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마지막 날.
5일 간의 추석연휴 첫날.
아득히 오래 전부터 추석이라 해도
나는 갈만한 곳이 없었지.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론 고향이래봐야
증조부께서 남기고 가신 산자락 군데군데
천주교 묘지에 봉분들만 댕그렁할 뿐이었기에
굳이 도로를 메운 귀성차량에 휩쓸릴 까닭이 없었지.
아침과 저녁식사를 누룽지로 떼운 덕인지
변비가 사라지면서 평소보다 세 배는 될만큼
엄청난 양을 두 차례에 걸쳐 변기로 쏟아버린 뒤
다섯 시 넘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네.
음식점 세 군데 중 두 군데는 휴가중이었고
치킨집도 대부분이 휴업중이라서 마땅하게
저녁식사를 할만한 곳이 보이지 않더군.
매일처럼 24시간 영업하던 전주 콩나물국밥도
띄엄띄엄 시간을 토막내서 영업한다고 적혀있기에
밥 대신 짜장면으로 요기를 하고 운동장엘 갔지.
어젯밤에 시골 간다며 4층으로 올라왔기에
안아 본 레오와의 기억이 곳곳에 서린 종합경기장.
드문드문 수리를 진행하고 있는 오솔길 옆 둔덕에선
이미 낙엽을 떨구기 시작한 나무들이 빛깔 바랜 잎을 달고
거의 다 옷을 벗어버린 모과나무엔 작은 열매들이
어미돼지 젖을 빠는 아기돼지들 처럼 옹기종기 매달렸더군.
아마도 오랜 장마와 홍수 땜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가봐.
소나무 숲 건너 돌 위에 앉아 손주 생각에 젖었을 제
세 번째로 기별이 오기에 가까운 공중화장실 변기에 앉아
다시 대장에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오물을 쏟아 버렸다네.
오랜만에 되짚어 보는 산책길이라 오래도록 웅크렸던
위장이 때맞추어 활발하게 운동을 개시했던가 봐.
이제서야 마음과 더불어 뱃속이 가벼워진 느낌이라니...!
오뮬을 많이 쏟아내서인지 오늘따라 숨도 가쁘지 않더군.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걷고 또 걸었지.
걷다가 다리에 까지 뻐근함이 올라오면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눈에 띄는 것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네.
오가는 차량과 드문드문 걸어가는 사람까지 신기해 보이데.
마치 낯선 도시로 여행온 나그네 처럼...
본격적으로 스트레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7월 하순 이후론
다이소에도 들러 볼 겨를이 없었기에 무언가 필요한 게 없을까
궁리해 보니 목에 걸 마스크 걸이가 생각나더군.
3층으로 부터 두릿대며 찾아보다가 1층으로 내려갔지.
성인용 줄은 다 팔리고 아이들 것만 남았기에 다른 물건만
두 가지 골랐는데 안 와본 사이에 자동판매기가 준비됐더군.
스캐너로 물품의 바코드를 찍은 뒤에 회원번호를 누르고
카드를 넣으니 저절로 결제가 완료되더구만.
[Web발신] 농협BC(8342)승인 이*성님 2,000원 일시불
09/30 19:26 주식회사 아성다이소 누적676,727원
다시 걸어서 판다팜으로 가니 마스크용 목걸이가 여러가지
구비돼 있기에 기다란 걸로 하나 골라 목에 걸었다네.
집에 와서 네번째 변기에 오물을 쏟아냈지.
위장에 그새 얼마나 많이 쌓여있었던지 아직도 배는 불룩한 상태야.
매일처럼 걸으면서 일상의 리듬을 찾게 되면 머지않아 부풀어 올라
단단해지기까지 했던 배가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 같네.
책을 읽어 보니 마음은 물론 몸도 내가 통제할 순 없는 것이더군.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제어하긴 불가능하고 다만 보조적인 역할이
가능할 뿐인데, 그것이 일상에서 섭생을 조절해 주는 거라는 얘기였어.
나같은 보통사람에겐 나의 생각도 감정도 행동도 내 것이 아니었던 거지.
그랬기에 뱃속에 오물이 그득하고 맘이 그토록 피폐해졌던 거였나벼.
비러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