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 주일 예배 감사를 회복하는 신앙생활 / 눅17:11-19
오늘의 교회들이 회복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만 가장 우선적인 것 하나가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잃어버려지는 세상입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점점 희미 해져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감사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먼저, 현대가 경쟁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을 이겨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보다는 경쟁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둘째는, 과학과 문명의 발달이 감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감사를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셋째는,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너무나 풍성하고 축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잘살고 풍성한 사람과 비교하니까 감사가 없어지고 원망이 생겨납니다. 넷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기에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기에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점점 약해져 간다는 말이요 기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말이라고 할 때 성도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고침 받는 말씀입니다. 10명의 나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우리를 고쳐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병환자들은 그 말씀을 믿고 가다가 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10명의 나병환자들 가운데 한 명,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주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면서 나머지 9명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을 주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워하시고 서운해하십니다. 그들의 감사가 회복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시고 원하시고 계십니다.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그 10명의 나환자가운데 속해 있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보였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10명중의 한 명만이 감사하였다는 것은 우리들 가운데도 감사보다는 그렇지 못한 삶이 많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받은 모든 나병환자들이 감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혜 받은 모든 성도들이 감사를 회복하며 감사함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에 말씀하고 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내가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특징은 잘 되면 자신의 과거 모습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었나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할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환자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벤허라고 하는 영화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그 삶은 비참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비참함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문둥병자들의 삶이었습니다. 이들의 삶보다 더 비참한 삶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참한 삶속에서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자신의 비참했던 삶을 기억할 때 우리는 평생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이 평생 동안 감사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삼하 7장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데, 내 집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하셨습니까? *다윗은 자신이 이러한 축복을 받을만한 존재가 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가문의 8형제 중에 막내 였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 속에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늘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핍박했고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심지어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기까지 했던 죄인 중의 괴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며 귀한 사도로 세워주셨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밖에 살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도 못했던 영적인 감각이 전혀 없었던 영적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이 사랑해주셔서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을 생각할 때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두 번째로, 오늘의 존재를 누가 허락해주셨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나병환자들이 고침을 받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해 주셨다. 하나님이 도와주셨다.’ 이 믿음을 굳게 붙잡을 때 잃어버린 감사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해주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님이 아주 맛있게 배추 국을 잡수셨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으셨던 임금님은 요리사를 불러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자 요리사는 그 공을 싱싱한 배추를 구해온 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배추를 구해온 사람은 그 배추를 농사지은 사람에게 그 공을 돌렸습니다. 임금님 앞에 선 농부는 내가 농사를 잘 짓게 햇빛과 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여기에는 너무나 귀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만복의 근원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요리하는 사람의 솜씨가 있었고 싱싱하고 맛있는 배추를 구해온 사람의 수고도 있었습니다. 배추를 재배한 농부의 정성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이야기입니다. 농부의 말대로 하나님이 햇빛과 비를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배추가 생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심는다고 다 자라는 것이 아니고 물을 준다고 다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고한다고 언제나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닙니다. 자라나고 열매를 맺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사랑과 도움과 정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결정적인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병을 치료받았습니까? 의사를 잘 만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잘 되었습니까? 사람을 잘 만난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승진하였습니까? 본인도 열심히 노력하셨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미래의 행복을 원하신다면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구원의 축복과 삶의 축복을 허락해주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 우선의 삶을 살아가는 감사비결의 삶을 배울 수 있기 소망합니다. 감사를 회복하는 우리 사랑하는 샘물교회 권속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