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다 내 일이다.
모든 중생이 자기 직업상 분주를 떨며 명(命)이 줄고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간만큼 명이 줄어드는 것이 마치 물이 줄어들고 있는 고기 신세와 같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무명(無明) 업식(業識) 어두운 생각으로 꽉 차 몇 만 년 살 것처럼 분주를 떨며,
할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심히, 그리고 깜깜히 넘어갑니다.
배고픈데 밥을 안 먹으면 살겠습니까.
어린아이도 배고프면 밥을 찾아 먹고 추우면 옷을 찾아 입습니다.
할 일을 안 하는 사람은 밥도 먹지 말고 옷도 입지 말아야 합니다.
제 밥도 아닌데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면서 어떻게 할 일은 안 하느냐 밀입니다.
‘할 일을 안 하면 밥을 굶고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런 생각도 안 하는 사람들이 무슨 좋은 책을 읽고 사방천지 법문을 들으려고 하느냐 말입니다.
실천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구부러진 못을 반듯하게 펴는 데는 아무리 말로 바르게 펴져라.라고 해도 안 되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아무리 찾아도 안 됩니다.
염불을 백 번 하는 것이 장도리만 못합니다. 천지 만물이 오직 하나입니다.
남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입니다.
이름만 임시로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남이 있으니 이 몸도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안으로 공부하고 밖으로 남 도울 일밖에 없습니다.
나만, 내 집 식구만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며칠이나 살려고 그런 죄를 짓고 삽니까?
부자로 사는 사람, 명예로워 보이는 사람 별것 아닙니다.
전생에 지어놓은 인연법일 뿐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모래가 모여 태산이 되었고 물이 모여 바다가 되지 않았습니까.
공부해 봐야 별수 없다.라고 생각할 것 없습니다.
오늘도 공부하고 내일도 공부하면 바다도 될 수 있고 태산도 될 수 있습니다.
물이 모이면 배도 뜨게 하고 물레방아도 돌아가게 합니다.
사람도 집안 식구가 단결하면 발전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습니다. 모이는 데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다, 너는 너다, 갈라지면 나도 죽어 버립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부자가 있을 수 없고 국민이 없으면 대통령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나고 나는 곳에 이것 때문에 고통받고 지옥에 가게 되는데,
이놈에게 안 속고 종노릇 안 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얕보면 안 됩니다. 한 숟갈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똑같은 밥 한 숟갈인데 자꾸 먹으면 배부르지 않습니까?
복 없는 사람들은, 한 숟갈 먹고 먹어 보니 배가 안 부르더라. 그럽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재미도 없고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밥 먹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오늘도 공부를 쌓아 놓고 내일도 공부를 쌓아 놓으면 시절 인연이 돌아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집니다.
돌아오지 말라고 해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할 일만 하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공부하지 않더라도
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해야겠다. 결정해야 합니다.
이 이치를 아는 사람들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습니다.
살 길이 이것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전부 불쌍해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무식꾼부터 박사까지 전부 죽을 일만 하고 있습니다.
꿩이 맞아 죽는 것처럼 자살 법을 쓰고 있습니다. 살아봐야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나쁜 일만 하는 것만 죄가 아니라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죄(罪)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도 착한 일이 없습니다.
다 허망한 일이므로 근본 자리에서 보면 다 죄짓는 일입니다.
세상만사가 바람 앞에 등 불같은 일, 아득한 여섯 갈래 일정한 법이 없더라.
성불하지 못하면 고통 바다에 내왕하거니 어떻게 두려운 생각 없이 자유로이 사느냐.
우리 중생에겐 할 일이 있습니다.
밥을 안 먹을지언정 할 일을 해야겠다. 생각해야 하는데, 복이 없고 어리석어 편한 것만 찾으려 합니다.
수행자도 그렇습니다. 꾀부리고 게으름만 떨고 편한 것이 전부 저를 죽이는 일인데 그런 것만 합니다.
어렸을 때는 철없이 그런다고 해도 나이 먹어서도 그러면 누가 도와줍니까.
요행히 사람 몸을 만나 살길을 만났는데 정성을 다해 공부하다 죽으면 됩니다.
오래 사는 것이 공부하다 죽는 것만 못합니다.
집에 불이 나도 세상이 나를 공부를 시키는구나, 기쁘게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맞아 뼈가 부러져도 믿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세상이니
아무 일이 없을 때 공부 잘하라고 그러는구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몸이 있는 이상 병 없기를 바라지 말고 재앙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스승입니다.
무슨 일이든 달게 받아야 합니다. 까닭 없이 생기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가 만들어 오는 것이 아닙니까.
수없이 지나온 세상 무슨 일을 안 지었겠습니까.
달게 받아야 합니다. 성내봐야 죄가 더 불어나 나만 손해 봅니다.
나만 잘했다고 하면 죄만 더 커지고 집안만 망합니다.
이런 것을 빨리 깨달아 나도 실천하고 남도 가르쳐줘야 합니다.
오늘 한 일만 일이고 어제 한 일은 내 일이 아닙니까.
한이 없는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내가 깔끔할 수 있겠습니까.
행여라도 남의 흉을 보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어려운 일을 당해서야 깨닫지, 편안해서는 안 됩니다.
숨도 못 쉴 만큼 고통을 받아야, 대 마디처럼 여물어지는 것입니다.
흉볼 일이 아닙니다. 나한테 언제 돌아올 줄 모릅니다.
무슨 바람이 불 줄 모릅니다. 어떻게 그 일을 마음대로 합니까.
부처님 법이 이렇게 좋습니다. 이런 것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나에게 아무리 잘못해도 조작이 아니니 그 사람을 몰래 도와주십시오.
내 죄가 한 없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국왕을 죽인 사람이나 부모를 죽인 사람이라도 원수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까닭 없이 생기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갚으면 나중에 일이 더 커집니다.
세상 법과는 아주 반대입니다.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세요.
내가 무엇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 몸 받을 사람 없습니다.
한순간에 사람 몸 잊습니다. 왕을 백 명 가져다 놓아도 이 공부하는 복에는 못 당합니다.
의심 없이 이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선 사람이라면 인간 천상의 복을 다 덮어버린 것입니다.
어리석은 눈으로 볼 때 그 들보다 못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보다 몇억 만 배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중생들이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 면목을 증득(證得)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으며 한 생각 있기 전의 본래 면목을 모르고서야
무슨 포교를 하며 또 불경을 가르치는 강사며 법사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으며
부처님의 제자라고 망령되이 말하리오.
내가 내 마음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머리 깎고 법복을 입었다고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내 마음을 알아야 부처님의 진짜 제자가 됩니다.
유식하나 무식하나 이것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천하 사람을 다 가져다 놓아도 공부하는 사람의 신세만 못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지금 성불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공부할 인연으로 뒷세상에 성불할 일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일어나는 한 화두에서 갇혔던 봇물 터지듯 의심이 타파되면 모든 전의에 통달하여
거울에 모든 사물에 비치듯 금방 자신의 마음 거울에 삼라만상이 밑바닥까지 훤히 드러나는 것이며
어떤 화두는 알고 어떤 화두는 모른다면 그것은 공부를 성취한 것이 아니라
따져서 마음으로 아는 것이므로 생사 해탈을 할 수 있는 견성(見性)이 아닙니다.
어느 대답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이전에 마음 거울만 청정하다면 생각하고 헤아릴 필요 없이
이사에 맞게 계약될 일이라고 역대 조사 스님들이 누차 강조한 것입니다.
남을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공부 하나 잘하면 내 마음속에서 세상일을 모두 다 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다 져주어 가며 공부만 자꾸 하면 다 됩니다. 따로따로 이기려고 하면 다 안 됩니다.
인과가 따르므로 내가 한 대 때리면 세 대 맞을 일이 생깁니다.
욕먹는 것도 이유가 있으니, 무엇이든 아무리 나쁜 일이 와도 즐겁고 반갑게 받아들이십시오.
나는 나쁜 일이 와도 기분 나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전생에 내가 이런 나쁜 일을 했구나! 생각하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나쁜 일이 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습니다. 잊었다가 나중에 잘못했다 하는 틈도 없습니다.
나쁜 일이 오는 즉시 내가 이 사람에게 나쁜 일을 했구나! 하고, 그 자리에서 도와줍니다.
내 일에 있어서는 늘 져주지만 남을 가르치는 일에서는 무섭게 합니다.
경책을 해 크게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사람한테는 무섭게 합니다.
마음을 걸림 없이 쓰면 공부가 절로 되는데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것에 걸리고 저것에 걸려 있으면 공부가 되겠습니까.
아무런 슬픈 생각도, 무서운 것도, 좋은 일도 없고 ‘이 뭣 고’만 남아 다니는데 공부가 안 되겠습니까?
“지난 일도 쓸데없으니 생각지 말고 돌아올 일도 어떻게 변경될 줄 모르니 생각지 말고
지금 이 자리 ‘이 뭣 고’만 하다 죽어 버려라.” 이것이 공부하는 가르침입니다.
물러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 지금은 어린 죽순과 같이 힘이 없어 묵은 대 노릇을 못하지만,
자꾸 공부를 해나기면 묵은 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러나지만 않으면 성불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으리오.’ 모든 성인이 이렇게 증명(證明)합니다.
물러나지만 않으면 병신이라도 성불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러나는 것이 허물입니다.
만일 이제-와서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 하는 이는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로 된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나고 죽는 큰일을 위하여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이면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법답게 삼 년 동안 공부하여 만일 견성(見性)하여 종지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를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옛 도인 스님들은 낮에는 대중들의 종노릇을 하고
밤이 되면 초저녁부터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천대받고 공부했지만, 인상 한번 변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경허 스님 회상에서는 두 시간만 자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동산 스님은 삼 년 동안 옷이나 먹을 것을 돌아보지 않고 공부하여 부처가 되지 못하면
너희들 대신 지옥에 가리라 했습니다. 절대 헛것이 아닙니다.
나옹스님 법문입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짐을 나고 죽는 법이라고 이르나니 나고 죽는 때를 당하여
모름지기 힘을 다하여 화두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짐이 곧 다한 것을 이르되
고요함이라고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라 함이요.
고요한 기운데 화두를 들면 연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덕과 연기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하면 며칠 가지 않아서 성취하리라. 화두만 들면 망상은 없어집니다.
- 혜암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