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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위풍당당 파리의 개선문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52 08.09.11 1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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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둑한 지하보도를 지나려니 서울의 남대문 지하도를 가는 느낌이다.

 여기를 나오면....

 통로를 통해서 계단을 오르면...

 바로 개선문 아래다.

 

 

 

 경비 경찰이 한가롭다. 남녀혼성으로 한 조가 있다.

 

 

 

 

 

 

 

 

 레마르크 소설의 영화, 잉그리트버그만이 나온다. 어둡고 쓸쓸한 개선문이 나온다.

 2차 대전은 끝났어도 우리들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고 언제나 진행 중이다.

 

 

[유럽여행 5국 10일/ Paris] 위풍당당 파리의 개선문

2007/09/15 SATUR

 

내 여행기에는 날짜가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2008년을 2007년으로 잘못 타자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무심코 지나쳐 보는 이도 사람도 있을 것이다.

1년 동안 지각하여 작성하는 이 여행기를 쓰면서 그런 착각을 하는 독자를 생각하면 재미있고 미안하다.

나의 여행을 함께 곰삭이는 독자와 개선문으로 나아간다.

파리 시내를 돌고 돌면 늘 눈에 뜨이니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를 돌고 돌면 눈에 뜨이니 개선문이다.

남의 나라 물건들도 어린 시절에 책에서 자주 보았으니 남의 것 같지 않게 정답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다.

패키지 프랑스 파리 여행 도우미가 소개하고, 우리의 인솔자 황지희씨가 개선문 앞에다 우리 일행을 뿌렸다.

 

샹젤리제 거리가 여기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대로인 샹젤리제 거리는 에트워르 개선문으로부터 방사하는 12개 대로의 하나이다. 이 샹젤리제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친다. 그 에트워르 개선문에서 서쪽과 동쪽을 바라본다. 동쪽을 보자. 샹젤리제 큰 길로부터 콩코드 광장을 지나고, 테이르리 정원, 한층 더 루블에 이르는 전망이 열린다. 그리고 서쪽을 보자. 그랜드·아쉬 신 개선문)가 일직선상으로 보인다, 여기로부터의 경치는 해방감에 넘치는 멋진 풍경이다.

에트워르 개선문을 중심으로 일직선은 파리의 위대한 축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직선상의 건축물은 낡은 것은 12 세기이며 새로운 것은 20 세기의 것이다. 12 세기의 건축물과 20 세기의 건축물이 800년이라고 하는 세월의 나이를 하나의 시선에 들어있어도 위화감이 나지 않는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잘 융합되었다.

개선문이 빤히 보이는 위치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 길을 가로 질러 가야하는지. 개선문 가는 횡단보도 표시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는 바로 개선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에트워르의 개선문이다.

문에는 나폴레옹 군대의 승전도가 부조로 새겨져 있고 내부에는 고문서들이 보관된 박물관이 있다. 엘리베이터로 개선문 위에 올라가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이 50m, 넓이 45m의 거대한 개선문 벽에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600여 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에트워르라고 하는 것은 「성형의·방사상의 것」으로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큰 길이 방사상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의 중심이 되어 큰길이 몰려있어 차의 왕래가 서울의 차량 홍수에 익숙해졌어도 고통을 느낄 정도로 대단하다. 개선문을 보면서 건들건들 갔다가는 부랴부랴 황천객이 될 판이다. 차를 타고 볼 때와 차에서 내려 마주 볼 때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개선문의 네모지고 묵직한 건물의 흰 벽에 회화를 하듯이 판 조각들이 개선문의 몽통 여기 저기 박혀있어서 터무니없고 큰 문이면서 섬세하고 품위 있는 인상을 풍기는 매력이 있다.

더 근처에서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도 막상 가까이 보려면 육교도 보도도 없는 데 어떤 사람은 용케도 도로에 발을 디디고 나아가려고 한다.

" 잠깐만요. 저 앞에 보이는 출입구가 개선문 바로 앞과 연결이 되었어요. 보시고 오실 시간은 딱 20분에요. 시간 지켜주세요."

황지희씨가 그 사람의 걸음을 막는다.

나는 아내를 쳐다본다. 20분 안에 함께 다녀오기는 힘든 시간이다.

" 자기 혼자 다녀와요. 나는 여기서 개선문을 감상해도 충분하니까. "

나는 이미 앞서 간 일행을 따라 개선문으로 가는 지하보도로 달린다.

개선문은 1805년12월2일에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은 아우스테르릿트의 싸움으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에게 대승리를 거둔다.

또, 나폴레옹은 이 싸움의 승리의 뒤에 거대한 고대 로마풍으로 개선문의 건설을 명령한다. .건축가 샤르그란이 설계를 담당해, 1806년부터, 에트워르 광장에서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공사는 중단되었다. 30년 후의 1836년에 완성하여 나폴레옹이 센트 에 레나 섬에서 죽고 1840년12월에서야 나폴레옹의 관은 이 개선문을 지나고 안바릿드에 옮겨진다.

개선문의 아치 아래에는 「무명전사의 무덤」이 있다.

1914년에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로 암살되어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1918년 11월 10 일본,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다. 다음 11월11일에 하프스브르크가의 오스트리아 황제 컬 1세가 퇴위하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한다.

그리고 2년 후의 1920년 11월11일에 희생 된 병사를 애도해 「무명전사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제 2 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파리 점령시 나치 독일 국기가 게양되고, 히틀러가 전차에서 개선 행진을 했다.

개선문으로 가는 지하도는 마치 서울의 남대문 시장 앞 지하도와 같이 낡은 체취가 담겼다.

적당히 어둡고 저마다 오가는 사람이 부산하다.

나는 지금 밝은 대낮에 본 개선문을 보기보다 어딘지 어둠 속에 떠오르는 모습의 개선문을 생각했다.

나의 청춘의 개선문은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서 머물렀다.

독일 출신 작가 E.M.레마르크가 미국으로 망명하여 써서 1946년 간행한 레마르크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전쟁에 빠져들어 가는 한 인간의 운명이면서 그 시대 지식인들의 운명을 그렸다. 이 빚어낸 참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한 인간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의 공포가 감도는 파리를 무대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쫓기는 인간상의 절망이 자신의 일인듯 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외국 소설을 외국인의 이름을 외기 어려워 거부감이 그의 소설을 보면서 가시던 기억도 난다.

소설에 나오는 푸께 레스뜨랑은 개선문이 앞에 보이는 광장에 있다지만 여기를 다녀온 호사가는 조앙과 라비크는 이미 죽었고 소설보다 너무 크고 버글댄다고 느꼈단다.

숭어요리와 Calvados와 Mint ice cream with Calvados를 거치면서 입도 즐거웠고 쭉쭉 빵빵한 여인들을 보면서 눈은 황홀하고, 나중에는 둘러보느라고 목과 눈이 아플 정도라니 시간이 있는 사람은 머물러 한 끼니를 즐길 만 하겠다.

버글대는 분위기가 못내 서운하여 늙은 웨이터에게 "이 레스트랑이 원래 이렇게 컸냐?"고 물어 보라. 원래는 작았는데 소설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커졌다고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지하도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바로 개선문의 아랫부분이다.

경찰관 두 명이 순찰을 돈다. 눈에 살기가 등등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 열중하고 있는 여유 있는 모습이다.

시간만 있으면 걸어서든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대강 돌아보고 사진만 찍기도 바쁜 시간이다.

사람들이 가지각색이나 30여명이 몰려 있는 우리 일행과는 곳곳에서 마주친다.

이제 낯익은 일행의 아가씨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맡기고 예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남의 나라 개선문 아래에서 나는 서대문에 있는 우리나라의 독립문을 생각한다.

길 복판에 우뚝 서있고 가끔 그곳을 지나갈 때 내가 본 기억은 출입금지의 통제 구역만 떠오른다.

그 독립문에 우리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군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던가.

일제에 맞선 이름 없는 의병을 위하여 우리는 불을 켰던가.

남의 나라에 와서 우리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부끄럽다.

이런 자각이 여행의 교훈이기도하다.

아내에게 달려갔다.

" 재미있었수?"

" 마누라가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일세."

나는 좀 거짓말을 했다.

아내 없이 불낳게 다니면서 눈도장을 찍은 개선문과의 정담이 아내에게 미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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