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S 300D Digital, Multi-Segment Metering, Auto W/B, 1/200sec,
F 10.0, ISO-100, 350mm, flash not fired
보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상태입니다...
* * * * * * *
아주 오랜만에 강화를 다시 찾았습니다.
저로서는 「첫출사」였습니다.
사실... 제게 「출사」라는 단어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카메라를 사 놓고 쳐다만 보며 망설이던 끝에 큰 맘 먹고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출사에 떼쓰듯 따라나섰던 것이지요.
그야말로 「쌩초보」인 제가 선배님들의 촬영에 행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전날 밤부터 장비를 챙기고 잠마저 설쳤습니다.
선배님들께 직접 데리러 와 주시는 수고를 끼치며 찾아간, 섬 아닌 섬...
많은 시간이 흐르고, 시간에 꿰인 갖가지 추억도 더불어 흘러 갔지만
강화는 그저 그 자리에 변함없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외포리 배터에 당도하니,
자동차 키를 꽂아 놓은 채 애마의 문을 덜컥 닫아버린 모임의 회장님께서는
시퍼렇게 얼어 떨고 계셨습니다. 가엾은 우리 회장님...
근처 골목길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포장끈으로 겨우 문을 열었을 즈음
다른 일행들이 연이어 도착하셨으므로, 모두 큰 차로 옮겨 타고
석모도로 건너가 민생고부터 해결하였지요.
대부분 산행을 염두에 두고 오신 듯 했는데 그저 사진생각에만 매달렸던 저는
복장이 매우 불량하였으므로, 제가 계획을 망치는 건 아닌가 몹시 면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천우신조(?)인지 다리를 다친 한 분이 등산을 포기하셔서
저는 개인교습의 행운과 영광을 한꺼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
(사부님... 다리를 다치신 게 다행이란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전날 오신 비로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데다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껏 찾아낸 모델(?)들을 사정 없이 흔들어댔지만, 사부님의 열띤 강의는
그 모두를 평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갑갑하기 짝이 없으셨을 터인데,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내내 미소를 잃지 않으신 사부님의 성의에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시간 후 하산한 일행과 합류, 일몰을 잡기 위해 장화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바닷가 뚝길에는,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와 휘몰아치는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준비완료된 많은 삼각대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더군요.
삼각대를 세우는 일도 처음인지라, 근근히 세운 삼각대는 단 한번의 바람에
벌렁 자빠져 뚝길에 나뒹굴었고, 난감해 하는 제가 한심해 보였는지 먼저 와 계시던
어떤 분께서 집어들더니 단단히 받쳐 주셨습니다.
겨우겨우 카메라와 렌즈를 삼각대 위에 얹어 보니 이번에는 카메라가 찌우뚱
수평이 맞지 않는 겁니다.
커다랗고 붉은 해는 바다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려 앉는 참인데
체면불구 선배님들께 SOS를 청했고, 모두 달려 오셔서 제대로 잡아 주셨지요.
마음이 급하다보니 두어 시간 전에 배운 조리개 우선 모드와 셔터 우선 모드가 헷갈려
다시 SOS, 선배님들을 괴롭힌 나머지 셔터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 * * 바야흐로...
오늘 새벽, 동해(東海)와 애틋하게 이별했을 태양은
이제 서해(西海)와의 재회를 위해 결코 느리지 않은 우아한 속도로
수평선과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하였고, 정열적이고 풍만한 몸매의 여신처럼
주변을 온통 꼭두서니빛으로 칠해 가는 광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망연해진 저는, 잠시 제가 여기에 왜 와 있는지도 잊은 채 우두커니 바라보며
감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동해는 참 서럽고 불행한 연인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사랑하는 이가 서해로 가 안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새벽마다 제 가슴 열어
연인을 내보내고 배웅해야 하는 동해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 상념에 젖어 멍청히 서 있는 제 귀에
「지금은 계속 찍어야 하는 순간이에요!!」란 회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는 막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그 와중에서도 저를 챙겨 주신
회장님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회장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셨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빈 카메라로 그냥 돌아올 뻔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파인더를 들여다 보았지만, 매운 바닷바람에 눈물이 질금거려
어른어른, 도저히 초점을 맞출 수가 없어 한손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얼어 곱은 나머지 손으로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붉디 붉은 해가 하루종일 그리던 서해와 만나 드디어 완벽한 오메가를 만들며
긴 입맞춤 시작하는 순간을 파인더 안에서 훔쳐 보며 진짜 눈물이 나더군요.
몇 번을 왔어도 아쉬움만 남긴 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 오메가를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러면서도 제 머리에서 줄곧 떠나지 않은 생각 한 가지는
일출의 오메가와 일몰의 오메가는 사뭇 다른 의미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해가 서해의 검은 품 속으로 빠져 동침에 드는 것을
끝까지 지켜 본 일행은, 추위와 바람에 시달리던 장비와 몸을 추스르고
서둘러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일몰의 장관은 잠깐이었지만 깨끗하고 선명한 오메가를 가슴 깊이 담을 수 있는
횡재를 하였으므로,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은 뚝길을 되짚어
자동차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물론 제 파인더 안에 담긴 일몰은 실제 광경의 만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고
그마나 선배님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초보의 횡포를 묵묵히 감내해 주신 선배님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제 가슴으로 안으로 ‘툭’ 떨어지던 붉은 해를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 Let me see
첫댓글 얼마전에 구입하신 디카로 새로운 시간을 맞 보시겟군요... 자주 조은 그림 뵐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멋지군요~ 축하해요~
경녀님 글솜씨에 사진 까지... 부럽습니다~~
떼쓰면 붙여주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저도 때쓰면 붙여주실라나? 따라가고 싶다. 사진&글 너무 좋아요.. 자주 올려주실꺼죠?
사진기 가슴에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아자아자파이팅!!
이글을 읽으니 밀양에서 1박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길에 낙동강 하구언에서 바라다보이는 일몰이 넘 아름다워 차를 잠간새워 정신없이바라보았답니다 낙동강 위를 날아다니는 철새들이 한 분위기하는데 정말 죽이더군요~~ 주위에 모든사람들의 건강도 함께 빌면서 집으로향했답니다
어쩌면 그렇게 섬세하게 글을 잘 이어 가시는지요...오래전부터 님의 글을 읽어 왔는데 정말 글솜씨가 부럽습니다..
모두 용기주셔서 고맙습니다... 욕심 같아서야 저도 기가 막힌 사진을 보여 드리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겠어요? 이제 막 시작했으니 지켜봐 주세요~^^ 누군가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면, 게으르고 싶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니까............
초보라는 그맘이 너무나 예쁘게 느껴지네요~ 앞으로 더 좋은 작품에 기대를 걸며 이제는 출사때마다 흥분으로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를 렛미씨님의 모습이 상상 되어집니다. 도전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지요~!!
저 진짜 초보 맞는 걸요... 그것도 쌩초보... 왕초보~^^ 그런데 저 출사하는 날, 겨울비님은 따라 오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