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이 죽었다.
(가운데 줄임) 철은 진을 치는 법에 밝고,
장기와 바둑[博奕ㆍ박혁]을 잘 두었으며,
젊어서 기병(奇兵)과 정병(正兵)을 도모(圖謀)하는 것에 능하여 눈에 들더니,
마침내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항상 대궐에서 거처하였다.
그가 죽자 염빈(주검에 수의를 입혀 관에 넣어 안치함) 하는 것을
곧바로 하지 말게 하였으니, 이것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람에서였다.”
이는 《세조실록》 세조 13년(1467년) 2월 11일 기록입니다.
이를 보면 세조는 바둑을 무척 좋아했음이 드러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둑을 한자말로
‘박혁(博奕)’ 또는 ‘기(碁)’라고 표현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수사, 충청수사, 장흥부사 등과
바둑을 두었다는 《난중일기》 기록으로 보아
이순신 장군도 바둑을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서구가 쓴 《기객소전(棋客小傳)》에
조선 후기 정운창이라는 인물이 바둑을 잘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 나전용호문바둑판, 국립민속박물관, 48.3×48.3×32(가로.세로.높이)
정운창은 6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고
바둑만 손에 쥐면 먹고 자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하지요.
그는 10년을 바둑에 매진한 결과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바둑을 좋아하는 재력가가
큰 상금을 내걸고 바둑대회를 열기도 했지만,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처럼
후원자의 집에 머무는 기객(棋客)의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바둑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삼국시대에 이미 즐겼다고 하는데
고구려가 바둑의 고수인 도림을 첩자로
바둑에 심취한 백제 개로왕에게 보내 화를 당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