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수도 서울을 알고 체육 또는 다른 원인으로 부산,울산을 알며 심지어 닭갈비 때문에 춘천도 알게 되였다.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구미는 정말 낯선 이름이다.황치열,그가 바로 여기에서 태여났다.작은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과 다름없이 그도 평범한 생활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안온한 생활에 빠지지 않았다.청춘시절에 그는 부모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음악의 꿈"을 가지게 되였다.
그에대한 인터뷰를 본 사람은 다 알고 있을것이다.그의 집은 그리 크지 않고 약간 비좁은 작은 도시의 평범한 집의였다.부모님은 처음에 그의 꿈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우리가 알다싶이 한국은 지금 서비스업과 문화산업으로 립국(立国)하였기 때문에 전경(电竞)과 오락 같은 항업이 경쟁이 극히 치열하다.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오늘은 스타였다가 내일은 인기 떨어져 냉궁에 처박힐수도 있다.판사가 되는 것이 그의 부모님의 기대였다.그는 한국 폴리텍6대학 구미분교 기계과를 졸업했지만 속으로 내키지 않아했다.
꿈,이 한글자를 위하여 그는 고집스럽게 견지하였다.그는 단돈 20만원을 들고(아마 인민페로 1100원 될것이다)고향을 등지고 홀몸으로 서울에 가서 한국의 "北漂”로 되였다.(北漂는 중국에 꿈을 이루기 위하여 북경에 가서 고군분투 하는 지방 젊은이들을 가르킨다)
2
데뷔하기전 그는 댄서였는데 열심이 기본 훈련을 하였다.
한국에서는 데뷔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그는 상경한지 얼마 안되여 데뷔하고 정규앨범도 냈다.그는 스타가 되는 길이 너무 평탄하게 느껴졌고 꿈과 점점 가까와지는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그뒤로 그의 활동은 정제상태에 빠졌다.그는 한국 가요계에서 잠적하기 시작하였다.하지만 그는 힘을 저버리지 않고 많은것을 련마하면서 기다렸다.그런데 그 기다림이 10년이나 걸릴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3 "무명의 십년"
황치열씨는 본인이 출연한 프로에서 이 기간을 한두번 언급하지 않았다.그를 스스로 띄우기 위해서라해도 좋고 우는소리를 한다해도 좋고 화제성을 위하여 역습을 한다해도 괜찮다.아무리 뭐라해도 그의 경력은 사실임이 틀림없다.
돈이없어 그는 집세가 싼 헐망한 옥탑방에서 살아야 했다.
생계를 위하여 그는 추운겨울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아주 먼곳까지 가서 학생을 가르쳐야 했다. 몸은 얼어서 덜덜 떨기도 하였다
몸을 만들기 위하여 돈이드는 헬스장에는 못가고 옥탑방의 지붕을 잡고 턱걸이를 하면서 운동을 하였다.
노래연습을 하는데 이웃들이 시끄러워 한다고 그는 한강다리밑에 가서 하였다.
"나는가수다"1회때 그는 매니저를 데리고 그다리 밑으로 가보았다.
그는 10년이나 되는 무명생활을 하면서 제일 즐거운 일은 매일 다리밑에 가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말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그의 생활은 소위 노래,소위 꿈이라는 것때문에 망쳐 먹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니만 그 스스로는 알것이다.노래가 그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을.그때 다리밑에서 불렀던 노래들이 깨져버릴번한 그의 꿈과 인생을 받쳐주었고 그의 영혼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의 의지를 연마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루하루 노래연습을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생계를 위하여 일을 찾아 할때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기위하여 될수록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였는데 소속사 아이돌의 선생님으로도 일한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여러번 시도했지만 번마다 실패하였다.
지친몸을끌고 옥탑방에 돌아오면 고독한 독신으로 부모님의 인정도 못받고 오직 다리밑을 스쳐가는 바람과 간혹 행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그의 노래를 한단락씩 들을뿐이였다.이렇게 7,8년이 지나갔다.
4 역전의 기회가 오랜 세월동안 전전한 뒤에 찾아왔다
2015년,그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 데뷔할때 편곡해서 불렀던 "고해"를 불러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슬픔이 넘쳐나고 세월이 만든 흔적이 남아 있어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였다.실력자들이 많은 프로에서 그는 튼실한 실력과 다양한 장르의 창법으로 세번이나 우승을 하였다.
5
한국의 아이돌들이 뜨게 되면 네글자 "중국시장"을 많이 고려하게 된다.
바로 그때 망고TV에서 그를 찾아 왔다.
많은 관객분들은 "나는가수다"의 선발가수 명단에 황치열씨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제일 먼저 하는 반응은 "이사람 누구지?"였다.
듣는데 의하면 그가 처음 창사에 왔을때 "한국에서 뜨기 시작한 아이돌 실력가수"인데도 팬이 딸랑 한사람이 공항에 마중나왔다고 한다.
또 0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가수다"가 갓 방송되였을때 사람들은 "미소년같은 얼굴의 오빠,슬픈바라드는 옛방식이다"라고만 알았다 .
그는 겸손하고 소박하며 예절바르다.
그는 성격이 활달하고 마성의 웃음소리로 사람들을 웃긴다.
"나는가수다"프로가 회를 거듭함에 따라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 졌다.
6
이 한국 사나이는 누구지?
좀 잘생기기는 했는데 가창력은 어떤지 ?정순원씨와 비할만 할가?
중국어로도 노래 부르고 장신철씨의 노래도 부르는데 듣기좋네!
이가수는 가창력이 대단하고 표연이 너무 온정되여 있네!한국의 연예인들의 기본공이야 뭐 말할것도 없지?
"一路上有你"를 너무 잘 부르네!
오빠,뱅뱅뱅!오빠 이번회차에 우승이야!
어마나!张宇의 노래,너무 슬프네!!!여보야!!!사랑해!!!
많은 팬들이 아마 다 이런 심리 여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의 웨이보의 팬도 0으로 부터 20만으로 되였다.그는 "와!대단하다.한국에서 팬을 20만 보유하려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20일후 팬수가 190만으로 급증하였다.
지금 그의 팬은 380만이나 되였다.
오늘 그는 전설인 李玟과张信哲와 한무대에서 격전을 벌이게 된다.
7
오늘 그는 매니저를 데리고 또다시 한강대교 밑에 와서 마성의 웃음소리를 날리였다.
그는 콩크리트대에 올라서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 곁에 있는 초등학생을 놀라게 하였다.
똑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꿈을 이루기 전후 사이에 한세상을 사이둔것 같았다.
그는 집에 돌아가 부모님의 인정도 받았다.
황치열씨가 나의 마음을 끈것은 섬세하게 생긴 미소년 얼굴도,훌륭한 기법과 가창력도,예능프로에서 보여준 여유가 넘치는 감수성과 개성도 아닌 세월의 세례를 받고 제일 쓴맛과 단맛을 본 뒤에 여전히 자기의 꿈을 견지하는 초심 때문이다.
8
한국에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가 있는데 그가 출연한 회차에서 "금수절과 흙수절"을 주제로 "가정형편,출신,노력,성공"아라는 사회화제를 놓고 론쟁을 벌이였다.황치열씨는 "평민출신의 사람들도 자기의 노력으로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수 있다.끈임없이 노력을 한다면 꼭 성공할수 있는데 단지 조건이 있는 사람들보다 늦을 따름이다."라고 말하였다.
기나긴 방랑세월 동안 그는 고생을 수없이 하였다.우리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젊은이가 자기의 꿈을 위하여 완고하게 견지하며 보여준 강인한 모습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간고한 시간에 대해 얘기할때 그는 "만약 그런 고험이 없었다면 인생은 무슨락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황치열씨는 나에게 있어서 아이돌 스타일 뿐만 아니라 생활의 롤모델이다.그의 락관적이고 완고하게 견지하는 모습 ,세월이 만들어낸 노래소리는 나를 감동 시켰고 나를 고무하였다.
그의 행운을 빌고 세상에 아직도 자기의 꿈을 견지하고 있는 "loser"들의 행운을 빈다.
첫댓글 꿈을 꾸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 여리님의 용기있는 뚝심이 많은이에게 감동을 주는 거 같아요. 정성어린 번역 감동이었습니다♡♡
알면알수록 보면볼수록 무한감동이예요~~~
어머 중국분이 자세히도 알고 계시고 멋진 글이네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수님을 만난
비정상회담이 마지막에 거론되니
개인적으로 참 기쁩니다.
공감하트 7102개 누르고 갑니다~♡
잘 생기고 춤 잘추고 노래잘하는 가수는 많지만, 기교가 아닌 가슴 깊이 울리는 감동의 목소리는 치열님의 지난 세월과 노력의 결과죠. 저는 개인적으로 댄스할때의 매력적인 치열님보다 발라드 부를때의 치열님이 더 와닿네요. 어느 모습이든 항상 응원합니다~ 모두가 치열님이니까요^^
황치열씨가 나의 마음을 끈것은 섬세하게 생긴 미소년 얼굴도,훌륭한 기법과 가창력도,예능프로에서 보여준 여유가 넘치는 감수성과 개성도 아닌 세월의 세례를 받고 제일 쓴맛과 단맛을 본 뒤에 여전히 자기의 꿈을 견지하는 초심 때문이다.
이 단락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거의 사설 수준의 글이네요...
사람들이 황치열씨의 진가를 제대로 알고 좋아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글을 읽으니.. 황가수님이 더 보고싶습니다. 흑흑
꿈은 이루어진다.
가수님의 꿈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더 큰 비상을 기원합니다.
우리나라 기자님들도 이런 기사 쫌 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맨날 제목만 사아짝 다르고 control C+ control V 인 기사말구요. 이 글 쓰신 중국팬님 글에서 우리 여리님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 같아서...넘 좋네요...늘 열번역해주시는 녹색만다라님 고맙습니다.
치열님은 저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번역 감사해요!
꿈을 위해 그 많은 세월을.... 우리가 알지 못한 얼마나 많은 고통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까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책을 사기 위해서 서점에 갔었다지요. 돈 만원이 없어서 몰래 숨어서 동영상으로 찍어와 다 옮겨적어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잘 하기위해서 죽기살기로 노력했을 가수님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녹색만다라님 번역 감사합니다.
환타 번역 고마브요~♡♡
우리 가수님을 많이 사랑해 주셔서 ~ 사랑합니다~♡
치열씨는 외모만 만찢남이 아니라 그의 삶이 마치 만화같아요...
얼마나 그가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했을지....지금도 그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겠지요.
우리가 매주 기다리는 단 5~6분의 무대를 하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학생때 소풍 가서 장기자랑을 할려고 해도 그전에 얼마나 연습을 하는데,
저런 큰 무대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면 대체 얼마나 큰 부담과 기대를 어깨 위에 얹고 노력해야 하는지 감도 안옵니다.
녹색만다라님, 늘 님의 번역글을 기다립니다. 매번 잘 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긴 번역 감사히 잘 읽었어요♡
인생의 교과서 같은 가수님 삶~ 청소년이 꼭 느끼고 배워야 할 가수님의 방향~
다시금 가수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역시 세계 어디나 보는거 느끼는건 같나봅니다. 이 분도 이심전심이네요 ㅎㅎ
번역 감사합니다.
긴 글 번역 감사합니다~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겠죠. 힘든 상황에도 음악을 계속 놓지않고 해온 치열님 넘 멋져요. 항상 응원해요~
너무 좋은 글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흔적 남깁니다 번역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