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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엥겔스가 브레슬라우의 W. 보르기우스에게, 최인호 역
(1894년 1월 25일, 런던 북서구 리전츠파크가 122)
(…) 당신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1. 우리가 사회사의 규정적 토대로 보고 있는 경제적 관계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특정한 사회의 인간들이 그들의 생활 자료를 생산하고 생산물을 상호 교환하는(분업이 존재하는 한) 양식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생산 및 운수의 기술 전체가 포함됩니다.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 기술은 또한 교환의 양식을 규정합니다. 더 나아가 생산물의 분배를 규정하고, 따라서 씨족사회의 해체 후에는 계급들로의 분열을, 따라서 지배 및 예속관계를, 따라서 국가, 정치, 법 등등을 규정합니다. 더욱이 경제적 관계들에는 이 관계들이 진행되는 바탕인 지리적 기초도 포함되고, 사실상 이전의 경제적 발전 단계에서 전승된 잔재들 즉 종종 전통 혹은 타성(vis inertiae)에 의해서만 계속 유지되는 잔재들도 포함되며, 또 당연히 이 사회 형태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도 포함됩니다.(선집6,562)
만약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기술이 과학의 상태에 의존한다면, 과학은 훨씬 더 기술의 상태와 필요에 의존합니다. 사회에 기술적 필요가 나타나면, 그 필요는 10개의 대학보다 더 과학의 진전에 도움이 됩니다. 유체 정역학(토리첼리 등등) 전체는 16세기와 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계류 조절의 필요가 제기됨에 따라 생겨났습니다. 전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그것의 기술적 응용 가능성이 발견된 이후부터 비로소 쓸모 있는 어떤 합리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과학사를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기술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선집6,562-563)
2. 우리는 경제적 조건들을 역사 발전을 종국적으로 제약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인종 자체는 하나의 경제적 요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음 두 가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선집6,563)
a) 정치, 법, 철학, 종교, 문학, 예술 등등의 발전은 경제적 발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는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경제적 토대에 대해서 반작용을 가합니다. 경제적 상태가 유일하게 능동적인 원인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수동적인 결과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 언제나 관철되는 경제적 필연성에 기초한 상호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국가는 보호 관세, 자유무역, 재정 상태의 불량 여부에 의해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심지어 1648년에서 1830년에 이르는 독일의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발생하여 처음에는 경건주의로 나타났고 다음에는 감상주의와 군주 및 귀족에 대한 비굴한 예속으로 나타난 독일 속물의 극도의 허약함과 무기력조차 경제적 작용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흥의 최대의 걸림돌 중의 하나였는데, 이 걸림돌은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만성 빈곤을 급성 빈곤으로 만들자 비로소 흔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의 사람들이 자기들 편한 대로 생각하듯이 경제적 상태가 자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되, 그들을 제약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존의 사실적 관계들에 기초하여 만듭니다. 비록 여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들에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사실적 관계들 중에서 경제적 관계들이 종국적인 결정적 관계들이며, 경제적 관계들을 추적해야만 이해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선집6,563)
b)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듭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오늘날까지 하나의 일정한 경계 안의 주어진 사회 내에서조차 전체적 계획 아래 전체의 의지로 역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노력들은 서로 교차하며,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사회에서는 우연을 그 보충물과 현상 형태로 가지는 필연이 지배합니다. 여기서 온갖 우연을 통해 관철되는^ 필연은 역시 결국 경제적 필연입니다. 여기서 이른바 위인(偉人)의 문제로 가 봅시다. 그러한 위인, 그것도 다름아닌 이 위인이 이 일정한 시대에 이 특정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순전한 우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제거해 버린다면, 그를 보충하려는 수요가 생길 것이고 또 그러한 보충이 나타납니다. 좋건 싫건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나타납니다. 나폴레옹, 다름아닌 이 코르시카인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프랑스 공화국이 필요로 했던 군사 독재자였다는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웠을 것입니다. 이는 그러한 인물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나타났다는 사실에 의해서 증명됩니다: 케사르, 아우구스투스, 크롬웰 등등. 맑스가 유물론적 역사 파악을 발견한 경우를 들더라도, 티에리, 미네, 기조와 1850년까지의 모든 영국 역사 서술가들은 이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모건에 의한 유물론적 역사 파악의 발견은 그것을 발견할 때가 성숙하였고 그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선집6,563-564)
역사상 다른 모든 우연들과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영역이 경제적 영역에서 멀어지고 순수하고 추상적인 이데올로기 영역에 가까워질수로, 우리는 그 영역의 발전에서 더 많은 우연들을 보게 되며, 그 발전 곡선은 더욱 지그재그 운동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곡선의 중축을 그린다면, 연구 시기가 길고 연구 영역이 넓을수록 이 축이 경제적 발전의 축과 더욱 가까운 지점에서 평행하여 달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선집6,564)
독일에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은 경제사 문헌에 대한 무책임한 경시입니다. 학교에서 주입한 역사 관념을 교정하기가 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것도 아주 어렵습니다. 예컨대 무미건조한 자료집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무수한 정치적 사실들을 해명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를 담고 있는 늙은 G. v. 귈리히의 책만이라도 읽은 사람이 있습니까!(선집6,564)
또한, 맑스가 [브뤼메르 18일]을 통해 보여준 모범은, 바로 그것이 실제적 실례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질문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답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대다수의 문제에 대해서는 [반뒤링], 제1편 제9-11장과 제2편 제2-4장 및 제3편 제1장 또는 서설에서, 그리고 [포이어바흐]의 마지막 장에서 이미 언급했다고 생각합니다.(선집6,564-565)
이상 제가 드린 말씀에서 어구를 하나하나 따지지 말고 연관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유감스럽게도 출판물에 발표하는 글처럼 정확하게 다듬어진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선집6,565)
출처: 사회주의 학사, 제1권, 제20호, 1895년 10월 15일, 베를린 MEW 39, 205-207
33. 엥겔스가 프페뢰의 폴 라파르그에게, 정선희 역
(1894년 3월 6일, 런던 북서구 리전츠파크가 122)
(…) 저는 이제 막 곡물 관세에 관한 조레스와 게드의 연설을 읽었습니다. 조레스의 연설은 실제로 놀랄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수정안을 당의 이름으로 제출하는 것을 그에게 허락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는 국가가 곡물 가격의 최저 한도를 25프랑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순수한 보호무역주의이며 더욱이 대지주의 이익만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지주는 그들의 수확으로는 자신의 소비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판매할 곡물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
다. 게드도 그것을 옳다고 말하였지만, 그는 레옹 세이를 따라서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처음으로 그것을 소리 높여 선언했어야 했으며 세이 씨의 바짓가랑이에 붙어 따라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레스의 수다가 우리를 방해했습니다.(선집6,566)
그러나 곡물의 수입을 국가에 위임해야 한다는 그 제안만을 생각해 봅시다. 조레스는 투기를 방지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외국의 곡물을 사들이는 것을 정부에 위임합니다. 정부는 하원의 다수파의 집행위원회이며, 하원의 다수파는 곡물, 주식, 공채 등등의 바로 이 투기꾼들의 가장 엄밀한 대표입니다. 이것은, 파나마 사건의 관계자^에게 파나마 사건의 조사를 위임한 이전의 하원의 경우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 재선된 이 파나마 사건 관졔자들은 당신들에게 투기를 진정시키는 일을 맡기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그들이 매년의 예산과 적어도 자신의 자본과 자신의 신용을 사용하는 곳인 증권거래소의 도움으로 그들에게 수십억의 돈과 국가 신용을 쓰도록 하여, 그 결과 그들은 국가사회주의의 도움으로 당신들의 주머니를 한층 더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선집6,566-567)
그리고 조레스는 정말로 새로운 전대미문의 제안을 했다는 망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리히 칸톤의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이 그를 앞질렀습니다. 수년 전부터 그들은 곡물의 국가 전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국가는 어떤 경우이든지 프랑스 공화국보다는 훨씬 민주적이어서, 심지어 소부르주아-사회주의자를 경찰서장으로 허락하고 있으며(포겔장어씨), 또 전능한 지사는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들의 국가는 너무 작아서 과도한 일도 용인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그들 나라에서만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대국이라면 그러한 유치한 행동을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선집6,567)
게드의 연설은 당연히, 조레스의 두서너 번의 변덕을 적어도 형식상으로나마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때문에 시달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청중들은 그를 일반적 원칙의 영역으로 이끌었습니다−그것이 우리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는, 조레스의 제안을 피상적으로 가볍게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만약 게드가 조레스와 관계없이 정식으로 등장하였다면 그리고 우리 그룹의 대변인으로서 연설하였다면, 나는 그의 연설을 보다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선집6,567)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전의 급진파와의 동맹의 결과입니다. 첫째로: 왜 조레스는 급진파의 선거인에게, 자신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약속을 한 것인가? 그것은 급진파의 습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자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옹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름으로 이 조레스씨, 이 공론가, 그러나−특히^ 정치경제학에− 무지한 교수, 이 최고 수준의 천박한 인재는, 제1위로 돌진하고 자기가 한번도 이해한 적이 없는 사회주의의 대변자인 양 행세하기 위해 그의 수다스러움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소아병 가운데 하나인 국가사회주의를 감히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소아병은, 예를 들면 독일에서는 사람들 십이년 전에 예외법의 지배 아래 체험한 병이어서 그 당시 그것은 정부에 의해 목인된 (보호되기까지 한) 유일한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그것에 속아 넘어간 것은 당의 사멸되고 있던 소수파뿐이었습니다. 비덴 대회(주146) 이후 그들은 모두 사멸되었습니다.(선집6,567-568)
주146) 1880년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스위스 비덴 성에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최초의 비합법 당 대회가, 사회주의자법의 조건 하에서 열렷다. 대회는, 당은 “모든 합법적인 수단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라고 정식화한 강령에서 “합법적”이라는 말을 삭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통해 합법적 투쟁 형태와 비합법ㅈㄱ 투쟁 형태를 결합시킬 필요성이 승인되었다.(선집6,607)
그러나 이전의 급진파는 당신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공화국을 가지고 있다! −우리 경우에는 사태가 다르며, 우리는 사회주의적 방책을 실시하는 데 정부를 이용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 공화국이 왕정과 다른 것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장래의 지배를 위해 완성된 정치 형태라는 점뿐입니다. 당신들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유리합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세우기 위해 24시간을 소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화국은 다른 모든 정부 형태처럼 그 내용에 의해 규정됩니다. 부르주아지의 지배 형태인 한 그것은 어떠한 왕정과도 똑같이 우리들에게 적대적입니다(이러한 적대의 형태들을 제쳐놓고라도). 따라서 그것을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적인 형태로 보는 것이나 혹은 그것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그것에 사회주의적인 사명을 맡기는 것은, 완전히 근거 없는 환상입니다. 우리는 공화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는 있지만 결코 우리 자신의 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가령 우리가 하룻밤에 다수파로 바뀔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소수파에 의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해도!(…)(선집6,568)
MEW 39, 214-216
34. 엥겔스가 르페뢰의 폴 라파르그에게, 최인호 역
(1894년 6월 2일, 런던)
(…) 저는 프랑스의 현대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당신의 서술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독일에 있는 200만의 투표자처럼 견고하고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새로이 등장하는 혼미한 대중을 결정적으로 제압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회 내에서 다른 모든 파 위에 군림하고 있는 밀레랑류(à la Millerand)의 이전의 급진파는 말할 필요도 없고 맑스주의자, 블랑키주의자, 아르망주의자, 브루스주의자, 그 외의 많은 주의자로 분열되어 있는 당의 경우에는, 이러한 새로운 풍조가 당신들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를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당신들은 이것을 불랑제주의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운동에서는, 조레스류의 공론가들이 지배할 것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이들은 의회 내에서 당신들 모두의 이름으로 말하는 월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들이 우리들을 침묵하게 하는 장소인 의회가 그들의 말을 듣지만, 내일은 전국이 그들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선집6,569)
어쨌든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나쁘게 되지 않고 오히려 잘 진행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당신들은 호기심 어린 모험을 잘 견^뎌냈으며, 그리고 저는 행동으로 전쟁을 결정할 강고한 전투 부대가 독일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우리 모두에게 축사를 보냅니다. 당신들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심취는 결정적인 충돌에까지 나갈 수 있고 당신들은 거기에서 최초의 승리를 획득할 것입니다. 나라와 수도의 혁명적 전통, 1870년 이후 처음으로 민중적인 토대 위에 보다 더 강고하게 재편성된 당신들의 부대의 성격, 이러한 것 모두가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당신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더 수가 많고, 더 확실하고, 더 의식적인 사회주의 당의 적극적인 원조가 당신들에게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년 전부터 예견하고 예언해 왔던 것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프랑스인이 신호를 보내어 공격을 개시하고, 독일인이 전투를 결정합니다.(선집6,570)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아직 그러한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래서 저는 당신들을 사로잡고 있는 혼란스러운 열광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선집6,570)‘
MEW39, 254-255
35. 엥겔스가 베를린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에게
(1894년 11월 24일, 런던 리전츠파크가 41)
친애하는 리프크네히트! 나는 베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거기서 나는 정치적 논쟁에서는 모든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며 서두르거나 처음의 흥분된 상태에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그에게 당부했습니다. 나 자신도 이 때문에 종종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도 이 점과 관련해서 몇 가지 경고할 것이 있습니다.(선집6,571)
베벨이 대회에서 적절치 않은 행동을 취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부분에서 그는 결정적으로 옳았습니다. 물론 당신은 중앙기관지의 편집자로서, 조정 활동을 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차이까지도 논쟁에서 배제하고, 만사를 어느 쪽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들고, 분열하는 날까지 당의 단결을 도모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편집자로서의 당신에게는 베벨의 행동이 치명적인 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집자에게 불쾌한 일이 당 지도자에게는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없어서는 안 될 편집자의 안경을 반드시 낄 필요가 없는 사람들, 편집자에 대해서도 당 지도자의 자격으로 때때로 조화의 안경을 벗고 태어날 때부터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선집6,571)
바이에른인들은 프랑크푸르트 당대회 직전에 뉘른베르크에서 정식으로 분리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그들은 의심할 바 없는 최후 통첩을 들고 프랑크푸르트에 왔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폴마르는 제 갈 길을 가자고 말했고, 그릴로(주304)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거기에 따르지 않겠다. 그들은 바이에른의 특별한 권리를 선언하고 당내에 있는 자신들의 반대자를 ‘프로이센인’ 및 ‘베를린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들은 예산 표결에 동의할 것을, 그리고 이미 소부르주아적인 것을 넘어서서 우경화되고 있는 농민 정책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 대회는 이전에도 늘 그랬듯이 이런 행위를 정력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고 아무런 결의도 채택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베벨에게 소부르주아 분자들의 당내 진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도대체 그런 때가 언제 오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선집6,572)
주304) 그릴로의 실명은 칼 그릴렌베르거(1848~1897): 사민당 내부 남부독일의 개량주의 제국의회 의원. 게오르크 폰 폴마르(1850~1922)는 그릴로의 남독일 개량주의를 이론적 정치적으로 정립했다.
그리고 전진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전진은 사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베벨의 공격 형식을 문제삼고 그리하여 베벨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베벨의 적의 ‘오해’−이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지요−가 있고서야 비로소 당신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은 베벨의 공격 형식일 뿐 내용−예산 건과 농민 문제−에서는 베벨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사후에 이러한 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은 당신이 저지른 우경의 오류가 베벨이 저지를 수 있는 좌경의 오류보다 더 심각했다는 것을 당신에게 증명해 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선집6,572)
그리고 토론 전체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결국 단지 이 두 가지 사항을 정점으로 하는 바이에른인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소부르주아를 잡는 덫으로서의 예산 표결이라는 기회주의, 중농과 대농을 잡기 위한 폴마르의 농촌 선전이라는 기회주의. 이 두 기회주의와 바이에른인들의 분리 동맹적 입장이 현존하는 유일한 실제적 문제입니다. 그리고 만약 베벨이 당 대회가 당을 위험 속에 방치하고 있을 때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면, 당신은 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당 대회에 의해 만들어진 참을 수^ 없는 상태를 당내에 속물파가 증대한 데 따른 결과로 서술했다면, 이것은 올바른 일반적 관점으로 특수한 문제를 다룬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것 또한 승인할 만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도록 강제했다면, 이것은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책무를 수행한 것이며, 다음 당 대회에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처럼 긴급한 문제를 맞이하여 허둥대는 일이 없이 사태를 완전히 인식하고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서 취한 행동입니다.(선집6,572-573)
분열의 위험은 사태를 솔직히 말한 베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태까지 당내에서 전대미문의 오만방자한 행동 방식을 취하였고, 프랑크푸르트 신문의 속류 민주주의자들−이들은 폴마르와 바이에른인들을 자신들의 사람들로 보고 있지요−의 환호성을 불러일으키고, 기뻐하며 더욱 뻔뻔스럽게 된 바이에른인들에게 있습니다.(선집6,573)
당신은 폴마르가 배신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가 자신을 배신자로 생각할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10~30헥타의 소유자인 상부 바이에른의 대농과 중농의 오늘날의 상태, 고용 농민과 날품팔이들에 대한 착취에 기초한 이 상태를 영구화할 것을 프롤레타리아당에 요구하는 사람을 당신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프롤레타리아당은 임금 노예제를 영구화하기 위해서 특별히 창립된 것입니까! 이런 사람은 반유태인주의자,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바이에른 분립주의자, 그 밖의 어떤 것으로 불러도 좋지만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성장하는 노동자당 내에 소부르주아 분자들의 증대는 불가피하며 손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학사들’, 낙제한 학생들 등등이 증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전에는 그들은 위험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들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소화 과정을 촉진하기도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염산이 필요합니다. 만약 염산이 충분하지 않다면 (프랑크푸르트가 확인해 주고 있다시피), 이런 비 프롤레타리아적 분자들을 훌륭히 소화할 수 있도록 염산을 부어 주는 베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선집6,573)
당내의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길은 실재하는 내부 논쟁 문제를 부인하고 묵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효과적인 행동을 초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매우 좋은 이야기지만, 도대체 언제 그러한 행동이 시작되겠습니까?(선집6,573-574)
MEW39, 330-3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