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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병천카페, 동탄 지구촌사랑교회[성령전인치유목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병천목사
생사화복의 결정권이 우리의 입에 있다 하십니다.
260719(주일오전)
에베소서 4:29~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좌우에 계신 분들과 따뜻한 눈빛으로 인사 나누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좋은 날을 주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일주일 동안 주로 어떤 말, 어떤 행동을 가장 많이 하셨습니까?
"아휴, 힘들어 죽겠네",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그 사람은 왜 항상 그 모양일까?" 이런 부정적인 말이었습니까? 아니면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라는 소망의 말이었습니까?
[한 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중세 유럽의 한 마을에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고 늘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말 때문에 이웃이 큰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마을의 지혜로운 신부를 찾아가 고백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뱉은 입술의 죄를 용서받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지은 말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을까요?"
신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여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집에 가서 닭 한 마리를 잡아 그 깃털을 자루에 담아 오십시오. 그리고 마을 광장 한가운데 서서 그 깃털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십시오."
여인은 영문도 모른 채 신부가 시킨 대로 깃털을 바람에 모두 날려 보낸 뒤 다시 돌아왔습니다.
"신부님, 말씀하신 대로 다 했습니다. 이제 제 죄가 씻어졌습니까?"
그러자 신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남았습니다. 다시 광장으로 가셔서 바람에 날아간 그 깃털들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자루에 도로 담아 오십시오."
여인은 당황하여 소리쳤습니다.
"신부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바람에 사방으로 날아가 버린 깃털을 어떻게 다 찾아온단 말입니까?"
이때 신부가 엄중하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당신의 입에서 나간 부정적인 말과 험담이 바로 그 깃털과 같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고, 그것은 아무리 후회해도 결코 온전히 거두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입술을 열기 전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심코 던진 비난과 불평의 말과 행동은 바람에 날아간 깃털처럼 우리 손을 떠나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킵니다. 거둘 수 없을 때 후회하기보다, 처음부터 우리의 입술과 행동을 조심해야 세워야 합니다.
(잠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 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 히. נֶפֶשׁ, nephesh ; 영혼, 생명)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전 5:2-3)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말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고, 우리가 내뱉은 그 말들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고 정죄함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 12:36-37)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1. 부정적인 언어와 행동의 파괴력
오늘 본문 2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
여기 '더러운 말'의 ‘더러운’ 이라는 헬라어 '사프로스(σαπρός)'는 '썩은, 쓸모없는, 부패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썩은 음식을 먹으면 몸이 상하듯, 들었을 때 듣는 사람의 영혼과 공동체의 결속을 갉아먹고 부패시키는 모든 말이 'σαπρός'입니다. 비방, 원망, 거짓말, 이간질, 뒤담화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1)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불평과 비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세월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쓰러져 간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전쟁 때문도 아니고, 굶주림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 주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민 14:28) 『...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부정적인 말은 영적인 전염병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불평은 순식간에 온 공동체로 퍼져나가 소망을 꺾고 불신을 낳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 험담하는 말, "우리는 안 돼", "해보나 마나야" 하는 패배주의적인 언어는 성령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무서운 걸림돌이 됩니다.
2)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행동
본문 30절을 보십시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부정적인 말과 행동, 즉 분노를 터뜨리고, 미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평화의 영이시며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배척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영을 아프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도장을 받은 사람들(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신분에 걸맞은 품격이 우리의 언행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특별히 성령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 안에서 더욱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더욱 더 잘 해야 합니다.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 점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요, 나중에 자신의 장인까지 되었던 사울 왕이 다윗을 너무도 억울하게 했고, 심지어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계속해서 그를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사울 왕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부정적인 언어나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그의 고백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대상 16:22)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다윗은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기에, 사울 왕이 비록 틀렸고, 악했고, 억지를 부렸지만, 그는 절대 사울에게 부정적인 언어나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에게는 이미 사울보다 더 큰 기름부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바로 그 점이 다윗과 그의 가문이 계속해서 왕의 기름부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부정적인 말과 행동, 즉 분노를 터뜨리고, 미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일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그런 언어와 행동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2. 긍정의 언어와 행동을 세우는 원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정적인 틀을 깨고 긍정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본문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1)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
(엡 4:29 下) 『...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우리의 입술은 비판이 아닌, 세움을 위하여 주신 도구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단어가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보수하는 것을 뜻하는 '오이코도메(οἰκοδομή, oikodomē)'입니다. 방황하는 영혼, 상처받은 영혼이 교회에 왔을 때,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징어를 무치는데 빨갛게 무치면 어떻고 하얗게 무치면 어떻습니까? 조기를 요리하는데 튀기면 어떻고 찌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것이지,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은 이런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집사님을 보니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힘드시지요? 제가 뒤에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오~ 그렇게도 할 수 있군요!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러한 선한 말은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입술을 통해 흘러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2) 모든 악독과 분함을 버리는 결단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여기에 언급된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은 모두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과정들입니다. 마음의 독기가 입술의 폭탄이 되어 터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버리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버린다(αἴρω, airō)'는 것은 ‘들어 올리다. 치워버리다. 제거하다.’라는 의미로 헌 옷을 벗어 던지듯 단호하게 끊어내는 영적 결단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칠 때, 즉시 입을 열어 쏟아내지 말고 성령님의 십자가 앞에 그 감정을 먼저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용서와 친절의 행동 (32절)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긍정적인 행동의 핵심은 '친절'과 '긍휼(불쌍히 여김)', 그리고 '용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먼저 하나님께 엄청난 용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 받은 것처럼,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탕감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옆에 있는 형제자매의 허물을 덮어주고, 너그러운 행동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말의 힘에 대한 실험 결과]
대중 매체나 교육 기관에서 자주 진행하는 아주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지은 밥을 두 개의 유리병에 나누어 담습니다.
한쪽 병에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너는 예쁘다"라는 긍정적인 말을 매일 정성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반대편 병에는 매일 "짜증 나", "미워", "너 같은 건 쓸모없어"라는 부정적인 말을 퍼부었습니다.
한 달 뒤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긍정적인 말을 들은 밥에서는 구수하고 향기로운 누룩 냄새가 나며 하얗고 깨끗한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반면, 매일 저주와 비난을 들은 밥은 시커멓게 부패하여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겼습니다.
미생물조차도 자신을 향한 언어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감지하고 그에 반응하여 '발효(상생)'가 되기도 하고 '부패(소멸)'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미생물도 부정적인 언어를 들으면 썩어 문드러진다는 얘기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지체들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던지는 긍정적인 격려의 말은 영혼을 살리는 향기로운 '발효'가 되지만, 날카로운 비난은 상대를 상하게 하는 영적 '부패'를 낳는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구체적인 삶의 실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하루 세 번 '감사'와 ‘사랑’과 '칭찬'의 말을 선포합시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구역 식구들에게 하루에 세 번씩 의식적으로 감사와 사랑과 칭찬의 표현과 말을 건네십시오. 말은 습관입니다. 부정적인 언어 습관을 고치려면 긍정적인 언어를 반복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 안에서 '경청과 공감'의 행동을 보여줍시다.
내 말을 많이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머리를 끄덕여주며 공감해 주는 것만큼 훌륭한 긍정의 행동은 없습니다. "많이 힘드셨겠군요", "참 애쓰셨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요”, “잘 하고 계십니다.” 라는 공감의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녹입니다.
셋째, 비판이 떠오를 때 '기도'로 바꾸어 드립시다.
교회 안에서 어떤 부족한 점이나 연약한 지체가 보일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대화의 소재(말쟁이의 도구)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그 부족함을 보게 하신 이유는, 비판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신호'입니다. 입을 열어 비판하기 전에 무릎을 꿇고 중보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비난'의 보고서를 '기도'의 제목으로 바꾼 어느 중보기도자]
어느 한국 교회의 실제 간증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한 권사님이 계셨는데, 성격이 매우 꼼꼼하고 예리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부족한 점, 목회자들의 미흡한 부분, 교회 행정의 허점들이 너무나 잘 보였습니다. 권사님은 참다못해 교회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적은 긴 노트를 작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담임목사님께 전달하여 강력히 시정할 것을 요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방 문 앞에 서는 순간, 마음에 성령님의 강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에게 그 영적 눈을 준 것은 교회를 비판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무너진 곳을 기도로 메우라고 준 것이다.'
권사님은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발장 같았던 문제점 노트를 '중보기도 제목 카드'로 바꾸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않고, 새벽마다 그 노트를 펼쳐 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연약한 지체들과 교회의 부족한 부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권사님이 지적하려 했던 모든 문제들이 소리 소문 없이 해결되었고,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하고 은혜로운 공동체로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의 입술의 비판이 무릎의 기도로 바뀌었을 때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남의 허물이 보이고 교회의 부족한 점이 보입니까? 그것은 비판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골방으로 들어가 눈물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Sign)입니다. 비판을 기도로 바꿀 때, 성령님은 근심을 거두시고 우리 교회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결론: 축복과 다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신 30:15-20)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교회는 세상에서 상처받고 찢긴 영혼들이 찾아와 치유를 경험하는 '영적인 병원'이자 '피난처'입니다. 그런 교회가 부정적인 말과 날 선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면, 상처 입은 영혼들은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모일 때마다 긍정의 언어, 살리는 언어, 소망의 언어가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허물을 덮어주며, 따뜻한 미소와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분의 입술이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 낙심한 자가 힘을 얻고, 무너진 자가 다시 일어서며, 하나님께서 기뻐 춤추시는 살아있는 제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