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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장 10-15절. 사탄에게 속지 말고, 충성을 다합시다
1. 지난 시간에는, 바울 사도가 두 가지 변명을 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5-6절은, 바울 사도가 말에는 부족하지만, 지식에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고 했습니다.
7-9절.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은, 바울이 사도의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교회들로부터 선교비 보조를 받기 때문이라고 변호를 했습니다.
2. 오늘은 바울 사도가 참 하나님의 사도이고,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은 마귀의 사주를 받는 사단의 일꾼들이라고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지만, 실상은 사단의 일꾼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인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 말고, 예수님의 일꾼이요 참 사도인 바울 자신을 믿고 따라 줄 것을 호소합니다.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사탄에게 속지 말고, 주님께 충성합시다>입니다.
10절.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the truth of Christ is in me, this boasting of mine will not be stopped in the regions of Achaia.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ἔστιν ἀλήθεια Χριστοῦ ἐν ἐμοὶ,
is truth of Christ in me
‘있으니’(ἔ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현재 있다는 뜻입니다.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ὅτι ἡ καύχησις αὕτη οὐ φραγήσεται εἰς ἐμὲ ἐν τοῖς κλίμασιν τῆς Ἀχαΐας.
that the boasting this not will be sealed up of mine in the regions of the Asia
‘막히지 아니 하리라’에서 동사(φραγήσεται)는 미래 수동태로서(will be sealed up) 앞으로 닫혀지지 않을 것을 가리키고, 원형(φράσσω)은 ‘가두다, 그치게 하다, 막다’(fence in, stop, obstruct)는 뜻입니다.
길(Gill)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란 말씀은 바울의 결심의 확고함을 보여주는데, 이 말들은 맹세의 형식이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As the truth of Christ is in me,.... To show the firmness of his resolution, for these words are the form of an oath;)
엘리콧(Ellicott)도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란 말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거의 맹세의 형식이라고 했습니다. (As the truth of Christ is in me . .—The formula is almost, though not quite, of the nature of an oath).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 하리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이 자랑이 나에게서 그치지 아니 하리라’는 뜻이고, 그 동사(φράσσω)는 ‘울타리를 치다’는 뜻인데, 로마서 3장 19절( 이는 모든 입을 막고)에서처럼 언제나 ‘입을 막는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의인화해서 ‘그의 자랑이 그의 입을 봉하지 않을 것이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No man shall stop me of this boasting.—Literally, This boast shall not be stopped for me. The verb for “stop” means primarily to “hedge round,” or “fence.” In the New Testament, as in Romans 3:19, it is always used of “stopping the mouth.” Here, with something like a personification, he says that his boast shall not have its mouth thus sealed.)
‘아가야 지방’에서 지방이란 단어(κλίμα)는 신약성경에서 특별히 바울서신에서 나타납니다. (롬 15:23, 갈 1:21). 영어의 ‘지방’(climate)이란 단어가 여기서 나왔는데, 원래를 과학 용어였으나, 점점 지방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지방’이란 것은 한 도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겐그래아를 포함한 지방(province)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고린도의 이스드무스 해협 남쪽 지역의 다른 도성에 전도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In the region of Achaia.—The word (klima) is peculiar to St. Paul among the writers of the New Testament (Romans 15:23; Galatians 1:21). Like our word “climate,” which is derived from it, it was originally a term of science, and had passed gradually into colloquial usage. He names the province and not the city—probably to include Cenchreæ. There is no evidence of his having preached in any other locality south of the Isthmus of Corinth.)
반스(Barn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내 자랑을 막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이 자랑이 나에게서 그치지 않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 말의 뜻은 바울이 사례비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그렇게 하겠다고 엄숙히 결심한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에게도 짐을 지워주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그러하겠다고 결심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기보다는 자기 손으로 일을 했습니다. 여전히 그는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가야에 있는 어떤 사람도 바울이 게으름쟁이라고 말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고,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지원만 받는다고 말하지 못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고상한 결심입니까! 얼마나 확고한 결심입니까! (No man shall stop me..- Margin, "This boasting shall not be stopped in me;" The idea here is, that Paul was solemnly determined that the same thing should continue. He had not been burdensome to any, and he was resolved that he would not be. Rather than be burdensome he had labored with his own hands, and he meant to do it still. No man in all Achaia should ever have reason to say that he had been an idler, and had been supported by the churches when he was doing nothing. It was the fixed and settled purpose of his life never to be burdensome to any man. What a noble resolution! How fixed were the principles of his life!)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In the regions of Achaia - Achaia was that part of Greece of which Corinth was the capital)
매튜 폴(Matthew Poole)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반복해서 하는 말은 바울이 아가야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아무런 짐을 지워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도 그랬습니다(살전 2:5-6,9).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이 말을 할 때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탐욕적이고 돈에 대해서 너무 수전노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입니다. 만일 바울이 일한 것에 대해서 보수를 받았다면,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이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했을 것입니다.(The apostle often repeateth this, glorying much in it, that in this region of Achaia he had preached the gospel without charge to the hearers: he did so also at Thessalonica, 1 Thessalonians 2:5,6,9; but concerning them, he saith, what he no where saith of the Corinthians, that they received the word in much affliction; which might, probably, be the cause. It is most likely that he either discerned this people to be more covetous, and too much lovers of their money: or that there was a generation among them, who, if he had taken wages for his labours, would have reproached him as one that was a hireling, and who did all that he did for money.)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1. 바울 사도가 사례비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사역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자신 속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진리가 바울 속에 있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도 계속 복음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사례비를 많이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양식을 주시지 않으면 복음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2.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물질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도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에서 군중들이 5병2어의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막상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양식이라고 하니까, 다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모스 8장 11절에도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생명이고, 참된 양식입니다.
3. 그러기 때문에, 목회 사역은 아무리 돈이 많더라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대도시에서 어떤 목사님이 2조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인들이 겨우 15명밖에 안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사례비만 챙기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버리고, 율법주의로 잘못 흘러 가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바울 사도는 비록 사례비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지 못했지만, 그리스도 진리만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 있게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다’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놓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살리고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 아가야 지방이란 고린도를 비롯하여 아테네와 겐그레아를 포함한 헬라의 남쪽 지방을 가리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비록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못했어도,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슴에 안고 있다는 자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자부심을 가진 군인은 비록 군대에서 강제로 절간에 데리고 가더라도, 절간에 가서 떡을 준다고 해도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부심을 가진 성도는 비록 문중에서 제명을 시키겠다고 해도, 제사 때 절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못했어도, 율법주의와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자랑했습니다.
이처럼 믿는 성도들은 거룩한 자존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비록 느브갓네살 왕이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어도, 거룩한 신앙의 자존심을 굳게 지키면서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3:17-18.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2.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배경으로 늘 교권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바울은 항상 그리스도의 진리만을 배경으로 삼고, 새 힘을 얻으며 활활 타오르는 성령의 권능을 의지하여 일해갔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속에서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진리 때문에 복음 진리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례비를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초대 사도들도 유대교인들이 예수 믿는 도를 전하지 말라고 위협을 했어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3. 한편 앞 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려 하지 않은 자신의 처신이 오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 것이라고 결의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즉, 바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서의 마땅한 권리인 생활비 보조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울이 자신의 청렴결백함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복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바울 사도는 <물질의 부요>가 ‘복음 전도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약화시키며, 자신이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멀어지게 할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연약함에 처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 속에서 온전히 역사하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4. 본 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진리>가 자신의 속에 있기 때문에, 거짓 사도들의 공격에도 낙심하지 않고, 아가야 지방 고린도 교회에서 무보수로 사역한 행동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의 자랑은 자기를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진리>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을 배경으로 자기를 자랑했지만, 바울 사도는 가슴속에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진리 때문에 늘 힘을 얻고, 용기백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권력이나 돈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면, 언제나 반석 위에 선 믿음이 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장 5-8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권력을 배경 삼거나 돈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받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푸른 나무처럼 청청하고, 시절을 좇아 열매 맺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절.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y? Because I do not love you? God knows I do!
어떠한 까닭이냐
διὰ τί;
because of why ?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ὅτι οὐκ ἀγαπῶ ὑμᾶς;
because not do I love you ?
‘사랑하지’(ἀγαπῶ)는 현재형으로서(do I love) 현재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ὁ Θεὸς οἶδεν.
the God has known
‘아시느리라’(οἶδεν)는 완료형으로서(has known) 이미 알고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길(Gill)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울은 왜 복음을 전한 댓가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결시했나요? 왜 바울은 아가야 지방 모든 지역에서 거저 복음 전한 것을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했나요?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은근히 주장하기를 바울이 사례비를 받지 않은 이유는 바울이 진심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고 했고, 고린도 교인들과 그들의 선물을 멸시하고, 마게도냐 교인들과 다른 교회들을 고린도 교회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Why did the apostle do this? why did he take nothing, and resolve to take nothing of the Corinthians, for preaching the Gospel to them? why did he determine, that no man should prevent his glorying of this, in all the country of Achaia? was it because he did not love the Corinthians? some might insinuate this was the reason of it, that he had no true affection for them, and therefore would take none of their gifts, but despised both them and theirs, and loved the Macedonian and other churches better than they. To which he answers by saying, God knoweth;)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일종의 맹세문이고, 모든 것을 아시고,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 엄숙하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which is another form of an oath, and is a solemn appeal to God, the searcher of hearts, who knows all things, that he knew he heartily loved them; that it was not want of love to them, which was the reason of his entering into such a resolution, never to take anything of them;)
1. 이것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오해에 대해서 답변한 말씀입니다.
즉 바울은 “내가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이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냐?”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라. 내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는 것입니다.
2. 그렇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은 고린도 교회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따라가지 않고, 바울에게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린도 교회의 사랑에 대한 표현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거짓 사도들과 거짓 교사들에게 사례비를 줄랴, 바울에게 사례비를 줄랴 너무나 힘들 것이기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3. 그렇다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처럼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교묘하게도 바울이 사례비 받지 않는 것은 바울이 거짓 사도이기 때문이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면, 바울이라도 사례비 받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바울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지도 않고, 바울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오직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쫓아내고,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 자기들만 고린도 교회에서 목회자로 군림하고 사례비를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쫓아내고, 자기들만 교회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바울을 사례비를 받지 못하는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의 선동에 유혹받아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례비를 받지 못한다고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즉 거짓 사도나 거짓 교사들이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만은 바울의 진심을 알아주시고,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5. 정말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도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불신자들에게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그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치 깊은 구덩이에 빠진 예레미야가 저 높은 곳에 하늘만 빤히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즉 교역자들도 알아주지 않고 교인들도 알아주지 않을 때,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담임 목사가 밥을 굶고 있는 전도사 부부(손*석, 박*순)를 불쌍히 여겨서 교회에 부탁해서 그 부부를 다 부교역자로 초빙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있는 목사님(최*식)이 그 담임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당신네 부교역자가 구역예배에서 담임목사를 맨날 욕한다는 소문이 온 시장에 퍼졌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담임 목사는 부교역자 부부를 불러서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교역자 부부는 반성을 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담임 목사를 교화에서 쫓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교역자는 수석 장로에게 담임 목사가 성추행을 했다고 고발하고, 장로들과 안수집사들에게 담임 목사가 성추행했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노회에 소속된 목사(김*석)를 찾아가서 담임 목사가 성추행을 했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자 노회장이 노회를 소집해서 이 목사를 치리하려고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때 이 담임 목사는 부교역자 내외가 담임목사를 죽이려 하고, 교회 중직들과 노회가 담임목사를 처벌하려고 하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극적으로 노회에서 수석 장로(나*민)가 부역자가 무고한 것이고 담임목사는 깨끗하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담임목사는 허물을 벗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평안과 목사의 명예를 위해서 그 교회를 사임하고, 개척교회를 하러 떠났습니다.
이처럼 사방으로 절망을 당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도우심을 간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 후로 교회 중직들은 그 담임 목사가 은퇴한 후에도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부역자 부부는 담임목사와 은인을 배반하고 무고했다는 딱지가 붙어서 아무 교회도 받아주지 않고,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6.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 삼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리고 다윗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73:25-26.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사람들이 우리를 몰라줄 때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7.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 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의 유혹을 받아서 바울을 사례비도 받지 않는 거짓 사도라고 비방하지만,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해서 사례비를 안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비난해도, 하나님만 바라봄으로써 은혜를 받고, 이웃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되 낙심 말고서 계속 사랑하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선을 행할 기회가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8.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얼마나 속상한 일들이 많습니까?
그래도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랑하고 돌봐줍니다.
자녀들 중에도 부모의 말을 잘 듣는 효자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속을 많이 썩이는 불효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자기 책임인 줄 알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면서 늘 사랑하고 배풀어줍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사랑을 베풀 때 낙심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래 참고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사랑을 오래 참는다고 했고, 7절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도 고린도 교회에서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자기를 악한 말로 비난하고, 일부 교인들이 동조했어도, 고린도 교인들을 계속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 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한 일을 하고, 사랑하되 낙심하지 말고, 계속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 줄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어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가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회복시키고, 목회 사역을 새로 시작할 수 있게 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혀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은혜를 얻고, 그 받은 은혜로써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새벽에 나오셔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시고, 이웃을 항상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이웃을 주께로 인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절.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at I am doing I will continue to do, so that I may cut off opportunity from those who desire an opportunity to be regarded just as we are in the matter about which they are boasting.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Ὃ δὲ ποιῶ, καὶ ποιήσω,
what however I do, also I will do
직역하면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또한 할 것이다’란 뜻입니다.
‘해온’(ποιῶ)은 현재형으로서(I do)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앞으로도 하리니’(ποιήσω)는 미래형으로서(I will do) 미래에도 할 것이란 뜻입니다.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ἵνα ἐκκόψω τὴν ἀφορμὴν τῶν θελόντων ἀφορμήν,
so that I might cut off the opportunity of those desiring opportunity
직역하면 ‘이는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내가 끊으려 함이다’는 뜻입니다.
‘찾는’(θελόντων)은 현재분사로서(desiring) 현재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가 끊으려 함이라’(ἐκκόψω)는 부정과거 가정법으로서(I might cut off) 단호하게 끊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받으려는
ἵνα ἐν ᾧ καυχῶνται, εὑρεθῶσιν καθὼς καὶ ἡμεῖς.
that in what they boast, they might be found as also we
직역하면 ‘그들이 자랑하는 것으로 그들이 우리와 같이 발견되려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καυχῶνται)은 현재형으로서(they boast) 현재 자랑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정받으려는’(εὑρεθῶσιν)은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they might be found) 확실하게 인정받는 것(발견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반스(Barn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던 것을 그대로 하리라’는 것은 바울이 해오던 것을 앞으로도 그대로 하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즉 바울은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필요하면 내 손으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할 것이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단호하게 사례비를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The course of life which I have been pursuing I will continue to pursue. That is, I will continue to preach as I have done without demanding a support. I will labor with my own hands if necessary; I will preach without demanding rigidly what I might be entitled to.)
‘우리와 같이 인정받으려 하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한다’는 것은 거짓 교사들이 내가 치부하려고 한다고 비난하면서 나에게 열을 올리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이 그럴듯한 핑계로 바울을 고발하지 못 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바울이 오직 사례비를 받기 위해서 전도하고 있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That I may cut off occasion - That I might give them no opportunity of accusing me of desiring to grow rich, and of calumniating me. Paul meant that they should have no plausible pretext even for accusing him; that no man should be able to say that he was preaching merely for the hire.)
‘기회를 찾는 자들’이란 의미는 틀림없이 바울의 대적자들이 바울을 고소할 기회를 열심히 찾는 것을 의미하고, 바울의 인격에 모독을 주고 손상시킬 그럴듯한 어떤 이유를 그들이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는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예를 들어서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기회를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많은 급료를 받으면서, 자기들이 바울의 예를 따랐다고 말하지 못 하게 하려는 것이란 뜻입니다. (Which desire occasion - No doubt his enemies eagerly sought opportunities of accusing him, and greatly wished for some plausible reason for charging him with that which would be disgraceful and ruinous to his character. Or it may mean that they desired opportunity from the example of Paul to justify themselves in their course; that they took wages from the church at Corinth largely, and desired to be able to say that they had his example.)
‘그들이 자랑할 기회’라는 것은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이 자기들이 수고한 댓가를 받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했다고 자랑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이 이렇게 해놓고서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선물들을 받고, 여러 가지 핑계로 고린도 교회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서 일반적인 수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That wherein they glory - Probably meaning that they boasted that they preached the gospel for free (gratis); that they received nothing for their labors. Yet while they did this, it is not improbable that they received presents of the Corinthians, and under various pretences contrived to get from them an ample support, perhaps much more than would have been a reasonable compensation.)
‘그들이 우리와 같이 발견되려고 자랑한다’(εὑρεθῶσιν καθὼς καὶ ἡμεῖς: they boast, they might be found as also we: 그들이 우리와 같이 발견되려는)란 말은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행한 대로 정직하게 행하여 거짓 하지 않고 실제대로 드러나야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만일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본을 따르고 바울의 권위에 호소하려면, 그들이 정직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잔꾀를 쓰지 말아야 하고, 바울처럼 그들이 속임수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They may be found even as we - That they may be compelled honestly to pursue such a course as I do, and be found to be in fact what they pretend to be. The sense is, "I mean so to act that if they follow my example, or plead my authority, they may be found to lead an honest life; and that if they boast on this subject, they shall boast strictly according to truth. There shall be no trick; nothing underhanded or deceptive in what they do so far as my example can prevent it.")
마튜 폴(Matthew Poole)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알기로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나를 미워해서 나를 모독하고 자기들을 정당화할 기회를 찾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았다면, 거짓 교사들은 그 사례비 때문에 내가 상업적인 정신으로 전도한다고 나를 욕할 구실을 찾았을 것입니다. 또한 적어도 거짓 교사들이 여러분들에게서 물질을 강탈하고서도 자기를 정당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그런 자랑을 하지 못하도록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I know (saith the apostle) that there are some amongst you who, out of their hatred to me, would seek any occasion to asperse me to justify themselves. If I had (as I might) have taken wages amongst you for my labours, they would either have taken occasion from it to have aspersed me, (as doing what I did from a mercenary spirit), or at least to have justified themselves in their exactings upon you. I had a mind to prevent any such occasions of boasting.)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라는 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 어떤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이 재산이 많이 가자고 있어서 아무런 보수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만일 바울이 무엇을 받았다면 바울 사도를 대항하여 바울이 이득을 챙기려고 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즉 만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어떤 사례비를 받았다면, 바울의 경우를 들어서 이 사람들도 고린도 교회에서 불합리하게 물질을 요구하면서 바울을 핑게로 자기를 정당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들 중의 어떤 사람도 물질을 요구할 기회나 자랑할 기회나 구실을 차단하여 고린도 교인들을 거짓 교사들의 물질적 착취로부터 지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That wherein they glory, they may be found even as we: it should seem by these words, that some teachers in this church, being (possibly) men of estates, required no maintenance of the people; and would have taken advantage against the apostle, if he had taken any: or, possibly, some others exacted upon them unreasonably, who, had Paul taken wages, would have justified themselves by his example. The apostle therefore was resolved to cut off from them any pretence or occasion of boasting, and to do whatever any of them did, in sparing the Corinthians as to the business of their purses.)
길(Gi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을 앞으로도 하리니’란 말씀은 바울이 고린도와 아기야 지방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거저 복음을 전한 것처럼, 앞으로도 거저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는 뜻입니다. (But what I do, that I will do,.... As he preached the Gospel freely at Corinth and in Achaia, so he was determined to do it for the future, for this reason only, or chiefly:)
‘그들이 바라는 기회를 내가 끊으려 한다’는 것은 거짓 사도들이 자기를 높이고 바울을 비난하려는 기회를 끊으려 한다는 뜻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바울 사도와 같이 보이려 하고, 어떤 해석가들의 말대로, 거짓 사도들은 부자여서 아무 사례비를 받지 않고 전도했는데, 이것은 바울 사도가 어떤 사례비를 고린도 교회에서 받음으로써 자기들이 바울을 공격할 기회를 찾으려 했고, 자기들이 학식과 웅변에서 뛰어난 것처럼 물질 문제에 있어서도 바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례비를 받지 않음으로써 그런 자랑의 기회를 끊으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I may cut off occasion from them which desire occasion: meaning the false apostles, who sought for, and were desirous of every occasion and opportunity of exalting themselves, and reproaching him: that wherein they glory, they may be found even as we; the sense of which according to some interpreters is, that whereas some of the false apostles, at least who were rich men, took nothing for preaching, but gave their labours freely, were very desirous that the apostle would receive of the churches in these parts, that they might have an occasion against him, and an opportunity of showing themselves, as in learning and eloquence, so in this respect, to be superior to him, in that they preached freely, and he for gain; wherefore to cut off such an occasion, the apostle determines he would take nothing;)
이 점에서 거짓 사도들은 자기들이 복음을 무보수로 전했다는 것으로 자랑하려 했고, 자기들이 바울보다 뛰어나지는 못해도 대등한 것으로 보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짓 사도들이 전도하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적인 측면도 분명한데, 사도 바울이 말한 의미는 거짓 사도들은 자기들이 사례비를 받았기 때문에, 바울이 사례비 받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바울이 자기들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했을 것이고, 그들이 바울의 권위에 자기들의 권위도 호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로부터 더 많은 돈을 착취할 기회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that in this very thing which they boasted of, that they preached the Gospel freely, they might appear to be at most to be but upon a par with the apostle, and not to exceed him. This sense would seem very appropriate, was it a clear point that the false apostles received nothing for preaching; but the contrary is most evident; wherefore the apostle's meaning is, that these men were desirous that he would take wages, because they did; that in this respect he might not excel them, and that they might be able to plead his example and authority, and so get an occasion of extorting more money from the Corinthians:)
그래서 바울 사도는 거짓 사도들의 모든 기회를 끊으려고 자신이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아무런 돈을 받지 않고, 바울 사도의 본을 받아서 가난하게 자기 손으로 일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wherefore to cut off all such occasion from them, the apostle resolves to take nothing himself; that they might be found, would they follow their example, even as they, not taking any money at all of them, and poor, and working with their own hands.)
<내가 해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1.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상태로 계속 시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즉 바울의 대적자인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바울을 모함하기를 <바울은 거짓 사도요 헌금을 횡령해 먹은 도둑놈이기 때문에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비방하더라도, 바울은 계속해서 무보수로 사역을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만일 바울 사도가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의 비방하는 말에 약이 올라서 사례비를 요구한다면, 자기도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같이 거짓 사도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속 고린도 교회에 사례비를 요구하지 않고 사역을 계속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2. 참으로 교회에서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초대교회에서조차 사례비를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하는 바울 사도에 대해서까지 거짓 사도요 도둑놈이라고 모함을 했으니, 오늘날 현대 교회야 얼마나 모함하는 일이나 터무니없는 비방이 많겠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과 특히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성도님들은 목회자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면서 아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나와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은 목회자를 올바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고 주일날이나 나와서 중직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맨날 목회자 탈만 잡으려고 하고, 도무지 기도로 협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같은 사람들은 도무지 목회자에게 협력하지는 않고 목회자 탈만 잡고 목회자가 교회의 일을 하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방해만 합니다.
특히 전도 집회하는 것을 방해하고, 새신자 전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지역주민 초청 전도 집회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인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아주 악마적인 일입니다.
과거 초대교회에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 사도의 복음 전도를 방해했고, 바울의 목회 사역도 방해했던 악마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비록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사례비 문제로 시비를 해도,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무보수로 계속 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바울 사도의 확신에 찬 복음 사역자의 모습입니다. 할렐루야!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1. 이 문장은 이전 성경이 더욱 올바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기회를 찾는 자들>이란 사례비 받을 기회를 노리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란 말씀은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돈 때문에 사역하는 잘못된 자세를 고치고,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역자들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2. <그 자랑하는 일>이란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자기들은 참 사도이므로 사례비를 받는다고 자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3. 그리고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라>란 말씀은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 사도와 같이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되게 하고, 사례비를 목적으로 사역하는 자들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4. 이처럼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바울에 대해서 사례비를 받지 못하는 거짓 사도라고 비방해도, 바울은 낙심해서 물러가지 않고, 오히려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처럼 사례비가 목적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용감한 바울 사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목회자들은 바울처럼 심한 모독과 비방을 당하면 낙심하고 물러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거짓 사도와 도둑놈이라는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오히려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바울 자신과 같이 사례비가 목적이 아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역자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5.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라>란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첫째로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처럼 사례비가 목적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게 하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원래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마음속으로 바울도 자기들처럼 사례비를 받기를 바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도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서 전심으로 일하는 사도로 인정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에게 자신들을 합리화시킬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 받는 것을 계속 사양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6. 바울 사도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둘째 이유는 바로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유대인의 절기를 지켜야 참된 성도로 천국 가게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이 오직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되고, 유대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바울 사도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유대인의 굴레를 벗고 이방인처럼 자기들이 죄인인 줄 알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유대교인을 만들려고 했으나, 바울 사도는 오히려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이방인 성도들처럼 오직 예수님만 믿고 구원받는 참된 신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의 영적 싸움은 한 마디로 기독교와 유대교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초대교회에는 아직 유대교와 기독교가 철저하게 분리되지 않아서, 특히 바울이 기독교를 분명하게 밝히는 귀중한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기독교에 공헌한 공로는 가장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유대인 중심의 사도였고, 바울은 이방인 중심의 사도였습니다.
이것을 미리 아신 예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와 바울의 사명이 달랐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사명이 각각 다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야 하고, 중직자들은 중추적인 총무 역할을 잘해야 하고, 일반 성도들은 실제적으로 실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8-39.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요한계시록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에베소서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대적자들이 모함과 비방을 하더라고, 낙심하지 말고 변함없는 충성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큰 복과 상급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3절.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such men are false apostles, deceitful workers, disguising themselves as apostles of Christ.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οἱ γὰρ τοιοῦτοι ψευδαπόστολοι, ἐργάται δόλιοι,
that for such false apostles, workers deceitful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군들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μετασχηματιζόμενοι εἰς ἀποστόλους Χριστοῦ.
disguising themselves as apostles of Christ
‘자기를 가장하는’(μετασχηματιζόμενοι)은 현재분사로서(disguising themselves) 현재 자기를 가장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 μετασχηματίζω)은 ‘함께’(μετά)라는 단어와 ‘겉모습’(σχῆμα)이란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엘리콧(Ellicott)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다’란 말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의 특성을 이렇게 평가한 것인데, 그 거짓 사도들이 바울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것을 못하게 하기 위한 거침없는 말입니다. ‘거짓 사도들’이란 말은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이란 말에서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속이는 일꾼들’이라는 것은 그들이 바울보다 더 높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라고 가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0장 7절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고 믿는다면’이란 말과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주고 있습니다. ( For such are false apostles—St. Paul’s estimate of the character of his rivals is now given in unsparing language as the reason why he desires to deprive them of any claim which may give them an adventitious superiority to him. In the term “false apostles” we have the explanation of the “apostles extraordinary” of 2Corinthians 11:5. These “crafty workers” were carrying on a system of imposture, trying to assume the character of being, in a higher sense than he was, “Apostles of Christ.” This again throws light both on the words “if any man trusts that he is Christ’s” of 2Corinthians 10:7, and on the “I am of Christ” of 1Corinthians 1:12.)
재미슨과 파우젯과 브라운(Jamieson-Fausset-Brown)은 ‘속이는 일꾼들’이란 말은 그들이 주님을 위한 일꾼들이라고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deceitful workers—pretending to be "workmen" for the Lord, and really seeking their own gain.)
마튜 폴(Matthew Poole)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라’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보낸 자들인 체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리스도가 보낸 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For such are false apostles; that is, persons pretending to be sent of Christ, but were indeed never sent of him.)
‘속이는 일꾼들이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다만 고린도 교인들을 속이고 착취하려는 것이고, 그들의 부름과 권위가 사기란 뜻이고, 그들이 전하는 교리가 속임수라는 것입니다. (Deceitful workers; persons whose work is but to cheat and deceive you; and that both with reference to their call and authority which they pretend to, and also to the doctrine which they bring.)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는 것은 그들이 결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아니고, 단지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모양으로 가장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Transforming themselves into the apostles of Christ; they were never apostles of Christ, only they put themselves into such a shape and form, that they might have more advantage to deceive.)
반스(Barn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사도들이라’는 말은 그들은 사도직을 주장할 권리가 없고, 속이는 자들이고 사도인 체하는 자들이고, 구주 그리스도에게서 사명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는 이 사람들이 속이는 자들이라고 명백히 지적하지는 않았으나, 여기서는 그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기꾼들이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2절(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을 볼 때 이 사람들이 유대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For such are false apostles - They have no claim to the apostolic office. They are deceivers. They pretend to be apostles; but they have no divine commission from the Redeemer. Paul had thus far argued the case without giving them an explicit designation as deceivers. But here he says that people who had conducted thus; who attempted to impose on the people; who had brought another gospel, whatever pretences they might have - and he was not disposed to deny that there was much that was plausible - were really impostors and the enemies of Christ. It is morally certain, from 2 Corinthians 11:22, that these people were Jews;)
‘속이는 일군들’이란 말은 사기꾼들이라는 뜻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사기 치려고 여러 가지 기술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간악하고, 사기를 치고, 위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종교에서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사람들이 일반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보면 신뢰를 가지고 교주들에게 마취되어 신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사도들의 손에 자기 재산을 바치는 것을 보았고, 들었을 것입니다(행 4:34-35). 그래서 그들은 사도인 체 가장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신뢰를 얻어서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재산을 맡기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된 사도들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참된 사도들을 대신해서 고린도 교인들의 신뢰를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잔꾀와 속임수와 그럴듯한 기술을 가진 ‘속이는 일꾼들’이었습니다. (Deceitful workers - Impostors. People who practice various arts to impose on others. They were crafty, and fraudulent, and hypocritical. It is probable that they were people who saw that great advantage might be taken of the new religion; people who saw the power which it had over the people, and who saw the confidence which the new converts were inclined to repose in their teachers; perhaps people who had seen the disciples to the Christian faith commit all their property to the hands of the apostles, or who had heard of their doing it (compare Acts 4:34-35), and who supposed that by pretending to be apostles also they might come in for a share of this confidence, and avail themselves of this disposition to commit their property to their spiritual guides. To succeed, it was needful as far as possible to undermine the influence of the true apostles, and take their place in the confidence of the people. Thence they were "deceitful (δόλιοι dolioi) workers," full of trick, and cunning, and of plausible arts to impose on others.)
‘가장하는 자들이라’는 것은 사도들인 체 가장하고 속이는 자들이라는 뜻인데, 그리스도께서 보낸 자들인 체한다는 것으로서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속이는 자들이고,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자신들을 높이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Transforming themselves - Pretending to be apostles. Hypocritical and deceitful, they yet pretended to have been sent by Christ. This is a direct charge of hypocrisy. They knew they were deceivers; and yet they assumed the high claims of apostles of the Son of God.)
길(Gill)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라’는 말은 그들이 바울을 억압하고 자기들을 높여서,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돈을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었고, 이름만 가졌지 실제는 아니었고, 그리스도에게서 부름을 받았거나 파송받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직의 은혜가 없었고, 사도직을 입증해줄 은사들도 없었고, 그들은 능력이나 권위가 없었고, 참된 기적들로써 자기들의 사도권을 증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셨다는 사도직의 어떤 인증도 없었습니다. (For such are false apostles,.... Such as those he had in view, who sought an occasion to depress him, and exalt themselves, and to get money from the Corinthians; these were "false apostles", or apostles falsely so called; they had the name, but not the thing; they were not called and sent forth by Christ; they had not the grace of apostleship, or gifts qualifying them for that high office; the power and authority they exercised was usurped by them; they could not prove their mission by true and real miracles; nor had they any seals of their apostleship, as those who were sent by Christ had:)
‘속이는 일군들’이라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포도원에 일꾼이라는 명목으로 갔으나 빈둥빈둥 놀기만 하고, 일한 체하면서 안 했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한 척하면서 자기 배만 채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해준다고 하면서 속임수로 해석했고, 간사하게 행동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속임수로 다루었고, 사람을 속이려고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간교한 선생들로서 할 수만 있으면 참된 성도들을 속이려고만 했습니다. (deceitful workers; they went by the name of labourers in Christ's vineyard, when they were loiterers in it; they pretended to work, but did not; and to work for Christ, when they only served themselves, and their own bellies; they took upon them to interpret the Scriptures, but in a very fallacious manner; they walked in craftiness, and handled the word of God deceitfully, and lay in wait to deceive men; and were masters of so much art and cunning, that, if it was possible, they would have deceived the very elect:)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은 참된 사도들처럼 옷을 입고, 동일한 원리인 체 가장하고, 참된 사도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참된 사도들과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체 가장하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transforming themselves into the apostles of Christ: not so much by putting on a like garb or dress, but by pretending to be of the same principles, and to follow their practices, and to pursue the same good ends in their ministrations.)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1. 바울 사도는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거짓 사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왜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거짓 사도들이라고 했을까요?
네. 이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참다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율법주의 이단을 전해서 고린도 교인들을 종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단들이 늘 하는 습관대로 기성 교인들을 포섭해서 자기네 종을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전도해서 설립한 교회이고, 바울이 1년 반 이상을 목회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바울을 거짓 사도요 도둑놈으로 몰아내고, 자기들이 고린도 교회를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인 고린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했는데, 이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은 이미 예수 믿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만 믿어서는 천국에 못 가고, 할례를 받고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야 참다운 구원을 받는다고 유혹을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을 참다운 사도이기 때문에 사례비를 떳떳하게 받는데, 바울은 거짓 사도이기 때문에 사례비를 받지 않고, 응큼하게 몰래 선교헌금을 도둑질해 먹는 도둑놈이라고 모함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대로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야말로 거짓 사도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에도 거짓 사도가 있었으니 오늘날이야 얼마나 거짓된 사람들이 많겠습니까?
저도 군목으로 임직하여 은퇴할 때까지 55년간 목회하면서 거짓 사도와 같은 목사(이*기)와 노회와 총회에서도 활동했던 사이비 목사(이*재)를 경험해보았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과 교회를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즉 순진한 성도들과 순진한 목회자와 교회들은 교회 안에 양과 같이 순수한 목회자만 있는 줄 알지만, 실상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사이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경각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제자 디모데 목사에게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고 경계했습니다(딤후 4:14-15)
주님께서도 양의 탈을 쓰고 있으나 속은 노략질 하는 이리같은 사이비들이 있다는 것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말씀한 대로 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할렐루야!
2. 초대교회에 이단들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율법주의(legalisticism 이단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여, 마치 유교에서 사람을 도덕으로 얽어매고 억압해던 것과 같습니다.
이 율법주의 이단은 갈라디아 지방 교회들과 고린도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들을 송두리째 먹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2-3. 만일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할례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둘째는 신비주의(mysticism) 이단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오직 신비스러운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정 살림이나 자녀 교육시키는 것이나 육신적인 일은 소홀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신비주의에 빠지면, 이상한 광신자가 되어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고, 정상적인 정서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4:2-3.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셋째로 자유주의(liberalism)입니다.
이 ‘자유주의’는 ‘세속주의’(secularism)라고도 하고 ‘방탕주의’(libertinism)라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천국과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육체적 방탕을 해야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해방받고 구원받는다는 이단입니다.
마치 쾌락을 추구하는 헬라철학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에서 문선명 교주가 성적인 간음을 구원의 도리로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어쩌다 사람이 육체적 방탕과 쾌락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성적 방탕이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치는 이단입니다.
베드로후서 2:1-3. 백성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할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를 것이요, 그들은 탐심으로 지어낸 말을 가지고 이득을 삼으리라.
<속이는 일꾼이니>
1. 바울은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속이는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네,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은 가짜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와서 율법주의 거짓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지 않고 오직 돈만 바라는 거짓 일꾼들이요 사기꾼들이었습니다.
즉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두 가지 면에서 속이는 일꾼들이었습니다.
하나는 거짓 복음을 전하는 거짓 일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꿀 병을 심부름하려면 꿀을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설탕을 가져다주고, 참기름을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들기름을 가져다주는 일꾼은 진실한 일꾼이 아니고, 거짓된 일꾼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짓 일꾼들은 물건을 배달하고, 10만 원짜리를 15만 원 받아서 자기가 5만 원은 먹고 주인에게는 10만 원만 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거짓 일군은 거짓된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빼앗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전하고, 사례비조차도 욕심내지 않는 참되고 진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에도 거짓 일꾼들이 있었으니, 오늘날이야 얼마나 거짓 일꾼들이 많겠습니까?
어떤 교회는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백지 수표를 작성하게 해서 목사가 교인들 재산을 수억 원을 건축비로 억지로 빼앗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처럼 억지로 헌금하게 하면 교회가 잘되지 않습니다.
헌금은 성도들이 은혜에 감사해서 자원해서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면, 그런 교회 건축은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건축한 지 몇 년 만에 건물을 경매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인들에게 억지로 헌금을 강요하는 사람은 거짓 일꾼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광야에서나 다윗 시대에도 백성들이 자원해서 기쁨으로 헌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 36:5, 대상 29:17)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 초대교회에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이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이단들이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비주의 이단자들이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기성 교회 목사들을 모두 거짓 목자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성 교인들을 빼가는 신천지 이단이나 안상홍 이단들은 꼭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성도들을 섬기고 사례비조차도 아끼는 선한 목자였지, 성도들 위에 군림하여 성도들을 율법으로 억압하고, 성도들의 재산을 빼앗는 약탈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이단자들은 성도들을 억압하고, 재산을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2.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나 올바른 목회자는 선한 목자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병자들을 무료로 고쳐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시고, 복음을 전해서 천국 구원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을 전해주고, 값없이 병자들을 고쳐주고, 교회를 위해서 사랑으로 헌신 충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일꾼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선한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7-10.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 칭찬받으시고 많은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4절.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 wonder, for even Satan disguises himself as an angel of light.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καὶ οὐ θαῦμα·
and no wonder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αὐτὸς γὰρ ὁ Σατανᾶς μετασχηματίζεται εἰς ἄγγελον φωτός.
himself for the Satan disguises into angel of light
‘가장하나니’(μετασχηματίζ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disguises) 현재 가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 μετασχηματίζω)은 ‘함께’(μετά)라는 단어와 ‘겉모습’(σχῆμα)이란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반스(Barn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인데, 사탄이 빛의 천사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사탄을 섬기고 있는 거짓 사도들도 사탄을 닮아서 자신이 참 사도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And no marvel - And it is not wonderful, 2 Corinthians 11:15. Since Satan himself is capable of appearing to be an angel of light, it is not to be deemed strange that those who are in his service also should resemble him.)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란 사탄은 하나님을 배신한 천사이고, 악하고 악의에 찬 존재로서, 악의 대장인데, 거룩한 천사인 척 가장하여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For Satan himself is transformed ... - That is, he who is an apostate angel; who is malignant and wicked; who is the prince of evil, assumes the appearance of a holy angel.)
‘빛의 천사’란 순수하고 거룩한 천사를 가리키는데, 빛이란 순수하고 거룩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모든 천사들이 있는데, 사탄도 거룩한 천사처럼 가장한다는 뜻입니다. (The phrase "an angel of light," means a pure and holy angel, light being the emblem of purity and holiness. Such are all the angels that dwell in heaven; and the idea is, that Satan assumes such a form as to appear to be such an angel)
길(Gi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이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것은 사탄은 인류의 적인데, 때로는 빛의 천사로 가장해서 나타납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이렇게 나타났고, 광야에서 예수님께도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종종 사탄은 아주 친밀한 척 다가오지만, 결국 파멸시키려는 것뿐입니다. 선하고 정직하고, 기분 좋게 혹은 유익할 것 같은 생각을 주지만, 가장 큰 악에 빠지게 합니다. 진리를 나타내 보이는 것 같지만 악명 높은 거짓과 과오를 범하게 만듭니다. 종교라는 미명 아래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죄에 빠뜨립니다. 사탄은 이런 모양으로 기획하고 유혹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사탄의 계략이고 술책이고 간교한 계략입니다. (now Satan, the enemy of mankind, sometimes appears in the form of one of these; as he did to Eve in the garden, and to Christ in the wilderness; and by such appearances he often imposes on mankind; pretends the greatest friendship, when he designs nothing but ruin; and under a notion of good, either honest, or pleasant, or profitable, draws on into the commission of the greatest evils; and, under a show of truth, introduces the most notorious falsehoods and errors; and, under a pretence of religion, all sorts of idolatry, superstition, and impiety; it is in this way he has succeeded in his enterprises and temptations; these are his wiles, stratagems, and cunning devices.)
1. 거짓 사도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가짜를 진짜로 속이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즉 가짜 참기름, 가짜 꿀, 가짜 보석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짝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짝퉁 가방, 짝퉁 신발, 짝퉁 시계 심지어 짝퉁 계란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 중국에서 이런 가짜 짝퉁을 많이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시장에서 파는 상품을 원산지 표시를 하라고 했습니다.
즉 국산은 비싸고 중국산을 쌉니다.
2. 이처럼 진짜와 가짜는 어디에나 있는데, 심지어 사도도 진짜 사도가 있고 가짜 사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진짜 목사와 가짜 목사는 없겠습니까?
가짜 의사는 돌팔이라고 합니다.
가짜 목사만이 아니라 가짜 장로 가짜 집사 가짜 신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 어떤 대형 교회(동*교회)는 신천지 이단 조사를 했더니, 장로 부인이나 중직자들도 상당수 신천지에 물들었더랍니다.
그래서 중직자 교육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중직자 교육을 따로 하지는 않고, 단지 새벽예배 때 중직자들과 직분자들이 다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히 다른 시간에 교육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3. 초대교회에는 가짜 복음 전도자들이 시골 교회에 다니면서, 숙식을 제공받고 사례비를 받아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의 ‘가짜 순회 전도자들’(the psueudo iternerant preachers)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런 가짜 순회전도자들을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요한이서 1: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4. 지금도 이단들은 천사처럼 꾸미고 성도들을 유혹하고 다닙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증인들은 양복과 정장을 하고, 시골 마을마다 다니면서 이단 전도를 하고 다닙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왕국 회관에서 매번 전도 훈련을 받으면서, 어떻게 친절하게 접근할 것인지를 훈련받습니다.
마치 백화점 점원들이 매일 직원 조회를 하면서, 어떻게 고객들에게 인사하고, 어떻게 웃고 어떻게 말할 것인지를 훈련받는 것과 같습니다.
5. 그런데 실상 우리 정통 교회들은 진짜 복음을 가지고 진짜 구원의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그런 전도 훈련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6. 사탄이 천사로 가정한다는 것은 유대인의 옛 기록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모세의 묵시록 >이란 책에도 보면(17장 1절에), 유대인들이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온 사건을 기록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에덴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해서 타락시키기 전에, 사탄이 천사들 틈에 끼어서 마치 자신이 천사인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천사들 틈에 끼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생애>란 책에 보면( 9:1에), 사탄이 빛의 천사로 화려하게 변장해서 에덴동산의 하와에게 접근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아름다운 꽃뱀의 모습으로 변장해서 하와를 타락시킨 것입니다.
6. 오늘날에도 ‘꽃뱀’이라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남자들에게 접근해서, 남자들을 타락시키고, 돈을 빼앗고,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남자를 타락시킨 꽃뱀은 남자를 협박해서 자꾸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또 돈을 계속 약탈해갑니다.
이런 꽃뱀이 아니더라도, 남자를 유혹해서 자꾸 뜯어먹는 여자를 요즘에 ‘된장녀’라고 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사탄처럼 오늘날 이단이나 불륜 여성들도 천사처럼 가장해서 사람을 유혹하고 타락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지나치게 친절하고, 지나치게 호의를 베푸는 사탄이나 이단이나 꽃뱀을 조심해야 합니다.
7.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양의 탈을 쓰고 약탈하는 이리를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8. 이런 사기꾼들은 말만 가지고는 분별할 수 없고, 그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나무를 보면 잘 모르고, 그 열매로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16-18.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9. 그렇습니다.
사기꾼들은 얼마나 말을 그럴듯하게 아름답게 말하는지 모릅니다.
이전에 보니까, 우리 지역에도 어떤 장사꾼이 멋있는 자가용과 트럭을 준비해서 멋있는 옷을 입은 신사들이 성능이 좋은 스피커 시설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공짜로 물건을 나누어드릴 테니까, 몇 시까지 나오라고 광고를 하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여러 사람이 나오면, 추천을 해서 당첨되었다고 유혹을 하면서, 가짜 물건을 비싸게 팝니다.
이렇게 사기질을 해서 선량한 주부들을 속이고 피해를 끼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선량한 사람들을 거짓말로 유혹해서 재산을 빼앗고, 믿음을 빼앗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기꾼들은 근본적으로 모두 사탄의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린도전서 15:33-34.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그리고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2-13.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뿐만 아니라 기도하여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로 가장하는 사탄에게 속지 마시고, 늘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래서 늘 하나님만 모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5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it is not surprising if his servants also disguise themselves as servants of righteousness, whose end will be according to their deeds.
그러므로 -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οὐ μέγα οὖν,
not great therefore,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εἰ καὶ οἱ διάκονοι αὐτοῦ μετασχηματίζονται ὡς διάκονοι δικαιοσύνης·
if also the servants of him disguise as servants of righteousness
직역하면 ‘그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들로 가장한다고 할지라도’란 뜻입니다.
‘가장하는’(μετασχηματίζονται)은 현재형으로서(disguise) 현재 가장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 μετασχηματίζω)은 ‘함께’(μετά)라는 단어와 ‘겉모습’(σχῆμα)이란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ὧν τὸ τέλος ἔσται κατὰ τὰ ἔργα αὐτῶν.
whose the end will be according to the deeds of them
‘되리라’(ἔσται)는 미래형으로서(will be) 장차 될 것이란 뜻입니다.
엘리콧(Ellicott)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는 말은 사도 바울의 대적자들의 특성을 지적하는 말인데, 그들은 의를 선포하는 자들이라고 하지만, 바울의 교훈과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의인 야고보로 알려진 야고보(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행 15:13)의 권위를 의지하여, 의로운 행위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카시딤의 후예로서 의인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클레멘트의 설교들에 나타난 것 같이 그 학파의 후기에서 보여지는데, 그 가운데서 대부분은 거짓되고 악의적이고, 겉으로 높은 도덕 기준을 과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If his ministers also be transformed as the ministers of righteousness.—The words seem to point to one of the special characteristics of the Apostle’s rivals. They represented themselves as the preachers of a righteousness which was, they asserted, neglected in St. Paul’s teaching. They claimed the authority of one who was known as James the Just, or Righteous, and who had insisted emphatically on the necessity of a righteousness showing itself in act. They presented themselves as a kind of revival of the Chasidim, or righteous ones. (See Note on Acts 9:13.) It may be noted that the latter developments of the same school, as seen in the Clementine Homilies and Recognitions, present, in the midst of much that is both false and malignant, an almost ostentatiously high standard of morality.)
‘그들의 결국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는 말씀은 고린도후서 11장 20절에 기록된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바울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의 법에 근거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Whose end shall be according to their works.—What the works were is stated, or implied, in 2Corinthians 11:20. Hero he is content to rest on the eternal law of God’s government, that what a man sows that shall he also reap.)
길(Gill)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는 것은 이상하고 놀랄 일이 아니라는 뜻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아무도 의심하거나 주저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천사인 악마도 빛의 천사로 위장하기 때문입니다. (Therefore it is no great thing,.... It is no strange and wonderful thing; it may easily be given into; no man need to make any doubt of it, or hesitate concerning it, since the devil himself, who is an angel of darkness, is transformed into an angel of light:)
‘사단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들로 가장한다’는 것은 그들은 의의 일군들로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로 칭의를 얻는다는 복음을 모방하지만, 실제로 자기들의 의를 혼합시켜서, 칭의교리를 완전히 부패시켰습니다. (if his ministers also be transformed as the ministers of righteousness; not that they really are transformed into such ministers, but they appear and look like such; they are not really, but "as the ministers of righteousness"; they put on the form and air of faithful upright ministers of the word, and would be thought to be such; they mimic Gospel preachers, who assert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the righteousness of Christ, though they most miserably corrupt it, and blend it with something of their own; )
그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려고 하면서 눈가림만 하려고 합니다. 거룩과 선행을 좋아하는 체하면서 자기들을 내세우려고 하는데, 이것은 은혜의 교리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and which they endeavour to palliate, and cover from the sight of men; and especially they set up themselves as such, by pretending to be great friends to holiness and good works, which they press with much vehemence, and oppose to the doctrines of grace, with all their might and main; )
그들이 주장하는 행위의 교리는 복음과 그리스도의 교회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고 한 사람의 영혼도 회심하게 하거나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그들이 의의 일꾼들이요, 거룩의 친구들이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자들인 체하지만, 그들은 사탄의 일꾼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행위를 하고, 사탄을 섬기고, 어둠의 왕국인 사탄의 왕국을 선전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and who well knows that the doctrine of works may do much prejudice to the Gospel interest, and churches of Christ, but will never convert nor save one soul: a dreadful character these men have, for though they would pass for ministers of righteousness, friends to holiness, and men zealous of good works, they are no other than ministers of Satan, doing his work, serving his interest, and propagating his kingdom, which is a kingdom of darkness:)
‘그들의 결국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다’는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속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들의 가면을 벗기시고,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시고, 그들의 행위를 공개하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영원한 심판으로 정죄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whose end shall be according to their works;-- though they may deceive themselves and others, they cannot deceive God; he will take off the mask, their hypocrisy shall be detected, their evil works will be laid open, and they will be judged according to them, and condemned for them to everlasting punishment.)
1. <그러므로>란 ‘사탄도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므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사탄의 일꾼이란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고, 의의 일꾼이란 바울 사도를 가리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사탄의 일꾼들은 이단 사역자들을 가리키고, 의의 일꾼들이란 기성교회 사역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대로 오늘날 이단 사역자들도 기성교회 사역자들인 것처럼 가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장에 대한 단적인 예로, 장로교 신학교를 나오지 않는 이단들도 교회 간판을 장로교 간판으로 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장로교가 일반인들에게 가장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옛날이나 오늘날도 사탄의 일꾼들은 의의 일꾼으로 가장합니다.
2. 오히려 사단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들보다 더욱 옷을 잘 입고, 정장을 하면서 전도하고 다닙니다.
이것은 원래 가짜가 진짜 보다 더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색깔이 화려하면 진짜가 아니라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부자는 좀 허술하게 입고 다닙니다.
그러나 가짜 부자는 잘 입고 다닙니다.
뿐만 아니라 진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안 체를 안 하고, 쉽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못 배운 사람이 더욱 안 체를 하고, 어렵게 말합니다.
3. 이처럼 복음은 진짜 쉽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의 율법주의는 복잡합니다.
즉 예수님만 믿어서는 안 되고, 할례를 받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이단은 어렵게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성교회는 전통적으로 믿어온 신앙대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가짜는 요란하고, 진짜는 수수합니다.
<사탄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1. 고린도 교인들은 사탄의 일꾼인 율법주의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이 거창한 추천서를 가지고 오고, 자랑거리들을 줄줄 나열한 것을 보고, 야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추천서도 없고, 외모도 보잘것없어서 시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단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2. 그렇습니다.
무식한 사람이 대단히 유식한 사람으로 가장해도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로 가장해도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있는 실상이 그대로 다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3. 그래서 성경 마태복음 10장 26절에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더라도 장차 심판주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을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과 진리는 승리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변함없는 충성으로 주님을 섬겨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 이단자들은 예수님이 마지막 심판 때 거두어서 불로 태우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41-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2.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단자들을 반드시 처벌하십니다.
과거에 수 많은 이단들이 창궐했지만, 100년이 지나가면 다 없어졌습니다.
초대교회에는 100년에서 200년까지 <영지주의> 이단이 창궐했으나, 100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신비주의 이단>들도 한동안 창궐했으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초에 <시한부 종말론>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나 20년이 못 되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2. 그러므로 오늘날 창궐하는 신천지나 안상홍 이단들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와 교회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의 일군들이 시대마다 교회를 어지럽게 했으나,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더욱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칭찬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