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명작산책
/이미령 지음
내 인생을 살찌운 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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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청춘을 지나오며
05. 천천히 소리 내어 읽게 만든
[꽃신 ] - 김용익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도시에서 슬쩍 밀려나가
지방의 어느 한가한 마을에서
살림을 차렸을 때입니다.
지갑에 천 원짜리 지폐 몇 장 넣고 나가
책을 사들고 들어오는 게
내 유일한 사치였던 시절 이 책을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화려한 상품들이
신혼의 나를 끝없이 유혹했지만
지갑을 톡 털어 책을 한 권 사서
완행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면
울컥한 충만함에
수확이 끝난 저 너른 평야를
다 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꽃신] 이라는 낯선 책을 사게 된 건
어쩌면 신혼의 내게
어울리는 단어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책의 겉표지에 쓰여 있는
해외 한국문학상 수상작품 이라느니
구미 10여 개국에서 극찬한
‘마술의 펜’ 이라는 찬사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집게 했습니다.
주인공 상도는 백정 집의 외아들입니다.
옆집에는
곱디고운 꽃신을 만들어 파는
꽃신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하필 꽃신장이의 외동딸을
상도가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상도와 꽃신장이집 딸은
언덕을 두 개 넘어 학교를 함께 다녔고,
제 아비가 만든 꽃신을 신은 소녀는
나비처럼 언덕길을 넘어 다녔습니다.
마을 아낙네들은
부처님처럼 그녀 눈 사이에 난 사마귀와
볼의 보조개를 보고 남자깨나 끌겠다 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그녀가 신은 꽃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발이 부르틀까 봐 흰 버선을 신었는데
학교로 가는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보다 뒤져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이 오목한 선과
배 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보았다.
그 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가 온 다음 날 물이 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등에 꼭 매달렸는데
나는 내 허리 양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백정이나 꽃신장이나
살아있는 소를 잡는다는 점에서는
맥이 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산짐승을 잡아 고기를 파는 백정에 비해
꽃신장이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혼례에 신을
신부의 꽃신을 만드는 자신의 직업을
늘 높이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혼례를 올리는 날이면
배를 불릴 수 있는 고기를 사들이는 대신에
꽃신을 한 켤레 사서 새각시에게 신겼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고 인심도 삭막해져 갔습니다.
“우린 풋고추 시절에는
꽃신 없이 혼인 못할 거로 알았지.
우리보다 자식 놈들이 더 똑똑하다 생각지 않소?
그놈들은
돈 먹는 꽃신보다 고기를 사라 하니.”
우리집은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그들이 떠들지 말았으면 했다.
그들이 와서
자식 혼인 얘기를 하고 가는 날이면
신집 사람은
술을 마시고 밤늦게 돌아와
온 동리를 잠 못 이루게 했다.
나는 왜 그가 상심해 하는지 알고 있다.
꽃신을 맞추러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젊었을 시절, 아니, 몇 가을 전만 해도
농부들은 꽃신부터 맞추러 갔었다.
농부들은 신집에서 중매장이 말을 하며
쌈지의 담배가 다 떨어져야 겨우 일어섰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울타리 너머 위를 불러
고기가 얼마 필요하다는 말을 건넸다.……
이제는 해마다
울타리 너머로 신집을 닿는 손님이 적어졌다.
그것은 오래전 일이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우리 집에 와서
고기를 주문하며 혼인 얘기를 했다.
배불리 먹는 게 더 소중해지는 시절이 되자
꽃신장이 집은 지붕을 갈지 못해
내려앉을 만큼 살림이 궁벽해졌습니다.
끼니를 거르게 된 꽃신장이는
어린 딸에게 몇 푼을 쥐어서 상도네 집에 보냈고,
상도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소녀의 손에
고기를 덤을 얹어서까지 들려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끝내 꽃신장이집 외동딸은
기와집의 부엌아이로 가야만 했지요.
가슴을 졸이며 이 과정을 지켜보던 상도는
꽃신장이집을 찾아가
아주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바람을
힘겹게 쏟아내지만
자존심으로 억세어진 꽃신장이에게서
온갖 모욕을 받고야 맙니다.
“백정 녀석에 빚진 게 있다구
내 딸을
홀애비가 부엌뚜기 해먹듯 쉽사리 할려구했지.
백정 녀석이 중매장이 있다는 것을 알 리 있나.
내 딸은
일곱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꽃신장이 딸이야.”
그 말은
그릇이 와그락와그락 깨지는 것 같았다.
부인은 말을 막으려고 미친 듯 소리를 질렀으나
남편의 큰 소리에 눌린다.
“쇠고기 덤이나 좀 있을까 해서
혀끝으로 한 좋은 말이
백정 녀석 마음을 크게 했다.
나는 혼인식 때 신는 꽃신장이다!”
꽃신장이 집 지붕보다 더 처참하게
가슴이 내려앉은 백정의 아들 상도는
꽃신장이 집에 중매쟁이가 드나드는 걸 본 뒤에
부산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전쟁 통의 부산거리에서
제법 묵직한 돈을 만졌지요.
이제는
꽃신을 잊었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 무렵,
스산한 바람이 시장통을 휘감던 어느 날
꽃신 몇 켤레를 난전에 내놓고
사람을 기다리는 어느 늙은이를 발견합니다.
아, 대체 그 늙은이가 누구란 말입니까.
그에게 그토록
모멸감을 안겨준 바로 그 꽃신장이 아닌가요.
순식간에 그 알싸한 추억이 되살아난 상도는
멀찌감치 서서 난전에 놓인 꽃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행여 저 꽃신이 모조리 낯선 이들에게
헐값에 팔려갈까 애를 태우다
사무치게 춥던 어느 날,
눈송이가 하나둘 흩날리던 겨울에
그는 용기를 내어
꽃신장이 부인에게 두 켤레 남은 꽃신을 사들입니다.
부인은 내가 내놓은 지폐를 잠시 보고
신발을 싼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 돈 가지면
이제 버젓이 장사도 치르겠다.”
나는 그 꾸러미를 받지 못했다.
잠든 어린이가 꼭 쥐고 자는 버들피리를
빼앗는 것 같이,
아직도 신집 사람이
꽃신을 꼭 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당신 따님을 위해 이 꽃신을 가지시오.”
소설은
후렴도 없는 짧은 노래처럼 막을 내립니다.
가난하고 적막하던 신혼 시절,
남편의 늦은 저녁 밥상을 차려준 뒤에
묵묵히 그릇을 비우는 남편 앞에 앉아서
[꽃신] 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주었습니다.
혼자서 읽을 때와는 달리
내 목소리에 실린
상도의 가슴 저린 아쉬움이
그렇게나 사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나는 책을 읽을 때면
나지막이 소리를 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참여하는 책읽기 모임에서도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방법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꽃신] 의 내용이 아름다워
낭독까지 하게 되었다지만,
아마 책의 마지막에 실린 저자의 글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소설만큼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만
김용익에게는 학위를 받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글을 쓰는 일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에
도서관에서
시급 50센트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시를 소리 내어 읽던 일을 저자는 추억합니다.
겨울방학 때에
나는 가죽으로 표지가 된 귀중도서 커버를
왁스로 닦는 일을 도서관에서
한 시간에 50전씩 받으며 했는데,
늘 나의 마음에는
장차 내가 쓰는 책이 출판되고
이 빛나고 향기로운
가죽으로써 커버가 되는 꿈을 꿨다.
이층 귀중도서실에선
나 혼자만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두 손이
기름과 왁스에 가득 차서 책 커버를 윤내갈 때에
나는 시집을 한 권
내 앞에 두고 소리를 내가며 읽었다.
시를 읽으면
페이지를 자주 넘기지 않아도 되고
또 그 시에 담겨 있는
선율 있는 목소리가 그리 좋았다.
내 더러운 손으로
그 페이지를 곧 넘길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읽는 시가 중단될 때마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레코드에
금이 가서 바늘이 빠진 것같이 실망했다.
하루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
을 읽고 있을 때
그곳 부도서관장이
바로 내 뒤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도서관측은 아주 엄격히 다스렸으니
나 보고 이 부인이
야단을 칠는지 혹은 파면시킬는지,
내가 그 여자보고
인사도 안하고 쳐다도 안 보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 여자의 까칠한 손이
마치 그 책을 뺏을 것 같이 선뜻 다가오더니
어쩐지 뺏지 않고
그의 손가락으로 한 페이지를 넘겨주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그 시를 마지막으로 읽을 때에
나는 마음이 퍽 감명됐고,
그 시의 마지막은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그것이 그 작은 일에
그토록이나 큰 차이를 가져왔다)’
였다.
이런 습작과 독서의 시간을 보낸 김용익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수도 없이 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보지만
답신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진 돈을 다 털어
비발디의 <사계>음반을 사서 줄곧 들었다고 합니다.
때 마침 창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아련하게 어딘가로부터 걸음을 놓기 시작하여
제앞으로 흔들리며 오는
꽃신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저자의 그 회상은
몇 번을 읽어도 반하게 됩니다.
한편 퇴짜 받은 편지들일 쌓여가는 것을
우두커니 보고 있으면
아마 이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 날
창밖을 보니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데, ……
아주 기가 죽어서 바깥으로 나가
타운에 가서 포켓에 남은 돈을 다 털어
축음기 값싼 것을 하나 샀다.
적어도 음악 듣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비발디의 <사계>를 빌려가지고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 틀면서 들었다.……
한국 꽃신 한 켤레가 나타나더니
눈 오는데 자꾸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마음 가운데서
그 꽃신을 자꾸 따라가는데
그 꽃신 신은 사람의 뒷모습만 보고
조그마한 조각배 같은 흰 버선 신은
꽃신의 뒤축을 내가 자꾸 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작품이 바로 [꽃신] 입니다.
그 후 1956년에 이 작품은
하퍼스 바자 잡지사에서 출간되었고,
어느 아마추어 발레 단체가
이 얘기를 원작으로 발레를 기획하면서
세계 각국에 소개됩니다.
어느 해 설에
한복을 입고 고궁나들이를 나갔다가
신고 나갔던 고무신이 망가지는 바람에
남편을 졸라
새빨간 비단꽃신 한 켤레를 사 신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가게 유리진열대 한구석에
함초롬하게 놓여 있던 꽃신을 보는 순간
소설의 그 싸름하고 달콤한 이야기가
태산처럼 나를 덮쳤고,
꽃신을 사겠다는 내게
가게 점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걸 사는 사람도 있네요.
사람들은 아예
꽃신 따위는 살 생각을 하지 않거든요.”
그 빨간 꽃신은
내 서가 아래에 한동안 놓여 있다가
지금은 상자에 곱게 담겨
신발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글을 소리 내어 읽는 맛이 얼마나 큰 것인지
낮은 평원 위에 펼쳐진 하늘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꽃신] 을 몇 번이나 펼쳐 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허기를 지울 형편만 되면
저 아름다운 순수를 잊지 말자며,
바다를 향해
사공 없는 항해에 나선 조각배처럼
빨간 꽃신은 늘 내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