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난 없네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1996)
[작품해설]
이 시는 가난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를 노래한 작품으로, 이를 위해 화자는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깨딜은 바를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3게 연은 모두 ‘시-싶다가도 – 생각하면 –네.’라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본 틀 위에다 서로 다른 대상을 나란히 놓고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시와 시집을 긍정하는 것은 물론 그 위상을 제고시키는 효과까지 얻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온밤을 불 밝혀 외로움과 싸우면서 창작한 ‘시 한 편’에 ‘삼만 원’의 원고료가 지급되는 현실에 대해 화자는 시인의 자존심을 내세워 분개한닥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뜻한 밥’으로 환치(換置)시킴으로써 자신의 시가 ‘삼만 원’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시 한 편’의 가치를 단순히 ‘삼만 원’이라는 액수가 아닌 ‘쌀 두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라는데서 시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즉 자본가[출판사]에 의해 책정된 ‘삼만 원’이라는 고정된 가치를 뛰어넘어 ‘따뜻한 밥’으로 확대된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시 한편’이 ‘삼만 원’이 아닌, ‘쌀 두말’로 평가되는 순간, 그것은 이내 ‘따뜻한 밥’이 되어 가난한 화자를 배부르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새롭게 발견된 ‘시 한 편’의 가치는 바로 긍정의 사고 과정을 통해 획득된 것이기에, ‘따뜻한 밥’은 곧 ‘긍정적인 밥’이 되는 것이다.
2연에서는 ‘시 한 편’이 ‘시집 한 권’으로 바뀌면서 ‘든 공’은 ‘삼천 원’이 된다. 그리고 ‘쌀 두 말’은 ‘국밥 한 그릇’으로 대체된다. 그런데 ‘시집 한 권’이 ‘국밥 한 그릇’이 되는 시점에서 화자는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주기를 소망한다. 돈으로 가치를 매기면 ‘삼천 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국밥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가치로 확대되는 순간, ‘시집 한 권’의 가치는 경제적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허가를 채워주는 ‘국밥 한 그릇’이 되어 그들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게 된다. 그렇지만 화자는 자신의 시집이 아직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도 넉넉헌 형편이 못 되지만, 자신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든 베풀면서 살고 싶다는 자기 긍정의 자세를 드러낸 것이다.
3연에서는 ‘삼천 원’짜리 ‘시집 한 권’을 팔았을 때 화자에세 돌아오는 인세(印稅)가 ‘삼백 원’이라는 사실을 말하지만, ‘삼백 원’이라는 돈이 ‘굵은 소금 한 됫박’을 살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 화자는 ‘상할 마음 하나 없’는 ‘푸른 바다’와 같은 넉넉함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여기에서 ‘굵은 소금 한 됫박’이 갖는 의미는 화자가 이 시대의 ‘빛’ 과 ‘소금’이 되겠다는 의지와 소망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소금 한 됫박’은 자연스레 ‘푸른 바다’로 이어짐으로써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마음만은 늘 부유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가소개]
함민복(咸敏復)
1962년 충청북도 충주 출생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98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수상
시집 : 『우울씨의 일일(一日)』(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