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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다시 한 번 인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데 있어서는 그냥 뚝딱하고 뭔가 결과가 나오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이라는 게 있어요. 요리를 하시는 분은 요리 재료를 사가지고 다듬고 또 그것을 간을 보고 하면서 요리를 만드는 그 과정이 중간에 하나라도 생략돼 있으면 이 요리는 먹을 때 굉장히 불편할 겁니다.
제가 목양실에서 여기 강대상까지 한 20m라고 예를 들어서 20m라고 거리를 산정할 때 제가 이 앞에 서기까지 20m를 걸어와야 여기 딱 서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데 중간에 한 1m를 빼버리면 저는 아마 요 앞에 서 있을 겁니다.
그쵸? 과정이 없으면 결과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을이 이제 점점 다가온 것 같다가 또다시 여름이 된 것 같은데 여름이 지나가야 가을이 오는 것처럼 그러니까 모든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들을 보면 뭔가 과정이 있고 그다음에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결과는 곧 과정의 집합이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그래서 어떠한 과정이 있었느냐가 나중에 그 결과의 질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 결과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의 가장 좋은 사람들이 뭔지 아십니까?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기당하기 너무 좋은 거예요.
요즘 너무 좋은 상품이 있는데 이거 진짜 넣기만 하면 대박이라고 그러면 자기 돈 넣고 자기가 돈을 벌지 왜 그걸 소개를 해주겠습니까? 사기당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보면요.
그냥 활딱 넘어가는 거예요. 이 사람 말을 왜 믿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믿게 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또 있었던 거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요. 우리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 인간을 가장 먼저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간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에서 우리 인간이 딴 하고 나타난 상태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빛도 없고 또 우리가 거할 땅도 없고 먹을 식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마 막막함에 떨고 죽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모든 자연만물을 만들어놓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다 준비하고 나신 이후에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창조하는 그 과정에 있어서의 그 중간중간의 모든 과정들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이 있고 나서 마지막에 결과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나님이 75세에 부르셔서 이제 그 길을 가게 하셨죠. 그런데 믿음의 조상을 삼겠다고 말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25년 동안 자손을 주지 않습니다. 25년 동안 그 자손이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게끔 하나님이 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의 조상이 되려면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자녀를 출산하고 믿음의 자녀를 양육해서 그 자녀들이 번성해야 믿음의 조상이 될 거 아니에요 그죠? 만약에 아브라함의 믿음의 이 과정 연단의 과정이 없었다면 진정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오늘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 8절 말씀이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시리라.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그냥 달달달달 외우듯이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입고 성령을 받아서 권능을 받아야죠.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땅 끝까지라고 하는 말에 우리는 관심을 두기도 하고 때로는 이게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땅끝까지 나는 복음을 증거해야 할 주님의 자녀인데 제자인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 이런 생각 때문에 근데 여러분 우리 모두는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줄여서 땅끝 사람이라고 해볼게요. 땅끝 사람이 돼야 되는데 진정한 땅끝 사람이 되려면 먼저 그 땅끝을 향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에서 한번 우리가 나눠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자마자 제자들한테 야 이제 니네들 나 부활한 거 봤지? 땅까지 빨리 흩어져서 빨리 복음 전해라.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을 내모셨나요? 아니요. 예수님은요. 오히려 제자들을 갈릴리로 불러모으셨습니다. 부활하시고 난 이후에 갈릴리로 이 갈릴리라고 하는 곳은요. 제자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제자들의 직업이 어부 세리, 열심당원 다양한 직업들이 있었지만 공통점이 뭐냐 하면 갈릴리 출신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갈릴리라고 하는 곳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잔뼈가 굵고 모든 것 가족도 있고 자기의 삶의 모든 생계가 달려 있는 곳이 바로 이 갈릴리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어디로 모으셨다고요? 갈릴리로 모으셨습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 삶의 현장으로 제자들을 먼저 보내신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요. 그냥 내가 알지 못하는 먼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먼저 내 자신의 삶의 현장,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냄이 우선입니다.
이 갈릴리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뜻이 고리라고 하는 의미가 있어요. 사람과 사람은 고리가 이렇게 고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리로 이어져 있는데 그 고리가 어떤 사람들은 물질로 연결돼 있는 관계도 있죠. 어떤 사람들은 욕망 정욕이 고리가 되어서 연결돼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과시 또 거짓이 고리가 되기도 합니다.
근데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서 사랑과 진리가 고리가 돼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함에 있어서 사랑과 진리의 고리를 가지고 사랑과 사랑과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21장에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세 번을 되풀이해서 물으시는 장면을 여러분들 잘 아시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연이어서 세 번이나 물으셨을까요? 여러분 제자들의 삶의 현장이 갈릴리라고 하는 그 의미가 골이라고 하는 이 시점에서 이 질문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네 삶의 현장에서 진리로 고리 맺는 삶을 살고 있느냐
네 가정에서 사랑의 고리를 맺고 연결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너의 일터에서 너 그리스도인으로 고리 맺는 삶을 살고 있느냐
너의 아내 앞에서 너의 남편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처신하고 있느냐,
너 자식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본을 보이고 있느냐,
너의 부모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를 감당하고 있느냐,
너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언행하고 있느냐
이런 질문과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릴리로 보내신 것은 그것은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관계하는 모든 사람과의 거리,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세워져 있는지 믿음의 지금 기초를 점검하고 계시는 겁니다.
삶에 내 가정 내 지금 기초적인 삶에 건강한 고리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요. 복음을 들고 어디 세계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한다 이렇게 한다고 한들 그것은 어쩌면 인생 낭비 물질 낭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요? 내가 그 사랑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데 무슨 사랑을 증거하고 내가 진리로 차 있지 않은데 무슨 진리를 증거합니까?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먼저 삶의 현장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진리와 사랑의 거리를 먼저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제자들과 그다음 지역으로 움직이는데요.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지역으로 가십니다. 아까 전에 우리 8절에서 지역명이 여러 개 나왔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러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제자들을 야 이제 예루살렘에 왔으니까 땅 끝까지 가라 하고 내모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4절 5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바로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제 2장에서 좀 더 깊이 나누게 될 것 같고요. 오늘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떠나지 말고 어디에 있으라고 했다고요? 예루살렘에 있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지역도 아까 갈릴리의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한다면 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지역은 제자들과 불가분 떨어뜨릴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지역인데요. 갈릴리밖에 모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역의 주된 현장이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친 그 내용들이 보면 대부분 예루살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고요.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현장도 역시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터전 다음으로 제2의 인생의 고향과도 같은 그런 장소가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이 예루살렘의 의미를 보면 평화의 터전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제자들이 땅끝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한 것은 평화의 터전인 이 예루살렘을 지키면서 성령 강림을 기다리라고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땅 끝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성령 안에서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죠.
말씀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처음에 어디로 가라고 그랬다고요? 갈릴리 삶의 터전으로 자신의 삶의 자리 그리고 두 번째 어디로요? 예루살렘에 성령 강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는 거 여러분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땅 끝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갈릴리에서 사랑과 진리의 고리를 내가 맺어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가를 먼저 점검하길 원합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 셀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죠 먼저 내 가정, 내 삶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평화의 터전인 예루살렘을 거치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그다음에 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지금이야 우리가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시대죠. 이사도 다니고 예전에는 한 분 퇴원하면 그 장소에서 평생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 시대의 이 제자들은요. 이 갈릴리라고 하는 곳에서 평생 먹고 살던 사람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는요. 어쩌면 유다도 땅끝이고 사마리아도 땅 끝일 수 있어요. 왜 한 번도 안 가본 곳일 수 있거든요.
근데 그들이 삶의 지금 자리에서 사랑과 사랑과 진리로 고리를 메이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기가 평안으로 성령의 어떠한 권능을 힘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땅 끝이 나고 자기가 어디를 가봐야 오히려 그곳에서 불화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그런 불쏘시개밖에 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땅끝이라고 하는 결과를 우리가 얻기 위해서 그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땅끝이요. 우리가 지리적으로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곳을 땅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죽어가는 영혼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땅끝입니다. 여러분 죽어가는 그 영원히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그곳이 땅끝인 줄 믿습니다.
이사야 26장 3절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완전한 평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평화라고 하는 그 말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흔들림 없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보통 평화하면 뭔가 이렇게 아주 조 하고 고요한 자연을 떠올리고 이렇게 이렇게 뭔가 위험 요소가 없는 그런 상태를 떠올릴 때가 많은데요. 이런 평화는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왜요? 바람이 불고 조금만 환경이 변화도 이런 평화는 금방 깨져버리거든요.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평화는 폭풍우가 몰려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참된 평화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그것은 바로 성령을 통하여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참된 평화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잡혀가시는 날에 제자들은 다 도망갔죠. 심지어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제자도 있지 않았습니까? 근데 그랬던 제자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목숨을 내걸고 순교당하는 그 현장에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의 심령에 어떠한 폭풍우가 몰려와도 흔들림 없는 참된 평화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 이 명령을 우리는 진짜 우리에게 주신 나에게 주신 명령으로 우리는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 결과를 맞이하기 위해서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 과정이 생략된 채로 결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현장인 갈릴리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 가정에 여러분들,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 부모, 또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동료들, 이웃과의 거리가 진리와 사랑으로 연결되는 귀한 관계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다음에는 예루살렘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을 평화의 터전으로 일구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마음을 갖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에서도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를 못 박는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고 말씀할 수 있었다는 거죠.
마태복음 마지막 절에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아멘 여러분 주님은 하늘로 강림하셨지만 성령으로 지금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은 것은 성령 안에서 우리가 더욱더 평화의 사람으로 우리의 마음을 굳게 지키고 그리고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먼저 이번에 명절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명절을 맞이할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또 친척들 이게 보통 관계가 아닙니다. 60억 인구에서 나하고 가족이에요. 나하고 형제입니다. 이거는 보통 하나님이 특별한 뜻을 가지고 만들어주신 관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으시죠?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하늘에 참새 한 마리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 여러분들의 형제 친척들 가족들 결코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여러분들과 긴밀하게 연결해 놓으시고 더 사랑하게 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관계인 줄 믿습니다.
근데 여러분 한번 우리의 관계를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형제들 간에 또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떠한 혹시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혹시라도 있다면 서로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그러한 관계가 있다면 이번 추석에 우리 다시금 관계를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먼저 우리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또 내가 함께하는 이웃들, 우리 공동체에서부터 차근차근 그 과정들을 새롭게 새롭게 관계를 하고 평화를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 땅까지 복음의 확장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 땅끝은 여러분들이 일하는 그 지금 일하는 장소 일터가 땅끝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땅끝입니다. 여러분들이 만나는 수많은 영혼이 땅끝인 줄 믿습니다. 먼저 그들을 만나는 그 과정 속에서 먼저 갈릴리, 예루살렘을 기억하시고 그 준비 과정들이 충분히 이루어져 정말 땅끝이 언제든지 이르를 때에 놀라운 영향력을 끼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