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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석모도 화개정원과 興淸亡淸[흥청망청]의 원조 연산군의 최후 위리안치소[유배지].......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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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석모도 화개정원과 興淸亡淸[흥청망청]의 원조 연산군의 최후 위리안치소[유배지].......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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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浪者[유랑자]는 전망대에서 내려와 이제 華蓋庭園[화개정원]으로 향한다. 교동면 고구리 화개산 기슭에 14만 6천9백
십3㎡에 489억 원[민자 115억 원 포함]을 들여 조성한 화개정원은 축구장 20여 개 크기의 정원으로 약 18만 본의 다양한
수목과 관목류, 草花[화초]류가 식재되어 있으며, 2023년 4월 24일 인천 최초로 지방 정원으로 등록되었다. 먼저 화개정
원 구성을 살펴보자면….
1. 물의 정원: 고구, 난정저수지의 식생 및 경관 요소를 반영하여 물의 순환과 연출을 통하여 자연의 정화 및 심신의 안정
을 위한 수변 정원으로 꾸몄다,
2. 역사·문화의 정원: 화개산성, 교동읍성, 연산군 유배지 등 주변 역사 자원과 연계한 전통 정원이다. 그중 이 화개정원에
연산군이 최후를 맞은 위리안치소 전해오는 연산군 유배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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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추억의 정원: 고향 땅의 시골 풍경을 담아 정취를 느끼는 향수 정원
4. 평화의 정원: 6.25 전쟁통에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76년, 5km 앞 고향 땅을 다시 찾는 밝은 미래와 희망을 담은 주제
정원이다.
5. 치유의 정원: 사람에게 유용한 수목과 식물 재료를 이용한 힐링 정원이다.
6. 그리고 마지막엔 유랑자의 컨셉 멍때리기 존[Zone]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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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은 교동도의 화개산[259.6m] 기슭에 11만㎡, 축구장 20여 개 크기의 터전에 조성된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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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의 상징이자 방문객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단연 화개산 정상에 자리한 스카이워크형 전망대다. 강화
군의 군조(郡鳥)인 저어새가 북녘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전망대는 디자인 자체에 깊은 상징을 품고 있다.
그 비상이 만들어갈 교동도의 미래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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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인들에게 잠깐의 휴식과 힐링의 장소인 화개정원! 이곳에 설치된 선베드, 해먹, 의자 등에서 편안하게 ‘멍때리기’
하면서 힐링하고 가라는 의미를 담았다. 화개정원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교동도의 역사와 자연을 담은 정원’이라는 컨
셉을 갖고 있다. 본시 교동도는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로 군사시설보호법과 문화재보호법 등으로 개발이 제한돼 침체된 지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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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곳이 먹사니즘[물질적 생존을 위한 경제성장 우선주의] 과 잘사니즘[정신적 풍요와 삶의 질 강조], 즉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한 지역민들의 소득 증가를 위해 직역 사회에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소득 증대를 위한 것이다. 특히 황해도 실향
민의 삶터인 교동도와 강화를 잇는 연륙교 개통 이후 접경지 주민들의 균형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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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불과 2.6km 떨어진 접경지역이라 출입 절차가 필요한 교동도, 다리 위에서 서해의 물결 너머로 북녘땅이 바라
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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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닿을 듯 가깝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땅. 불과 7km 떨어진 북한 황해도 연백평야를 마주한 작은 섬 교동도에 특별
한 정원이 뿌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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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강화군의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해발 259m 화개산을 중심으로 1960∼1970년대 모습이 그대로 남겨진 대룡시
장, 연산군 유배지 등 역사 문화자원과 연계해 체류형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교동도는 그 결과치로 화개산 전망대를 중
심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교동도에 유입되면서 삶의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유랑자는 표를 끊고 화개정원 입구를 통과해 먼저 좌측 물의 정원으로 길을 잡는다. 초가을 화창한 날씨는 가슴이 시릴 정
도로 맑고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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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꽃들이 유랑자를 반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인공 폭포의 아담한 물줄기가 친근한 느낌을 준
다고나 할까, 비록 인공이긴 하지만 나름 멋스럽다. 꽃 대궐을 이룬 정원 내 아기자기한 수림과 인공 기암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광장 주변으로 곱게 깔린 화분과 꽃들을 적시면서 작은 여울을 이룬다. 아름다운 화개산의 자연 지형과 어울리
도록 만들어진 인공 폭포와 수변 정취는 희망과 평화를 염원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정원의 관광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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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은 계절별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봄과 가을에는 나만의 화분 만들기·얼굴 그리기 등을, 여름에는 봉숭아
물들이기 체험 등을 나눈다. 아울러 가을마다 열리는 '화개정원 축제'는 공연·벼룩시장·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됐다.
이중 '솥뚜껑 스탬프 이벤트'가 단연 인기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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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인천시 제1호 지방 정원으로 문을 연 화개정원은 접경지역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오히려 가장 특별한 자산
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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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포인트가 있다, 놀랍게도 폭포 뒤로 돌아 들어가는 비밀스러운 작은 통로가 있다. 마치 젊은 청
춘들의 애정행각을 벌일 수 있는 장소처럼…. 아무튼 화개정원은 5색의 테마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로 당도한 숲속의 흙냄새 풀냄새가 어우러진 산책로를 가다 보면 들려오는 숲속의 작은 물소리는 마음을 정화해 준
다. 초록의 물결은 어느덧 세월 따라 바람 따라 고운 옷 갈아입을 가을맞이 채비를 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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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작은 산새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알콩달콩 사랑가를 부른다. 초가을 산바람 하늬바람은 뉘엿뉘엿 다가오
고 따가운 햇살 아래 정원의 꽃들은 어린아이들처럼 도담도담 잘도 자라고 있다. 유랑자는 두 팔 벌려 크게 숨을 들이마시
고 또 내쉬어 본다.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속 묵묵히 쌓여있던 헛헛한 잡생각들의 찌꺼기가 조금씩 비워질 뿐만 아니라 푸
른 하늘을 품에 안으니 마음속 묵은 갈증이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가슴속까지 시원한 희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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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얼마 전 선정한 '2025~2026 한국 관광 100선'에 교동도가 처음 이름을 올린 데에는
화개정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개정원이 단순한 관광시설을 넘어 지역 이미지를 높이고 주변 상권에도 활력
을 불어넣는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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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은 단순한 꽃과 나무의 집합이 아닌,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과 평화의 염원을 담아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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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상쾌하고 시원하고 조용해 좋다. 그야말로 모든 게 평화로운 정원이다. 도심에서 찌들었던 묵은 피로를 싸~악 씻
어주는 피톤치드 가득한 쾌적한 숲속의 벤치에서 유랑자는 잠시 앉아 아무 이유 없이 청명한 가을하늘을 올려다본다.
청설모는 바쁜 듯이 이리저리 널뛰어 다니며 가을맞이에 여념이 없고….손은 더듬더듬 작은 배낭을 열어서 가지고 온 커
피 한 잔에 여유 있는 숲 멍을 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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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와닿는 한 줌의 얇은 바람은 앉아 있어도 된다는 속삭임으로 귓전을 간지럽힌 공간이 되어준다. 이렇게 화개정원은
유랑자의 힘겨운 세상을 잠시 잊게 해주는 가장 아름다운 힐링이며 테라피였다. 사실 이러한 풍경은 도심에서 온갖 소음에
시달리는 우리들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힐링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유랑자는 한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나 발길
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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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배를 타고 교동으로 떠나는 날, 그를 따르는 사람은 나인 4명과 내관 2명, 그리고 호위병 뿐이었고, 닷새만에
교동에 도착한 연산군과 시녀들은 살 길이 막막하여 목놓아 울었다. 호위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당상관 심순경에게 연산
군은 마지막으로, “그대가 나 때문에 이런 먼 곳까지 고생하여 왔으니 고맙기 한이 없노 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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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간 곳은 오늘의 포인트 역사/문화공원이다. 공원엔 희대의 폭군 燕山君[연산군,(李㦕:이융)]의 유배지가 있다.
교동도 화개산 중턱에 조성된 화개정원에는 연산군 유배지가 복원돼 있었다. 사실 과거 강화군 교동도는 고려부터 조선까
지 왕족 유배지로 최적의 장소였다. 특히 조선시대 연산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아무튼 화개산이 내놓은 오늘의 주인공은
조선 제10대 국왕이었던 연산군은 재위 후기의 폭정으로 인해 官民[관민]의 원성과 반발을 사게 되면서 결국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축출되어 폐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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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교동도에서 圍籬安置[위리안치] 형벌에 처했다. 위리안치란 조선시대에 왕족이나 고위
관직자 등 주로 신분이 높은 죄인에게 내려지던 유배 형벌 중 하나로, 유배지에서 죄인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거처하
는 집 주변에 가시울타리[탱자나무등]를 둘러 가두는 가혹한 형벌을 뜻한다. 그 장소가 이곳에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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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王)에서 군(君)으로 강등된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가서 몇 달 만에 그 곳에서 30세의 나이로 최후를 맞이
했다. 그야말로 절대 왕권으로 흥청망청 놀고 먹으면서 제멋대로 즐기던 양반이 한순간에 몰락하고 초라한 유배 생활을 해
야 하는 본인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병을 얻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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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간다. 사실 여행기를 쓰다. 보니 특히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유랑자는 그동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 40기 중에서 27곳을 가 보았다. 아무튼 연산군의 유
배지라고 하니까 더더욱 관심사가 된 것이다. 실제로 가 보니 뾰족한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초가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방과 부엌 한 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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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는 수염을 기른 남성 앞에 단출한 반찬이 놓인 밥상과 이불이 놓여 있다. 당시 연산군은 採紅使[채홍사]을 파견하
여 전국에서 선발해 온 미녀들로 興淸[흥청]’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興淸[흥청]이란 조선조 연산군 재위 10년[1504]에 자
신의 유희를 위해 왕명으로 모집한 妓女[기녀]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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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 후 연산군의 어린 자식들도 대부분 사사되거나 비참한 미래를 맞이했다. 이 사실이 연산군에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정신적 충격 또한 사망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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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향연을 베풀기 위해 전국에서 미모와 가무가 뛰어난 여인들은 기생에서 유부녀까지 가리지 않고 궁으로 불러들
여 왕실의 기생으로 만들어 버렸다. 돈, 물건 따위를 아끼지 않고 마구 쓰는 모양을 가리키는 興淸亡淸[흥청망청]이란 단
어는 사실 이 흥청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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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산군은 성균관을 놀이터로 삼고, 원각사를 연회장과 유흥장으로 만들었던 왕이었다. 그러나 폭군의 마지막 삶은 비
참했다. 유배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역질[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다. 당시 연산군의 나이는 불과 30세였다. 이를 두고 독살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연산군은 후대까지 '조선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라는 오명
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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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 세력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서에 사실대로 적지 않고 연산군이 병으로 동생 중종에게 왕위를 양보했다는 희대의 사
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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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적장자이자 중종의 이복형으로, 500년 조선 왕조 역사에서 光海君[광해군]과 함께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 복위
되지 못하여 '祖[조]'나 '宗[종]'으로 끝나는 묘호를 영영 받지 못한 두 명의 임금 중 한 명이 연산군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폭군의 이미지라 시쳇말로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아무래도 어머니인 페비 윤씨의 성격
에서 DNA를 물려받은 유전의 영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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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지만 조선시대의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다. 왕족은 너무 멀리 방치해놓으면 세력을 규합할까 불안했던 것
이다. 그래서 가까우면서도 감시하기 쉽고, 신속하게 사약도 전달할 수 있는 교동도에 가두었다. 당시 왕족들에겐 사면이
펄과 바다로 둘러싸여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동도는 결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유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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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폐위된 군주라서, 능의 형식이 아니라 그냥 조촐한 묘로 되어 있다. 살
아서는 최강의 권력을 누렸지만, 죽어서는 가장 초라한 묘에 안장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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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왕들의 무덤인 교동도!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도 경계 대상 1호인 동생 안평대군을 교동도에 가뒀다.
그리고 8일 만에 사약을 내려 죽여버렸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후원자,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던 안평대군은 36세
의 나이로 교동도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광해군의 동생 능창군도 17세의 어린 나이에 교동도에 유배돼 모욕감에 3개월
만에 자결했고, 선조의 첫째 서자인 형 임해군도 교동도에서 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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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군을 죽인 뒤 13년 후 결국 광해군 자신도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 교동도로 유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광해군은 병자호란 이후 제주도로 옮겨져 생을 마감했다. 또 인조의 다섯째 아들인 숭선군과 철종의 사촌 익평군까지 시대
별로 유명인들의 유배지였다. 고려시대에도 21대 왕 흥선군, 22대 왕 강종 등이 교동도로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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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교동읍성에는 유배된 왕족들의 무덤과 謫居地[적거지] 등이 남아 있다. 교동도의 왕족들은 극도의 감시를 받다가
대부분 단기간에 사약을 받거나, 병에 걸려 죽었다. 반면 일반 정치범은 먼 곳으로 유배를 갔지만 장기적인 유배 생활에서
책을 쓰거나, 시를 지으면서 오래 살아남았다. 다산 정약용 형제나 추사 김정희 등 사대부들은 전남 강진, 흑산도, 제주도,
함경도 등 한양에서 천 리 길 넘게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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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지사 연산군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연산군에 관한 이야기를 그냥 널길 수 는 없지 않은가? 당시 연산군의 신하들을 폭
력으로 억눌렀다. 연산군의 악행을 살펴보면…. 연산군은 당시 패악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연산군은 자신의 행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물리적인 폭력으로 억눌렀다. 이는 소통이 단절된 독재 정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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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재정 부족을 걱정하며 간언을 올리면,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한시 중 일부인 ‘'口舌瘡腱[구설창건] 구절인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글귀를 따와 이를 적은 ‘'愼言牌[신언패]를 강제로 목에 걸게 했다. 신하들은 임
금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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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정은 오직 왕의 비위를 맞추는 아첨꾼들만이 득세했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興淸[흥청]의 권세는 날
로 높아졌다. 이중 제안 대군의 노비 출신으로 흥청이 된 장녹수는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숙원의 첩지를 받았고, 연
산군의 타락을 부추기는 등 국정을 농단하면서 대단한 위세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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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산군은 자신의 쾌락을 방해하는 요소라면 무엇이든 제거했다. 사간원과 사헌부 같은 언론 기관을 폐지하고, 자신의
폭정을 비판하는 글이 적힌 한글 벽보가 붙자, 범인을 잡기 위해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관련 서적을 불태웠다.
소통이 단절된 궁궐!. 그 안에서 임금은 오직 흥청들의 노랫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이에 왕은 고립되었고, 그를 지탱하던
신하들의 충성심은 분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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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질서 또한 무너졌다. 연산군은 자기 큰어머니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범하는 인륜 파괴적 행태를 보였으며, 이는 유
교 국가 조선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또한 선왕의 후궁들을 직접 살해하고 그 자녀들에게 매질을 강요하는 등 인륜을
저버린 행각을 이어갔다. 왕이 도덕을 저버리자, 사회 전반의 윤리의식도 함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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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년[연산 12년] 9월, 마침내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주도한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임금의 호위병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궁궐을 가득 메웠던 흥청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연산군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도로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興淸亡淸[흥청망청]’의 역사는 권력이 공적인 책임을 잊고 개인의 욕망과 폭압에만 집중할 때 국
가가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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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조선의 시스템을 파괴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스템의 붕괴는 자신의 몰락으로 돌아왔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가십이 아니라, 지도자의 도덕적 해이와 폭정이 공동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엄중한 기록이다. 역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의 자원은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며,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서 나
오는가. 흥청망청의 교훈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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禍從口出[화종구출]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말은 그 사람의 정신세계이다. 본시 사람은, 말 때문에 파멸한다. 口是禍之
門[구시화지문]이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라는 뜻으로 全唐書[전당서] 舌詩篇[설시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당나라가 망한 뒤의 後唐[후당]때에 입신하여 재상을 지낸 馮道[풍도]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五朝八姓十一君[오조
팔성십일군]을 섬겼는데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는 말이니 그야말로 처세에 능한
달인이었다. 馮道[풍도]는 자기의 處世觀[처세관]을 아래와 같이 후세인들에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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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狂人[광인]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던 연산군이 이 시문을 가져와 썼던 것이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오.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閉口深長舌[폐구심장설]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心處處牢[안신처처우]가는 곳 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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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은 단순히 아름답게 가꿔진 녹지 공간을 넘어선다. 분단의 상처가 아로새겨진 접경지역에서 평화와 치유의 메
시지를 전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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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는 인생살이가 입이 禍根[화근]임을 깨닫고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입조심하고 혀를 감추고 말조심을 처세의 근
본으로 삼았기에 난세에서도 영달을 거듭한 것이다. 입을 함부로 열지 말고 말을 아끼라는 고사성어 중에 이런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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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口如甁[수구여병]: 입을 병마개처럼 지킨다.!
禍生於口[화생어구]: 화는 입에서 생긴다.
駟不及舌[사불급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의 힘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 .
禍從口出[화종구출]: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고
病從口入[병종구입]: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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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남긴 깊은 울림과 자연이 주는 따스한 위로가 함께하는 곳. 교동도 화개정원은 화려함보다는 정갈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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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 혹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화개정원이 품은 천 년의 이야기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시길…. 분명 마음
속에 맑은 바람 한 점이 머물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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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조심하고 혀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구한 진리다. 한 번 쏟아지면 담을 수 없는 물처
럼, 말을 삼가 경계하여 나의 안위를 살피고 타인을 배려함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이 세상은 남이 되고 이혼하고 원수가 되고 전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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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 하나만 바꿔도 人生[인생]이 달라지고 品位[품위]가 달라진다. 입조심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렇게 오랜 세월에도 계속
이어질까? 특히 昨今[작금]의 爲政者[위정]자 들의 言行[언행]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非一非再[비일비재] 하다.
心身[심신]이 편안한 삶은 곧 말을 삼가는 것이다. 위정자 들이여 각성하라,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오.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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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유랑자 강화 여행기 62번 여행기에서도 언급한 바와같이 華蓋山[화개산(259.6m)]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솥
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火[불 화], 蓋[덮을 개]’라는 한자를 사용한 이름이기 때문에, 솥뚜
껑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정원 안의 조형물에도 반영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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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팁
-첫 번째, 입장료와 모노레일 요금은 별도이다.
성인 기준 화개정원 입장료는 5,000원, 모노레일 일반 왕복은 14,000원이다.
따라서 성인이 화개정원에 입장한 뒤 모노레일까지 이용한다면 단순 계산으로 총 19,000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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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망대는 입장료에 포함된다.
전망대 입장료를 별도로 내는 것이 아니라 화개정원 입장료에 전망대 관람이 포함된다. (전망대 도보 이용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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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날씨를 확인하시라.
화개산 전망대의 가장 큰 매력은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미세먼지나 안개가 심한 날보다는 시야가 좋은 날
방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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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모노레일 운행 여부를 확인하시라.
기상 상황이나 안전 점검 등에 따라 모노레일 운행이 중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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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편한 신발을 추천한다.
화개정원은 산책할 공간이 많기 때문에 편안한 신발을 신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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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화개정원 저어 전망대 카페
화개산 전망대 건물 안에는 저어 전망대 카페도 있으니 폼 나는 커피는 전망대에서 마시면 어떨까?.
강화군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베이커리 카페로 소개하고 있으며 커피, 에이드, 차, 빵 등을 판매한 만큼 간편한 요깃거리도 된다.
공식 안내 기준 운영시간은
평일 : 09:00~18:00
주말 : 08:30~19:00
전망대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한 뒤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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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정원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산 236-6
*전 화: 032-932-2336(문의: 032-930-3151)
*이 용: 08:00~19:00, 라스트오더 ~18:00 (주말:08:00~20:00)
-어른 : 5,000원, 단체(20명 이상) : 4,000원
-어린이, 청소년, 노인 : 3,000원, 강화군민 : 무료
6세(2020년생)이하의 영유아 : 무료
*홈: https://www.ganghwa.go.kr/hwa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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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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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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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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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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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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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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