 오후 춘천에 사는 주부 김경숙 씨(가명·당시 43세)와 곽금자 씨(가명·당시 46세)가 함께 사라졌다.
실종 당일 춘천의 한 외곽에 소재한 찜질방에 갔다가 김 씨의 차량을 타고 귀갓길에 오른 것이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두 주부는 찜질방에서 나오면서 가족들에게 전화해 ‘저녁반찬을 사가지고 들어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 이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어디서도 목격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명 ‘춘천 찜질방 주부 납치살해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 주부가 실종된 지 30여 일 만에 밝혀진 사건의 전모는 참혹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사건은 청송교도소 동기인 30대 남성 2인조가 쉽게 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나약한 여성들을 상대로 벌인 납치살인극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이 사건 외에도 다른 범죄를 저질렀고 추가 살인계획까지 미리 세워놓았던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전주 덕진경찰서에 근무할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전북지방경찰청 수사2계 문왕종 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7월 21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보름 동안 이들 일당에게 무려 3명의 부녀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강원과 전북, 전남, 경기 등 전국 5개 도시를 배회하면서 벌인 범죄행각은 살인과 특수강도, 차량 절취 등 그야말로 무차별적이었다.
특히 ‘피해자는 무조건 살해한다’는 강령하에 자행된 이들의 범행은 돈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잔악했다.
범인 중 한 명을 특수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해 조속히 검거함으로써 미궁에 빠질 뻔한 이들의 살인행각을 밝혀내고 추가 살인까지 막을 수 있었다.
억울하게 희생된 3명의 죽음 앞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추가 피해자를 막았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삼았던 기억이 난다.
먼저 두 주부의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부터 들여다보자.
실종 다음날 새벽 이들이 탄 차량은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의 국도 인근 농로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납치강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찜질방 일대가 워낙 인적이 드문 데다가 낮시간임에도 목격자가 없어 수사는 난항에 부딪혔다.
또 차량이 전소된 탓에 두 주부의 실종과 관련된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찜질방에서 함께 귀갓길에 올랐던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의 실마리는 의외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납치강도사건에서 풀리게 된다.
2인조 강도에게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한 피해여성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음은 문 팀장의 얘기.
당시 구사일생으로 사지를 벗어난 피해여성은 박은정 씨(가명·30)였다.
박 씨의 진술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7월 29일 밤 12시가 좀 넘은 때였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 율치마을 앞 노상에서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봉고차가 앞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건장한 사내 둘이 내리더니 50㎝ 길이의 철근으로 운전석 유리창을 깨고 ‘정글검’으로 위협한 뒤 박 씨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차에서 끌어내더라는 거다.
범인들은 케이블타이(선 정리용 끈)로 박 씨의 양손을 묶고 자신들이 타고온 봉고차에 강제로 태웠다고 한다.
그 뒤 이들은 박 씨의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을 하기도 했고 이에 박 씨가 반항하자 무지막지하게 폭행을 했다고 한다.
박 씨는 자신을 납치한 범인들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국도변을 무려 5시간이나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뒤 새벽 5시 10분경 범인들이 차를 세운 곳은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에 소재한 한 편의점 앞이었다는 것.
이어지는 문 팀장의 설명.
2인조 중 한 명은 차를 지키고 있고 또 한 명은 정글검을 들고 박 씨와 함께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현금지급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도록 했다고 한다.
박 씨는 현금인출기에서 의도적으로 10만 원씩 소액을 인출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박 씨는 수십 분에 걸쳐 총 360만 원을 인출했는데 편의점 앞에 남성들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강도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는 거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경찰에 신고하던 당시 박 씨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긴박했던 순간에도 박 씨가 범인들이 타고 달아난 봉고의 차량번호 끝자리 숫자 두 개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음은 문 팀장의 설명.
수사팀은 끝자리 숫자 두 개를 토대로 전북지역 160여 대의 봉고차량을 추적하는 동시에 해당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들 중 동일수법 전과자를 파악했다.
그 결과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이 2004년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한 김동철(가명·40)이었다.
남성 20여 명의 사진을 일일이 뽑아 피해자 박 씨에게 확인한 결과 김동철이 범인 중 한 명과 비슷하다는 답변을 얻어낸 것이다.
수사팀은 김동철이 자주 통화하는 인물들의 명단을 확보해 이들을 조사한 끝에 김동철이 추가범행을 하기 위해 전남 목포에 내려간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우리는 급히 목포에 내려갔지만 1차 검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동철을 잡기 위한 수사팀의 끈질긴 추적은 계속됐다.
그 결과 수사팀은 김동철이 인터넷 독신자 동호회 사이트에서 알게 된 A 씨(여·30)를 살해하기 위해 수원에 올라올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다음은 검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에 대한 문 팀장의 설명.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거나 김동철을 검거하는 데 실패할 경우 A 씨의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밤낮 없는 추적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8월 6일 오후 8시경 수원시 권선구의 대형마트 앞에서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가방을 들고 가는 김동철을 발견했다.
수사팀이 다가가자 김동철은 갑자기 상의 안쪽 주머니에 있던 잭나이프를 휘두르며 거세게 반항했다.
김동철은 가방에서 정글검까지 꺼내 격렬히 저항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팀 형사가 허벅지를 찔리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틀 후 춘천경찰서와 공조수사를 벌인 결과 공범 조형석(가명·31)을 춘천에서 추가로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을 검거한 후에 밝혀졌다.
특수강도 혐의로 검거한 이들 2인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간 이들이 벌여온 끔찍한 살인행각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어지는 문 팀장의 설명.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이 찜질방 주부 실종사건과 관련돼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과 전력으로 미뤄보아 분명 여죄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김동철에게서 피해자 박 씨의 것이 아닌 다른 여성의 귀금속이 발견된 점도 수상했다.
나는 전주 일대에서 발생한 미제사건들을 취합해 분석하는 한편 이들을 상대로 여죄를 추궁했다.
추가범행 부분에 대해 극구 부인하던 김동철은 얼마 후 지인과의 접견에서 ‘춘천 사건도 내가 했다’고 털어놓기에 이른다.
나는 김동철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이들이 춘천에서 실종된 주부 2명은 물론 광주에서 카페 여주인 1명까지 살해했다는 진술을 받아낼 수 있었다.
성폭력 등 전과 5범인 김동철과 강도상해 등 전과 4범인 조형석은 청송교도소 동기로 만난 사이였다.
이들은 각각 2004년, 2005년에 출소한 뒤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전과자인 데다 특별한 기술도 없던 이들에게 세상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특히 범행 당시에 이들은 사실상 수입이 전혀 없던 상태였다.
결국 이들은 2006년 6월경에 다시 만나 ‘세상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
사업자금을 마련해서 우리도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며 위험한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다음은 문 팀장의 설명.
이들은 전국을 무대로 가정주부를 납치해 금품을 강취한 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특히 자신들의 얼굴을 본 피해자는 물론 신고한 사람까지 끝까지 추적해서 ‘보복살해’하기로 했다.
이들은 7월 21일 춘천의 한 주택에 침입, 40대 남성을 위협한 뒤 현금 10만 원과 1톤짜리 화물차를 강취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3시경 찜질방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주부의 차량을 훔친 트럭으로 가로막아 세웠다.
이 차량엔 바로 실종된 주부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두 주부를 춘천휴게소로 데려가 돈을 인출하게 해 총 390만 원을 빼앗고 목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버렸다.
이때 증거 인멸 목적으로 피해자의 소지품을 차량과 함께 불질렀다.
이들은 그로부터 8일 후인 7월 29일엔 전북 임실에서 혼자 차량을 운전하던 박은정 씨를 대상으로 납치강도행각을 벌였다.
이들은 박 씨의 돈을 빼앗은 뒤 살해하려 했지만 박 씨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면서 박 씨의 차량과 금품을 강탈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며칠 후인 8월 3일 이들 2인조는 또 한 건의 끔직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이들은 낮 12시 30분경 광주시 치평동에 소재한 카페에 손님을 가장해 들어갔다.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던 카페주인 김옥자 씨(가명·당시 51세)가 돈이 많은 것처럼 얘기하자 이들은 김 씨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하지만 김 씨를 살해하고 이들이 손에 쥔 돈은 20만 원에 불과했다.
특히 이들은 단순강도강간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김 씨의 중요 부위를 훼손하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검거 당시 이들이 또 다른 살인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어지는 문 팀장의 얘기.
수원에서 검거될 당시 김동철은 동호회에서 알게 된 여성 A 씨를 살해하려고 했다.
실제로 김동철은 ‘0.5초만 늦었어도 피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하더라.
김동철의 가방에서는 장검과 200여 개에 달하는 케이블타이, 심지어 필로폰까지 발견돼 이들이 추후 얼마나 많은 범행을 벌일 계획이었는지 짐작케 했다.
특히 이들은 범행 도중 달아난 박은정 씨를 끝까지 추적해 보복살인을 하려고 했다고 하더라.
검거가 조금만 늦어졌더라면 동호회원이었던 A 씨는 물론 신고자 박 씨의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3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이들 2인조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죄송하다’는 짤막한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들이 조사과정에서 “우리 얼굴을 아는 사람은 다 죽이려고 했다.
유치장에서 또 한 명 죽여야겠다”는 서슬 퍼런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은 것으로 보아 과연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는 게 문 팀장의 얘기다.
특수강도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동철과 조형석은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