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가 없으면 재미 없지 / 정희연
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미연 옮김, 『고양이』, 열린책들, 2018.) 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흥미롭다.
사무실 창문 넘어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몸통은 병들어 해지고 부딪치고 까여 상처 투성이로 볼품이 없다. 본연의 가지도 잃고 곁가지로 다시 생명을 이어간다. 겨울 가뭄과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며 작년과 비슷하게 열매를 맺었다. 업무를 보며 시시때때로 눈맞춤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벌써 일곱 번째 계절을 같이하고 있다.
감나무가 다가온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책에 너무 빠진 탓일까 내가 없다. 안개사이로 연녹색 실루엣이 보인다. 가까울수록 도두라지게 드러난 홍시가 눈에 들어온다.
저 친구 말이지! 무엇이 그리 할 일이 많은지 너 다섯시가 되면 눈을 떠, 이것저것 생각하지도 않고 뱀이 허물을 벗듯 화장실로 가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어. 다음은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해, 하루만 깍지 않아도 구랫나루 와 턱밑 수염 때문에 지저분하게 보이는지 정성을 드려. 잠에서 깨려고 더 집중 하는지 모르겠어. 다음은 가볍게 샤워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까지는 채 10분이 조금 넘을거야. 그러고선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문 하나를 열면 사무실이고 숙소야.
그는 지금까지 주도적으로 살지 못했다고 생각 해. 스스로 일하기 보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었어. 그러다 결혼 후 가장이 되면서 책임이 따르기 시작했고,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거야. 2년 전부터 경제 공부를 시작했어 그동안 먹고사느라 바빴는지 안중에도 없다가, <코로나 19>로 주식 값이 바닥을 찍은 다음 하늘을 뚫을 기세로 주식 열기가 뜨거울 때 주식 시장에 접어들었지, 역시나 개미(주식 시장에서 개인이 투자하는 사람)였던 거지 주가가 높을 때 뛰어드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었어. 3년 째 내리막길에서 허둥대고 있다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유튜브에도 한참 열을 올리더니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잠시 멈추더니, 가족 카톡에 금융 지식을 정리해 나가고 있어.
또 하나의 관심 분야는 책 읽기와 글쓰기야. 달라진 점은 알고 모르는 것이 두리뭉실했던 것이 글을 쓰면서 그 경계가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안 거야.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10쪽 또는 30쪽으로 노트에 옮겨 적더라고 글쓰기에 도움이 되나 봐. 예나 지금이나 진일보한 면이 없는데 이제는 신념이 자리를 잡은 것 같아. 지금은 (김호연 지음, 『망원동 브라더스』, 나무 옆 의자, 2014.)를 읽고 있더라고, 만 2년 가까이 글을 배우고 쓰는 것이 아직도 어설퍼 내놓기 부끄러워 헛웃음을 짓곤 해. 어떤 분야에서 최고에 이르지 못했고, 경지에 이를 만큼 열심히 해 온 일도 없어 그래서 더 간절함이 엿보이는 것 같더라. 머릿속에 있는 단어와 문법을 꺼내 겨우 에이포(A4) 두 장을 쓰는 것도 급급했는데, 동료의 글을 읽는 여유가 있는 것 같아.
금요일이면 주말을 준비하느라 또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져, 가족과 함께는 하루와 농막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 일터에서 열심히 수고한 가족과 같이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아, 월요일에 사진을 정리하는 걸 보고 알았어. 의견이 일치가 되지 않아 혼란의 시기도 많았지만, 이제 많이 동글동글 해진 것 같아. 서로 다름을 알고 양보하는 모습이 조금씩 엿보여. 전화 통화 하는 걸 듣고 알 수 있었지. 일과 삶을 적절하게 조절하려는 모습이 보여.
퇴직하고서 햇볕이 잘 들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사무실을 갖는 걸 꿈꿔, 업무도 보고 책을 읽으며 노후를 보내고 싶은 거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여행도 하고,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말이야. 군인 친구는 벌써 정년에 접어들었다고 연락이 왔어, 아파트 하나가 있고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오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데 본인은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이 전부고 특별히 모아놓은 자산도 없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거야. 100세 시대에 앞두고 40년을 버티려면 수입이 행복을 뒷받침 한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주체적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하나 둘 만들어 가고 있는가 봐.
그에게 루틴이 있는 것 같아. 첫 번째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곧바로 화장실로 가서 샤워하기. 두 번째는 경제 공부와 책 읽기로 아침 시간 보내기. 세 번째는 일과 시간은 업무에 집중하기. 네 번째는 일이 끝나면 도서관, 커피숍에서 휴식 취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말은 가족과 함께하고 농막에서 시간 보내기야.
특별하게 성과물은 없지만 의욕이 넘쳐 보여서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열정이 넘치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걱정이야.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장대 높이뛰기처럼 엄청난 높이를 뛰어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때나 뛰어 넘을 수 있도록 미리 사다리를 만드는 사람인 것처럼, 지치지 않고 힘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갑자기 진동 소리와 함께 사무실이 천장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동시에 감나무도 눈앞에서 사라졌다. 꾀나 큰 흔들림이었다. 2023년 10월 25일 21시 46분에 충청남도 공주에서 규모 3.4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이어졌다. 뭐지 꿈인가? 다음날 아침 나무 앞에 섰다. 보기와 다르게 당당하다. 상처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풍파를 전혀 몰라 재미 없는 것보다 자신이 훨씬 매력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가 어느 때와 다르게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첫댓글 희연님, 글 잘 읽었어요.
희연님의 생각과 일상생활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군요.
선생님 글을 읽으며 우리에겐 늘 안녕을 빌어주는 수호신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정 선생님이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선택의 연속인 듯 합니다. 방향이 열심히 사는 사람 쪽으로 가벼렸네요. 송구스럽습니다. 하하하!
루틴이 눈에 그려지네요. 경제공부도 꾸준히 하시고 저녁마다 독서와 글쓰기, 기족과 함께하는 주말. 정말 알차게 사십니다.
걍 열심히만 하고 있습니다. 히히!
짝짝짝. 박수를 받으셔야겠어요. 훌륭한 가장이시네요.
선생님. 요즘 하락장이던데 살까요? 하하.
그쪽으로는 발도 딛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하하하!
다음에 경제 공부한 내용 회원들에게도 공유해 주세요.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을 다스리는 책 100권을 읽는 것이 지혜로울 수도~
아직 젊으신데 미래를 꼼꼼이 계획하며 사시는 게 너무 든든해요.
뭐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느 국어 시간, 어쩌다 그쪽으로 수업이 흘러가서 6학년 아이들에게 개미 가족을 칠판에 가득 그려가면서
설명을 했었나 봅니다.
제자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더니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지요
그 베르나르가 고양이와 개 이야기를 썼었군요.
서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학교에 있는 나무가 되어 글을 쓰려고 했는데, 두 고양이가 하도 싸워서 이 글로 썼답니다.
냥이 얘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하하
맞아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빠져 있습니다. 고양이, 꿀벌의 여행, 파피용, 죽음, 그리고 개미(세계사 이야기가 어려워 좀 더 공부하고 읽으려고 미루고 있음),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빈틈없이 짜 놓은 시간표대로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지치지 않게 쉬어가며 하세요.
긍께요, 촌 놈 마라톤 하면 안 되는데 응원 고맙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쌤의 일상이 보이네요.
응원합니다.하하
사실, 엉성한 놈인데 글을 쓰다 보니 넘 열심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애궁!!
선생님.
멋지게 사시네요.
닮고싶은 싶은
점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파이팅요!!
잘 읽고갑니다.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애송이예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