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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3일, 주현 후 제3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예배의 부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2년 1월 23일, 주현 후 제3주 주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주현 후 제3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경배찬송(일어서서):
찬송가 18장 (성도들아 찬양하자)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교독(일어서서):
시편 19:1~14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대표기도: 자넷 스튜어트(Janet Stuart)
사랑하는 주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 모든 연약함을 주님의 강함으로,
제 실패를 주님의 신실함으로,
제 죄악을 주님의 온전함으로,
제 고독을 주님의 긍휼로,
제 작은 고통들을
주님의 십자가 고통으로 바꾸어 주소서.
주님이 저를 정결케 해주시고, 강하게 해주시고,
저를 숨겨 주셔서,
모든 면에서 제 삶이 주님의 삶을 닮게 하소서.
비굴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말씀: 누가복음 4:14~21 (성경)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 특별찬양: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을 찬송합니다.
*. 말씀선포: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주현 후 제3주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그리스도로서의 삶의 자리,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누가복음은 회당에서 이사야 61장1~2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그 시작을 알립니다. 메시야 시대가 열림으로, 마침내 이사야서에 쓰여진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오늘 너희(우리) 귀에 응하였다고 전해줍니다.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2. 이사야 61:1~2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에서 인용하신 부분입니다. 18~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부분은 이사야 61장 1~2a의 말씀인데, 이사야서로 읽어봅니다. 이사야 61장 1~2절까지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1~2a까지 인용하셨습니다 만은)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말씀의 핵심은 성령이 임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내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사야가 공식적으로 위임을 받는 대목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후대에 이르러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누가복음에서 자신의 메시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인용해서 읽은 것입니다.
기름을 붓다(마솨흐)에서 '메시야(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단어가 유래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삼상 16:13)이나,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 등은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삼상 16:1-5).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의미하기 위해 표현된 것입니다.
가난한 자(아나윔)는 ‘상처나 억압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자’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낙담 중에 있는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바,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이 ‘가난한 자’는 총괄적으로 가난한 자 곧,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마5:3).
그런 의미에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함은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서 자유 그 자체, 갇힌 자에게 놓임을 얻는다는 것도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 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지만 모든 억압에서 해방, 혹은 영적으로 맹인이 된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절에는 이사야서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영의 눈을 뜬다는 의미를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는,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입니다. 이것은 나팔이 울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禧年)을 의미합니다(레 25:9,10). 메시야의 소명, 곧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구약의 희년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이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처럼, 희년에는 온갖 구속에서의 해방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6:2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 이사야에 표현된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라는 뜻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읽으실 때 이 구절을 생략하신 데에는 (혹은 누가가 이 구절을 뺀 것은), 온 세상을 다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47입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약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내게(이사야/메시야) 기름을 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이 날은 하나님의 은혜의 해이며 (보복의 날)이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해(혹은 보복의 날)는 희년에 근거해서 나온 개념입니다. 희년에 대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3. 은혜의 해, 희년
세상에는 공(公)적인 것과 사(私)적인 것이 있습니다. 사적인 것은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고, 공적인 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공(公)적인 영역에 두셨는데, 그것은 사람과 땅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땅과 사람조차도 사적인 영역에 두어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비록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사람에 대한 사람의 소유, 즉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적인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땅이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사람에게 주신 것이 희년법(禧年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6일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쉬셨습니다. 이 날을 안식일(安息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安息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6번째 지나고 맞이하는 7번째 안식년의 마지막 해인 49년째 해(혹은 이듬해인 50번째 해)를 희년(禧年)이라고 합니다. [*. 49년째 해인지 혹은 50번째 해인지는 학자의 주장에 따라 다릅니다.] 희년을 히브리어로는 요벨(yobel, יובל)이라고 하는데 ‘숫양의 뿔’이라는 뜻입니다. 요벨의 음을 따라 영어로는 쥬빌리 (jubilee)라고 합니다. (우리말 희년은 영어 쥬빌리를 번역한 것입니다) 희년에는 요벨 나팔(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길게 불면서 희년을 선포하게 됩니다.
[*. 희년 주기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가 있는데, 7번의 안식년 다음 해를 희년으로 보는 50년설이 있고, 7번째 안식년을 대-안식년(super-sabbath)보는 49년설이 있습니다.
50년 주기설은 레위기 25:10~11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에 근거하며 전통적으로 지지받는 견해입니다.
49년 주기설은 레위기 25:8~9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부차적으로 2년 연속되는 땅 휴경이 가져오게 될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는 학자들이 지지합니다.]
희년은 유대력으로 희년을 맞이하는 해의 일곱 번째 달의 열 번째 되는 7월 10일 속죄일에 선포되는데, 희년이 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분배 받은 땅을 기업(基業, Inheritance)이라고 하여 영구히 팔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땅의 매매는 희년까지 한시적으로만 이루어졌고, 희년 전이라도 매도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매도자, 혹은 매도자의 친족이 희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정당한 값을 치르고 땅 무르기가 허용되었습니다.
땅뿐만 아니라 사람도 자유를 얻습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유대인) 노예들은 해방됩니다. 레위기 25:39~41입니다.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 Ref. 레위기 25:47~54을 읽어봅니다.
47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 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
50 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
51 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량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
52 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량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
53 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꾼과 같이 여기고 네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54 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사람이 자유하다는 것에는 부채를 면제해 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식년에 빚을 면제해 주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역시 빚이 면제 됩니다. 신명기 15:1~3입니다.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또한 유대인끼리는 이자 없이 꾸어 주어야 했습니다. 레위기 25:35~37입니다.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요약하면, 희년이 되면 구속된 땅도, 사람도 해방시켜 자유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희년의 선포는 이스라엘력으로 7월 10일, 곧 하나님께서 속죄해주시는 속죄일에 선포됩니다. 삼재(三才), 하늘과 땅과 사람의 지평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땅도 자유하고, 사람도 자유하고, 그리고 하늘로부터 죄사함을 받아 자유함을 얻는 그야말로 은혜의 해가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희년법은 유대 역사 속에서 지켜지지 않은 법입니다. 희년은 결국 미래의 소망이 되었고, 종말론적 개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사야가 선포한 여호와의 은혜의 해는 이렇게 희년의 의미가 종말론적 미래의 소망으로 바뀌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4.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해, 희년이 ‘오늘 너희(우리) 귀에 응하였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은혜, 그렇게 보상받을 것이라고 미래로 돌려 말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한데, 위로도 조금은 될 듯한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응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응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바로 앞서 사단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리스도로서의 자격 시험을 이겨냅니다. 그리스도 메시야 시대를 활짝 열어 제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을 이기는 말씀, 거기에 ‘오늘에 응한다는’ 의미를 찾는 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로서의 새 시대에 응하는 메시지가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응한다면, 이 세 가지 말씀에 적합한 삶을 살고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ref. 누가복음 4:1~13입니다.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4-1.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귀에게 절을 안해도, 그래서 세상의 모든 권위와 영광 등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만 경배하며 섬기며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오늘 응합니다.
사람이 잘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삶의 루틴이(routine, 삶의 궤적)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삶의 동선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삶의 동선이 뚜렷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심지어 산책하는 칸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삶의 동선을 생각하시면서 안식일, 안식년 혹은 희년을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6을 일하면 1은 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도 쉬셨다고 했습니다. 이 의미를 우리 삶의 동선(動線)에 넣으면 좋겠습니다. 유대교의 안식일 대신에 우리 개신교는 주님 부활하신 날을 주일 날이라고 부르며 기념합니다. 어쨌든 6일 일했으면 하루는 쉬는 날로 삼는 것입니다. 삶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예배하고 찬양하는 시간으로 말입니다.
# 페르시아에서 생산되는 양탄자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명품 중 하나입니다. 어떤 것은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안고 천문학적인 가격이 매겨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예술과 문화의 결정체에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흠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페르시아 양탄자에서 발견되는 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양탄자를 제작하던 장인이 일부러 남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결점 없는 양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그들의 장인 정신이자 철학이 담긴 흠입니다. 그리고 이를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 합니다.
#. 제주도의 돌담은 여간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돌담을 잘 살펴보면 돌과 돌 사이를 메우지 않았는데, 그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빈 틈은 그냥 빈 틈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심리학적으로는 실수 효과(Pratfall Effect)라고 하지만 신앙적(신학적)으로 보면 완벽하지 못함으로 비로소 완벽한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고, 완벽을 가장한 마귀, 사단에게 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로서의 본연의 모습이 됩니다.
[*. 실수 효과(Pratfall Effect): 애론슨이라는 심리학자가 사람들은 너무 완벽한 사람보다 약간 빈틈이 있는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떤 퀴즈게임 방송 프로그램의 실황이라고 소개하면서 녹음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출연자 중 한 사람은 모든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풀었으며 다른 사람은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게임 전 과정과 게임이 끝난 후에 출연자들과 진행자가 주고받는 대담 내용을 청취했는데 두 가지 조건의 내용을 듣게 된다. 하나는 출연자들이 대담 과정에서 자신의 옷에 커피를 엎지르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자기가 평소 이런 저런 실수를 저지른다는 등 개인적인 실수담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다른 조건의 출연자들은 대담 중에 어떤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자신의 개인적 결점이나 허점을 털어 놓지도 않았다. 녹음 내용을 듣고 난 사람들의 호감도 평가 결과, 말할 것도 없이 문제를 잘 풀면서도 대화 도중 빈틈을 보이고 개인적인 실수담을 털어놓은 출연자가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애론슨 박사는 이처럼 허점이나 실수가 대인 매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실수 효과(Pratfall Effect)라고 불렀다.
… … … 청산유수 같이 유창한 연설을 끝낸 한 초선의원이 최고의 웅변가인 처칠에게 의기양양하게 다가가 연설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했습니다. 칭찬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 말이 너무 매끄러우면 되려 신뢰감이 없어지고 자칫 경박스럽다는 인상까지 줄 수 있기 때문이네.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글에서]
4-2.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사람에게는 오히려 다른 어떤 소중한 것이 있음을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꼭 집어서 이야기 해줍니다 만은) 알아챈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오늘 응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떡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떡으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 ‘호더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장 강박증’이라고도 불리는 ‘호더스 증후군’은 한 번 물건을 가지게 되면 그 물건을 버리는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온 집안에 온갖 것들을 쌓아 두게 되는데 모든 것을 중요 하다고 여겨서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하는 현상을 ‘호더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런 물건뿐일까요? 지난날의 나쁜 기억들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경우들! 이런 마음들도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온 집안의 잡동사니 물건들로 가득한 호더스 증후군처럼 별별 것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지 않겠습니까?]
혹시 지금 힘든 일로 고민되신다면 아래 이야기 하나 기억해 두시면 좋을듯합니다.
#. 고마운 돌: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강이 하나 있답니다. 수심은 그리 깊지 않지만 물살이 무척이나 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널 때 무거운 돌을 하나씩 짊어진답니다. 거친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돌을 짊어지고 건너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것은 거친 강물에 휩쓸리지 않게 해줄 고마운 돌인지도 모릅니다.
4-3.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사람이, 그래서 서로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함께 오손도손 형제, 자매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오늘 임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섬김을 받아서도 안됩니다.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땅을 공적(公的) 개념으로 두셨습니다. 만물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호흡(영)을 함께 하는 특별한 존재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칸트는 이러한 뜻에서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합니다. 싸르트르는 ‘대자적 존재(Being for itself)’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은 어떤 것보다도 앞서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 반대 개념은 즉자적 존재 (Being in itself)입니다. 비록 인공지능이나 로봇같이 어떤 점에서 뛰어나다 해도 어떤 것에 종속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손주, 손녀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 모든 생물은 태어났을 때 터치가 없으면 죽는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은 어미가 핥아 주어야 배변을 하고 숨을 쉽니다. 아기들도 터치를 하지 않으면 원인 모르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갑니다. 인간의 손길에는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평소에 많이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손을 잡아주십시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위로가 됩니다. 어깨와 팔다리를 자주 주물러주십시오.
5. 나가는 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를 읽으시며 메시야 시대를 엽니다. 구약의 희년이 종말론적 미래로 자리잡은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임했다는 메시지입니다. 복음, 이 아름다운 소식이 오늘, 지금 우리의 귀에도 응합니다.
이 귀한 복음이 미래가 아닌, 지금, 오늘 응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낸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위와 영광이 없더라도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사람은 서로 함께하며 살아가는 목적적, 대자적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배가 조금 고프더라도 삶은 떡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리스도(인)의 말씀이 우리의 말씀으로, 삶으로 되어야 합니다. 비로소 우리에게도 메시야, 그리스도의 시대가 열리고, 복음이 오늘 우리의 귀에 응하게 됩니다.
주님의 나라 잘 가꾸어 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
찬송가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봉헌찬송(일어서서):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봉헌합니다. (찬송가)
*. 봉헌기도(일어서서):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비-대면예배로 드릴 경우,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혹은 신협 131-019-734759 (주안대신교회)로 송금합니다.]
*. 교회소식:
*. 찬송(일어서서):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축도 혹은 주기도문(일어서서):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