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스커버리라는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방영한 내용이라네여.
해외에서. 특히 독일에선 훈족이 한국의 고구려에서 뻗어나온 세력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하더군여.
근데 한국에선 훈족을 먼나라 바라보듯이 대하고있고..
한국 역사학계 자체가 친일파들이 주류로 대접받고
식민사관에 쩔어있는데다 자국역사에 대해 역사 축소지향주의라서
어떻게 해서든 힘없고 약해빠진 쓰레기나라라는 식으로만 교육을 시키는 현실이니..
역사에 자긍심을 배우기보다는 패배주의에 빠지기 바쁜 현실..
아래는 미국에서 방영된 방송 줄거리.
-----------------------------------------------
The Huns and the forgotten Korean
훈족과 잊혀진 Korean
Europeans called them "Huns". Originating from the main land of Korea(Koguryo),
they invade d the Roman empire during the 4th century.
유럽인들은 그들을 "훈족(Huns)"이라고 불렀다.
본국 고려(Korea; 고구려의 준말) 땅에서 일어난 그들은 4세기
기간중에 로마 제국을 쳐들어왔다.
Ancient Greeks historian recorded them Scytians ,
and later European called them Mongols.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이라고
기록했으며 그뒤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몽골인이라고 불렀다.
Around early 4th century,
the temperature fell lower than usual for many years in far East Asia.
It caused grains not to ripen, grazing grass land for animals was scarce.
4세기 초 무렵, 극동아시아에서는 수년동안 기온이 평시보다
떨어지는 이상기온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로 인해 곡식은 영글지 못하고 동물들에게 풀을 뜯어먹일 수
있는 땅은 부족하였다.
For these reasons a large number of semi-nomadic tribes left from what is
known today as the Korean mainland to Eastern Manchuria.
이런 이유로 인해 상당수의 반(半)유목 종족은 오늘날 Korea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본토에서 만주 동부로 떠나게 되었다.
Gathering other tribes along the way they proceeded to the Central Asiatic
step. From there, the mass of tribes went westward.
그 길을 따라 이민족들을 규합하면서 그들은 중앙아시아쪽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종족 대부분은 서쪽으로 향했다.
Around AD 370 these nomadic people arrived upon the Horizon of the
Roman empire. They established a kingdom along the Danube, on the prairies
that are present day Hungary.
서기 370년경 이 방랑민들은 로마제국 국경선에 도착하여 다뉴브
강(독일 남서부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감; 독일명
'도나우강')을 따라 현재는 헝가리 지역인 대초원위에 그들의 왕국
을 세웠다.
About AD 443, Attila, the son of King Ruga assassinated his brother Bleda
and united all the Hun tribes. He lead the warriors onto ruthless and savage
conquests; destroying anything in sight, looting and merciless killing of
innocent people.
서기 443년 경, 루가왕의 아들 아틸라는 그의 형제 블레다를 암살
하고 전(全) 훈족을 통일하였다.
그는 전사들을 이끌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정복을 감행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약탈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번역자 주; 완전히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니 이 점을 잘 참
작하기 바람)
He conquered Germany, Eastern Europe and most of southeastern Europe.
그는 독일, 유럽 동부 및 유럽 남서부 일대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다.
The Huns were superior horseman and combined with their archery skills
were the bane of the Romans ......,
훈족은 기마술(말타기)에 능한 이들로 궁술 또한 겸비하였는데
그것은 로마인들을 파멸시킨 큰 원인이었다.
(번역자 주: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군요.
서양인들에게 있어불멸의 영화인 '벤허'에 나오는 멋진 로마군인들
이 우리 조상인 고구려 무사들에게 무참히 멸망당했다는 이 기록
이 우리가 아닌 양인들의 손에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흥분케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They used a short, inverted bow made from few different materials glued
together. An iron arrow head was able to pierce any European armor.
그들은 서로 강하게 접착된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제작된 짧은
역궁(逆弓; 맥궁!)을 사용하였으며, 쇠로 된 화살촉은 유럽군인들의
어떤 철갑옷도 관통시킬 수 있었다.
Their horses were short in height, but had speed and endurance,
they were also agile and smart.
그들의 말은 키가 작았지만 빠른 속도와 강한 지구력이 있었으며,
그들 또한 동작이 민첩하고 영민하기 짝이 없었다.
Hun warriors, while twisting their upper body, were able to shoot arrows
behind them while their horses were running forward (referring picture).
훈족 전사들은 말이 전방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말위에서
상체를 뒤로 틀면서 그들 뒤편에 있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그림 참조요).
(번역자 주: 위 '그림 참조요'의 그림은 현 중국 집안현 무용총 주실
서벽의 수렵도에 나오는 고구려 기마궁병의 모습과 완전일치
함. /// Orullee Han님의 주; 고구려 기마병 그림은 집안현 그림으로,
다큐에 나오는 인물들의 복장과 거의 같습니다.)
When Atilla was young, his father Ruga exchanged his son with a young son
of a prominent Roman family , his name was Aetius.
아틸라가 어렸을 때 그의 부친 루가는 자신의 아들을 한 유명한
로마 가문의 어린 아들, 즉 그 이름이 Aetius(Orullee Han님의 주; 아
틸라의 친구이기도 하며 서로 상대방의 전술을 잘알며 내기억이
정확치않으나 로마 왕실의 왕자인지도 모르겠읍니다)라고 하는
아이와 바꾸었다.
For ten years Atilla was educated in the Roman court vise versa Aetius from
the Hun kingdom. Atilla was probably the first western educated Mongol in its
history.
십년간 아틸라는 로마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반대로 Aetius는 훈
족의 왕궁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틸라는 아마도 몽골족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서구 교육을 받은
인물일 것이다.(번역자 주; 이 문장도 서양인의 입장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함)
Later these 2 men would confront each other in Gaul (today's France), in
451. Atilla would go on to lose this battle and invaded Italy in 452 with
Germanic tribes.
이들 두 사람은 후에 451년에 Gaul(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서로
맞부딪히게 되는데, 아틸라는 계속해서 이 전투에 패배하게 되며,
452년에는 게르만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침략하였다.
(번역자 주; 주인공의 이름 '아틸라'와 '이탈리아'가 매우 흡사한 것
이 주목됩니다.)
His army advanced to Venice (today's) and negotiated with a Roman
representative Pope Leo for 10 hours.
그의 군대는 오늘날의 베니스로 진격하여 로마 대표 교황 Leo와
장장 10시간동안 협상을 벌였다.
All the while on horse back, Atilla received tribute from Rome, and would
thereafter retreat from Italy. Pope Leo received the title "The great" from the
church for his successful negotiations with Atilla.
말 위에서의 장시간 협상 공로로, 아틸라는 로마로부터 공물을
받았으며 그후 이탈리아로부터 회군하게 된다.
교황 레오는 아틸라와의 이 성공적인 협상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대제(The great)"라는 칭호를 받았다.
Atilla married to a German princess, Ideco in AD 453. After his wedding
celebration he died that wedding night, possibly from alcohol poisoning.
아틸라는 453년에 독일공주 Ideco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불행히도 결혼식날밤에 죽게 되는데 아마도 그의 사인은
주독(酒毒)인 듯 하다.
His people dammed the Danube river and buried him in the middle of the
river. They opened the dam for no one, so that none could ever find his grave.
그의 백성들은 다른 이들이 묘지를 찾지못하도록 다뉴브강을
둑으로 막았으며, 시신을 강 중앙부에 매장하였다.
그들은 그 댐을 어떤 이에게도 오픈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 누구도 그의 무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After his death, the Hun kingdom crumbled and his people scattered from the
Europe. He would be known as "the scourge of god" by the Roman Empire
because of his cruel acts.
그가 죽은 후 훈(Hun) 왕국은 멸망하였으며 그의 백성들 또한
유럽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살아생전 잔인한 행위로 인해 그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의 천
벌"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The Huns left a number of legacies in Europe especially the Ch?eau area of
France, all children born there have a blue round mark in their hip as the
Mongolians do today. The country of Hungary got its name from the Huns,
to commemorate the Hun Kingdom.
훈족은 유럽에, 특히 프랑스 Chateau 지역에 많은 유산을 남겼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엉덩이 부위에 오늘날 몽골인
들과 동일한 파란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라는 국명은 훈 왕국을 기념하기 위해 Huns에서 비롯된 것이다.
During the world war ll allied forces refer to Germans as Hun because of their
relationship with Huns in the 4th and 5th centuries. Funeral cultures of Europe
are also deeply influenced from the Hun.
세계 제 2차대전 기간중 연합군은 역사적으로 독일인들의 4세기,
5세기에 훈족과의 관련성 때문에 독일인들을 훈족으로 부른다.
유럽의 장례문화 역시 훈족으로부터 깊이 영향받은 것이다
|
|
첫댓글 제가 영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독일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들은 훈족이 코리아라고 배운답니다. 그리고 게르만 민족과 훈족과의 연합으로 유럽을 휩쓴 경험도 있어서 한국을 좋게 보더라구요.
그러게여~ 독일사람들이 한국을 은근히 잘 대해주고 친근하게 생각하는게 님 말씀대로 훈족=코리언 이라는 의식 때문에 친근함을 느끼는것 같더라구여. 게다가 한국사람들은 유럽에서 한국과 비슷한 나라를 성격이 급하다는 이유로 이탈리아를 자주 언급하던데. 정작 독일에선 한국을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부르더라구여. 전 그걸 알고나서 독일이 정말 좋더라구여. *^^*
독일이 왠지 좋더라니...이런 관계였군요.*^^*
옆나라애들이 독일인인척 하거나 아님 개고기때문인가여?
저도 그건 아마 중국인이나 일본인일 것 같음
유투브 국적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어요;;;;;
"베니스로 진격해서 거기서 로마교황하고 10시간동안 협상하고 공물받기로하고 회군했다." <------ 이부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군요..그시기에 살아보지않은 이상 진실은 모르겠으나... 누가 고대전쟁시에 처들어가서 말만으로 회군했다?..저이야기가 서구인의 손에 씌여진역사라면 아무래도 숨겨진 진실이 있을 가능성이 있겠어요. 월리님 글올려주어서 잘 읽었습니다.
유목민족은 정복이 아니라 획득이 전쟁의 목적일때가 많죠.
서희를 잊으셨나보군요.
중국소설 삼국지등을 보면 양군이 대처하에 장수가 싸워서 이기면 승리... 병사들은 멀쩡한데.. 현대에서 이해가 안되는 싸움, 마치 어릴때 싸워서 코피흘리면 지는거랑 동일함
우리 조상들이 결코 왜소하지 않았습니다...중국도 외세민족역사를 존중해야합니다
중국역사의 2/3가 북방민족들의 역사입니다. 인정을 안하고 지금 한다는 것이 역사를 날조하는건데 그럴수록 중국역사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정서와 수요경향을 바꿔야죠. 영어든, 일본어든 외국어 잘한다고 능력있다고 인식한다는거 자체가 우습고 한심한 일입니다. 뭔가 사회적으로 칸막이를 형성해서 뭐 좀 알고 있다면 아는척, 있는척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회적 모순과 폐단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 영어든, 일어든 몇년정도 단어들 좀 외우며 해당나라들 방송만 들어도 왠만큼은 알아듣습니다. 별거 아닌거 가지고 뭐 좀 있어보인다고 인식하는 하찮은 정서를 고치고 수요층을 좀더 전문적이고, 직접적인, 즉 회사에서 영어와는 아무 상관없는데 영어시험이나 자격증 등을 심사한다든지 하는 업무와의 직접성을 제고해야죠.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친일파 척결과 짱깨국의 개들을 없애는 것...
훈족이 우리민족인지는 .. 물론 고조선 고구려문명권적으로 접근하면 훈족 흉노 고조선 부여 고구려 일파가 거의 같은 계열이라고 볼수 있고 당시는 명확한 국경이나 정체성으로 구분 짓기는 뭐한 시기이기에 문명권적으로 말한다면 훈족이 우리와 연관이 있는건 사실인데 완전히 맞다고 하기는 뭐하네요. ㅋ. 하기사 중공은 온갖 종족과 국가를 지들 역사의 큰 범주에 넣고 있으니..
실제 황하문명이 토기 정도의 초보적 문명의 시작일때 이미 발해연안문명 고조선 선대문명권에서는 거대 제단이나 이후 기원전 20세기에 완연한 국가적 고구려치의 원형 성곽들이 나타나면서 북방 문명권을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 도리어 동아시아 북방 민족의 문명이 더 일찍 선진적이고 더 넓고 오랜 정체성의 문명권을 형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와 북방 민족의 우주관은 홀수. 즉 1,3의 정반합즉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공에서 말하는 화한족은 2,4의 짝수적 세계관이고...우리가 두개의 대칭에 불안,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는 하나의 또다른 특징이 주도한다면 한족들 특징은 안정과 정체등의 문화적 사고적 습관이 DNA에 있다고 할까요.. 한나라 이전까지 이런 홀수적 세계관의 영향력은 서족대륙 내륙 깊숙한 곳까지 침투합니다. 이후 한나라가 들어 서면서 이런 세계관은 점차 화한족의 짝수적 세계관으로 바뀜.이후 북방의 정복왕조가 들어설때마다 이런 북방 특유의 우주관도 문화 곳곳에 여파를 미치게 됩니다.
이런 출처불명의 떡밥을 접하면 결론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쉽게 믿지 말고 나름대로 검증을 해보세요. 이 문제는 간단히 백과사전만 찾아봐도 어느정도 답이 나와있습니다. <흉노족의 일파라는 설도 있으나 분명한 실체와 기원은 알 수 없다.><-요약하면 대충 이 정도가 되겠죠. 훈족은 기본적으로 서양사에서 집중연구된 주제이므로 -월리님 표현에 따르자면- '식민사관에 쩔어있는 우리 역사학계'와는 직접 상관이 없으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물론 통설, 정설이라고 해서 늘 옳지는 않습니다. 학문의 역사가 그러하듯 얼마든지 정설이 틀릴 수도 있고, 누구든 새로운 가설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정설을 깰 수 있는 근거만 있다면요. 그러니 그런 가설, 이설을 접할때는 제시된 근거를 확인하고 기존의 정설과 비교하여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나름대로 판단을 해야겠죠.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한 얘기들이지만, 특정주제만 들어가면 이게 잘 안 지켜지는 듯해서 사족을 달았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기원론 날조'하기 좋아한다며 침소봉대해서 조롱하는 중국과 일본의 혐한들에게, 우리 스스로 소스를 제공해주는 일은 없어야 됩니다. 근거가 얼마나 튼튼하냐 아니냐가 관건입니다.
흉노족은 먼저 BC 54년 동서로 갈립니다. 그러다 서기 48년에 남북으로 갈리고 남흉노는 후한에 항복하고 북흉노는 100년뒤 선비족에게 정복당하죠. 망한 북흉노가 서로 이동하면서 훈족이라 칭해진거라 여겨집니다. 터키족도 몽고한테 밀려 서로 이동한뒤 2세기지나서 비잔틴제국 멸망시키고 오스만제국 건설하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뿌리에서 나왔다고 보심되겠네요.. 거기서 갈라져서 고구려 신라 백제 등등
제가 얼핏 저 다큐를 본 기억이 있는것 같은데 오래전에 한반도 에서 떨어져 나간 훈족이 유럽을 정복하는 얘기였거든요 몇년전에 본거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고구려라고 말하지 않았던거 같은데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에 약간의 변형이 있네요 다른 분들의 오해를 살수 있을것 같아요
훈족은 고구려에서 나온 민족으로 알고있었는데 ..자세한 설명감사합니다..
아... 저도 저 다큐 봤는데.... 고구려 후예인줄은 몰랐네요.. 그때는 아시아의 기마민족이라고 나왔던 거 같았는데.. ^^ 머... 한국어로 번역된거라 그런가. .흐흐흐~~ 잘 읽었습니다~~
흉노족과 신라와의 연관성이란것은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흉노족의 족장이었던 김일제의 후손이란 것 때문입니다. 흉노족의 기원은 기원전 2000년경이라 하며 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유럽으로가 훈족이된거고 다시 남으로가 지금의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반도에서 투르크족의 기원을 형성하였고 이들이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돌궐족이 된것이죠. 알타이 어란 바로 이 훈족의 영향이 컷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알타어의 기원은 바로 지금의 요하지역 즉 우리민족 뿌리 고조선의 발생지였다는 겁니다. 요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요하강 일대에서 나오는 문명의 흔적들은 중국황하문명보다 3000년을
앞서는 것이며 그 규모나 정교함과 우수성이 더 뛰어나다는 겁니다. 이 요하강 일대의 문명은 북방의 초원지대와 만주,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곳에서 나오는 토기나 농작기구와 말의 장신구가 동일한 형태인것으로 보아 같은 언어와 문명을 소유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기원은 엄밀히 따지면 알타이어가 아닌 요하언어 인것이죠.
와.. 댓글이 30개나 달렸넹~~~@@;; 이거 제가 쓴 글 아니구여. 퍼온거에여. 참고하세영.
신리와 훈족이 어느 정도,혹은 그이상으로 연관성이 있을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학자들중에서 신라를 극동의 남부에 있으면서도 출토되는 유물은 로마문화권 왕국이라고 부를 정도.. 근데 이런 로마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가 기원후 4세기에서 6세기입니다. 그 유명한 미추왕릉지구의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황금장식보검(일명 계림로단검)이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용기나 잔에 손잡이를 붙이지 않는 형태가 많은데 유독 가야 신라쪽에는 로마문화권에서 나오는 손잡이 달린 형태가 많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도 이런 형태의 그릇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구려는 일찍이 만주 발해연안일때에서 이미 기원전 수천년전부터 석성이나 거대 제단의 기술이 요동문화에도 꽃을 피우고 성곽 축성술이나 건축, 벽화 등 그림에 조예가 깊었고 백제인들은 거대 목탑등에 정통했으며 신라인들은 세공술이 상당히 뛰어 났습니다. 우리가 아는 신라 금관의 경우도 신라 전성기때 양식이 아니라 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나오는 형태들이며 전세계에서도 신라에서만 대다수 출토되는 거의 독보적 양식입니다.
신라의 초기 기록을 보면 박씨부터 석씨등에서 이후 기원후 4세기에 내물왕시대부터 김씨의 왕권 세습이 확립됩니다. 이 김씨에 대한 학설 중에서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흉노족의 후예라는 것이고 훈족이 4세기에는 유럽으로 이동하여, 375년 흑해 북안의 동고트족을 무찔러 그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고,. 서고트족의 일부는 훈족의 압박을 피하여 동로마에 이주하였면서 이것이 그유명한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발단이며 로마의 붕괴의 전초전이였습니다.4세기 말의 루아왕 때에는 오늘날의 헝가리·트란실바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그 유명한 아틸라왕 때에는 전성기를 이루어, 주변의 게르만 제부족을 복속시켜 흑해 북안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일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한 여인의 복수극에 의해 아틸라왕이 살해되면서 훈족제국이 붕괴되어버립니다. 서양인들의 훈족에 대한 두려움은 엄청났습니다. 오늘날 남겨진 기록을 보면 그들에 대한 공포에 저항조차 할수 없을 만큼 무력함을 보였구요. 로마식 전쟁과 우리의 동아시아식 기마 전투는 전혀 차원이 달라서 그들이 어떤식으로 번번히 저항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정리해보면 신라는 극동 그것도 남부 지역에 있으면서도 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로마적 흔적이 유례없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는 신라의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매우 활발히 나타나고 있으며 김알지의 후손들이 이시기에 와서 강한 정치력세력으로 등장.. 이와 함께 서쪽 유럽 지역에서는 4세기부터 훈족이 팽창을 하기 시작하며 유럽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신라의 유물을 보면 분명 교류가 동아시아 어느 곳보다 활발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신라가 지리적으로 매우 극동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이런 문화적 영향력의 교류가 깊었다는 것은 어떤식의 직접적인 루트가 있었다는 뜻이됩니다. 특히 황금보검의 경우등은
단순히 무역적 교류로 얻을수 있는 위세품이 아닙니다. 그기에 신라김씨에서 발견되는 흉노설과 맞물려 그들 사이에 어떤 밀접한 정치적 연관성이 함께 하면서 신라의 상류 계층의 문화에 로마적 양식이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나름 추측해 볼수 있을 것입니다.
기원후 400년대 중반에서 5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계림로 14호분과 흉노와 연관짓는 것은 억지죠. 시간적으로 600년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600년 정도면 현재와 고려시대를 연관짓는 것과 비슷하군요.
ㄴ ??? 신라 김알지의 출현이 기원후 65년경 김알지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학설은 제법 제기되는 주장중 하나이고 저기 내용은 훈족. 즉 유럽에서 활동한 훈족은 4세기경부터 신라에서 나타나는 로마적 문화의 왕성한 시기도 4세기에서 6세기경 사이. 연관이 없다라고 할수 없죠
어쩐지 서양인들이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아시아 사람들하고 외모가 다르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고 하더니...이것때문인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