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분(indignation)
함석헌
금년에는 이상기온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약해진 증거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한다면, 행복만을 목적으로 하고 사는 증거입니다. 옛 사람은 아니 그랬습니다. 어려움은 처음부터 있는 것으로 알고 거기 견디어 나가는 것이 사람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고진감래(苦盡甘來)로, 행복도 맛보았습니다. 오늘의 인간은 행복전문가입니다. 그러니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재주를 부리는 데서 정신은 약해졌고 또 입에 늘 물고 있으니, 단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지혜는 자연과 결러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배우는 데 있습니다. 옛 사람은 밖에 보다 안을 더 찾았습니다. 자연에 폭풍이 있으면 그것을 보인 내 속의 폭풍을 가라앉히는 정신의 힘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을 정복하고 부려먹고 캐먹다 못 해 바닥이 거의 나게 됐으니 인간은 어디로 가려는 것입니까?
씨알 여러분, 씨알은 낙심 아니 하는 것입니다. 잠잠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잠잠하는 가운데 속의 힘이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힘이 일어나면 막을 놈 없습니다.
나는 돌아간 스코필드 박사의 말을 잊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심장에 활촉처럼 박혀 있습니다. 거기서 새빨간 피가 늘 졸졸 흐릅니다. 그것은 나의 양심의 한 가는 줄입니다.
아시는대로 그는 이 나라에 난 사람이 아니지만, 이 나라를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3.1운동 때에 우리를 돕기 위해 여러 가지로 활동했던 것은 세상이 다 압니다. 그러나 그 말년에는 일이 뜻같지 않은 것을 보고 카나다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는 갔지만 아마 이 나라를 차마 잊을 수는 없었던지 건강도 퍽 좋지 않은데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병세가 아주 급하다 해서 매디칼센터로 달려갔더니, 마른 뼈에 가죽만 붙었는데 눈동자는 맑았습니다. 그것이 아마 운명 며칠 전일 것입니다. 그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 의분(indignation)을 몰라요!” 했습니다. 그리고는 몇 마디를 계속해서 하는 가운데 한국의 기독교는 “감상적(sentimental)”이어서 못쓰겠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남긴 유언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런 말이 어찌 나올 수 있습니까?
자연에 조금 이상이 있으면 거기 대해서는 투덜대는 사람들이 역사가 정상적인 길은 달리지 못하고 이상적으로 외뚤비뚤 하는데 대해서는 왜 한 마디 의분의 탄식도 없을까?
씨알의 소리 1977. 2월 61호
저작집; 9- 111
전집; 8- 315
첫댓글 indignation[ɛ̃diɲɑsjɔ̃]
1.(불의에 대한) 분개, 격분
exciter[provoquer] l'indignation
분개하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