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발이 아파트 마당에 가득하다. “저 사람은 사는 게 좋은 갑다.” 베란다 창으로 얼굴을 내민 나에게 옆집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맘때면 근처에 나타난다는 한 남자의 윤곽이 다가온다. 양복저고리에 꽂은 녹음기에서 트롯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일흔은 됨직한 그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는 게 리듬을 타는 거 같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흥’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다.
흔들거림은 춤사위로 보여진다. 몸을 흔든다고 모두 춤은 아니며, 기쁠 때 춤을 춘다고 여기지만 모두 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춤을 춘다’는,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을 말한다. 바람처럼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그는 춤을 추는 사람이다. 작은 나무들 사이를 오갈 때면 마치 흔들거리는 나무처럼 보인다. 나는 어둠살이 넓게 깔리는 시각이면 그가 나타나는지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면 텅 빈 마당은 더 고적하게 느껴진다.
사십여 년 전 친정아버지도 그런 적이 있었다. 마른 낙엽이 굴러다니는 이슥한 시각에 골목을 따라 노랫소리가 들렸는데 ‘번지 없는 주막’이었다. 열 살쯤이던 내가 까치발을 하여 창문을 열어보니 약주를 하신 아버지였다. 양복저고리를 어깨에 걸치고 넘어질 듯 말 듯 곡조에 맞춰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골목 중간쯤의 고목에 등을 기대고 한참동안 있었다. 노래도 멎었다. 멀리서 보니 침묵 속에 서 있는 이가 나무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간다.
그 무렵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쌀 도매업을 시작했다. 추웠던 날에 어머니와 시장에 갔다가 가게에 들러 장작난로에 몸을 녹이면 따뜻했다. 저녁에 아버지는 감기기운이 있다면서 일찍 퇴근하고 김씨 아저씨가 난로의 잔불정리를 책임졌다. 다음날 새벽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아버지가 후다닥 나갔다. 현관문이 세게 닫히는 ‘쾅’하던 진동만큼 우리 집도 크게 흔들렸다. 밤사이 가게에 불이 났다. 난로에서 점화된 불씨가 다닥다닥 붙은 옆 가게로 번져서 여러 채를 태웠다는 소식을 저녁뉴스에서 들었다.
며칠간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낌새를 알아차린 우리들은 어머니의 눈치만 살피던 중, 아버지가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중이란 걸 전화통화에서 들었다. 학교에 갔다 오니 어머니는 집달관이 다녀갔다고 한다. 장롱이며 전축, TV, 책꽂이 등 작은 것에도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다면서 어머니는 눈물을 그렁거렸다.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나무가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 강풍에 흔들리듯이, 아버지도 힘겨워 흔들리는 나무였다. 한 구덩이에 몸을 딛고 꿈쩍하지 않을 나무같던 아버지도 많이 지쳐 보였다. 가로등이 조명처럼 비추면 나뭇잎은 호흡을 가다듬지만 아버지의 입장은 그럴 수 없었다. 지리산 자락 함양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서 정착하려던 젊은 나이에 도시의 삶은 예측 불허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와 결혼 후 기반을 잡을 즈음 가게 불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칫거리며 골목을 따라 올라온다. 달빛 아래 몸을 흔들거리던 동작도, 구성진 가락도 현관문 앞에서 멈추었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마루에 걸터앉아서 자식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른다. 언니와 나 동생이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오자 겨드랑이에 꼭 끼고 온 누런 봉지에서 양과자를 꺼내어 입에 하나씩 넣어주신다. 아버지가 왜 술을 마셨는지 잘 알지 못하던 어린 딸의 입속에서 달디 단 밤톨 모양의 양과자는 부드럽게 녹아 내렸다.
수염은 길어서 턱을 덮었고 강풍을 세차게 맞은 나무처럼 초췌하다. 전 직장인 공사에 다닐 때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선글라스를 끼고 가슴에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선글라스를 끼고 가슴에는 행커칩을 꽂았던 멋쟁이가 아니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기에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아진 아버지의 모습은 속이 텅 빈, 영혼이 빠져나간 허수아비 같았다. 밤새 쿨룩거리던 잔기침은 새벽까지 옆방으로 넘어왔다. 집안도 혹한기였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는 게 가장이다. 뿌리의 반은 아스팔트 위에 드러내 놓고 뿌리째 뽑힐 위기에도 가장의 몫은 나무처럼 우뚝 서서 아픈 사연쯤은 굳이 말하지 않는 거였다. 노력한 만큼 삶은 보장된다고 확신한 것일까. 아버지는 산동네에 작은 가게를 다시 열었다.
몇 년 후 우리는 도심으로 이사를 내려왔다. 행복하게 살던 중2 무덥던 날이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 아버지는 마흔일곱 개의 나이테로 멈춘 나무가 되었다. 머쓱했던 춤사위는 도시에서 살기 위한 방어기제였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느새 아버지의 나이테보다 많아져 있다.
기척없이 허수아비의 몸짓 같은 동네 노인의 춤에 셜록 홈즈의 <춤추는 사람>이 겹쳐진다. 작은 사람들이 연속으로 보여준 몇 개의 춤동작은 어느 비밀조직의 암호였다. 우리네의 얽힌 인간관계도 아버지의 삶도 암호풀기였다. 삶의 암호를 풀려고 나무도 사람도 흔들리며 춤을 춘다. 행위 속에 문제 해결의 단서가 있건 없건 내재한 몸속 언어의 표현이다.
나무는 더 나은 생을 꿈꾸며 몸피를 키운다. 뿌리는 무한의 땅속으로 파고 들지만 강풍에 흔들리며 때때로 뽑히기도 한다. 나무든 사람이든 맡은 배역을 말없이 수행하는 자기 생의 안무가이며 ‘흥’을 깨우는 춤꾼이다. 흔들리며 살지만 아픈 사연을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닮았다.
모두 고고孤苦한 나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