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어스름한 시간 선암사를 둘러싼 야생 녹차밭을 산책하거나 부도밭에 앉아 느릿느릿, 빈둥빈둥 가는 시간을 느끼기
둘째, 출입금지 구역을 드나들며 숨은 그림 찾기 하는 특권
셋째, 선암사 고매에 취함. 무려 나이가 700살이나 된 늙은 매화가 향이 가득한 밤은 아찔하다
넷째, 선암사에 없는 세가지를 둘러보며, 야단법석을 경험하는 것. 선암사에는 사천왕상과 대웅전의 협시보살, 정면에 어간문이 없다. 어간문이란 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으로(보통 다른 사찰에서는 스님들만 출입한다)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째, 진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며칠 전 친구가 벚꽃 하나 슬쩍 꺽어 자건거 뒤에 싣고는 와서 내밀며 <살아 있는 동안 꽃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올까> 란다. 수양버들 가지처럼 흐드러지게 늘어진다 하여 수양벚꽃이라한다. 단단한 줄기를 병장기로 이용할 수 있어 절집 안에 많이 심었다. 봄마다 저토록 소복한 꽃을 피워내는데 진이 빠지지도 않았나보다. 꽃송이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선암사의 아침, 수양벚꽃 흩날리는 꽃그늘아래 스님께서 바라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람에게 매혹 당했던 것은 까마득하게 오래 전의 일인데, 여전히 꽃은 아름답다.
새벽 예불에 참여한 뒤 불조전 천정의 물고기 조각도 찾아보고, 원통전 문의 계수나무와 토끼도 찾아보며 아직 피지 않은 영산홍 마른 가지 앞에 있는데, 수양벚꽃 아래서 스님이 바라춤을 추고 있다고 빨랑 와서 구경하라고 친구가 전화를 했다. 대웅전 앞에 괴불이 걸리더니, 오늘 선암사에 제대로 야단법석이 펼쳐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