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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밖으로
이 홍사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조용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산만하다.
학교가 초상집이라서 수업마저도 초상집 분위기인가?
아이들에게 석고상을 놓고 스케치를 시키고 있지만, 미대를 지망하려는 아이들 외에는 모두 딴짓을 한다. 심지어 미술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는 놈도 있었고 수학 문제를 들추는 놈도 있지만, 모르는 척해야 한다. 고 삼의 중요과목이 아닌 수업은 항상 이런 식이다. 떠드는 놈이 아니면 봐 주어야 한다.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한 건 교문 입구에 딸린 교장 사택의 분위기도 한 몫을 더한다. 교문까지 점령한 근조화환을 보고 들어왔으니 아이들도 어떻게 될 것인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다.
교장 사택에 빈소를 차렸다.
장례식장으로 가지 않고 하필 사택에서 초상을 치르는지 모르겠다. 사택 마당의 근조화환이 줄을 지어 교문 앞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교문에 검정 글씨의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어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초상집에 들어오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검은색 리본을 달지 않도록 한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문상을 오는 조문객들의 차량이 교문 안으로 들어와 학생식당 앞까지 들어와 줄지어 있고, 사택 마당에 설치한 흰색 천막이 낮은 담을 넘어 미술실이 있는 이 층 복도에서 훤히 보인다. 학교가 온통 초상집 분위기다.
교장이 죽었다.
나이는 마흔넷, 젊은 교장이었다.
학교법인 산동학원 설립자 박상도 박사의 아들 박진수 교장이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말이 심장마비지 실상은 복상사를 당한 것이다. 것이다, 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라 정황상 그렇지 싶다. 사인이 어떻게 나왔는지 몰라도 합리적인 의심이다.
아버지의 학교를 물려받아 삼십 대 후반에 교장이 된 인물이 꼴사납게 복상사를 당했다? 참으로 교장다운 일이다. 복상사를 시킨 상대는 미모의 노처녀, 행정실 여직원이었는데 장소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내의 작은 호텔이었다.
재단에서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심장마비라고 그 점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아는 선생들은 다 아는 눈치다. 교장이 발가벗고 호텔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알고 행정실 여직원이 제일 먼저 경찰서에 신고했단 말인가?
아무도 복상사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뻔하다.
아버지를 잘 만나면 삼십 대에 교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준 박진수 교장인데 복상사로 거룩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십 년이 넘게 교장을 할 수가 있다고 선생들의 부러움과 빈축을 사던 자리였는데,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정말 자리가 아깝다.
아침 교직원 회의에서 교장보다 두 살이나 많은 교장의 매제인, 역시나 젊은 교감은 심장마비라고 아이들 입단속을 잘 시키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사실이지 박진수 교장은 사십 년이 넘게 교장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사십 년? 건강만 유지하고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가 있는 자리였다. 대구의 어느 학교 교장은 오십사 년간 교장을 했단다. 그 양반은 도대체 몇 살에 교장이 되었단 말인가? 교장 정년이 없는 사학재단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설립자 박상도 박사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조국의 미래는 후세 교육에 있다는 교육철학으로 6.25 전쟁 이후에 전쟁고아들을 모아 과수원 자리에 공민학교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책걸상이 모자라 가마니를 깔고 수업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남다른 교육이념을 지니고 먼 장래를 내다본 인물인데 한가지 실패한 일은 자식 교육이었다. 남의 아이 교육에만 신경을 썼지 정작 하나 있는 아들 교육은 실패한 셈이다. 공부를 게을리해서 겨우 원서만 내면 들어가는 지방대 윤리교육과를 뒷문으로 나와서 이 급 정교사 자격을 따고 아버지 학교에서 선생 노릇을 하던 인물인데 교장을 만들기까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옛날 과수원이 도시의 변두리가 되고 학교가 커져서 중학교가 15학급 고등학교가 18학급에 교직원이 60명이 넘는 명문사학재단으로 부상했는데 교장이 드디어 괄호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설립자인 박상도 박사가 연로해서 재단 이사장으로 물러나서 아들을 철없는 교장으로 앉혀놓고 지켜보다가 삼 년 전에 돌아가셨단다. 그건 내가 이 학교에 부임하기 전의 일이다.
젊은 교장은 늘 학생들에게 말했다.
농땡이를 부리려면 확실히 부려라.
이것은 농땡이의 철칙이오, 철학이다.
확실하게 농땡이를 부리면 열외다. 괄호 밖의 인물이 된다.
어중간하게 농땡이를 치면 길들이기 위해 얼차려! 가 기다리고 있는데 확실하게 농땡이를 부리면 모두가 동정이나 위로, 도움의 눈길을 던지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어제 죽은 교장이 자주 하던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자신을 위한, 스스로 합리화시키기 위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괄호 밖의 농땡이 교장?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레퀴엠이라고 한다.
위령곡을 말하는데 진혼곡을 의미하는 말이다.
죽은 사람의 혼을 달래주는 음악이나 노래를 일컫는 명사다. 듣기에 부담이 없이 기분이 좋은 가락은 분명히 아니다. 귀신이 된 교장이 아닌 이상.
오늘은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농땡이를 위한 진혼곡을 속으로 웅얼거렸다. 그걸 스스로 제재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고 입에서는 계속 그런 가락이 맴돌고 있었다. 스케치를 아이들에게 걸리지 않을까 조바심을 쳤다.
고 삼 수업은 말로 하는 미술이론 수업이 아니라 실기로 스케치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뜻이 없는 아이들은 슬쩍, 후딱, 대충 그려놓고 다른 과목, 입시에 필요한 공부를 한다. 선생으로서 그렇게 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미술 교사로 따지면 가장 편한 수업이 삼 학년 수업이다.
아무튼, 농땡이가 죽었다. 아니 교장이 죽은 것이다. 그것도 아니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농땡이 교장이 죽은 것이다. 교장의 죽음과 함께 그 아버지의 교육이념도 괴사, 괴멸한 학교가 되었다. 농땡이 교장? 농땡이를 하도 들먹여서 그런지 아이들은 교장을 두고 농땡이 교장이라 불렀다.
농땡이 교장 말마따나 괄호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부활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부활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 교장이 다시 살아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보다 끔찍하다고 할 여교사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실이지 죽은 교장의 시선은 남달랐다. 여교사를 보는 시선이 교사로 보는 게 아니라 여자로 보는 게슴츠레하고 음탕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선생들이 조마조마할 지경이었고 학교 안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인데 그런 일이 수도 없이 재연되었다. 교내에서 그런 인물이 사라졌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들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다. 아이들이 눈치를 챌까, 선생님들이 조바심을 치는 눈치였는데 이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교직원들이 수업을 마치고 단체로 문상을 한다고 교감은 말했다.
나는 그의 영전에 할 말이 없다.
영면하라는 말도 식상하고 편히 쉬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복상사를 당할 적의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나 볼까?
교내 선생님들은 말은 않고 있지만 이제 누가 교장을 하느냐에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다. 재단 설립자의 박상도 박사의 사위인 교감이 교장으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복상사를 당한 교장의 젊은 사모님, 사모님이라곤 하지만 교직원에 적을 두고 있다. 사택에서 살림만 하지만 교사로 등재되어 봉급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교육청에서 속사정을 알면 난리가 나겠지만 원래는 서울 유명대학을 나와 이 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했다가 교장이 된 윤리교사의 눈에 들어 안방을 차지하고 설립자 박상도 박사의 며느리가 된 인물인데, 교장 자리를 남에게 맡기고 집에서 살림만 할 인물이 아니다. 장례가 끝나면 교장 자리를 놓고 어지간히 신경전이 벌어지겠지만, 사모님이 교장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 이 학교에서 늙은 평교사들은 어지간히 꼬까울 것이다. 원래 장마가 무서운 게 아니다. 장마철 뒤에 오는 태풍의 계절이 무서운 이치가 아니든가.
행정실 주무관인 여직원이 오늘도 학교에 출근했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출근을 했지만, 속으로는 어지간히 조마조마할 것이다. 사모님이 교장이 된다면 무슨 구실을 붙이든 가장 먼저 목이 날아갈 인물인데 오늘 수업을 마치면 있을 교직원 단체 문상에 눈을 팍 내리깔고 참석할 것이다. 행정실은 폭풍전야처럼 잠잠하지만, 장례를 마치면 보나 마나 학교에 한차례 바람이 일 것이다.
행정실장은 엄청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가족장이 아니라 학교장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했으니 준비하고 챙길 일이 많을 것이다.
학생들이 한참 수업하고 있는 평일 낮에 나가서 복상사를 당한 인물을 왜 학교장으로 치르는지 모르겠지만 교감과 죽은 교장의 고모부인 행정실장이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꼬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냥 보고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선배 선생님들도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어제 교장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기 전까지 교장이 교장실을 지키고 있는 줄 알았다. 점심시간이면 학교식당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유심히 살피는 교장이 어제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교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어제 오후였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가니 선생님들이 자리에 앉지도 않고 둘러서서 술렁거렸다. 뒤에서 들으니 지금 병원에 있는데 사택으로 운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들의 말로는 운구의 대상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치 없이 누가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더니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힐끗 돌아보며 교장이라고 해서 적잖이 놀랐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돌아가셨느냐고 물었지만, 그 질문에 대해선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
화들짝 놀랐다. 수업시간인 줄 모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돌아보니 스케치를 하던 진우라는 녀석이었다. 미대에 적을 두고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개인 교습소로 달아나는 녀석인지라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미움을 사고 있지만 내 눈에는 한없이 착하고 순해 보이는 녀석이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스케치북을 덮고 필수 과목의 공부를 하고 있다.
녀석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눈치였다.
“뭘 묻고 싶은 거냐?”
“교장 선생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그야 심장마비지.”
“에이, 다 알고 있어요. 복상사라는데요?”
진우가 그렇게 되묻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던 아이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야 이 녀석아! 너? 복상사가 뭔지나 아니?”
“선생님. 총각이시라 복상사 모르세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장렬한 죽음.”
그러자 듣고 있던 다른 아이들이 폭소를 쏟아냈다. 수업 분위기는 금세 엉망이 되었다.
“얘들아! 그만. 지금 학교가 웃을 분위기냐? 그만!”
그 말을 하며 아이들이 진정하라고 교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진우라는 녀석이 한마디를 했다.
“미투(Me To)가 엄청 터지는데 그것도 유행이라고, 이게 정말 학교입니까?”
진우의 그 말이 선생인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술이란 선과 색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미술에 관해서 탐구해라. 수업시간이다. 다 그린 학생들은 다른 과목을 공부해도 좋다. 지금 웃을 분위기가 아니야.”
수업 분위기를 바로 잡았다.
이게 학교입니까?
학생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할 말이 궁색했고 내 귀에서는, 이게 학교입니까? 이게 학교입니까? 라는 물음이 이명처럼 반복적으로 울렸다.
이게 학교입니까?
그 질문에는 나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 학교에 임용이 되기까지 사학재단의 비리에 측면에 나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미술교육과를 나와서 임용고시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공립학교에서 미술 교사 하나가 정년 퇴임을 해야 자리가 하나 생긴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일 년에 미술 교사를 한 명이나 두 명을 뽑는 게 고작이다. 미술교육과를 졸업하는 인원은 삼백 명 이상이 되는 현실에서 공립학교 임용은 언감생심이다.
이 학교의 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을 때 미술 교사 한 명을 뽑는데 정확히 스물여덟 명이 원서를 냈다. 그중에서 내가 임용된 것이다. 운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는 사실을 아신 아버지가 친분이 있는 지역 국회의원을 동원했다. 그리고 행정실장을 만나고, 그 뒤로는 누구를 만나고, 어디로, 얼마의 뒷돈이 들어갔는지 모른다. 아버지도 말씀하지 않으셨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치욕적이고 모욕적인 임용이었지만 서른이 넘고 임용고시를 네 번이나 쳤는데 더운밥 찬밥 가릴 시기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지역에서 작은 건설회사를 경영하고 계신다. 내가 토목공학과 건축학과를 나왔더라면 아버지의 업을 그대로 물려받으면 되겠지만 나는 중학 때부터 철없이 미술을 고집했다. 선생님들께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하고 싶은 공부였다. 그런데 학위를 받고 보니 미술이 밥으로, 숟가락으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전공하면서 교육학을 이수해서 이급 정교사 자격이라도 취득해 놓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임용된 것을 결코, 자학自虐하거나 자책하는 게 아니다. 무릇 인간은 홀로 걸을 때 자신의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내 그림자를 보고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철면피라서 그런가? 따지고 보면 이 학교의 젊은 교사들은 다 그런 방법으로 임용되었지 싶다. 서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임용된 게 뻔히 보인다. 주요 과목을 전공해도 그런 식인데 특히나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 걸 따질 일이 아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면 그게 면피하는 방법일 터이다.
대학 동기들은 공부를 더 한다고 거의 외국에 머물고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참 딱하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지만 변변한 직업이 없으니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부모 재산을 물려받을 놈들이야 걱정하지 않겠지만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들어온다고 해도 대학 강단에 설 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전임을 바로 주는 대학은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해서 강사로 들어간다고 해도 보따리 장사는 파리목숨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작업에 몰두한다고 해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술을 전공하면 길이 한정되어 있다.
중학교 때부터 실기시험에만 몰두했으니 고시는 고사하고 공무원 시험에도 자신이 없을 것이다. 나이를 서른 넘기고 나서야 철이 드는 게 미술학도들이다.
고등학교 동기인 성진은 시에서 마련해준 예술 창작촌의 입주 작가다. 조각가인데 문화예술인을 양산한다는 의미에서 시에서 작업 공간을 마련해 준 곳에 끼었다. 물론 문인도 있고 화가, 도예가들이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공간인데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입으로 작품을 높이 평가해주는 사람은 있어도 사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치욕적인 일을 당했다고 언젠가 술자리에서 만났을 적에 속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작가로서 작업할 의욕이 사라지는 사건이었다.
조각품이 팔리지 않아 팔 곳을 찾다가 제 작품을 싣고 골동품과 미술품을 경매하는 곳을 찾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작품이 팔리지 않아, 밥이 궁해서 거기까지 작품을 싣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재료비가 30만 원이 넘게 들어간 청동 여인상이 21만 원에 낙찰되어 팔렸고 재료비가 5만 원이 들어간 마블 조각상은 4만 원에 낙찰되었단다. 자신의 사인까지 조각된 그 작품의 가격을 얘기하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열이 받은 성진은 돈을 받아서 그 돈의 몽땅 소주를 사서 싣고 작업실에 가져다 놓고 한동안 그 소주를 마시고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
빛의 굴절과 그림에 명암을 넣던 진우가 이젤 앞에서 또 불렀다. 사뭇 진지한 목소리였다.
“왜? 그림이 뭐가 잘못되었냐?”
진우 옆으로 다가섰다.
진우는 그림에 명암을 넣는 4B연필을 비딱하게 쥐고 그림에 빗금을 치며 나직이 발했다.
“선생님 이런 학교 경험해 보셨어요? 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학교입니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인데, 할 말이 궁색했다. 다른 아이들이 들었는지 또 넘어다보고, 맞아요. 맞아요 를 연발하고 있었다.
“학습 분위기에 방해가 되는 소리는 하지 말아라.”
진우라는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돌아섰다.
고 삼이면 대가리가 다 굵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은 다 아는 놈들이다. 부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말을 잘못하면 도리어 말꼬리가 잡힌다. 이럴 때는 선생이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 아끼고 싶은 게 아니라 할 말이 궁했다. 이런 놈들에게 무슨 성교육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학교에서는 성교육한다고 콘돔 끼우는 방법을 시연하자며 바나나를 학생들에게 준비하도록 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선생은 참으로 순진하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를 통해서 음란물을 다 본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일이 매스컴에 보도가 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다. 스스로가 터득하는 일이다. 그 선생은 어지간히 무식하면서 자상했던 모양이다. 복상사를 아는 놈들에게 무슨 그따위 성교육이 필요하랴.
점심시간을 넘긴 5교시라서 그런지 이번 시간은 엄청 지루하다.
창밖을 보니 사택에는 화환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근조화환이 교문까지 나열되어 점령하고 있다.
체육복을 입은 일 학년 학생, 한 놈이 미술실 문을 두드린 것은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무슨 일인가?
교문에서 누가 미술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누가?”
“몰라요, 늙으신 분인데요.”
누굴까?
학생들에게 조용히 수업을 진행하라고 하고 교사 일 층으로 내려와 교문 앞으로 나가니, 웬일이야?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아버지께서 담배를 피우시며 기다리시고 계셨다.
“아! 아버지 웬일이세요?”
“응. 문상 왔다가 너를 보고 가려고.”
“누구 문상을 와요?”
“누구긴 누구야. 교장이지.”
“아버지께서 어떻게 아시고?”
“행정실장이 연락했더구나. 학교장으로 한다고 화환이라도 좀 보내달라고.”
“이런! 죽일,”
아버지의 말을 듣고 전율이 일며 나도 모르게 욕이 입을 비집고 나왔다. 행정실장이 하는 일이 고작 이따위야? 이게 정말 학교냐? 아버지 뵙기가 면구했고 사립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이 치욕적으로 여겨졌다. 아버지는 작은 건설회사를 하고 계신다. 아직도 현역이시다. 행정실장은 그런 것까지 다 파악을 하는 모양이다. 그 족제비 같은 작자가 화환을 보내고 문상을 할 만한 사람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무안해하실 것 같아 내색할 수가 없었다. 체육관에서 우르르 나오던 일 학년 학생들이 아버지와 나를 보고 인사를 하고 교사로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아버지 앞으로 행정실장 전화를 받지 마세요.”
오랜만에 뵙는데 내 목소리가 좀 쌀쌀맞았던가? 아버지께 무슨 죄가 있나? 아들이 학교에서 입지를 굳히라고 문상을 오신 것이 분명하다. 화를 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아 속으로 삭이며 아버지께 수업 중이니, 조심해서 가시라고 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버지께서 돌아서시는 걸 보고 돌아서니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미술실로 올라가니 아이들은 다 나가고 없었다. 금연학교지만 미술실에 앉아 담배를 빼서 물었다.
정말 이게 학교냐?
회의와 함께 중얼거림을 담배 연기에 버무려 뱉었다.
교감의 재량으로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이 없단다.
대신 교직원 회의가 있다고 했다. 아마도 교직원 회의를 마치고 단체 문상을 할 모양이다. 교직원 회의한다고 해도 나 같은 새내기 교사에게는 발언권을 쉽게 주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이게 학교냐고 묻고 싶지만 그런 말도 할 수가 없다.
7교시가 끝나고 일 학년들은 돌아가고 8교시가 끝나고 이삼 학년들이 돌아갔다. 야간 자율학습이 없으니 학교는 금세 비었다.
아이들이 돌아가자 썰렁한 학교는 음침한 게 더 초상집 분위기였다.
교직원이 60명이 넘는지라 한 번도 한 자리에서 교직원 회의를 한 적이 없다. 학년 주임들이 교장실에서 회의하고 각 학년 교무실로 와서 전달하는 게 평소의 형식이었는데 오늘 회의는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서 학생식당에서 한다고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미술실에서 뒷정리하고 있는데 나직한 목소리의 교내 방송이 울렸다. 교직원은 삼십 분 안으로 학생식당으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하던 정리를 마저 하고 학생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서열 없이 도착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김 선생 여기 앉으시오, 하며 옆자리를 내주었다.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들이 섞여 앉았다. 맨 앞자리 탁자 두 개를 돌려놓고 교감과 행정실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교직원이 모이기는 처음이다. 모두가 침통한 표정이었다. 교장을 복상사시킨 행정실 주무관 권양자 선생도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뻔뻔하다는 생각보다는 이름 모를 연민이 일었다. 가능하면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침통한 표정이었다. 누구는 억지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나 역시 침통한 표정을 만들어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권하는 옆자리에 앉았다.
회의가 아니라 예상대로 일방적인 교감의 통보가 있었다.
내일 1교시를 마치면 발인을 할 것이다. 상여는 동창회에서 운구하기로 했고 사택에서 출발한 상여가 학교 안으로 들어와 본관 현관 앞으로 갔다가 설립자 박상도 박사의 동상이 있는 분수대를 돌아서 나갈 것이니 1교시를 마치고 학생들을 그 상여가 지나갈 길에 두 줄로 도열을 시키는 게 어떠냐는 질문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설을 달거나 이견을 보일 선생은 아무도 없다.
설립자 박상도 박사의 묘지는 교문에서 길 건너 바로 학교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 묻혀 있다. 아마도 그 발치에 묻히는 모양이다.
회의가 끝나고 사택이 복잡할 것이니 교직원들은 세 팀으로 나누어 조문하기로 했다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헌화와 분향을 하고 다른 조문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바로 학생식당으로 다시 와서 음식을 먹자는 것이 행정실장이 덧붙인 말이었다. 행정실장의 말이 끝나자 바로 장례도우미 아줌마들에 의해서 음식들이 학생식당으로 공수되었다.
제일 앞에 앉은 교직원 스무 명가량이 먼저 일어섰다. 조문은 겨우 오 분 정도 걸렸다. 그동안 도우미 아줌마들이 계속 떡과 술, 고기 등속이 일회용 쟁반에 담긴 음식을 날라왔다.
두 번째 팀들과 같이 나도 사택의 빈소로 가서 국화 한 송이 헌화하고 다른 선생님들과 나란히 서서 묵념을 하고 돌아왔다.
별다른 감정이 없이 맹숭맹숭했다.
오히려, 분향하는 동안 속으로, 괄호 밖으로, 괄호 밖으로, 라는 말이 입에 맴돌아 조금은 곤혹스러웠다. 그 말이 그 자리에서 왜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삭이느라 애를 먹었다.
행정실 주무관 권양자 선생은 다른 여선생들과 세 번째로 갔는데 그 팀들은 울었는지 모두 눈시울이 뻘게져서 돌아왔다.
그동안 다른 선생님들이 줄지어 있던 식탁을 더러는 빼내고 돌려서 크게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나도 도우면서 내 눈은 의지와는 달리 행정실 주무관 권양자 선생을 따라다녔다. 그녀는 학생식당의 젓가락을 선생님들 앞에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교직원들이 모두 음식을 앞에 놓고 둘러앉았다.
학생부장은 교직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묵념이라도 하고 음복해야지요.”
그 말에 전 교직원이 음식 앞에서 다시 묵념했다. 내 속에서 또 괄호 밖으로, 라는 말이 일기 시작했다. 내일은 교장이 완전히 괄호 밖으로 나갈 것이다.
괄호 밖으로.
잠시 묵념이 끝나자 교감은 전 교직원이 이렇게 둘러앉기는 개교이래 처음일 것이라는 말을 좌중을 둘러보며 했다. 그 사이 주무관 권양자 선생과 눈이 한 번 마주쳤다. 교감의 말에 누구도 웃음을 짓거나 즐거운 표정이 아니라 굳은 표정으로 얼굴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고기가 굳기 전에 먹읍시다.”
교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소주병을 따고 내 앞에 있는 종이컵에 소주를 콸콸 부었다.
이게 정말 학교냐?
소주잔을 들며 그 말을 속으로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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