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사도행전 3장 22-26절『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에안)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엔 토 스페르마티 수)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톤 파이다)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의 중보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백성들이 모세를 통하여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예수 그리스도)가 나올 것인데, 사람들은 그 분(호 로고스)에게 직접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부활시켜 주시는데, 죽었던 영이 부활하게 되면,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고, 그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호 로고스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성도와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성경 말씀 속에서 호 로고스는 역사하시고, 성도에게 말씀하신다.
에안(ἐὰν)은 만일이라는 가정법이다. 말씀을 듣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만일 듣지 않는 자가 있다면 멸망이라는 말이다. 대부분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듣지 않으면 멸망당한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은 미세한 음성으로 성도에게 다가온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여기에서의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데, 헬라어로 『카타베세타이καταβήσεται 』이다. 재림이란 용어는 성도의 심령 속에 일어나는 것으로 성도가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를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도에게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은 자들이 먼저 영적으로 일어나고, 다음에 영의 몸을 입고 있는 성도들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성전이 세워지지 않은 자에게는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 할 때에 마지막 심판이 일어난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강림한다는 말은 영어로는『he is coming』으로 마치 재림하시는 예수를 연상한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은『파루시아 (παρουσίᾳ)』로서 파라(옆에)와 루시아(있는 것)의 결합된 단어다.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파루시아는 임마누엘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7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파루시안)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강림(재림)으로 번역된 파루시안은 파라(옆에서)와 루시안(존재하다, 있다)의 합성어로서,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비유하며 설명한다.
베드로후서 1장 15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파루시안)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파루시안(παρουσίαν)은 예수의 강림이 아니라, 옆에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한다. 그의 크신 위엄을 본 것은 베드로가 요한,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빛처럼 빛나는 변화의 광경을 목격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베드로가 목격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도 안에서 임재하는 파루시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임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가 임재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서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확실한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계셔서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도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세밀한 주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성도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둠에서 비추는 등불처럼, 밤을 지나 새벽의 여명에 빛나는 샛별처럼, 성도의 마음이 그러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샛별(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떠오른다는 것은 주의 음성이 마음에 감동되어 떠 오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의하라고 했다. 마귀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하라는 것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령의 마음으로 성경을 바탕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3장 17절『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카토이케사이 톤 크리스톤κατοικῆσαι τὸν Χριστὸν)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카토이케사이 톤 크리스톤(κατοικῆσαι τὸν Χριστὸν)은 그리스도께서 심령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심령 안에 호 로고스가 있게 되는 것은 두가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첫째가 믿음이고, 두번째가 사랑이다. 믿음은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사랑은 아가페로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인 내가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로 인한 사랑인 것이다.
엔 토 스페르마티 수(ἐν τῷ σπέρματί σου)는 『너의 그 씨(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모든 자가 그 씨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씨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말씀이신 호 로고스가 임재하여 성도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톤 파이다(τὸν παῖδα)는 종이 아니라 그 소년(인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연약하게 인간으로 태어난 인자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