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성춘복 시인에 대한 추상追想과
시세계에 대한 조감照勘
김세영(시인, 문학평론가)
성춘복 시인에 대한 추상追想
선생님께서 2024년 6월22일 소천하셨다.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조문 영안실이 마련되었다. 고인의 배우자이신 우희정 소소리출판사 대표이자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으로부터 그간의 병세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장례위원이신 김송배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님과 배석한 한국문인협회의 시인들 몇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고인의 성품처럼 번잡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의 조문객실이었다.
고인께서 작년에 미수를 맞이하시어, 시 전집을 발간하셨다. 그동안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분들의 글들을 함께 모아 실은 책이다. 선생님께서는 고혈압과 뇌혈관질환(뇌경색 후유증)으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3년간 순환기 내과 전문의사인 필자의 클리닉에 다니셨다. 후반 몇 년간은 사모님을 대동하고 다니시었다. 거리가 멀고 보행이 다소 불편하시어, 자택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셨다. 기력이 점점 쇠약해지시는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다.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계기는, 필자가 문효치 선생님 지도로 시 공부를 한 후 『문학시대』에서 등단하게 된 인연의 덕이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논현동에 사실 때이다. 인사 겸해서 자택 인근에 있는 선생님의 단골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몇 번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미식가로 문단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조그마하지만 앤틱한 실내 분위기에 음식 맛도 깔끔하고 좋았다는 기억이 난다. 2007년도에 필자가 쓴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미식가다우시게 즐겨 다니시는 전국의 유명 맛집을 소개해 주셨다. 경상도의 진주 추어탕집(구마산), 된장과 두부 요리는 구기동의 민속집, 만두와 떡국은 북악 터널 너머의 자하, 보리 굴비와 뱅어찜은 청담동의 굴비집, 오분작 된장국과 갈치구이는 서초동의 서귀포 식당, 통영 음식으로 소문난 장충동의 전원 등등 말씀해 주셨다.
젊은 시인에게도 존댓말을 쓰시며,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1971년에 천상병 시인이 실종됐을 때, 선생님은 동료 문인들과 함께 천 시인의 『새』라는 시집을 발간했었다. 그런데 이 시집 발간이 보도됨으로써 무연고자로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천 시인이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 또한 선생님의 시인으로서의 인품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된다.
선생님께서는 그림에도 타고난 재능을 보여주셨다. 『문학시대』의 잡지, 시집, 수필집 등 여러 단행본의 삽화들을 손수 그리셨다. 펜과 붓으로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삽화를 그리셔서 책을 세련되고 품위있게 만드셨다. <문학의 집 서울>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셨을 때, 작품 한 점을 구입하여 병원 대합실에 걸어두었다. 선생님께서는 답례로 필자의 등단 시인 「사월의 목련」을 시화로 그려서, 선물로 주셨다. 절친이셨던 고 김영태 시인, 화가이자 무용 평론가이신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필자의 스케치 인물화를 만들어주셨다. 폐업 전까지 진료실에 걸어두었었다. 또한 선생님은 2009년에는 미국 뉴욕 <스페이스 월드>에서 시화전을 여시기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이름난 기업가의 맏아들로 태어나셔서. 주변에서 부친의 사업을 맡아서 하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웃으면서 “저는 기업인의 소질이 없습니다. 가난과 함께, 시와 더불어 살겠습니다”라고 사양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1988년~2000년 기간 동안 제21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한국 문단의 발전을 위해 혼신 노력하신, 한국 문단의 맥을 이끌어오신 큰 원로 시인이다.
시 세계에 대한 조감照勘
성춘복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에서 신석초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문단 생활 중 17권의 시집과 4권의 시조집, 그리고 1권의 평론집과 6권의 수필집을 상재했다. 초기 시풍은 문인화를 보듯 시어의 결이 단아하다. 시상의 흐름이 유려하며, 섬세한 이미지의 서정시라고 생각되었다. 평소의 온화하신 성품이 시작품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를 읽으면 현악사중주를 들을 때의 느낌이 든다. 아마도 박목월 시인, 청마 시인, 신석초 시인을 좋아하시고, 그 시풍을 이어받으신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성 시인은 60여 년의 긴 작품 활동기간 동안 몇 차례 작품 경향의 변모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년도 별로 작품 성향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1965년에 출간한 『오지행奧地行』에 실린 「도강록渡江錄」에서는 상실의 시대에서 공간적 시간적 유폐 상황에 갇혀 우울감과 절망감의 늪에 빠진 상태를 절절히 보여준다. 또한 이쪽의 현실 세계와 저쪽의 피안 세계로의 연결자로서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누가 이 순간을 역류시킬
나를 불러 줄 목소리를 가질 것인가?
들끓는 소란의 옆
옛땅과 피안을 잇는
망각된 기억의 강을 탄다
희망과 저주의 산
그 속에 변함없이 살아간다.
- 시 「도강록」 부분
1970년에 상재한 시집 『산조』에 실린 「전생轉生」이란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대적 상실감과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극복 의지를 좀 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나의 피
나의 소생蘇生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을 등지고
바람과 함께 이야기하며
바람을 부둥켜안고
다시 태어날 나의 뜻은
또 어디에 있는가.
- 시 「전생轉生」 부분
80년에 들어서며, 서정성의 부활을 선언하듯, 1984년 『복사꽃제』를 필두로 하여, 1985년 『바깥세상에 띄우나니』, 1986년 『꽃잎 띄운 물 마신 듯』, 1988년 『네가 없는 이 하루는』 등 봇물 쏟아내듯 시집들을 출간했다.
생애를 마감하고
거듭 시작을 보이는
매듭의 끝가지를 타고
꽃이 심한 기침을 해댄다
빛의 한가운데
꽃은 튀어 오른다
바다와 바람과 안개가
꽃을 밀어 올린다
복사꽃밭의 꽃을
- 시 「복사꽃제」 부분
복사꽃처럼 화사하고 눈부신 감성의 시어들과 이미지 묘사들이 20년의 침묵을 끝내고, 활화산의 용암처럼 솟아올랐다. 60년대, 70년대 암울했던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속을 분홍빛 꽃비로 씻어내는 서정의 축제를 펼치고자 하였다.
90년대에는 『길 하나와 나는』, 『그리운 죄 하나만으로도 나는』, 『혼자 부르는 노래』, 『헤적이기>헤작이기』 등 무려 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시적 절정기에 다다른 시인의 깊은 자기 성찰과 자기 구원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시적 형식의 변형과 해체 등 파격적인 시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궂은 바람에 비 지나고
유난히 햇살
그러나 이미 꽃들은 졌고
한 해의 등마루에 서게 된다
가을걷이 끝나 스산한
이 계절, 그래
지금은
흰 등허리나 긁어야 할 때
뿌연 산들, 길마저 가려져
어둠이 되고 마는
내 시간만 혼자 달린다.
- 시 「드디어 내 시간은」 부분
11월쯤 늦가을, 꽃들이 지고 스산함을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시이다. 가을걷이 끝난 들녘의 초라함이, 뿌연 산들의 고고한 거룩함의 자태로 승화하는 모습. 혼자 달리는 시인의 고적한 시간이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시이다.
2000년도에 들어서서 『마음의 불』, 『부끄러이』, 『그림자놀이』, 『봉선화 꽃물 』, 『내 안 뜨거워』 등 5권의 시집을 내었다. 2010년에서 2020년에도 『길 밖에서』, 『반백년의 나들이』, 『십삼월의 뜰』, 『여든의 하루를 사는 법』 등 마지막 4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세상사에 거리낌 없는 자유인으로서 안온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유의 시들이다. 여유로움과 다정스러움. 그리고 비움과 편안함이 키워드가 되는 시들이다. 시인은 이 시기에 간결한 단시와 시조도 많이 썼다. “나이 들면서 늦게나마 깨달은 것의 하나는, 시는 짧아야 하고 감흥스러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절제미를 빚는 능력이 미숙하여 부지런만 피우고 있는 듯싶다. ” 라고 시선집의 책머리에서 고백한 바 있다.
2000년 65세를 바라보며, 빈 마음의 처연한 노령의 초입에서 출간한 시집 『마음의 불』에서 3편의 시를 뽑아서 감상해 본다. 가을과 노을의 꽃들 앞에서 황량한 세상을 떠돌다, 눈물로 무너지는 몸의 소리에 놀란다. 다 죽은 몸의 지중해 바다에서 인간의 죄를 시인은 회개하며 묻고 또 물으며, 석양의 기러기처럼 울먹이고 있다.
나를 태워
재로 사그라들게 하는
서글픔은 무엇이고
너를 쫓아
바삐 떼어놓는 내 걸음은
또 무엇인가
숯 사이를 돌아
문득 가을 앞에 섰을 때
나도 꺾인 화살의 기러기 되고 마는 것을
- 시 「들불」 부분
타다 만 노을의
얼마 남지 않은 하늘을
꽃구름으로라도 지키듯
낯선 땅을 겉돌며
가끔 눈물도 훔쳐
내가 무너지는 소릴 듣게 되면
그래서 자꾸 놀라는지
별들조차 처마 끝으로 쫓겨나
갈 곳 없는 세상만 떠도는 것을
- 시 「놀람」 부분
삭지 못한 내 울음소리
아직도 들리는 옛날의 붉디붉은
뼈 갈아 붙이는 이곳에서
사람의 죄를 나는 묻고 있다
척박한 땅만이 세우는
다 죽은 몸의 이 바다
지중해의 더 없는 조요로움에
물너울도 별을 쫓아 반짝이고 있다.
-시 「에베수스」 부분
성춘복 시인의 마지막 시집인 제21시집 『여든의 하루를 사는 법』에서 시인의 일생에 걸친 시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로서 『나를 불러 앉히는 일』을 감상해 본다. 쉼 없이 달려온 지난 길을 되짚어보며, 자신을 조용히 불러 앉히고, 다부지게 나무라기도 하며, 가엾이 위로해 주는 자성의 시이다.
자작나무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먼 산을 겨누면서
밤새 달려온 어제의
그 길을 되짚어 펴보고
더러 봄맞이 나온
영춘화를 바라보며
내 걸음 앞의 햇살을
다부지게 나무라듯
나는 오늘도
뒷짐을 지고
이승을 다 산 다음의
나를 불러 앉히는 일에 열중이다.
배영애 평론가는 성춘복 시인의 시세계를 종합적으로 요약하면서, “60년대와 70년대는 형이상학적 자기구원 내지 자기실현을 구현했다면, 80년대와 90년대에 펴낸 시집에서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직시를 통해 현실극복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으로 확장하여 갔다. 길 떠남이라는 자아 발견의 떠돌이 행로에서 길 떠남과 새로운 삶의 마주함이 구체화된 새로운 세계 즉 환상과 욕망의 세계에서 벗어나 참다운 세계를 바라보기 위한 시적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논평했다.
박영배 문학평론가는 최근 「해체와 변용–성춘복 시학, 또 하나의 시선」이란 평론에서, “첫 시집을 상재하고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랑이나 한을 청승이란 가락에 얹어보려 했던 범주에서 벗어나서, 도상기호의 사용과 시행의 파격적 배치 등 색다른 시 쓰기를 결행한다”라고 최근의 시적 변신을 주목하여 평하였다.
성춘복 시세계를 조망해 보면서, 마치 상류의 고통스럽고 굴곡진 소용돌이 협곡과 폭포를 지나서, 하류에 이르러서는 순수 서정과 유구한 역사적 서사 그리고 현생과 피안을 두루 관조하는, 물굽이 따라 도도히 흐르는 장강의 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