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고기 찌게를 데워 밥 먹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한 후배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다 때려치우고, 영화를 보러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시네코아에서 본 영화 제목은 '빌리 에리어트'.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후배나,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으면 흐느껴 울 뻔 했습니다.(권할만한 영화였습니다)
영화관에서 나온 거리는 좀 추웠고, 또 좀 울기도 해서 눈이 어리어리하고, 시렸습니다. 아무렇거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노닥이다가 헤어진 시간이 저녁 일곱 시 반 쯤.
후배를 바래다 줄 겸 교보로 가는 길의 종각 역에서 일러스트 두 분을 만났습니다. 신촌 간다는 데 날보곤 가자는 얘기도 않고... (가시자고 해도 쫓아가는 게 아냐! 이 푼수 엄마야!) 딸의 목소리가 귓전을 돌았습니다.
명함집이 문 닫아 벼르고 벼른 명함도 맡기지 못하고, 교보로 터덜터덜. 바람 씽씽,
'그래, 난 이 쓸쓸함이 좋아! 내게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거지!'
어쩌고저쩌고. 토끼 인형도 사고, 토끼 열쇠 고리도 사고, 토끼 수첩도 사고 그리고 '산토끼'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찌르릉 - 전화왔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나, 교보."
"뭐 하세요?"
"책 봐."
"인사동으로 안 오세요?"
"가지."(당연하지!)
"오셔서 전화 주세요. 오늘 한겨레 전시회 오픈이었거든요."
"아까 누구 누구 만나서 얘기 들었어요."
그리하여 인사동행. 둥글레차 마시고, 대추차도 마시고, 두 곳을 순회. 술 없이도 노래 세 곡.
'딸들아, 미안해!'
어찌어찌히다가 돋보기 안경을 어디 놓았는지, 찾다 찾다 기냥 잤습니다.
지금은 새벽.
간장, 참기름만 넣고 미역국을 끓여 아침 먹으리라 맘먹고 있어요.
밀린 원고도 쓰고! 정말이래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