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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위해 사는 성도들(고린도후서 5:15~17)
2024년 12월 1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고린도후서 5:15~17)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우리의 미래는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하늘나라’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나라’라 말하기도 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기를 꺼려해서 ‘하늘나라’라고 대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세상의 흐름 따라 이 세상의 법대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몹시 험난하고 뭔가 잘못돼도 굉장히 잘못돼 있고, 불의가 많고, 불균형이 너무 많은데, 이것은 고쳐지거나 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굉장히 부조화된 모습으로 언젠가는 종결될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완전히 대체되어서 이 땅에 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나라를 구성할 것입니다. 얼마간 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런 것은 너무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의 창조하신 능력에 비한다면, 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우리는 주를 위해 사는 삶을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믿음이 원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런 정신을 닮아 있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고 하나님 품에 계셨는데 이 땅에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을 알려주시고, 그의 뜻을 알려 주시고, 십자가에 오르셔서 자기를 내어 주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위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분명히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예수께서 죽으셨고, 또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당세대의 사람들이 믿음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승천한 사실을 전달한 사람들이 또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그들이 본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전하는 것인데,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엄청 크게 역사했습니다. 성령이 이 땅에 임하셔서 개인들에게 떠나지 않고 임하시면서 역사하시는 동안, 초대교회가 로마의 폭정과 또 유대교의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살아갔습니다. 로마를 견딜 정도였으니, 그들은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하늘에 가기 위해 자기들을 구하러 오신 하나님의 부활 사실을 듣고, 그 믿음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은 죽질 않았습니다. 모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거든요? 그가 부활하시고 승천한 사실이 그의 성육신 사실 자체를 또 복합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이런 놀라운 비현실적인 사실에 대해서, 또 예수께서 이루셨던 그 많은 일과 합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이 땅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 인생에 우리 모두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로마의 지배 속에서도 굉장히 내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핍박이 있을 때는 숨어서 부흥시키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태리 같은 데에는 ‘까따꼼베’라고 불리는 지하에 굴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들이 바로 복음의 전도자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머리에 복음이 들어 있는데, 그들이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애를 썼던 것입니다. 우리는 ‘굴이 많다.’ 이렇게 하겠지만, 그들은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인생을 내놓은 것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산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절충하여서 이 세상 사는 사람들의 많은 풍습을 함께 나누고 어느덧 우리의 태도도 이 세상의 물결에 많이 좀 적셔져 있고, 함께 어울려 가는 모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그리스도 교회의 모습이 당시와는 많이 다릅니다. 또 각 나라마다도 다릅니다.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사회, 문화, 정치에 따라서 모습이 다 다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도 온하진 않습니다. 오늘 이런 모습이 온전하다고 보면 안 되고,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처음 어디선가 상실되어 버렸다면, 그들의 모습과 진정한 추구? 참 정신? 그들의 참 집념? 강력한 그 소원? 이런 것이 상실돼 있으면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좀 가짜입니다. 모든 것이 온전한 그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입니다. 때로는 진정한 취지, 진정한 그런 소망을 잃어버리고 원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대체해서 쭉 이렇게 나아갔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래도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놀랍게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세상에서는 인정하지도 않는 그런 것이거든요? “우리, 믿음있다.” “어디 증명해봐라.” 하면 증명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에 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네 마음에 임하고, 나도 너에게 임할 것이다. 내가 네 안에 있는 것을 네가 알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처럼 나도 너 안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안에 계시는데, 그것을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깨지질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아내가 나이가 들어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리라고 했으니까 아브라함 그냥 ‘그러리라고 믿는다.’ 했습니다. 그는 정말 순진한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너무 정말 미련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신 자세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지만, 이것이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준비해 주신 우리의 모습들을 자꾸 되찾고, 자꾸 지키려 해야 되는데, 항상 현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많이 변했습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게,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하다가 나중에는 백두산까지 갑니다. 원숭이 궁뎅이가 어떻게 백두산이 되냐 싶은데, 이렇게 자꾸 변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는 한마디로 ‘로마를 견딜 비밀 작전이다.’ 난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머릿속에 너무 선명합니다. 난 ‘그리스도의 교회’ 하면, 이것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순수하게 그렇게 결론 짓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이거 잊지 마라.’ 이렇게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가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면, 다 쓸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오늘같이 인권 이런 거, 당시에는 그다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거 그냥 다 제거해 버리자.’ 하면 아무 마음의 부담 없이 제거하면 그만입니다. 옛날에 공정한 사회법이, 어떤 위력있는 사회법이 있었겠습니까? 가서 죽이라고 하면 죽이면 끝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비밀작전 에이전트입니다. 다 군사들인 것입니다. 어린아이고, 여성이고, 노인이고 관계없습니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이 경찰에게 쫓기고, 군인들에게 쫓기면서 도망가다가 어느 지점을 통화하자 어떤 할아버지가 그곳에 커튼을 내려서 싹 가려주고 모르는 척 그냥 서 있습니다. 군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으! 어디 갔어?” 이러고 가는데, 군인들이 다 지나간 다음에 도망치던 그 사람이 커튼 뒤에서 나옵니다. 다 같은 편인 것입니다. 이 노인은 무엇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70~80년 살았는데 그 가운데 30년을 예수 믿었는데 그 인생은 교회를 위해서 섬기고 가는 것입니다. 가고서 그 나라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사랑하고 도왔기 때문에. 이처럼 군사로서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망각증이 있습니다. ‘그에게 생각이 있으랴? 마음이 있으랴?’ 옛날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약스러운 그런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생각이 있으랴?’ 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 못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왔을 때는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드려집니다. 내 인생에는 내 삶도 있습니다. 내 직업이 있고, 사회에서 나의 어떤 위치가 있고, 내가 하는 일이 있고, 내 인생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크리스찬입니다. 내 인생은 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으라 그러면 죽고, 죽는 척하라면 죽는 척해야 되고, 내 스스로 알아서 주님을 섬기고, 주의 교회를 위해 나는 나를 투신해서 드려야 합니다. 주의 교회, 주의 사역이, 주께서 이 땅에 이루시는 일들을 잘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개인의 이야기를 하질 않았습니다. 난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내 궤변도 하지 않고, 다른 해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동안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주시는 가장 기초적인 애기를, 어린아이가 들어야 될 그런 얘기들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주께 쓰여지고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가치인 것입니다. ‘이 죽은 사람은 아쉽게 죽었는데 어쩌지?’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하늘에 데려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를 부르시려고 책에다 기록하셔서 그날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그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하늘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습니다. 저 바다 밑에서 끄집어내고, 멀리 잃어버린 파편이 된 그의 몸을 다 찾아내신다 그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가 ‘나중엔 저 어떻게 해야 되죠?’ 하고 헤매고 있어서 아무도 그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시작하셨다면, 그 피를 흘려서 구원한 사람을 끝끝내 찾아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모든 권세나 세상의 흐름이나 어떤 천사들도 절대 하나님과 우리를 가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보혈의 주님, 보혈을 흘리신 주님은 나를 영원히 찾아내실 주님입니다. 그걸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데 크리스찬이라 할 수 있을까요? 가짜 크리스찬들도 많습니다.
과거 우리 교회 사태가 나기 직전이었습니다. 사태 나기 몇 달 전인데, 본래 우리 교회에는 권사 임명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너무 위험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아픔도 많이 있었기에 교회의 전통을 깨고 부담을 갖고 권사를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연세드신 여성 성도들이 심사를 받는데, 저도 몇 군데 참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바꿨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제가 알고 싶은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김성현 목사에게 충성하겠습니까?’ 나에게 하나님처럼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그의 인도를 잘 받겠습니까? 내 지도를 받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권사 임명은 우리 교회 전통에 없는 일이었지만,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그러한 성도들을 얻어야겠다.’ 해서 다짐을 하고 했던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당하다면 부당한 것이겠지만, 나는 교회 살리려고 질문을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김성현 목사를 순종하면서 우리 교회 성공을 위해서 다 헌신하시겠습니까?” “아이, 물론이죠, 네.” 그런데 그렇게 ‘네’ 한 사람들이 교회를 반대하는 쪽으로 가서 굉장히 강하게 저를 반대하는 일을 앞장서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성도들로부터 ‘권사’로 불리면서 대단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세상의 영광을 교회에서 누리며 즐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너무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만일 저라면, 내가 그 목사님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약속을 했다면 난 그 목사님을 끝까지 보필하면서 그 뜻을 따르면서 교회를 성공시킬 것입니다. 목사님이 ‘나에게 유익을 갖다 줘.’ 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서 했다 하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니까 저 목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승리시키려고, 하나님의 일을 승리시키려고 하는 건가 보다.’ “네 하겠습니다.” 하고 내 하나님의 보는 앞에서 내 임무를 다 할 것입니다.
또 사태가 나자 ‘아, 우리 예배당 슬쩍 본부로부터 독립해볼까?’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아, 이거 내가 교회를 차지해 볼까…?’ 하는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혼을 맡겼고,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 어떤 자는 위기 가운데 있어 할 수 없이 그에게 일을 주었는데, 그랬더니 탐욕이 생겨서 교회를 배반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성락교회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해야 합니다. 이 기억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옥에서 꺼내진 자가 지옥에서 하던 짓을 다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천국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예로운 제자들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곳입니다. 누가 경쟁해서, 권모술수로, 궤술로 다른 사람을 제거하고 왕이 된다? 똑똑한 사람이 된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머리를 본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속을 본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사람 속의 무엇을 보든, 하나님이 택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새의 아들들을 보실 때에도 훌륭한 겉모습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를 보신다고 그랬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을 믿을 수 있는 심령들이 나타나서 자기 믿음의 분량만큼 자기를 내어 드리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인생을 가야 되니 때문에 직업을 버릴 순 없습니다. 인생은 쭉쭉 가는데, ‘예수 믿는 사람, 전부 직장에서 사퇴 내고 나와.’ 한다면 어떻게 삽니까? 살림도 해야 되고, 교회에도 기여를 해야 되고, 헌금도 해야 되고. 그리스도 교회는 절대 성도들이 자기들이 헌금해서 살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그렇게 했듯이. 직업은 갖습니다. 젊은 우리 성도들도 직업을 갖게 되고 자기의 꿈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나는 뭐 하고 싶어.’ ‘나는 예술인이 되고 싶어.’ ‘나는 특별한 기능으로 난 뭘 하고 싶어.’ ‘나는 큰 회사에 가고 싶어.’ 이렇게 하고서 직장 다니지만, 이 사람의 진짜 신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크리스천, 주께 자기를 드리는 자.
로마서 14장에 보면, 죽어도 주의 것, 살아도 주의 것이라 했습니다[1].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죽어도 주를 위하고, 살아도 주를 위합니다.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규칙 첫 장, 제1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룰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제1번, ‘죽으나 사나 주의 것이다.’” 다만, 지금은 절충을 많이 해오면서 오늘의 모습이 된 것이지, 본래 그리스도인은 죽으나 사나 주를 위해 사는 것,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도 해야 되고, 사람들이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절충해 온 것입니다. 부족하지만은 용기를 주고 가고, 또 교회들도 때로는 군집을 형성해서 그들의 또 어떤 운동력을 가져야 되고, 살림도 해야 되고, 교회가 이렇게 나온 것인데, 사실 그렇게 절충하지 않고 살아도, 그리스인이 군중에 숨어 있어도 자기 위치에서 주님을 살리고, 주님의 사역을 살리고 자기 인생 마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일할 때 “이걸 좀 도와주십시오.” 하고 고민해서 임무를 주는데, 보면 제가 원하지 않는 오히려 반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일을 맡기기가 어렵습니다. 맡기면 돈에 약해지고 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 불쌍해서 내가 살려주려고 했는데, 배반을 합니다. 이런 일들을 거울 삼아서 ‘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아니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1절에 보면, 죄를 범하던 그 육신은 끝났다고 했습니다[2].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는 것입니다. 세상으로선 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없다. 나는 그냥 없는 존재다.’ 죄의 사욕의, 탐욕의 이런 시대라도 주의 앞에 가서는, 주의 교회에 가서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연약해서 세상에서 정직하지 않게 뭘 했는지 몰라도, 주의 교회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곳에서, 힘겹게 영혼들을 구원해 가고 있는 이곳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너희가 법 안의 있지 않고 너희가 은혜 안에 있다[3].’ 했습니다.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라.
디모데후서 1장에 보면은,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사망을 이기신 그분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는데, 12절에 보면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했습니다(딤후 1:12).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내가 확실히 아네~♬” 하는 찬양의 가사처럼, 나는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를 의탁하고, 나는 끝나는 것입니다. 나는 끝[4]. 주께서 사용하시면 사용하고 아니면 난 끝입니다. 얼마 안 되지만, 한 두어 달 죽어라고 애를 썼는데 하나님이 “넌 끝 가, 잘했어.” 그럼 끝난 것입니다. 내 평생 이 두 달을 위해 주를 위해 쓰여지면 끝인 것입니다. 할렐루야고, 그가 나를 데리러 오실 것을 영광의 소망 중에 기다릴 뿐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기회주의자, 그런 거 없습니다. 누가 강도당해서 쓰러져 있으면 가서 도와줘야 합니다. 아무도 상관 안 하려고 해도 그리스도인은 불편을 겪으면서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속셈을 가지고 있고, 궤술을 가지고 노련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자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의 어린아이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 어린아이는 개와 그 형편이 비슷했습니다, 굉장히 지위가 낮았습니다. 그런 처지인데, 순진하고 그 마음에는 궤술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이 간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마음에 임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장에 보면, ‘내 영혼은 하나님께, 조물주께 부탁하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이때부터는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담당하시는 것이다.’ 했습니다[5].
우리 교회는 ‘누군가 하겠지.’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처럼 싸워서 교회를, 혹은 신학교를 강취해 가려 하는데, 그러면 경영이 잘 되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이 경영이 옛날 식으로 사장이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지시만 하면 되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앉아서 지시하면 될까요? 세상에서도 안 되는데 하나님 나라에서 될 것 같습니까? 재능이 있으면 될까요? 재능도 없는 사람이 그러면 더 답답하죠. 열심이 없는데 그러면 더 답답합니다. 그런데 재능이 있고, 열심이 있고, 다 있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일이 있습니다. ‘뭐 크게 못하더라도 부서지면 돈 부스러기라도 주울 수 있겠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교회와 다 연결돼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우리 학교에서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지 마세요.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가증스럽게 이용해먹지 마십시오. 저는 다만 자기가 하나님 앞에 온전치 않더라도 적어도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은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범죄하지 않고, 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차라리 죄송하고, 회개하는 가운데 보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지 않는 심령들이 와서 교회를 그냥 뺏어서 어떻게 해 보려고 그러고, 위기가 오면 교회에 기회주의자들이 몰려들고. 예배당이 본교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사태 전부터 그랬습니다. 어느 예배당이든지 다 성락교회입니다. 이제 그러지 맙시다. 어느 예배당이든지 성락교회고, 본부에서 지휘하는 것입니다.
사태 나자, 어디 예배당은 어떤 장로라는 분이 ‘이 예배당은 내가 대장이다. 우리 교회 건드리지 마라.’ 하는 식으로 나옵니다. 그 영혼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위하여 몸을 찢으시고 피와 물을 흘리시는 주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가 사랑하시는 방법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믿으시기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것은 이 믿음뿐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하나님의 심령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알고, 여러분의 심령의 기준으로 세우고, 모든 가짜 정보가 올 때 다 물리치고 이겨내야 됩니다.
다만, 여러분, 기억하세요. 때로는 걱정스러운 일이 많으니까 이렇게 부정적인 얘기도 많이 하지만, 설교는 원래 이렇게 경고를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면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영원한 나라로 영원히 데려 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천지차이입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해서 교회에 좀 도움이 되고, 헌금도 좀 내고, 교회에서 좀 직분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 심령도, 여러분 심령도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 교회를 위하여 진짜로 준비된, 예비된, 세워진 그 역할을 해야 될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내 사회적인 위치, 사회의 김 아무개, 이 아무개, 박 아무개는 이를 위하여 보조된 내 보조 인격입니다. 이 부분을 혼동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생을 결단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한 교회에 성령이 성도들과 함께 있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군중들 가운데 말씀이 선포될 때, 여기에 성령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동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을 때, 우리가 주 하나님의 영광을 말할 때,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그리스도에 대한 결단을 말할 때 여기 성령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엉뚱한 데 가서 성령충만을 구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하나님께 자기의 신실함으로 회개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순수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는 자, 여기에 성령충만이 있는 있습니다. 천국이 있는 자가 성령충만하지, 천국이 없는 자는 성령충만할 수 없습니다. 주를 위해 사는 성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회주의자들은 어려우면 손을 뺍니다. 그런데 성경은 ‘박해가 일어날 때도, 즐거움으로 한다. 내 박해의 때는 내가 괴로움에 처해지고, 불안에 처해지고, 실패에 처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강하게 하셔서 견디게 하는 나의 기회다[6].’라고 했습니다. 주를 위해 사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우리는 주를 위해 사는 성도들입니다. 내 영혼은 주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주의 교회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주의 하시는 일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이 자세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인 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나의 영혼, 주님께 기쁨이 되는 내 영혼, 사용되고 싶습니다. 나를 헛되이 세상에 버리지 않고 내 주인을 버리는 모습, 절대 나타나지 않게 하옵소서. 주를 위해 사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생명 주시고 또 당신의 그 위대한 나라에 일을 이루실 때에 사용하시오니 감사드리오며, 우리 모두 죽으나 사나 오직 주님을 위해 사용되는 참 그리스도인 군사들, 그리스도인 군사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시고, 주님의 나라에 기여하는 자가 되시고, 주께서 준비해 놓으신 거룩한 성도들, 진정한 의미의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
[2]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1~14)
[3]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4]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0~12)
[5]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하찌어다(벧전 4:19)
[6]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출처] 20241201 주를 위해 사는 성도들(고린도후서 5:15~17)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