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6. 큐티
시편 150: 1 ~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관찰 :
1) 어디서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 1절a. “할렐루야" => 본 시편은 150편의 시편 중 마지막 시편입니다. 각 시편은 인생의 다양한 삶의 정황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깨달음과 간구 등을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5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146편 ~ 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 형식으로 모여져 있습니다. 시편 150편은 시편 1편과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가장 원론적인 교훈으로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제시한 시편 1편에 대해 시편을 편집한 편집자는 이제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라는 것을 제시하며 시편 전체를 끝내도록 편집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의 네 편의 할렐루야 시편들이 여호와 찬양의 이유를 열거하거나 찬양을 촉구하며 찬양의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본 150편에서는 이유를 열거하지 않습니다. 그저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시편 전체를 마감하면서 열정과 환희로써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 그 이상의 값진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가 전달되도록 한 것입니다. 시편 150편의 모든 문장들은 명령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는데 보다 힘을 실어주고자 한 것입니다.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은 악기와 목소리와 춤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찬양을 하는 주체는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입니다. 시편 150편은 앞선 할렐루야 시편들의 결론임과 동시에 전체 시편에 대한 송영이라는 점에서 “대할렐루야 시편”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본 시편은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을 마치고 여호와 신앙이 고조되었을 때 경건하며 풍부한 문학적 소양을 가진 익명의 시인이 본 시편을 지은 것으로 봅니다.
- 1절b.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 시편 기자는 찬양을 촉구하되 찬양의 대상과 찬양의 장소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찬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스스로 계시며 한결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유한하고 제한적 능력을 지닌 피조물과 달리 전능하신 능력을 지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로 “성소”와 “궁창”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 위해 택한 장소인 예루살렘 성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특별히 예배의 처소로 정해진 곳에서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궁창”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곳으로 땅의 예루살렘 성소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소가 있는 거룩한 처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 2절.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 “그의 능하신 행동”은 창조는 물론 출애굽과 바벨론 귀환에서 보여준 구속 사역이나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큰 권능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따라”는 찬양의 이유와 함께 찬양의 정도까지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만큼 풍성하고 정미하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높고 깊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찬양이 하나님의 크심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찬양은 우리가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비롯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 3절.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 찬양에 사용될 수 있는 악기들을 하나 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팔”(שׁוֹפָר, 쇼파르)는 짐승의 뿔로 만든 것으로 사람들을 소집하거나 전쟁의 위험을 알려주거나 본 시편에서처럼 여호와를 찬양하는 악기로 사용했습니다. 나팔은 제사장들이주로 사용하도록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소리를 내어 별리까지 그 소리가 확장되는 특징을 갖습니다. “비파”(נֵבֶל, 네벨)와 “수금”(כִנֹּֽור, 킨노르)은 둘 다 손가락으로 튕겨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이는 주로 레위인들이 사용하도록 지정된 것이었습니다.
- 4절. “소고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 “소고”(תֹף, 토프)는 탬버린 혹은 작은 북처럼 생긴 타악기입니다. 이 악기에 춤이 함께 나온 것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춤을 출 때 이 악기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수금”이외에도 다양한 현악기들이 찬양에 사용되었습니다. “퉁소”로 번역된 ‘우가브’는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내는 관악기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퉁소는 세속적 용도로만 사용된 것으로 소개되었지만 유일하게 본문에서 찬양의 용도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용되는 악기가 어떤 것이든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견지하면 어떤 악기든 거룩한 악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서 5절까지에는 춤과 악기들 사이에는 “찬양하며”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찬양과 관련되어 있기에 “거룩한 춤” 내지는 “거룩한 악기”로 부르도록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거룩하고 장엄한 춤과 악기들의 연주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거룩한 응답으로서 거대한 찬양 협주곡을 만들어 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5절.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 본 절에는 두 종류의 제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둘 다 동일한 그러나 히브리 원어 성경에서도 동일하게 제금이라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유사한 악기들까지 반복해서 제시함으로써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악기를 다 동원하여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 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 찬양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찬양의 주체는 “호흡이 있는 자”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כֹּלהַנְּשָׁמָה, 콜 한네좌마)는 모든 + 바람, 호흡, 영혼이라는 의미 명사 “נִשׁמָא”(네쉬마)가 결합된 것입니다. 직역하면 ‘호흡이 있는 것’이 됩니다. 이 용어는 최초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호흡을 받았으며, 이 생명의 호흡은 하나님에게 의존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그 어떤 단어보다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인간의 생명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호흡을 거두시면 모두가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큼 호흡 곧 생명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호흡을 하나님께 의존함으로 생명을 부지하는 모든 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하라는 명령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백성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나팔은 제사장이 부는 악기이고 수금과 비파는 레위인들이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4절의 소고는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악기였습니다. 이와 같이 특절한 사람과 관련된 찬양을 촉구하다가 이제 시편 기자는 본 시편의 마지막 절이자 시편 150편의 마지막 절에서 호흡이 있는 자 모두를 언급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주체는 모든 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성소에 있던지 하늘에 있던지 어디에 있던지 장소를 구애받지 말고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를 구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그 찬양을 들으시는 곳이 바로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성소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찬양을 받지 않으신다면 그곳은 진정한 의미의 성소가 아닌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면 거기는 성소가 아닌 것입니다.
2)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선포를 이끌어 내는 표현입니다. 모든 악기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인간은, 즉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성경은 거룩을 강조하고 구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과 분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다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유대인우월주의로 뒤틀려서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구약에 있었지만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대립 관계가 있고 이스라엘을 지배한 자들도 코로 호흡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모두가 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그릇된 선민의식과 우상숭배를 깨뜨리는 역사적 선언으로 이어지며 시편 150편이 마무리 되고 있는 것입니다.
4)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 시편의 종결부이기도 하고 시편 전체의 종결부이기도 합니다. 본 시편은 여섯 절에 불과한 매우 짧은 시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는 성격에 걸맞게 하나님을 향한 시편 기자의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일관된 환희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즉 본 시편은 인간이 누구를 찬양해야 하며 어디서 찬양해야 하는지, 왜 그리고 어떻게 찬양해야 할지를 제시하되 간결한 명령형 문장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된 삶이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그 호흡이 다하도록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찬양을 부르도록 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성소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시간에 제한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한 분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을,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2) 나라와 민족의 구별, 남녀노소의 구별을 넘어서서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가 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제 호흡이 다하도록 선포하겠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3) 시편 전체의 말씀 묵상을 마쳤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고, 무엇보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새록새록 깊이있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