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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과의 인터뷰>
고요 속의 외침
문학평론가 권영옥
내가 정한용 시인을 인터뷰하고 싶었던 건, 아마 페이스북에서 <디지북스>의 작은시집 원고 공모를 읽었을 때부터이고, 또한 이 시인이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에 독일 쇠핑엔에서 보내는 글을 만나면서부터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에게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용기와 실험정신을 외부 세계로 끌어내어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정한용 시인은 두 분야 모두 관심을 두고,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다니고, 그리고 실천에 옮겼다. 이런 모습을 본 나는 이 시인의 시세계가 무척 궁금해졌다. 『흰꽃』,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을 사서 읽어 보았다. 각 시집마다 단계를 뛰어넘는 시세계가 재미있었다. 시의 끝 맛이 시원한 환기 효과라니! 이에 못지않게 잔잔한 서정의 세계도 엿보였다. 정한용 시인의 시집에서 이 이질적이고, 격식을 깨트리는 조합은 등단 햇수만큼이나 노련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의 시학과 신념, 현실과 그 내면의 따뜻한 정서 속으로 들어가 본다.
권영옥 편집위원: 안녕하세요. 정한용 시인님, 진작 찾아뵙고 인터뷰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우리 『창』 독자들을 위해서 자기소개를 해주시고 근황도 좀 알려주세요.
정한용 시인: 안녕하세요. 이렇게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서, 독자께서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올해로 문단에 나온 지 꼭 40년이 되었으니, 적잖은 세월이 흘러갔군요. 그간 시집을 6권 냈고, 영문 시선집을 한 권 냈고요. 평론을 포함한 문학론집을 4권 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은 아내와 여행을 하고 나서, 아내의 사진과 제 여행 노트를 함께 묶은 ‘사진으로 떠나는 여행’ 시리즈로 5권을 냈습니다. 오 년 전에 34년간 근무했던 교사 생활을 명예퇴직으로 접고, 지금은 여행,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으로 소일하고요. 명퇴하면서 연 전자책 전문출판사 <디지북스>를 혼자 운영하며,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정한용 시인은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평론가로 먼저 알려졌더군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에 먼저 당선되었고, 평론집으로는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이 있더군요. 지금도 평론을 쓰고 계신지요? 혹시 특별히 쓰고 싶은 평론 분야가 있으시다면, 또 그 부분에서 꼭 던지고 싶은 화두가 있으신지요.
정한용 시인: 평론으로 먼저 등단을 해서 그런지 평론가라는 이름을 떼어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2000년대 들어와 평론을 접고 문학평론가 역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지금은 시를 열심히 쓰려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가벼운 산문은 쓰고 있습니다만. 예를 들면 여행기도 쓰고요,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하고요. 문학평론은 아니고, 대중음악, 특히 소위 ‘월드뮤직’에 오래 관심과 애정을 두어서, 연전에 모 월간잡지에 조금 긴 에세이를 연재할 적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그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계획했던 여정을 마치지 못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더 보충해서 단행본 책으로 묶을까, 하는 숙제를 마음에 갖고 있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1985년 『시운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집으로 『얼굴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페』, 『니나 이야기』, 『흰꽃』,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 등 무려 여섯 권의 시집을 내셨습니다. 시집마다 각기 다른 시정신이나 세계관이 보였습니다. 특히 시인님의 시집 중에서 『거짓말의 탄생』은 언어 실험정신이 강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시가 나올 수 있는 것에는 정 시인님의 오랜 시 수련 기간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가능한 시 장르라고 봅니다. 시인님의 시 습작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정한용 시인: 대부분 예술가가 그렇겠지만, 저는 대학에 다닐 때 문학동아리에서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문청을 앓으며’ 보냈습니다. 제가 76학번이니까, 박정희 군사독재가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지요. 빈 강의실에서 스무 명 남짓 모여서, 칠판에 누군가 습작 시를 쓰면 여럿이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그 합평회는 너무나 혹독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했는데요, 마음이 약한 사람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졸업할 때쯤 되니, 세상에 무서운 게 없더군요. 그 친구 중 몇은 지금도 좋은 시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졸업하던 해에 신춘문예로 등단했고요.
권영옥 편집위원: 대부분의 시인들은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합니다. 가령, 어떤 문예이론가의 책이나 철학서를 읽었을 때, 훌륭한 은사님을 만났을 때, 또는 좋은 시집을 읽고 감명 깊었을 때라고 하는데요. 시인님께서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정한용 시인: 처음 시를 쓴 것은요, 흠, 시라고 할 수도 없을 터이지만요. 고등학교 때, 옆자리 친구가 노트에 시를 써서 제게 보여주며 자랑을 했더랍니다. 저는 그게 부러워서 따라서 쓰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이후 연극계로 나가서 지금도 꽤 잘나가는 배우가 되었는데, 시는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썼던 작품은 물론 지금은 단 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유령들』을 읽는 동안 프란츠 파농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여 일어서라! 기아에 허덕이는 노예들이여 일어서라!”고, 이 글을 대변이라도 하듯 이 시집은 세계 피식민지 민중들의 노예화에서 해방을 맞이해야 하는 피식민지 세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 시집을 식민지 국가들의 인종차별 실정과 미래에 대한 호소문이자, 경고문이라고 읽었습니다. 시 전편이 피지배계급을 향한 지배계급의 광폭한 죽음의 학살을 다루어서, 저는, 이 시집이 민족이든 민중이든 탈식민지화이어야 할 피지배계급의 해방 조건의 분석 틀을 제공한다고 보았습니다. 정 시인님께서 『유령들』을 통해 세계 ‘악의 축’을 살피게 된 계기와 전반적인 시집 내용을 좀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한용 시인: 2000년 들어와 인간의 ‘악’의 문제를 살피다 소위 ‘제노사이드 genocide’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고려대 송호근 선생의 『제노사이드』라는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이 용어는 우리말로는 ‘대량학살’이라 옮길 수 있겠지만,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로 그 함의가 일정하게 규정되어 있기에 로마자 표기를 그대로 쓰곤 합니다. 하나의 집단이 다른 집단에 종교, 민족, 이념, 인종 등의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바로 제노사이드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 수년간 저는 치를 떨며 제노사이드를 공부했습니다.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흑인들을 착취한 것부터 시작해, 나치가 유대인을 수백만 명 가스실에서 죽인 것, 일본군이 난징에서 주민들을 강간하고 죽인 것 등을 거쳐, 자유당 정권이 반공을 내세워 제주도민 수만 명을 죽인 것,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가 농민 지식인을 대량 학살한 것,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백 일 만에 80만 명 도륙한 것,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무고한 주민 수십만 명을 죽인 것…… 이 끔찍한 목록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치를 떨며, 저는 이걸 시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르포처럼, 혹은 다큐멘터리처럼 쓰면서, 내가 다다른 결론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 ‘악’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 누구라도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이란 용어를 아시지요? 내 안에 감추어진 악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공존과 배려의 장치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시집 한 권을 이 끔찍한 죽음의 이야기로 채우면서, 저는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고통을 겪었었지요. 시집 『유령들』 끝에는 해설 대신 제가 공부한 참고문헌이 붙어 있으니, 이런 시집은 세상 어디에도 유례가 없지 싶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거짓말의 탄생』에 대해서 궁금증이 많이 일어납니다. 판타지 시 중에서 특히 「굿잡」을 보면, 대량 소비시대에 IT 산업회사의 사주는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역으로 보면 인간을 전염시키기 위해, 계와 계의 혼재와 중첩을 넘어서 신과 악마까지 상품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거짓말이지만 이 거짓말 속에는 시인께서 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한용 시인: 말씀하신 ⸢굿잡⸥은 짐작하셨겠지만,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원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핸드폰과 컴퓨터를 포함해 여러 애플 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은 거기까지, 도시를 만들고 신을 만드는 건 거짓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점차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실제로 애플에서는 VR로 가기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AR을 스마트폰에 곧 탑재할 것이라 합니다. 현실과 가상이 겹치고 무너지며 혼재하는 세계가 코앞에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탈경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게 될 것이고, 나아가 신의 권능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물질보다 기호가 더 우리 삶을 좌우하는 세상, 저는 그 세계가 참 궁금하고, 시인의 눈으로 그 세계를 직시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다른 시인들과 달리 정한용 시인님의 판타지 시에서는 인간의 거짓과 갈등에 대한 서사 구성과 기획이 돋보입니다. 특별히 이런 전략을 세우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요?
정한용 시인: 시집 『유령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무거운 주제라서, 그 시집 이후에 독자들이 좀 더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전략이 판타지였지요. 판타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하나는 예를 들자면, 디즈니랜드의 만화영화 <인어공주>나 <라이언 킹> 같은 방식일 터인데요. 거기에도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지만, 하여튼 동화적인, 즉,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판타지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르헤스의 단편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훨씬 직접적으로 결핍된 세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갈등과 모순을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저는 후자의 판타지가 더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판타지는 거짓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문학에서도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데요. 시인님의 시에서도 그런 변화가 나타납니다. (「유령 방송」,「디지털 맨」)이 디지털 시의 특성은 그동안 냉정한 태도로 대립해오던 환상, 마법, 꿈 등 이런 것들과의 경계를 해체하고 조합하고 재구성해서 장르 간의 혼합까지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시들은 문학과 인터넷, 디지털 환경 사이의 대화까지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아주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부 독자들은 이런 장르끼리의 혼합이 인간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시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한용 시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합니다. 불과 5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디지털 문화가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20년도 안 된다는 걸 염두에 두면 우리가 얼마나 ‘다른’ 세계로 이동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손에서 핸드폰을 놓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이거나, 선택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치라는 것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요,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그 세계는 이미 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년 후가 되면, 더 나아가 한 50년쯤 지나면, 이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끔찍하거나 행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미래의 인간에겐 그것이 그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될 뿐이지요. 그 미래의 인간은 다른 종족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흰꽃』 을 보면, 시의 소재로 ‘눈꽃’, ‘흰꽃’ 이 자주 출몰합니다. ‘흰꽃’은 시인님의 개인적인 상징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정시에서 화자는 시인과의 동일화로 간주되는 예가 많은데, 그렇다면 ‘흰꽃’ 은 시인님의 상처 이전의 어떤 그리움으로 읽힙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흰꽃’ 에 얽힌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한용 시인: 흰색의 꽃이 세상에 많으니, 어떤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봅니다. 하나는 흰색이 주는 순수의 이미지, 다른 하나는 흰 꽃이 사용되는 죽음의 이미지입니다. 저는 그 시집의 시를 쓰던 때가, 벌써 20년이나 지났군요,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하면서도 우울했던 시기였습니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던 때였으니까요. 불가능한 꿈이 죽음 너머에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프게 한 시절을 보냈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정 시인님이 좋아하는 시와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독자들에게 특별히 인기를 얻었던 시가 있으셨는지요.
정한용 시인: 물론 있습니다. 공을 많이 들인 작품과 독자가 호감을 갖는 작품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작품은 단숨에 완성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몇 달씩 걸리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 작품의 완성도와 비례하지도 않고요. 제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나주집에서의 만남’이나 ‘후일담’ 등이 아닐까 합니다. 독자의 블로그나 SNS를 통해 여러 차례 공유가 되었고, 영어로 번역되어 외국의 잡지에 재수록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제가 특히 아끼는 작품은 아닙니다만. 어쩌면 제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최고의 작품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에 나올 다음 시집을 기대해주세요. 하하.
권영옥 편집위원: 시인님은 시뿐 만 아니라, 시와 관련된 외적인 분야에서도 실험정신이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시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거나 마음은 있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정 시인님은 무려 네 차례나 참가하셨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했고, 해외 작가들과의 생활은 어떠했으며, 어떤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지요. 해외 레지던스를 꿈꾸는 시인들에게 해줄 조언도 있으면 함께 말씀해 주세요.
정한용 시인: 권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저는 미국 아이오와와 콜로라도, 독일의 쇠핑엔, 아이슬란드의 라가르바튼 등의 작가 레지던스에 참여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에게 해외 레지던스에 대해서 저는 좀 할 말이 많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관심 있는 분들을 모아놓고 정보를 제공해드리고 싶습니다. 짧게 요약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해외 여러 나라에 예술가를 위해 작업 공간을 일정 기간 제공해주는 곳이 상상 외로 많습니다. 그런 곳을 찾아 해당 기관에서 원하는 양식에 맞춰 지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레지던스는 규모나 형태가 여러 가지여서, 체류비를 주는 곳부터 참가비를 내야 하는 곳까지 다양합니다. 기간도 일 주일부터 삼 개월 이상까지 다양하고요. 레지던스의 가장 좋은 점은 외국 작가들을 만나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한국이 얼마나 좁은지,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작품을 써야 더 넓어질 수 있는지 등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나라 많은 작가가 도전하길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정 시인님의 또 하나의 실험정신이라면 시집 쪽에서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전자책 ‘<디지북스>의 작은시집’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벌써 6차 시집 공모를 보았는데요. 전자책을 어떻게 출판하게 되었는지요. 전자책의 장점이라 하면요.
정한용 시인: 전자책 전문출판사 <디지북스>를 만든 건 원래는 아내와 공동작업으로 ‘사진으로 떠나는 여행’ 시리즈를 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집을 만들 계획은 없었지요. 시집 출판은 힘은 많이 드는데, 수익은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나오는 시집이 수백 권일 터인데, 그 출판 형태가 너무나 똑같아서 천편일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판형도 같고 형식도 같고요. 나쁘다기보다는, 수십 년 간 개성 없이 출판되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지금, 스마트폰 세대에 친근한 새로운 방식으로 출판하면 어떨까 고민해서, 한번 도전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작은시집’ 시리즈를 내면서 “가수가 싱글 음반을 음원으로 팔듯, 시인은 작은 시집을 전자책으로 팔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말에서 어떤 방식의 출판인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권영옥 편집위원: 마지막으로 시인으로서 본인만의 시의 철학은 무엇이며, 향후 어떤 시 장르를 쓰고 싶은지요?
정한용 시인: 저는 시가 더 낮아져야 하고, 더 망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즉 독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독자의 문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답이 너무 막연한가요? 하하. 오늘 인터뷰를 하시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많이 하신 권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씀 나누어서 기뻤습니다.
4월 중순, 철쭉이 율동공원 가로수길을 붉게 물들이는 날, 때 아닌 천둥과 번개가 꽃들 위에 내려앉는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시인과의 인터뷰를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정한 날이 비요일이라니. 코로나로 모든 것을 마비시켜버린 사람들의 공간에 비가 대신 북적거리는 것 같아 슬프지만, 그런데도 우리 시인들은 만기만 하면 하나의 화젯거리로 금방 유쾌해진다. 우리는 디지털 환경의 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오간다. 지금까지 인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았으며, 미래에는 어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의 삶과 시가 확대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에게서 이런 염려와 기대는 판타지 문학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로 이어진다. 전자 출판사 <디지북스>는 시집 뿐만 아니라 디지털 문화관련 책까지도 출간해서 지면 출판사와 차별화된 통합 미디어적인 새로운 감각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고 한다. 정한용 시인에게서 문학과 문화영역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며, 사람들의 섬이 되어버린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분에게 사진 한 장 찍어줄 것을 부탁드렸다. 비 그친 하늘은 회화와 시어가 맞닿은 지점에서 미장센이 되었다.
출처_ 성남문예비평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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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일하시는 귄시인님의 인터뷰 글 잘봤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