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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 우보만리 한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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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이야기 스크랩 건축의례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112 12.07.29 08: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건축의례에 관하여  


        -차례-

1. 건축의례의 정의

2. 의례공간의 의미

3. 건축의례의 종류

3.1 날받이ㆍ텃고사

3.2 개공고사

3.3 성주운보기

3.4 상량고사

3.5 집들이ㆍ성주고사


1. 건축의례의 정의

건축의례는 집을 지을 때 건축행위를 신의 뜻이라 생각하여 신의 힘에 의지하며 사고 없이 공사를 마치며 집안의 평안과 번창을 기원하는 무속적이고 주술적인 행위이다. Gennep은 집을 세우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거나 집이 완성되었을 때 거행되는 건축의례는 무질서하고 자연환경에서부터 질서가 잡히고 신이 공존하는 성스런 공간으로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에 속한다고 한다. 새로 집을 지으려는 대지나 새로 지은 집은 적절한 의례를 통해 Noa가 될 때까지는 터부인 것이다. 이러한 터부를 제거하기 위하여는 텃고사나, 가신모시기 등의 의례가 필요한데, 이들 의례들은 낡고 악령이 깃들인 터를 정화하여 새롭게 하는 것으로 부지가


신성 청결한 구역이며 집이 신성하다는 것을 뜻한다.

건축의례는 우주창조의 반복이라는 의미에서 속(俗)의 공간을 성(聖)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주는 신앙행위라 할 수 있으며, 이런 행위를 통해서 세속적 공간이 아닌 성역으로서 상징적 의미의 영역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주거가 형성되는 것은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의 의례를 거쳐야 되는 것이고 그 의례를 통해 건축하는 장소를 성별함으로써, 즉 그 터가 중심이 되게 함으로써 그 주거의 실재성이 확보되며 신에게 바치는 제의를 반복함으로써 그 건축행위의 타당성이 확보되는것이다.


2. 의례공간의 의미

어떤 공간에서 의례가 행해지면 그 공간은 일상의 공간과 구분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그 첫째는 성성(聖性)의 부여이다. 모든 의례에서 의례가 행해지는 공간은 불이나 물로 정화하며, 청소를 하고,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펴서 부정을 가리게 하는 등의 정화의례를 통해 일상의 공간 내지 혼돈된 속(俗)의 공간과 엄격히 구분되는 질서 있고 聖스러운 공간이 되고 , 그 곳에서 수행되는 의례에도 聖性을 부여하게 된다. 둘째, 의례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질서 지운 공간을 중심으로 우주 속에서 자신의 삶의 중심을 획득하게 된다. 중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게 하는 바탕으로, 인간에게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중심에 이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서 많은 의례를 거쳐야 가능한 것이다. 셋째, 의례로 인해 공간의 위계가 생기게 된다. 의례의 수행은 공간을 다른 공간과 구별지어 공간의 서열을 결정 짓는 요소가 된다. 동일한 공간 내에 다양한 의례대상들이 모셔질 때 의례대상의 순위에 따라 공간의 위계가 설정되어지기도 하며, 의례행위자에 따라 공간의 위계가 설정되어지기도 한다. 넷째, 공간은 의례를 통해 다양한 영역성을 획득하게 된다. 즉 성역(聖域)과 속역(俗域)의 구분, 생과 사의 영역, 사적 영역의 획득, 남성과 여성 영역의 분리 등 의례를 통해 공간의 영역성이 확보되어지는데 이는 많은 경우 문 내지 출입구에서의 의례가 중요함을 볼 때 잘 알 수 있다.


의례를 통해 이러한 성격을 부여 받은 공간은 다시 그 행위자에게 성성(聖性)과 중심성, 정체성, 위계성, 영역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의미는 의례의 종류에 따라 또 시대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나 공간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차이를 가질 것이다. 


3. 건축의 의례의 종류

3.1 날받이ㆍ텃고사

3

.1.1 날받이

집 지을 재목이 준비되면 주인은 문복장이(점쟁이)에게서 집터 닦는 날과 주추 놓는 날, 상량 올리는 날 그리고 입주할 날들을 미리 받아둔다. 이때 문복장이는 안채나 사랑채 따위의 주건물은 물론이고 대문, 곳간, 헛간, 뒷간 그리고 우물 자리까지 지정해 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너른 터에 주인 마음 내키는 대로 집을 지었으므로 그의 지시를 모두 따를 수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이 바뀐 근래에는 이대로 시행하기가 어렵다.


목수는 문복장이가 잡은 날 가운데 상량 올리는 날만은 어김없이 지킬 수 있도록 준비한다. 상량은 날 뿐만 아니라 그 時까지도 맞추어야 하므로 재목 중에 먼저 들보감을 골라서 다듬어 둔다. 그러나 준비가 덜된 경우에는 우선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려놓는 시늉을 하여 상량식을 제 때에 마친 것으로 여긴다.


예전에는 집 지을 나무를 베는 날까지 미리 잡아두지 않으면 벌레가 꾀는 것으로 여겼다. 유중림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깁고 보태서 1766년에 펴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복거(卜居)조에 <소나무는 반드시 맑은 날을 골라 베고 오경(五更) 초에 그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 두어야 한다…… 사월이나 칠월 중에 날을 잡아 베면 벌레가 끓지 않으며 …… 이때를 잃으면 나무를 한 달쯤 물에 담그거나 불에 쬐어 말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고 하였다.

또 같은 복거조에는 양험(壤驗)이라 하여 텃고사를 지내기 전 집터의 흙을 시험하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적혀 있다.


집터의 겉 흙을 긁어내고 네모 바르게 한 자 두 치 깊이로 파내었다가 잘게 부수어 다시 본디대로 메꾸어 둔다. 이튿날 아침 이 자리의 흙이 움푹하게 가라앉았으면 좋은 땅이 아니며 반대로 솟아올랐으면 양기가 흐르는 증거이니 매우 길하다.


3.1.2 텃고사

텃고사(土神祭)는 집터의 신(土地神)에게 땅을 파헤치고 집을 짓게 되었으니 역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와 달라고 지내는 제사이다. 이 때에는 집터 가운데에 흙을 적당히 모아놓고 주위에 왼새끼를 둘러치며, 집터 네 귀에 술을 조금씩 부어 사방의 신들을 풀어 먹이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땅을 팔 때에는 주인의 운에 따라서 특정한 방향의 흙을 먼저 다룬다.


전남 거금도(居金島)에서는 이 때 제수로 밥 한 그릇, 술 한잔, 그리고 어물(魚物)을 차려 놓으며 제사 뒤에는 제물의 일부를 땅을 파고 묻어서 토지신에게 바친다.

텃고사는 집터 뿐만 아니라 묘지를 잡을 때에도 올렸다. 백제의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는 지신에게 묘지로 쓸 땅을 매입하는 형식을 밟고 그 증서에 해당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돌에 새긴 것이 발견되었고 수원 성곽을 쌓을 때에도 팔달산주(八達山主 處士 李皐)에게 제례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집터를 양택(陽宅), 무덤을 음택(陰宅)이라 하여 한 가지로 생각한 결과로 생각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집안의 운이 더 좋아지기를 희망하여 한 해 한 번씩 정기적으로 텃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고사는 보통 정월달(음력)에 지내며 제사 끝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제물을 나누어 먹는데 제삿날이 가까워지면 솔잎 묶음을 처마 끝에 달아매어서 잡귀의 접근을 막기도 하였다.

다음은 산림경제 복거(卜居)조에 실린 텃고사에 대한 설명이다.

해가 진 뒤에 제물을 차리고 글귀를 지어 토지신에게 알린다. 제사가 끝나면 집터의 사방을 생땅이 나올 때까지 파며 땅 속에서 나무 뿌리, 뼈, 털조각 등의 쓰레기가 나오면 반드시 잘 치워야 한다.


3.2 개공고사(開工古事)·모탕고사


3.2.1 개공고사

개공고사는 일꾼들이 일을 벌이기 직전에 올리는 제사이다. 텃고사는 사람에 따라 건너 뛰기도 하나 이 고사는 반드시 지낸다. 만약 받아둔 날에 개공고사를 올릴 수 없을 때에는 둥근나무 두 개의 끝을 가위다리처럼 묶은 것 2개를 마주 세우고 이 위에 긴 나무를 가로 걸쳐놓는 것으로 고사에 대신한다. 또 이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허공에 대고 <아무 곳 아무개가 아무시에 개공하였소. > 하고 세 번 소리친다.


증보산림경제 복거조에는 이 고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역사를 시작하는 날 제사가 끝나면 목수들은 마름질한 들보 아래에(뿌리 부분) 톱을 늘어놓고 가신(家神)을 모신 뒤에 제례를 올린다. 그리고 붉은 종이에 개공대길(開工大吉)이라고 써서 들보 머리에 붙이며 따로 황색 종이에 강태공 재차(姜太公 在此)라는 글귀를 붉은 글씨로 써서 처음 손질할 나무에 걸어둔다. 이렇게 하면 잡귀가 붙지 못한다. 개공고사는 오늘날의 기공식과 같은 것이다. 집을 다 지을 때까지 더럽히지 않는 것이 좋다.


3.2.2 모탕고사

한편 전북 남원 일대에서는 집수리를 하고 싶어도 운이 닿지 않을 때에 지붕 마루 기와와 두 장을 팔자(八字) 모양으로 어스러지게 세우고 건물 네 귀에 말뚝을 박아둔다. 이렇게 하면 공사를 전 해에 이미 시작한 셈이므로 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데에서는 이를 복문(福門)이라 하여 집을 지은 뒤에도 기와를 그대로 세워 둔다.


이 고사는 목수들의 안전을 위해 올리는 제례이다. 모탕 주위에 연장과 간단한 제물을 차리며, 예전 대궐에서 큰 역사를 할 때에는 대장장이들이 풀무까지 가져다 놓았다.

모탕고사는 집주인이 음식을 준비하고 대목이 지낸다. 돼지머리, 술, 명태, 실타래, 소금, 고춧가루, 수저를 차리고, 상량할 나무를 진설하여 절을 한다. 고사가 끝나면 소금과 고춧가루를 집터에 뿌린다. 소금과 고춧가루는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서 잡귀를 몰아내어 공사 중의 안전을 기원한다. 


일반적으로 모탕고사는 텃고사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주관자와 배례대상, 기원의 내용이 다르다. 첫째, 텃고사가 집주인이나 공사 자체를 위한 것으로 집주인이 주관하는 의식이라면 이 모탕고사는 대목이 주관하는 의식이라는 차이가 있다. 물론 텃고사를 대목이 주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집주인이 의식적 절차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대목이 대행할 뿐이며 형식상으로는 집주인을 제주(祭主)로 하여 치러진다.


둘째, 텃고사가 토지신에게 바치는 의식인 반면에 모탕고사는 상량신에게 바치는 고사라는 점이다. 즉 모탕 위에 상량할 목재(머릿대)를 진설하고 배례를 드리게 되는데, 대목들은 상량할 목재에 상량신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량할 목재는 건물 최상부에 자리하는 머릿대(종도리)로서, 이것은 나중에 상량재와 더불어 성주신으로 변한다고 한다. 결국 모탕고사의 배례대상은 성주신이라는 것이다.


셋째, 텃고사는 토지신에게 그 터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모탕고사는 주로 공사 중의 안전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공사를 주관하는 기술자의 우두머리로서 대목이 주관하며, 그들의 작업대인 모탕 위에 제물을 진설(陳設)하고, 공사 중의 안전과 순조로운 공사의 진행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집터와 관련되어 있다기 보다는 공사 전체에 관련된 의식으로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3.3 성주운보기

<성주운 보기>는 집주인의 운수와 앞으로 그 집을 지켜 줄 성주의 운이 서로 맞는가를 문복장이에게 알아보는 일이다. 양쪽 운이 좋을 때를 <성주운이 닿는다> 고 한다.

운이 닿지 않을 때에는 주인의 아들이나 손자의 운으로 대신하며 가족 중(남자)에 맞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운을 빌려서 집을 짓는다. 이 경우 집주인은 상량식에도 절을 하지 않고 상량문에는 운을 빌린 사람의 이름을 적으며 집이 완공되면 하룻밤 자고 나서 원주인에게 집을 팔아 넘기는 형식을 밟는다. 매매 대금과 운을 빌려준 데에 대한 사례로는 담뱃값 정도를 건네며 술대접을 하기도 한다. 이 절차가 끝난 뒤에라야 상량에 써 놓았던 이름을 원주인의 것으로 바꾼다.


이처럼 남의 운을 빌려서 집을 짓는 일은 사정이 매우 급한 경우에 한하며, 성주운이 좋아지는 이듬해까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3.4 상량(上樑)고사

상량고사는 기둥 위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상량인 마룻대를 올리는 제의로 집 짓는 고사 가운데 가장 성대하게 지낸다.(그림 1,2,3) 이로써 집의 외부공사가 대체로 마무리되며 다음부터는 마루를 까는 등 내부공사에 들어가게 되므로 상량을 올리는 일은 집을 지어가는 과정 가운데 가장 뚜렷한 마루턱을 이룬다. 또 마룻대는 집의 제일 높은 곳에 거는 중요 부재인 까닭에 누구든지 이 고사만은 첫 손으로 꼽으며 형편상 다른 고사는 빼더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지낸다. 양옥이나 빌딩과 같은 현대식 건물에는 실제로 상량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음에도 건축주가 이 고사를 올리는 것으로 미루어 이 고사에 대한 재래의 관념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마룻대는 대공 좌우 양쪽에 올라앉은 목수 두 사람이 중앙에 잡아맨 무명의 한 끝을 각각 나누어 쥐고 들어올린다. 제물은 일정하지 않으나, 떡, 과일, 쌀, 돼지고기, 술 따위를 준비하며 제물의 내용이나 양은 주인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돼지의 경우 머리만을 마련하는 것이 보통이나 있는 집에서는 내장을 빼고 통째로 차리며 여러 마리의 돼지를 목판에 각각 세워, 늘어놓기도 한다. 쌀도 서민층에서는 한 바가지 정도를 놓으나 부잣집에서는 가마니째 바치며 무명, 모시, 광목 등을 필로 쌓아 두기도 한다. (배희한, 1981: 96)


충청도 내륙지방에서는 제물 가운데 반드시 팥죽을 놓으며 경기도에서는 켜마다 팥고물을 깔아놓은 시루떡을 올린다. 이것은 동짇달 동짇날에 팥죽을 쑤어 먹음으로써 잡귀를 물리친다는 속신(俗信)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목수들은 이러한 제물을 비롯하여 돈이나 피륙은 물론이고 바닥에 깔았던 새 돗자리까지도 차지한다. 또 주인에게 돈을 받아낼 욕심으로 <그네 태우기>를 한다. 상량대를 바닥에서 1m쯤 올린 뒤에 이에 잡아맨 무명끈을 한 번 감아서 고정시킨 것이 그네이다. 목수들은 주인을 부추겨서 이 위에 앉히고 줄을 흔들면서 이 집을 짓고 살면 부귀공명을 누리고 자손도 번창하리라는 덕담(德談)을 늘어놓는다. 주인은 상량채(上樑債)라 하여 현금을 마룻대에 얹어 놓거나 백지에 금액을 써 붙인다. 목수들은 못이기는체 그네를 타고 돈을 부주함으로써, 주인에 대한 축하인사에 대신하는 것으로 여긴다.


큰 절을 지을 때에는 신도들이 다투어 재물을 바치므로 그 양은 엄청나다. 상량일을 목수의 생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며 노느매기는 도편수가 전체의 반을 , 그리고 나머지를 목수의 수대로 균등하게 나눈다.


상량고사 때 주인은 집 짓는 데에 사고가 없고 짓고 나서 부귀공명을 누리게 해달라는 따위 의 축원을 올리며 술을 집 네 귀퉁이에 조금씩 붓는다. 이 때 절을 2번하며 다른 이들은 절만 하고 잔은 올리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베(한필)를 상량대에 잡아매며 마룻대에 걸터앉은 목수는 이를 조금씩 들어 올린다. 주인이나 친척들은 베 가운데에 돈을 얹는다. 목수들은 돈을 더 울궈 내려고 <상량이 너무 무거워 잘 올라오지 않는다>고 엄살을 피우며 주위 사람들은 반대로 어서 올리라고 재촉한다. (육지에서처럼 그네 태우기는 하지 않는다.)  


상량을 올리고 나서 무명 자투리를 걸어 느린 다음 마룻대에 걸터앉은 목수가 노끈으로 코를 꿴 장닭을 잡아 올리며 이 때에도 사람들은 돈을 놓는다. 닭이 상량에 올라오면 목수는 <아무 날 아무 시에 상량하였소.>하고 외치고 자귀로 닭의 목을 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헛손 시늉을 하며 세 번째 내리친다. 주인은 떨어진 닭 목을 들고 네 기둥에 피칠을 한 다음 떨어졌던 자리에 묻으며 몸통은 삶아서 목수와 주위 사람들의 술안주로 삼는다.

상량에는 상량문이라 하여 집을 지은 해, 달, 날, 시, 좌향, 축원문 등을 적으며 큰 건물에는 신축이나 중창 여부, 도편수와 중편수의 이름까지 쓴다.


특수한 건물이나 일반 가옥에는 이 글을 상량의 받침도리 바닥에 먹으로 써 놓아서 누구든지 읽어볼 수 있으나 공공 건물인 경우에는 한지에 글을 써서 상량도리 장혀에 구멍을 파서 넣고 도리를 얹으므로 도리를 빼기 전에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러한 건물에는 상량문을 새긴 현판을 따로 만들어 걸어두기도 한다. 상량에 대한 관습은 매우 끈질겨서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 천장에 이것을 박아 놓기도 한다.(남제주군 가파도, 그림 4)


상량문은 갑을병정(甲乙丙丁) 등의 십간(十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 등의 십이지(十二支)로 표기하는 것이 보통이나 건물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알봉(閼逢), 전몽( 蒙) 따위의 옛 십간이나 곤돈(困敦), 적분약(赤奮若) 따위의 고(古) 십이지로 쓰이기도 한다. (예: 전북 임실군 둔남면 이웅재집 사랑채 중수 상량문 )


한편, 농가에서는 방아상량이라고 하여 디딜방아를 만든 다음, 방아 몸 왼쪽에 <경신세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 조작(庚申歲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造作)> 또는 <강태공하마처(姜太公 下馬處)라는 글귀를 써둔다.(그림 5) 이 글귀는 모두 방아의 수명이 오래고 방아 때문에 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주문(呪文)으로 건물의 상량이나 사당채 기둥에 써 두기도 한다.


3.5  집들이·성주고사


3.5.1 집들이

집들이는 새로 지은 집으로 처음 들어가거나 다른 사람이 살던 집으로 이사갈 때, 미리 날을 받아두었다가 지내는 제례이다. 

이삿짐 중에 먼저 집에서 쓰던 화로나 아궁이의 불을 죽이지 않고 가져가며 물동이도 물이 담긴 그대로 옮긴다. 대도시에서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트럭에 싣고 가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먼저 집에서 누리던 복락을 잃지 않으리라고 믿는 까닭이다. 강원도에서는 이사하는 날 불씨가 담긴 솥을 제일 먼저 가지고 들어간다. 

새집에 입주할 때에는 남자가 먼저 들어가는 등의 순서를 미리 정하거나 문을 따로 하여 여자는 뒷문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집을 명의상으로만 남에게 빌려주었다가 되찾는 형식을 밟는 수도 있다.


이사한 날 저녁에 마을사람들과 일가친척을 초청하고 큰 잔치를 베푸는데 이를 <집들이>라고 부른다. 남부지방에서는 농악대가 합세하여 흥을 돋군다. 마루에서 농악을 치고 나서 상쇠는 <마루 구석도 네 구석 방 구석도 네 구석 정지 구석도 네 구석 삼사십이 12구석 좌우. 잡신 잡아다 맞아들이세>하고 덕담을 늘어놓는다. 농악대는 부엌에 들어갔다가 마당으로 나가 집 주위를 한 번 돌고 나서, 거리제를 지낸다. 이러한 절차 다음에는 주인과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집들이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그 집의 운수가 불길처럼 일어나라고 성냥 따위를 가져간다. 불이란 취사, 난방, 조명 등 가사 생활을 지속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존재로서 이미 선사시대의 움집에서부터 주거생활이 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즉, 불씨가 안치됨으로써 한 가족의 가사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고, 왕성한 불의 활동은 가세의 발전으로 상징되었던 것이다.


증보산림경제 복거조에는 집들이 고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실려 있다. 

새 집에 들어갈 때에는 택일한 날 길시(吉時)에 남이 먼저 들어가 불을 붙인 뒤에 짐을 옮겨야 좋다. 이날 재물을 들이는 것은 좋으나 내어가는 것은 나쁘며 금은의 기물(器物)을 들고 들어가야 하며 빈손으로 들어가면 불길하다. 마당에는 향촉을 피우고 식구들은 반드시 돈이나 비단 등을 손에 쥔다. 장남은 오곡이 담긴 그릇을, 어머니는 거울을, 그리고 대주는 가신을 모시고 차례로 안마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펴고 그 위에 놓는다. 다시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리며 집안에 만복이 깃들기를 축원한다.


3. 5. 2 현재 사회에서의 집들이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중시되어지는 의례 중의 하나로 집들이를 들 수 있는데, 집들이를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이사를 알리기 위한 것이 63.2%로 가장 높았다(표1.참조). 집들이를 한 뒤의 소감에 대해 중복 응답하게 한 결과는 '이사했음을 실감했다'가 32.4%, 내 집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가 31.7%, 이사와 관련된 절차가 마무리된 느낌이었다'가 31.0%로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즉, 집들이 의례는 이주의 마지막 절차로 변화를 알리고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며, 자신의 집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의례인 것이다. 이러한 집들이의례의 기능은 이동이 빈번한 현실에서 새로운 주거를 자신과 가족의 공간으로 확인하고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더욱 의미를 가지리라 여겨진다. 아울러 집들이 이유로 집안 일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17.9%이며, 집들이 선물로 들어오길 바라는 것은 집안이 번성해진다는 주술적 의미를 담은 성냥과 세제, 휴지선물을 바라는 경우가 많아 집들이를 통해 새집에서의 무사와 복을 기원하는 측면도 나타남을 볼 수 있다.


3.5.3 성주고사

성주는 집을 지켜주는 으뜸가는 신령이다. 집을 지었거나 이사를 하였을 때 주인의 나이가 7의 수가 되는 해(ex:37세, 47세) 시월 상달에 날을 받아 이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성주고사 또는 성주굿이라고 한다. 날이 정해지면 사흘 전부터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으며 제주는 목욕을 하고 고기나 술을 삼가며 몸조심을 한다,

이 고사는 무당이 밤에 벌이는 것이 보통이다. 무당은 대청에 차린 굿상 앞에서 부정거리, 가망거리, 말명거리(무당의 굿거리)를 놀고 나서 성주받이로 들어간다. 중간에 백지 한 장을 잡아맨 소나무(성주대라고 생각함.)를 무당이 들고 마당에 서서 성주신의 강림을 기원하며 성주대가 흔들리면 이에 신이 내린 것으로 생각한다. 신령을 깨끗한 곳에 모신 뒤에 무당은 <천석(千石), 만석(萬石) 불려 줍소서>라고 읊조리며 춤을 추어서 신령을 즐겁게 한다. 이 뒤에, 뿌린 솔씨가 재목으로 자라고 이 나무로 지은 집을 아름답게 치장하며 또 이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과거에 급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의 성주풀이를 베푼다.


제주도의 성주굿 가운데에는 사나이 심방(박수)이 목수로 변장하고 집 지은 재목에 붙은 잡귀를 쫓는 과정이 들어 있다.(모습을 목수로 바꾸는 것은 그가 재목에 가장 밝기 때문이다.) 심방은 잡귀가 놀라 달아나도록 얼굴에 양쾡이칠을 하고 도끼와 낫 따위를 휘두르면서 집구석 구석을 돌아다닌다. 이 때 주문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다.(그림 6,7)

성주풀이는 굿의 규모가 클수록 길어지며 내용도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서울지방에서는 세간을 마련하여 집을 치장하는 과정이 강조되나 경상도에서는 집을 지어 나가는 목수의 행위를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서울지방에서 불리는 성주풀이의 하나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안방 문을 열고 나서

쳐다보니 소란반자, 내려다보니 각장장판

좌우 칭칭 둘러보니 백지로 도배하고

청룡화로 띠를 띄고 누눙화로 굽도리하고

도배치장을 다 한 후에 세간치장이 없을소냐

방 치장을 볼작시면, 벽계수는 들미장 자개함 농은 반닫이며

이층장이면 삼층장, 양복장을 보기나 좋게 놓았구나.

방치장이 그만할제 마루 치장이 없을소냐

마루치장을 볼작시면

찬장이며 뒤주며, 목이 불쑥 용충항아리 청항아리

쌍쌍이도 놓였구나……


성주신의 신체는 여섯 가지로 많이 나타난다.

첫째 고사 때 걸어두었던 백지에 실과 돈을 둥글게 뭉쳐서 대청의 들보 밑이나 안방 웃목 벽 상부에 붙인 것

둘째 한지를 모지게 여러 겹으로 접고 왕돈 한닢을 곶은 다음 안방 쪽으로 향한 대들보에 붙이고 쌀을 뿌려 붙게 한 것

셋째 쌀을 넣고 백지로 봉한 항아리(또는 작은 단지)를 대청 뒷벽 아래나 안방 선반 위에 올려놓은 것

넷째 쌀이 담긴 항아리 안에 돈과 함께 접은 한지를 넣은 것

다섯째 성주굿을 할 때 입었던 무당의 옷이 담긴 상자를 대청의 들보 근처에 올려놓은 것

여섯째 가는 베나 종이 오리를 들보에 걸쳐놓은 것 등이다.

이 성주신에는 집안의 제삿날이나 명절에 제일 먼저 상을 차리며 혼사 따위의 비일상적인 일을 벌일 때에도 알린다.

어떤 데에서는 상량일을 성주일이라 하여 해마다 상을 차리고 농사의 풍년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한다.

■ 참고문헌

1.강영환, [집의 사회사], 웅진출판사, 1992

2.김광언, [한국의 주거민속지], 민음사, 1988

3.김계동·이영호, 現代住居에서의 儀禮空間 要求 把握을 위한 調査硏究, 대한건축학회논     문집 제17권 제2호 1997년

4.정영철, 가정신앙구조로 본 전통주거의 공간구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13권    2호 통권 100호 1997년

5.Gennep, [통과의례], 서영대역, (인천, 인하대 출판부, 1986)

6.김계동·이영호, 주거의 의례공간에 관한 연구, 한국주거학회지 7권 2호




출처 :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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