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소감 한마디
유유상종(類類相從) 최고야
단솔 신현우
주민센터 컴퓨터실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의욕이 넘친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어르신들로 인해 분수를 모르고 열정을 피워 올린다.
홈페이지를 잘 만들어야 되겠다는 뜻을 실천하기 위해 웹디자인을 배우기로 했다.
시간과 일정을 맞취 보려고 여기저기를 탐색하다가 어느 IT직업전문학원을 선택했다.
야간수업으로 4개월간 진행되는 수업에 등록을 마쳤다.
네 시간 수업을 받으려면 왕복교통시간을 합쳐 여섯 시간 반을 투입해야 한다.
무리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배우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수고이니 잘 참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수강생은 모두 이 삼 십대 젊은 사람들이다.
늙은이가 뒷자리에 붙어 앉은 걸 보고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취했다.
일흔이 넘으신 분은 학원이 생긴 후 처음이라고, 상담 맡은 학원교감이 귀엣말로 전한다.
"수강을 잘 마치시면 종강하는 날, 상을 드릴께요." 나를 격려하는 말이었다.
강의가 셋째 주에 이르렀다. 일러스트 과목이 끝나고 포토샵 강의로 들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수업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학습 진도를 따라가려면 집에서 열심히 복습을 하여야 한다. 그 실천이 매우 어렵다.
주변에 널린 일이 너무 많아서다.
화요일에는 더욱 힘이 든다.
오후 시간까지 강의를 마치고 나면, 집에 들르지 못하고 학원으로 가야한다.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은 겨우 이십분,
김밥 집에 들려 급히 식사를 마친다.
숨 돌릴 사이 없이 야간 수업이 계속된다.
저녁 식사 후라서인지 졸음이 몰려온다.
노인들은 낮잠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컨디션이 유지된다.
컴퓨터 책상에 앉은 채로 두팔로 턱을 괴고 눈을 감아 본다.
이렇게라도 해서 피로를 조금 풀어보려는 것이다.
오늘은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으니 피로할 수밖에 없다.
내려 앉는 눈꺼풀을 치켜떠 보지만 소용이 없다.
머리까지 지근지근 아파오는 느낌이다.
밤 아홉시가 되면 수업이 끝난다.
출석단말기에 수강카드를 체크하고 학원을 나선다.
전철을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기다려 산동네 아파트에 도착한다.
집 앞에 이르면, 비로서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아내에게,
“내가 너무 피곤해.” 이렇게 호소하고 싶지만, 입을 다문다.
“누가 그 짓을 하랍디까.” 핀잔만 돌아올 것이 뻔하다.
별일 없는 듯 무던한 표정으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는다.
오늘은 이렇게 고달픈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수업시간.
자리를 돌아보니 몇 명 안 되는 수강생이 더 줄었다.
강사의 말이 빨라서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뒷자리에 앉아서 칠판을 보려면, 안경 두 개를 번갈아 썼다 벗었다 해야 한다.
강의는 젊은 사람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내가 더듬거리고 있는 사이 수업진도는 저만치 앞서 나간다.
한 번 더 설명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될 분위기다.
젊은 총각 강사는 내가 수업을 따라잡지 못하는 걸 알아차렸는지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선생님 여기 좀 봐 주세요.”
지나가는 강사를 내 곁으로 부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주책없는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지금 애를 쓰고 있다.
오늘은 어쩌다 칠분 늦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준비가 없으면 학습도 흔들린다.
작업창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첫 화면 클릭 위치를 찾느라 시간이 걸린다.
더듬거리는 사이 수업진도는 저만치 앞서 지나가고 있다.
설명이라도 제대로 들어보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 칠판을 본다.
역시 소용이 없다. 조명이 낮아서 뒷자리에서는 내용파악이 어렵다.
겉돌기만 하는 수업.
개별 지도를 더 이상 바랄 수도 없고,
나는 닭 쫒던 개 모양으로 허공만 친다.
강사가 젊은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은 취직을 해야 되는 절박한 사정이고 나는 소일(消日)이다.
잠시 쉰 후 강사는 수업을 계속진행한다.
“자, 여기 보세요. 문서를 열어 놓으시구요. 나를 따라하세요. ^^^ 다 되셨지요?”
내 앞줄의 청년이 “예” 하고 대답한다.
대답 없는 사람을 위해 다시 한번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냥 넘어간다.
수업 흐름에 방해가 될까하여 질문을 참는 내 마음은 무겁다.
어느새 나는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부진자가 되어 버렸다.
즐거움을 느껴야 할 시간이 고역의 시간이 되고 있다.
단축키를 암기하면 작업 속도가 빠르다.
간단한 것도 노인에게는 어렵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연습이 부족하였으니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수강을 시작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젊은 사람들을 앞서가지는 못해도 따라 갈 수는 있은 것이다.
내가 비록 노인이라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학습을 접하고 보니 상황이 다르다.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 되었고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졌다.
겨울날씨는 혹독하게 춥다.
마을버스를 갈아타려면 십분씩 기다리기가 예사다.
오늘은 좀 편해 보려고 승용차로 나섰으나 십 분이 늦었다.
‘이렇게 수고 할 필요가 있는가.’
내 머리 속에서는 반심이 들기 시작한다.
‘쓸모없는 늙이’란 말이 거저생긴 말이 아니로구나. '
'차라리 혼자서 인터넷 학습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은근히 약이 오른다. 늙은 내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조용히 물러서자.’
"수업 다 마치지 않고, 먼저가요."
사무 아가씨에게 한마디 말을 남기고 학원 문을 나섰다.
배움에는 한계가 있다. 레벨이 맞아야 한다.
노인은 노인에게 배우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더 좋은 강사, 능력있는 강사가 되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이제부터 노인들에게 더 친절히 대하자.
멀리서 찾아오는 그 열성을 귀하게 여기자.
노인들의 외로운 심정을 내가 보듬어 주자.
그래, 인생살이는 역시 유유상종(類類相從)이야.
<2009. 동짓날 씀>
첫댓글 어쨋든 대단하십니다.
젊은이 못지않은 샛별님의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IT전문학원에서 공부하는 젊은 학생이나 선생님들도 아마 類類相從이라고는 하시는 샛별님의 연령이되어서도 지금 샛별님과 같이 왕성한 의욕들이 있을까요? 건강유지 잘 하시고 지금과 같이 활동적인 모습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샛별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찌 되었든 애 써서 공부 하신것 만큼 어떤 형태로라도 남아 있다고 봅니다. 노인들은 노인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똑똑한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특히 IT분야에 관해서 말한다면 현실적으로 볼 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 봐서도 그렇고, 다른 노년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5년 이상 열심히 노력해 공부한 노년은 '전문가'이지 우리가 말하는 '노년'은 아니지요. 그리고 노년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노년들이 쉽게 따라 배울수 있는 교과서(지도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기회있으면 또 얘기하지요.
대단하신 우리 선생님!! 위의 글은 잘 모르지만 훌륭한 수필로도 특상감 입니다, 노년의 대열에 동참하는 세대인지 그런지
그내용이 머리에 선하게 그려지고 화면으로 바고 보고있는것 같은 느낌을 갖게합니다 열정이 쇠를 녹일것 같지만 좌절이 아닌 노인의 한계를 실감케하는 대목임니다 미리 겁먹고 근처에 얼신못하는 사람들보다 한번 부디쳐보고 물러서는 모습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음미하고 본받을만한 이야기 입니다 잠시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있으시지는 아니하였는지...? 최종적으로 유유상종이라는 약으로 치료를 하셨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화이탕 우리 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