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5:1-23절) 잘못된 사랑의 길 3-183 요즘은 고속도로나 일반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차를 타고 달리기가 용이하지만, 옛날에는 길이 울퉁불퉁해서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웅덩이나 혹은 도로가 꺼진 곳이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달리다가 웅덩이에 처박히기 쉬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길도 조심하지 않으면, 구덩이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물론 사람이 인생길을 가면서 빠지기 쉬운 웅덩이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나쁜 습관의 웅덩이도 있을 수 있고, 죄악의 웅덩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쁜 웅덩이들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하는 것이 바로 잘못된 사랑의 웅덩이입니다. 우리가 보통 길에서 웅덩이를 보면, 거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피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못된 사랑의 웅덩이는 거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스스로 좋아서 빠지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감정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든지, 가장 빨리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감정이 충족될 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감정은 반드시 엄청난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누리려고 하면, 자기 한평생을 바치는 희생을 해야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사랑의 감정은 이런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사랑의 감정만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이고, 엄청난 부정이며, 자기 인생 전체를 타락시키는 죄인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런 잘못된 사랑의 감정이 주는 위험은 어느 연령에서든지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청소년 시기가 되면, 이성(異性)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이때는 다른 어느 것보다 이성적인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가장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청소년기는 아직 이성적인 사랑을 책임지고 할 시기가 아닙니다. 이때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더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소년 시기에 사랑의 감정에 빠져 버리면, 그 인생은 마치 늪에 빠진 마차(馬車)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비단 어렸을 때뿐만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후에도 잘못된 사랑에 빠져서 가정과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모두 다 날려 버리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경은 누구든지 이런 잘못된 욕망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이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주의하지 않는 자는 언제나 정욕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Ⅰ.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교훈 보통 아버지라면, 자식들에게 가르칠 때에 게으르지 말라고 하든지, 아니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공 여부는 지적인 능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지적(知的)인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보실 때,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깨끗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세상에서도 나중에 어떤 사람이 능력은 있지만,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바람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도덕적으로 깨끗하려면, 성공하고 난 후에 깨끗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늦은 것입니다. 5:1-2절)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여기서 아버지가 아직 성인(成人)이 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들은 모든 관심을 다 집중시켜서 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대학입학에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칠 때,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신경을 곤두세워서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근신(謹愼)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연단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기회만 있으면, 나태해지려고 하고, 죄에 대하여 끌려가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네 입술로 지식(知識)을 지키게 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손에서 떨어뜨리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서 놓은 순간,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 끌려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통‘입술’이라고 하는 것은 자녀들이 어떤 것을 계속 암송(暗誦)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라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배워서 자기 자신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이 중단된다면, 그때부터는 육체적인 정욕이 파고들어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본능(本能)이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나이의 구별 없이 유혹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3절)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우선 일차적으로‘음녀(淫女)’라고 할 때,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 남자나 헤프게 사랑하는 정조(貞操)관념이 없는 여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특히 가나안 여성들은 이스라엘 여성들에 비해서 거의정조 개념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종에게 이삭이 결혼할 때, 절대로 가나안 여자 중에서 아내를 얻어서는 안 된다고 맹세를 하게 했습니다. 또한 여기서 음녀(淫女)를 직업적으로 돈을 받고. 음란(淫亂)한 일을 하는 여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이 일차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사랑에 따르는 엄청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사랑만 나누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음녀의 부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랑의 책임은 느끼지 않고, 사랑의 감정만 느낄 때, 얼마나 서로 달콤한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이성에 대하여 사랑의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남자나 여자나 이성을 육체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이성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거나, 특히 자기를 좋아해주면, 너무나 기분이 좋고,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음녀가 입술로 꿀을 떨어뜨린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품행(品行)이 좋지 못한 이성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관심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남녀 간의 사랑에는 어마어마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데 전혀 그런 사랑의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사랑의 강정만 나누려고 하면, 음녀가 되고, 바람둥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엄청난 죄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면‘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음녀는 너무나 말을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치 목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전혀 목이 막히지도 않고, 너무나도 자신 있게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사랑의 감정만 나누자는 것이고, 절대로 거기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이성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너무나 엄청난 사랑의 감정과 행복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사랑의 행복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 전 인생을 상대방에게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책임을 아는 사람은 책임질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입술에 꿀이 발린 것처럼, 또 목구멍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아무에게나 사랑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식에게 인생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성간의 사랑의 책임성인 것입니다. 사랑의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랑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감미로우며,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과 상대방을 파멸로 몰아넣는 죄인 것입니다. 4-5절)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사람이 이성간에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에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마치 그 행복이 영원할 것 같지만, 사랑에는 반드시 엄청난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즉 사랑을 나눈 여성은 남자에게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에게 그런 것을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에 그때부터 사랑은 쑥처럼 쓴 고통을 주기 시작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사랑이 달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랑은 너무나도 괴로운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사랑의 감정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일체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랑은 그 사랑의 정신과 영혼을 마치 양날 가진 면도칼이 되어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하지만, 가슴은 아프고, 피가 나게 되는데, 나중에는 가슴 전체가 칼로 난도질을 당해서 피투성이가 되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 발은 사지(死地)로 내려가고, 음부(陰府)로 가게 되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전혀 용납이 되지 않으니까 사람들을 피해서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고, 축복을 해주어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랑은 결국 자신들의 영혼을 절망으로 몰아내어서 결국 비참하게 죽음으로 끝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렇게 잘못된 사랑의 결과까지 보게 해서 잘못된 사랑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대개 세상에서는 사랑의 감정은 현대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사랑의 도피를 하라는 식으로 충동질을 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잘못된 사랑의 결과는 결국 자기 가슴이 난도질당하고, 나중에는 죽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6절)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한번 잘못된 사랑에 빠져버리면, 특히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이것은 완전히 늪에 빠지는 것과 같아서 거기서 빠져 나오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이성간의 사랑을 통해서 무한한 행복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성간의 사랑은 어마어마한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에게 젊었을 때, 이성간의 사랑이 너무나도 끌리고, 그 이성이 너무나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지만, 자식에게 아직 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직 사랑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육체적인 쾌락이 너무나도 기분을 좋게 하지만, 젊었을 때,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행복이란 우리가 바른길을 갈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눈앞에 있는 육채적인 쾌락을 채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될 때,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일단 사람이 정욕에 빠지면, 늪에 빠진 것과 같아서 절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육체적인 정욕에 너무나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더 배우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것을 성경 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단코 육체적인 쾌락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해가면서 얼마든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또 순간순간 행복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육체적인 욕망을 아름답게 즐기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피가 끓고 있고, 이성간의 사랑에 거의 미치다시피 할 때인데, 어떻게 자신의 열정을 통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육체의 정욕보다 더 강한 성령의 불을 받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강한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할 때, 세상의 정욕을 이기고, 청년의 시기를 아름답게 보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시기는 청년기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기는 육체의 열정이 들끓고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 청년들이 미치지 않거나,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극도로 들끓는 시대입니다. 이때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운 청년들은 이 청년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릇으로 준비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학벌이나, 좋은 성적을 얻는 것보다, 대성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뜨거운 성령을 체험해서 청년의 시기를 큰 죄를 짓지 않고, 잘 넘기는 것을 큰 성공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Ⅱ.잘못된 사랑의 결과 우리가 세상의 유명한 문학책들을 읽어보면, 거의 대개가 남녀 간의 잘못된 사랑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바른 사랑을 할 때 보다는 책임지지 않는 잘못된 사랑을 할 때, 더 사랑의 감정이 뜨거워지고, 더 행복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가지는 너무나도 이상한 아이러니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서로 책임을 지는 신실한 사랑을 통해서 더 행복을 느끼고 더 황홀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느껴야 정상인데, 바른 사랑의 불은 금방 시시해져 버리고,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더욱 집착을 하고, 거기에 더 큰 열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사랑의 감정이 타락(墮落)했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7-8절)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사람이 잘못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남녀 사이에서 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데, 한쪽만 일방적으로 사랑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랑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끌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의를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거듭거듭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발 아버지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들을 이런 사랑에 얼마든지 끌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외모(外貌)가 매력적이고, 마음이 서로 맞으면,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개인적으로 만나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이때,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멀리하고, 그 집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은 언제나 오라고 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어린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거의 대개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남녀가 어울려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같이 할 때,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오늘날 현대인들은 남녀의 사랑에서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마치 이 사랑의 감정이 진실한 것처럼 스스로 속기 쉽습니다. 더구나 세상의 문화나 풍조 자체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잘못된 사랑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유일지 몰라도 이것이 죄가 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을 때에는 엄청난 사회적인 비난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사랑에 빠진 것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존경이나 신뢰나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이 한순간에 박탈당하게 됩니다. 9-10절)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종교인이나 공직을 가진 자들이 잘못된 사랑에 빠진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한 순간에 그의 사회적인 명성과 신뢰와 직책까지 박탈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네 존영(尊詠)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감정, 책임지지 않는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존경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옛날에는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정(不淨)을 안 남편이 사람을 사서 부정(不淨)의 상대를 죽여 버리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부정(不淨)을 저질렀기 때문에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정(不淨)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금까지 벌어 모았던 돈을 다 주어야 겨우 자기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성추행(醜行)을 주의해야 하는데, 즉 여성들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나, 행동 심지어는 눈빛도 고발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이성은 쳐다보지도 말고, 일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성적으로 방탕(放蕩)한 많은 말이나, 행동들이 술을 마신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잘못된 사랑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예방을 하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이런 길을 피하게 됩니다. 사람이 잘못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미끼의 유혹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들은 아마도 낚싯줄에 매달린 지렁이가 그렇게 맛있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낚싯줄에 매달린 지렁이는 아예 멀리하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꾀가 많은 물고기는 지렁이 주위를 돌면서 한 번씩 입으로 건드려보다가 어느 순간 유혹을 참지 못하고, 입에 삼켜버리는데, 그때 낚싯바늘이 입에 걸리는 순간부터는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죄가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사랑의 감정은 너무 진실하기 때문에 절대로 상대방이나, 자신이 배신하지 않고, 비밀을 지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죄를 짓고 나면, 사탄은 사정없이 정죄해서 그 사람을 낚싯줄에 매어 질질 끌고 다니는데, 그러면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은 마귀 앞에서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합니다.
11-14절)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 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열려 하노라” 사람이 잘못된 사랑에 빠질 때에는 이 사랑이 너무나도 진실한 것 같고, 다른 것은 모두 다 틀린 것 같았는데,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보니까 이 사랑도 역시 엉터리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나중에 보니까 오히려 더 신경질적이고, 성질도 나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는데, 한순간 눈이 뒤집히면서 미쳐서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으면서 그 사랑만 붙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까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사랑에 미쳐서 세월만 허비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픔을 주었고, 또 자기 인생은 인생대로 망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 사람은 모든 악(惡)을 다 저지르지는 않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어떤 글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잘못된 사랑에 빠져서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여자와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니까 돌아와서 집까지 팔아서 다시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그이는 결국 여자와도 헤어지고, 자기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해서 자살(自殺)을 하려고 강으로 갔는데, 그때 수요일 저녁이어서 저녁 예배 종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내가 자살을 하더라도 설교나 한번 듣고 자살하자’고 생각해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설교는 완전히 이 사람을 위한 설교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하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설교에 은혜를 받고,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이는 그 교회에서 죽을 때까지 충성을 하다가 아름답게 죽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책임을 지는 사랑에 빠져서 미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잘못된 사랑에 빠지면, 인생 전체를 날릴 수 있고, 나중에는 신앙도 버리고, 지옥(地獄)에 가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어느 순간이든 정신을 차리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이 해결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Ⅲ.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행복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만족해야 하고, 이 사랑을 보물(寶物)처럼 지켜야합니다. 15절)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옛날에 자기 집에 우물이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축복(祝福)이었습니다. 특히 공통우물이 아닌, 자기 집 우물은 우물물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며, 언제든지 마실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물과 샘은 우리가 책임을 지고, 사랑하는 남녀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평생에 단 한 사람의 배우자를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이 배우자가 나의 우물이고, 나의 샘물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을 보면, 언제나 성실하게 돈을 벌어다 주고, 자신을 사랑해주니까 최고로 좋은 우물이고, 샘입니다. 그렇게 벌어다 주는 시원한 물로 온 식구들이 맛있게 물을 마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은 마르지 않고, 전혀 불순물이 없습니다. 특히 남편에게 자기 아내는 자기와 결혼해주고, 아이를 낳아주며, 도망가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면서 자신의 모든 부족한 것을 용납해주니까 너무나도 고마운 우물물이고, 샘물인 것입니다. 만약 부인(婦人)이 없으면, 남편이 어디에 가서 행복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즉 집을 지켜주는 부인이 없으면, 남편은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아서 금방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부인이 집을 나가서 혼자 지내야 하는 남자일 것입니다. 15절)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어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남자들이 외도(外道)를 하면, 여성들도 복수심으로 남편처럼 집 밖으로 나가서 외도를 하게 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아마 외국 사람들의 경우에 남편이 외도를 하거나, 혹은 너무나 일에 바빠서 외박(外泊)이 잦을 때, 부인들은 남편과 이혼하고, 자기를 사랑해줄 수 있는 남편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남편이나, 부인이 외도(外道)를 할 때, 그 가정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도(外道)를 한다는 자체가 가정을 깨는 것이고, 거룩한 약속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욕망에 눈이 멀어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될 때, 그는 결코 행복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이 아내나,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물론 이 말을 문자적으로 보면, 네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 행복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행복을 정당한 대상에서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배필(配匹)안에 무한한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결혼할 때에는 잠시 사랑의 열정을 느끼다가, 그 후에는 바로 돈을 벌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느라고 자기 아내가 얼마나 아름답고, 자기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리면, 서로에 대하여 신선한 맛을 느끼지 못하고, 열정은 식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잘못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내나, 남편은 아직 캐내지 않은 어마어마한 보물(寶物)이 들어 있는 금광(金鑛)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부가 같이 듣지 않으면, 이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서로가 변하게 되고, 그 안에 있는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18-19절)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연모하라” 여기에 보면, 자기 부인(婦人)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는 샘이고, 다른 하나는 암사슴과 암노루 같은 짐승입니다. 생물을 자꾸 퍼내면, 샘물은 더 깨끗해지고, 더 시원해지며, 수량도 더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샘은 사람이 샘을 방치해 버리면, 거기에 낙엽이 썩게 되고, 물도 깨끗지 않고, 점점 말라버리게 됩니다. 여성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나는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주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이 되면, 부인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하여 아주 높은 자존감(慈尊感)을 가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가정 전체의 수준이 올라가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존귀하게 대해 준 것이 자식과 자기 자신에게 열 배 이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학대를 하면, 그때부터는 아내가 바가지를 긁고,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어, 그 손해를 그대로 되 돌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면적(內面的)으로 성숙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초원에는 많은 짐승들이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도 있고, 하마나 악어같이 무서운 짐승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초원을 가장 평온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암사슴이나, 암노루입니다. 초원에서 암사슴이나 암노루가 풀을 뜯어먹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고, 평온한 모습입니다.
거기에다가 암사슴이나 암노루는 사납지 않고, 또 겁이 많습니다. 그리고 암사슴과 암노루 옆에는 너무나도 예쁜 새끼들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성경은 자기가 선택해서 결혼한 여성으로 만족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랑을 언제나 연모(戀慕)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연모(戀慕)의 정(情)이라고 하는 것은 젊었을 때나 하는 것이지, 늙어가면서 과연 연모(戀慕)하는 것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특히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에 서로 연애(戀愛)할 때에는 연모(戀慕)의 정(情)을 느끼고, 사랑하지만, 결혼하고 난 후에는 별로 재미없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제 자기 아내나, 남편에게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불륜(不倫)을 통해서라도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남편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는데. 다른 젊은 여성은 자기 자신만 보살피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젊은 여성은 자기만 생각하고 지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주부가 아이들이 크면서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부부 관계가 멀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糧食)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은 부부관계는 결코 싱싱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사랑과 그 힘이 백 배 이상으로 커지게 되는데, 이것은 젊었을 때의 사랑보다 훨씬 더 이해심이 깊은 풍성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부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에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20절)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자기 아내와 결혼한 후에 이제는 더 이상 옛날같이 서로의 사랑이 뜨겁지 않다고 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거꾸로 생각해보면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때, 자기가 행복한 법인데, 가장 먼저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은 자기 아내인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가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주도권을 남자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면, 그 복(福)이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21절)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인생을 여러 번 사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 살게 됩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 탈선(脫線)하지 않고, 사랑의 축복(祝福)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 미혼(未婚)인 분이나, 혼자 사시는 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보고 계시고, 우리 자신도 우리 인생을 돌아볼 때가 있는데, 명예나, 돈이나, 권력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한 번의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22-23절)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히게 되느니라.”
사람이 자기 욕심을 위해서 사는 것은 결국 죄(罪)의 줄에 매이는 것입니다. 결국 욕심의 미끼 뒤에 붙어 있는 죄(罪)라고 하는 바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죄(罪)의 낚싯바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욕심과 야망으로 사는 사람은 언젠가 이 바늘에 걸려서 결국 망(亡)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너무나도 미련한 것이 많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즉 정신이 혼미(昏迷)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계속 맴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우리는 오늘까지 무사히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가 죄(罪)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셔서 이 죄악된 세상을 무사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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