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몰랐다는 말은 무관심했다는 말이다”
기억에 새겨야 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발자국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현실을 영화 「김복동」 제작 기록으로 되새기다
2019년 개봉한 영화 「김복동」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송원근 감독의 에세이 『그 이름을 부를 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8월 14일 출간되었다. 송원근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대표적인 인물인 김복동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며 ‘김복동’이라는 인물을 탐구하게 된다. 송 감독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중요한 문제인데도 무관심했기에 전혀 알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게 되고, 섬세한 시선으로 ‘사람’ 김복동의 삶을 그리기 위해 고투한다. 또한 오랫동안 현장에서 뛰어온 뉴스타파의 베테랑 저널리스트이지만 처음 영화를 제작하는 서툰 초보 감독으로서 새롭게 배우게 되는 협업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 영화 밖의 현장 메이킹필름을 글로 생생하게 전한다.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일 년간의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저자의 순수한 열정과 우직함이 돋보이거니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어떤 이름들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게 한다.
목차
프롤로그
1부 발자국
2부 바람 자국
3부 눈물 자국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 : 송원근
1977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섬진강, 야학, 어머니의 부재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2003년 MBC에서 방송활동을 시작했고, 「생방송 화제집중」 「불만제로」 「김혜수의 W」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2013년 독립언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옮겨 세월호 1주기 다큐멘터리 「참혹한 세월, 국가의 거짓말」을 연출했고, 「친일과 망각」과 「훈장과 권력」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의 생애를 다룬 영화 「김복동」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상 속 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는다는 마음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그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책 속으로
관객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문제 해결을 위한 열망을 심어야 한다. 그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처절한 절규와 끔찍한 과거를 되짚는 영화가 아닌, 피해자를 넘어서 스스로 다른 피해자를 돌보고 안아주던 할머니를 그려야 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제 남은 싸움은 우리가 하겠다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 p.120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자는 몇 번이나 할머니의 삶을 ‘고통 속에 살다 간’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스스로 고통 속의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용감하게 다른 피해자들을 감싸 안았다.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고 또 조금씩 알아갈수록 할머니의 삶은 고통이나 절망이라는 표현보다 용기와 희망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그만큼 좌절에 갇혀 신음만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고통이라는 말이 싫었다. 어쩌면, 세상의 선입견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휘감고 있는 저런 시선을 우리 영화가 바꿔줄 필요가 있다.
--- p.177
바람에 실린 모래가 카메라를 때려대는 모습이 오늘도 아파 보였다. 육지에 닿은 바람은 멈추지 않고 모래 위를 날아 그 위에 물결 모양의 바람 자국, 풍문--- p.風紋)을 새겼다. 모래 위 무늬는 거센 바람에 의해 사라졌다가 만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대포 바닷가에서 끝없이 부서지고 만들어지는 바람의 자국이 나에게는 끝없는 고민을 반복해야만 했던 ‘김복동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지워내고 씻어내려 해도 기어이 다시 돋아나는 상처 같기도 했고, 그런데도 또 일어서 걸어가야만 했던 의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대포 바다를 바라보던 김복동의 모습을 다시 상상한다. 쉼 없이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반복하는 이 풍문을 바라보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 p.206~207
영화 한편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일이 개개인의 우주를 만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 편이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의 범위가 얼마나 넓고 깊고 세밀한가. 영화를 만들면서도 느끼지 못한 일들에 대해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관객들을 만나는 일은 온몸의 세포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에 멈추고 마는 것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을 두고, 만 갈래의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 한가운데에 서서 그 생각들의 종류와 색깔을 살피고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복동」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만나게 되며 살아 있는 나를 느낀다.
--- p.334
친한 선배가 안색이 좋지 않은 나를 보고 묻는다. 영화 한 편을 위해 왜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느냐고. 영화 그게 뭐라고 그렇게 까지 하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내가 앞으로 사는 동안 「김복동」 같은 작품을 또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내 삶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잠시 후 멈추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내게 선택지는 없다고 말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마흔 남짓한 삶을 사는 동안 「김복동」이라는 작품을 연출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길, 좋은 영화의 감독으로 남을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 p.360
출판사 리뷰
삶의 한가운데에서 겪은 치열했던 시간의 기록
우리는 어떤 이름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가
『그 이름을 부를 때』는 ‘위안부’ 피해자의 현실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던 저자가 영화를 준비하며 따라 걷게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긴 발자국(1부)과 바닷가 모래 위에 “끝없이 부서지고 만들어지는 바람의 자국”(206면) 같은 김복동의 삶(2부), 이 모든 시간을 견디며 피해자들이 흘린 눈물과 우리의 마음에 남은 눈물 자국(3부)을 담아낸다. 영화를 준비하는 도중에 김복동 할머니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영화를 잘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송 감독은 흩어진 자료들을 찾아 모으고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김복동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조각들을 맞춰간다. 영화 제작 막바지에 송 감독의 암 재발 소식이 날아들지만 마지막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마무리해야 한다”며 “현재 내 앞에 닥친 일에 대한 순리”(293면)를 말하는 대목은 할머니가 생전에 말한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영화에 담고자 한 감독의 의지와 겹쳐지며 묵묵해진다.
김복동은 눈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일본대사관 앞에 ‘바위처럼’ 앉아 일본을 꾸짖었고, ‘들꽃처럼’ 꿋꿋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상 곳곳에 희망의 뿌리를 내렸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수요시위의 거리를 지키고, ‘살아 있는 피해자’로서 해외에 나가 증언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은 그리하여 영화 개봉 후 전국적으로 열린 크고 작은 공동체 상영관을 찾아가는 송 감독의 눈물로 이어진다. 송 감독은 극장에 모인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영화 한 편이 주는 메시지가 각자의 삶에 녹아들었음을 확인”(329면)하고 관객들과의 교감을 통해 영화도, 자신 스스로도 ‘살아 있음’을 느낀다.
송원근 감독은 “영화 「김복동」을 통해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처럼, 이 기록을 통해서 ‘위안부’ 문제가 그렇게 쉽게 끝나고 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9면)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고 새긴다면, 일본 정부는 언젠가는 반드시 진정한 사죄를 해야만 할 것이다.”(303면) 한 사람의 이름이 일깨워준 세상이 영화 「김복동」으로, 책 『그 이름을 부를 때』로, 왜곡할 수 없는 역사로, 여기 남아 있다.
【작가의 말】
이 책은 내 삶의 한가운데에서 겪은 치열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난생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극장에 상영을 하고, 그 속에서 관객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잊힌 줄 알았던 그때의 기억들이 봄날의 꽃잎이 되어 하염없이 흩날린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내 삶으로 들어왔던 그때의 시간들은 내 삶에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새겼다. 그리고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영화 「김복동」을 제작하던 날들은 그렇게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영화 「김복동」을 개봉한 지 2년.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는 것은, 영화를 제작하며 지나온 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자꾸만 떠올리는 행위이다. 머리에서,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뇌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이름이 일깨워준 세상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영화 「김복동」이 할 수 있다면, 또 이 책 『그 이름을 부를 때』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 같다.
추천평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건 역사의 질곡이 만들어낸 비극에 대해 배워가는 저자의 신중하고 진심 어린 태도다. 피해를 겪은 이를 수난과 상처의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고 그 존재가 가졌던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삶의 숨결로 되살리려는 한 사람,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의 노력들. 그 덕분에 나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닌 이들의 해원 과정이 마치 ‘집을 짓듯’ 강건하게 쌓아올렸다가도 다시 허물어지면 또다시 힘을 내어 쌓아올리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인간의 존엄이란 잃어버린 소녀 시절을 증언하기 위해 직접 흰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를 준비해 길을 나서는 김복동 할머니의 그 의지적인 걸음걸음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현실은 차갑지만 그것에 맞서는 인간의 체온은 늘 따뜻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마음의 집’으로 우리 곁에 남기를 빈다.
- 김금희 (소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의 삶과 ‘사람’ 김복동의 삶. 어느 하나 내려놓을 수 없기에 무척 어려웠을 송원근 PD의 고민과 작업 과정이 담담하고도 섬세한 필체로 이 책에 담겼다. 위대한 용기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전 세계를 다니며 준엄한 꾸짖음으로 30년의 세월을 싸우셨던 할머니는 피해자로서의 개인을 넘어 어느덧 평화활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변모했다. 저자는 할머니가 겪어온 고통과 삶의 마지막 모습에 눈물 흘리고 ‘위대한 운동가’ 김복동의 삶을 성실하고 냉철하게 따라붙으며, 결국 할머니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고 연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영화 「김복동」을 만들어낸다. ‘김복동’의 이름은 여전히 우리를 슬픔에 젖게 하지만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더 당당한 모습으로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막연한 연민과 안타까움보다는 그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 김소영 (방송인, 책발전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