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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준공과 축복
출 39:32-43
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33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4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는 휘장과
35 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36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37 순금 등잔대와 그 잔 곧 벌여놓는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38 금 제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휘장 문과
39 놋 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40 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 곧 회막에서 사용할 모든 기구와
41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라
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출 39:32-43 / [성막 공사가 끝나다] 이렇게 해서 만남의 장막인 성막 제조 공사가 끝났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것을 그대로 따라 만든 것이다. 33) 이 성막을 만든 장인들이 성막뿐만 아니라 성막에 딸려 있는 모든 기구들을 모세에게 가져왔다. 성막에 딸려 있는 갖가지 기구들은 다음과 같다. 갈고리와 널빤지와 가로다지와 기둥과 밑받침, 34) 분홍물 들인 숫양 가죽으로 만든 덮개, 돌고래 가죽 덮개, 계약궤를 가리는 휘장과
02출 39:35 계약궤와 채와 속죄판, 36) 상과 그 상에 딸려 있는 모든 기구들과 진설병, 37) 순금으로 만든 등잔대와 거기에 올려놓을 등잔과 등잔대에 딸려 있는 갖가지 기구들과 등잔 기름, 38) 금으로 만든 분향 제단과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머리에 붓는 기름과 좋은 향내를 풍기는 향, 장막 문간에 칠 휘장, 39) 놋쇠로 만든 제단과 이 제단에 칠 놋쇠 그물과 채와 제단에 딸려 있는 갖가지 기구들, 물두멍과 그 받침대, 40) 울에 칠 휘장과 울을 세우는 기둥과 그 밑받침, 울 정문에 칠 휘장과 휘장을 세우는 데 쓰는 줄과 말뚝, 이 밖에도 만남의 장막인 성막에서 쓸 갖가지 기구들이다. 41) 그 장인들은 또 성소에서 제사를 올릴 때 제사장들이 입을 옷가지, 곧 대제사장 아론이 입을 거룩한 옷과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 일을 볼 때 입을 여러 옷가지를 가져왔다. 42)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다 하였다. 43) 모세는 그들이 만든 것을 모두 살펴본 후에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대로 모두 만든 것을 알고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성막 제작을 맡은 기술자들이 성막과 성물들을 비롯하여 그 부속물의 모든 기구를 만들어 모세에게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을 확인한 모세는 성막을 제작한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고(32) 성막 제작을 완수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신(36:1-2) 소수의 기술자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 제작에 동참하여 작업을 마친 것으로 언급됩니다. 이스라엘은 한 사람이면서 여러 사람입니다. ‘나’(I)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은 단수인 ‘너’(You)이면서, ‘왕’이신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복수인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거룩한 연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성막을 완성하여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성막(33-34), 지성소 안에 두는 성물들(35), 성소 안의 성물들(36-38), 번제단과 부속 기구들(39), 성막 뜰의 경계를 이루는 것들(40),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옷(41)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되었으므로(42-43) 하나님께 명령을 받고, 그 명령대로 성막의 제작을 지휘한 최고 지도자 모세가 성막을 점검합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간 사이 타락했던 이스라엘(출 32장)이 성막 제작을 하면서 잠깐이기는 하지만 어느덧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것이 된 것을 확인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합니다. 모든 것이 마친 뒤 복이 임하는 창세기 1장 천지창조 이야기의 패턴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성막의 완성과 모세의 축복 속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작이 예고됩니다.
적용: 당신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이 복임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까?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집필하기 전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일화를 겪었습니다.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였던 그는 어느 날 비행기를 몰고 상공을 날다 기체결함으로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했지만, 5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됐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절대 요소들이 결핍된 사막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던 기자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당신을 살아남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을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을 버텼습니다." 지금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해보세요.
< 설 교 >
성막의 완성과 그 의미
출애굽기 39:32-43 / 이상호 목사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좋은 설계와 좋은 재료가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설계가 아무리 훌륭해도 나쁜 재료를 쓴다면 부실공사가 될 것이고, 좋은 재료를 쓴다고 해도 설계가 나쁘면 건축이 제대로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축을 해 본 사람들은 건축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옛 분들은 "평생에 집은 한번이면 족하다"는 말로 건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곤 했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교회는 직영을 했습니다. 시내에서 수도 없이 헌집 고쳐서 살았고, 20년 전에도, 2002년 사랑이있는집도, 이번에 교육관 식당도 직영으로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성막을 완성하고 성막의 준공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라는 반복된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성막의 설계자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 안팎의 모든 부분들의 높이와 넓이와 길이에 대한 규빗들이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설계를 하나님께서 하셨고, 시공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부르신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통해서 하게 하셨고, 거기에 소용되는 모든 재료들은 백성들이 감당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재료들이 나쁜 것 부실한 것으로 드려질 리가 만무합니다.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사명감에 불탔던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부실시공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설계대로 시공을 했다고 하면 성막은 완벽한 건축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모든 요소요소가 아주 철저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을 거라는 것입니다.
요즘 건설 현장마다 크게 써붙여 놓은 "혼을 담은 시공"이란 표어를 자주 보게 됩니다. 사실 혼을 담은 시공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대부분의 현장은 표어와는 달리 정신 나간 사람들이 시공을 하는 현장도 많습니다.
언젠가 "부실 공사 추방 원년의 해"라는 아주 멋진 표어를 어느 공무원이 만들어냈었지요. 그리고 홍보를 하고 현장마다 강조를 하던 그 해에 다리가 무너져 내려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표어가 근사하면 무엇합니까? 중요한 것은 정신이지요. 정말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중요한데 그들이 아무리 스티커를 온통 안팎에 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똑바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지었는데 가장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는 말씀은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대로 하다 보면 기술자들이 하다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이 성전에 들어오시면 어떤 건축의 특징을 느끼십니까? 몇 가지 특징이 있지만 지붕의 모양과 선입니다. 특히 좁은 공간의 선입니다. 힘들게 공사한 곳이 아름답다는 건축가의 말이 새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은 사실 우리가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성소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막을 지었습니다. 설계를 하나님께서 하셨고,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그 일을 해나가고 많은 사람이 자원해서 봉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재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해나가다 보면 어려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하지 맙시다. 이것은 생략합시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기가 쉬울 거예요. 그러나 말씀을 보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막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그 크신 하나님이 작은 성막 속에 갖추어 있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은 "내가 거기서 너희를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줄 믿습니다. 거기서 만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너희가 내게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니까? 그저 기도의 순서가 오니까, 기도가 예배의 과정이고 하나의 순서이니까 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열납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 성막 안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시고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성안에 있든지 성 밖에 있든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임마누엘 하심을 약속해 주신 줄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이유는 백성들과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 됨에 대한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약속을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막의 특징 중의 하나는 겉보다 속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의 겉모양은 좀 떨어진 것 같은데 시간을 두고 좀 사귀어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들이 갈수록 호감이 간다는 말입니다.
성막을 멀리서 보면 정말 보잘 것 없어요. 4덮개로 성막을 덮었는데 제일 바깥 부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다고 그랬어요. 거무티티한 회색과 흑색이 섞여져있는 정말 볼품없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어놓았습니다. 그 속에 붉은 염소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그 안에 염소털로 짠 덮개를 덮었어요. 그리고 제일 안쪽에는 천사를 수놓은 덮개를 덮었어요. 사람들이 밖에서 성막을 바라보면 규모도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달의 가죽으로 덮은 보잘 것 없는 성막이예요. 그런데 그 성막을 동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금으로 되어있습니다. 밖에서는 볼품이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찬란하고 영광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나 성도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할 줄 믿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존귀하고 더 귀중해야 해요.
오늘날 교회의 평가를 겉모습을 가지고 크기를 재고 아름다움을 재는 그런 풍조는 사라져야 됩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그들을 인도해서 보여주는 코스가 있지요. 광림교회, 소망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 등 코스가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그 엄청난 성전, 수많은 성도들을 보고 극찬을 하지만 그것은 소위 파티 매너입니다. 파티 매너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좋은 태도로 대해주는 것을 말해요. 한국 교회를 방문하고 나서 글을 쓰는데 아주 냉정하고 예리하게 씁니다. "한국 교회를 가보니까 그리스도와 예수가 싸우고 있는 것 같더라" 기독교대한성결교와 예수교성결교회,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 기독교하나님의성회와 예수교하나님의성회 등등... 그 사람들이 볼 때는 한국은 그리스도와 예수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나라라고 보는 거예요.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면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했던 것들 중의 하나는 "내가 성막에서 너희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너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막 안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막을 짓고 성막에서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성막을 짓고 난 뒤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또 하나의 부분이 있습니다. 법궤 위에 금으로 된 패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패에다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을 조각했습니다. 성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패의 글씨를 보아야 합니다.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이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예요. 단순히 목욕이나 하고 깨끗한 옷을 입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능력과 기쁨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거룩해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드나들면서 주님을 새롭게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리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씨를 백번 천번 보아도 우리는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이 성결은 사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능력을 소유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됨 입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성결됨이예요. 교회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옷감을 짤 때에 가로 세로로 실들이 서로 연결되어지면서 하나의 천이 되고 하나의 옷이 되는 것처럼, 교회는 사랑과 용서, 능력과 지혜, 겸손과 온유의 조각으로 끊임없이 연결되어져 가면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이는 지혜로, 어떤 이는 능력으로, 어떤 이는 겸손으로, 어떤 이는 온유함으로, 어떤 이는 용서함으로 평안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된 성도들이 주님 앞에 예배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모세가 성막 준공검사를 하다
출애굽기 39:32-43
* 본문요약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성막과 성막 안에 있는 모든 성물과 그 기구와 제사장의 옷과 성막 울타리의 말뚝들까지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모세 앞에 가져옵니다. 모세는 그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된 것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축복합니다.
* 본문해설
1. 성막의 모든 것을 완공하고 모세에게 보고함(32~41절)
- 금 제단(38절) : 향을 피우는 제단으로, 조각목으로 만든 후 금을 입혀 만들었습니다.
- 관유(38절) : 제사장이나 왕을 새로 임직할 때, 혹은 성소의 기물을 성별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조된 거룩한 기름
- 향기로운 향(38절) : 성막의 제단에서 향을 피우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거룩한 향
2.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함(42~43절)
* 묵상 point
1. 예배를 위한 모든 도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졌습니다.
1) 이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모든 도구들이 다 만들어졌습니다(32절)
이 모든 도구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모든 도구들을 고안하고 디자인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도구들의 조각은 물론 고리 하나까지 아주 세밀하게 디자인하시면서 반드시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모세에게 명하셨습니다. 이교도들이 사용하던 상징이나 디자인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께로만 그 마음과 생각이 모아지도록 디자인하셨습니다.
2) 성막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배당을 리모델링하거나 예배의 도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편안함을 느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편안한 의자들이 고안이 되고, 예배의 도구나 상징물들은 성도들의 시선을 끌만한 것으로 디자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예배자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헌신하는 예배가 될 수 있을까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합니다.
● 묵상 :
예배는 보거나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의 헌신을 드리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2. 헌신 :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되었더라
1)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습니다(42절)
그 재료에서부터 치수와 모양과 색이 모두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경험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바라는 대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 이것이 헌신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려 하는 것,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가정을 이끌어가려 하는 것,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내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것, 이것이 헌신입니다.
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조차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합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하려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신앙생활은 그저 주일 예배에 한 번 참여하는 것으로 끝내려 합니다.
신앙생활과 자기의 삶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고객화 되는 성도들, 고객의 편의대로 기획되는 예배들
교회는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예배 하나 만 드리고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도록 예배를 좀 더 거룩하고 고상하게 기획합니다.
어느 사이에 교인들은 고객이 되었고, 교회는 그 고객들에게 고상한 감정을 판매하는 상점이 되어버렸습니다.
••• 이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감상주의를 신앙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헌신 없는 예배, 헌신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는 종교적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묵상 : 혹시 교회 예배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은 없습니까?
예배는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임을 기억합시다.
3.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 축복기도와 복의 관계
1) 모세의 축복기도(43절)
그들이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모든 것을 다 마치자 모세가 이를 확인한 후에 그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온전히 헌신한 이들에게 모세가 하나님께 복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2) 여기에서 우리는 축복기도와 복의 관계를 봅니다.
축복기도를 모세와 같이 능력 있는 자가 해야만 그 복이 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자에게 복이 임하는 것입니까?
그 축복기도를 받는 자들이 복을 받을만한 자들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모세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자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했다고 합시다.
이 기도가 응답되겠습니까?
모세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 기도를 받는 자들이 복을 받을만한 상태가 아니면 복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 아브라함의 축복기도도 응답되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복을 받을만한 자들이 아니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경우에는 전혀 능력이 없고 형편없는 죄를 짓기까지 한 제사장 엘리의 축복의 선언도 응답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 묵상 : 사람의 축복기도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 복을 비는 기도입니다.
그에게 복을 줄지 말지는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오직 하나님께 충성되고 헌신된 주의 신실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
2.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에 힘쓰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3. 나를 편안하게 하는 감동적인 예배를 찾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참되고 온전한 예배를 찾게 하옵소서.
명령대로 되었으므로
출애굽기 39:32-43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막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만든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옵니다. 그 모든 성막의 기구들이 다 만들어진 것을 모세가 보았습니다. 설계도를 모세가 받았으니 모세가 최종 검사를 해 보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왜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기 위하여 성막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또한 동행하여 주십니까?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자기 안식을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물론 그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방금 들은 이 말씀에 여러분은 은혜가 되고 무조건 아멘이 되십니까? 잘 동의가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자기 안식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에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광과 나의 안식을 위하여 일하신다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자기 영광만 챙기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가 거부반응이 일어나고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미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 있기에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천지를 창조하신 뜻이 하나님의 자기 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에도 우리가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이라서 자기 영광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입니다(렘22:21).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동의를 하든지 아니하든지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영광 곧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15-17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예수님에게서 창조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골로새서 1:13-14절입니다. “봉독”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흑암의 권세아래 태어났습니다. 이런 우리를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은 자들이 천지 창조의 목적을 바르게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지를 10-12절입니다. 바울사도가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는 이 한 단락만 봅니다. 우리는 범사에 누구를 기쁘시게 하며 살아갑니까?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죄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과연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앞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기를 결심은 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예라고 답을 하기에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만이 우리의 참된 기쁨이며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자기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면 갈수록 참된 기쁨과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알기에 바울사도는 기도합니다.
10-12절을 다시 봅니다. 기도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이런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울은 이미 하늘나라를 보고 온 사람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사람이 천국과 지옥의 간증을 하는데 그런 것은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서만 우리는 알고 믿습니다. 바울은 천국을 보고 왔지만 이 세상에서 비유할 것이 없기에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완성을 보고 왔습니다.
이미 완성을 보고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은 곧 존재요 완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권세가 높은 사람이라도 명령한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의 영웅호걸이라는 자들이 세계를 정복한다고 하였지만 다 죽어갔습니다. 그들의 꿈들이 다 헛되어 바람이 된 것을 세계의 역사를 통하여 보면 압니다. 그러함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은 오늘도 바람을 잡으려고 헛된 일에 분요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모르고 그 연약함을 스스로의 힘으로 영원히 고정된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든든히 서기를 원하지만 그것도 헛된 것입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우리의 소망이 주께 두지 않는 인생의 모습이 헛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론이 아주 길었습니다만 한마디로 줄이면 하나님의 명령만이 온전하고 영원히 세워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된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인줄 착각하고 살기에 자신의 명령이 영원하여 지기를 발버둥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시편을 2편을 더 봅니다. “봉독” 이방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민다고 합니다. 왜 분노할까요? 자기들의 명령이 서지 않으니 분노하고 소란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들을 꾸미지만 그들이 꾸미는 일들이 헛된 일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며 진노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와의 명령대로 다 이루어졌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헌물을 하고 또 여호와의 영을 부어 주셔서 모든 성막기구를 만들게 하셨으니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헌신하였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되었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내용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여 주심이 궁극적인 복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막이 완성되듯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건물 성전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열왕기상8:14-15절입니다. “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15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여호와께서 이루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다 되었기에 솔로몬이 백성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축복을 받는 것은 여호와의 명대로 다 되었을 때에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빌어줄 때는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친히 복을 주실 때는 축복이라고 쓰면 안 되고 그냥 복을 주신다고 해야 우리말로 바른 표현이 됩니다. 축복(祝福)이라는 말은 빌 축자를 쓰기에 하나님께서 누구에게서 복을 빌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하는 표현이 바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이 언제 주어지느냐는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루어졌을 때에 백성들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이 복이란 안식, 동행, 영원한 생명, 죄 사함, 영원한 기업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되었기에 피조물이 복을 받았다는 최초의 내용이 어디에 있습니까? 창세기 2:1-3절입니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천지 창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더라는 것으로 창조가 완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더라는 것으로 인하여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입니다. 사람이 손길이 가미되지 않습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고 그 날을 복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 속에 살아가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복입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 이제부터 인간에게는 참된 안식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피조물인 인간이 깨어버렸다고 해서 하나님의 원래 창조에 흠집을 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기에 사탄의 활동과 인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창조를 펼쳐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뒷수습차원에서 일하심이 아닙니다. 처음 아담과 에덴동산은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처음 아담과 같지 않아서 완벽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여 내십니다. 그 완벽한 명령 수행의 결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성경학교에 처음 온 초등학교 3학년의 말처럼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아서 아쉬웠을 것이라고 하였듯이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저주 받아 죽은 예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내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무엇을 다 이루어 내셨는지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이루어 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4-17절입니다. “봉독”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기에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왜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까? 그 안에서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이제는 결단코 나를 위하여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이루어지면 그것을 보시고 복을 주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이루어내심으로 오직 그 안에서만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이 새로운 창조세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들입니다. 이러한 복이 성경의 복인데도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세상의 썩어질 것, 불타 없어질 것들을 복이라고 부여잡고 있다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이 세상에서 환난이라는 모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환난도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환난을 통하여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루어진 참된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 영원한 복이기에 이 복을 전하는 사람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복의 모습을 요한계시록 21:1-4절을 봅니다. “봉독” 이 또한 여호와의 명령을 완수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축복하였더라
출 39:32-43 / 김경민 목사
미국에서 살다보면, 때로 한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일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미국에서는 직접 공공기관을 찾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고, 찾아가더라도 시간이 대단히 오래 걸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죠.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합니다. 미국은 특별히 Inspection이 중요한 나라이죠. 개인 주택을 사고 팔 때, 또는 음식점의 위생 상태, 자동차의 점검 등을 보면 미국은 Inspection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nspection을 해서 정부의 기준에 통과가 되지 않으면, 허가를 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만큼 기준대로 잘 하였느냐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중심으로 한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성으로 드린 예물로 성막을 다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성막을 Inspection 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렇게 성막을 검사하는 것은 오직 그 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에 대한 내용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건축적인 기술이나 재능은 뛰어날 수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성막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은 사람은 모세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모세가 그 성막의 전부를 검사하니, 성막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잘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였다는 것이 오늘 말씀이죠.
제가 성막 건축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2가지 의미로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2가지가 온전하게 이루어 졌을 때에 어떤 일이 생겨나는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을 통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로 하신 그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과,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으로 인한 결과는 바로 ‘축복’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이스라엘을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순종과 축복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모든 백성들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이죠. 에덴 동산의 아담에서부터 모든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님의 가르침까지 순종과 축복은 기본적인 삶의 원리이죠.
또한 본문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심과 동시에, 그 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계22:12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그저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지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날마다 점검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을 까요? 최대 6개월에서 짧아도 5개월은 걸렸을 것으로 판단 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나온지 3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하였고, 모세가 산에서 40일을 2번 보냅니다. 그리고 둘째 해 첫째달 초 하루에 성막 봉헌식을 하게 되죠. 그러면 길면 6개월에서 적어도 5개월은 걸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5-6개월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가 이제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 재료 하나 하나를 만들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맞는 것인가 맞지 않는 것인가를 매일 매일 점검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맞지 않다면 고치고 다듬고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의 삶도 그래야 합니다. 어제 불순종하였다면, 오늘은 그 모습을 고치고 다듬어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태도와 모습이 성경적인지 세상적인지를 체크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여도 우리가 꿈꾸고 원하는 축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원하던 것과 다른 것일 수도 있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막이 완성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히 임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축복을 체험 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오늘의 내 삶의 유익을 위한 축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그 축복을 바라보며 오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세상의 이야기가 흉흉하고 두려운 시대에 우리의 신앙은 더욱 흔들리기 쉽습니다. 교회에 함께 모여 서로 교재하며 말씀을 나눔으로 신앙을 지킬 수 없는 때에, 우리 각자의 신앙을 위해 더욱더 순종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순종의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세상을 향하지 않고, 성경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사랑을 실천하고 영광을 드러내며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하루를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막의 기구 제작을 마치다!
출애굽기 39:32-43 / 우암장로교회
출애굽기는 40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출애굽기는 성막의 완성과 봉헌식으로 끝을 맺고 그리고 레위기를 통해서 많은 교훈을 받은 후 광야로 떠나게 됩니다.
출애굽기 40장의 성막 봉헌식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때로부터 대략 1년이 지난 출애굽 제2년 1월 1일이었습니다.(출 12:2). 또한 이 날은 백성들이 시내 산에 도착한 지 대략 10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출19:1).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고 나서 곧바로 가나안으로 향한 것이 아니고 1년 동안 시내산 밑에서 말씀을 받고 성막을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2개월은 시내산에 도착하는 여정이었고 10개월은 시내산 밑에서 십계명을 받고 그리고 성막에 대한 설계도를 받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하고 연구하고 헌금하고 헌물하여 만들어낸 기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9장은 그 모든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장의 예복까지 다 제작이 완료되었음을 기록하고 있고 40장에는 이것을 드디어 세우며 마무리하는 장면입니다.
[출 39: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출 39:33]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출 39:34]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는 휘장과 [출 39:35] 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출 39:36]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출 39:37] 순금 등잔대와 그 잔 곧 벌여놓는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출 39:38] 금 제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휘장 문과 [출 39:39] 놋 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출 39:40] 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 곧 회막에서 사용할 모든 기구와 [출 39:41]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라 [출 39: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출 39: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어찌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급할 것 같은데 여기에서 1년이나 지난 이유는 출애굽의 목적과 목표를 다시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주신 땅이었지만 사실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 땅은 아브라함에게 인도하신 땅이었고 이삭과 야곱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회복해야했습니다. 400년 동안의 애굽생활 속에서 우상숭배에 자기도 모르게 젖어있다가 잃어버리고 흩어진 믿음을 재정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십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의 성소를 건축해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성막의 설계도를 따라 그 모든 성막의 기구들을 다 만들고 금을 씌우고 수를 놓아 회막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그들은 맹목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 위하여 출애굽했다는 것을 다시 깊이 새기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이때의 2년 가까운 기간이 있었기에 그들은 38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훗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광야의 생활을 38년이라고 회고합니다. 이 기간은 40년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제작하고 봉헌하고 그리고 광야로 떠나 가나안 땅을 정탐하다가 부정적인 보고를 함으로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2년 가까운 기간을 뺀 것입니다. 그 처음 1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믿음을 새롭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신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엄밀히 말하자면 가나안이 아니라 이 광야에서 살아도 상관없었습니다. 광야생활이 힘들다 해도 38년을 다 먹고 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배우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보너스일 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성막의 모든 기구를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출 39: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완성해냈습니다. 42절이 또 강조합니다.
[출 39: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40장으로 넘어가면 16, 19, 21, 23, 25, 27, 29, 32, 33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라는 말이 계속 반복하여 되풀이됩니다.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그만큼 여호와의 명령대로 만들고 되어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여기에서 '마치매' 는 히브리어로 עָשָׂה 아싸입니다. 실천했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뜻입니다.
Do! 행함을 통해서 BE! 하나님이 원하시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습니다다! 실행해서, 노력해서, 행동해서, 애써서, 땀을 흘려서, 인내해서, 끈기를 가지고 자신과 싸워가며 힘을 다해서! 이루어 냈습니다.
Doing! 행함과 실천을 통해서 Being!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하신 대로 되었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출 39: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그렇게 되었으므로 받았던 축복을 우리도 받기 원합니다!
사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 계획서를 주었으나 그가 욕심이 많아, 게을러, 생각이 모자라, 딴 곳에 관심을 두어, 지혜가 부족하여 결국은 아쉽고 안타깝게도 명령하신 대로 이루지 못했고 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습니다.
C.C.C. 전도 훈련에서 강조하는 사영리四靈理의 유명한 첫 구절이 있습니다.
God Loves You, And Offers A Wonderful Plan, For Your Life.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을 이루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조각목을 다듬는 일을 해냈고 원석을 깎아 보석을 만들어내는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도 인격과 믿음과 언어에서 다듬을 것을 다듬고 깎아낼 것을 깎아내고 녹여낼 것을 녹여 내어 작품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일, 헌금하는 일, 전도하는 일, 용서하는 일- 노력해서 해내고 되어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고 향기로운 인생이 되어가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되라고! 되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이 되어라, 소금이 되어라, 제자가 되어라,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라, 전도자가 되어라! 되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눅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고전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전15: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골3: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벧전1: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5: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Done!
오 주님! 내 인생에 주신 설계도를 붙잡습니다. 실천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내 자신과 싸우겠습니다. 더욱 겸손하고 더욱 진실하겠습니다.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절제하겠습니다. 감사하겠습니다. 충성하겠습니다. 헌신하겠습니다. 낮아지겠습니다. 비우겠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 Doing의 수고를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Being이 되어가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