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岐路)
여러 갈래로 갈린 길, 즉 갈림길로 미래의 향방이 상반되게 갈라지는 지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岐 : 갈림길 기(山/4)
路 : 길 로(足/6)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양자(楊子)는 극단적 개인주의(個人主義)자였다. 한 올의 털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뽑지 않겠다는 일모불발(一毛不拔)의 주창자다.
묵자(墨子)는 반대로 이타주의(利他主義)자였다.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털이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에 이롭다면 거리낌이 없었다.
자막(子莫)이란 현인은 중간을 고수하며 정도(正道)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도를 고집하더라도 저울추가 없다면(執中無權/집중무권), 이 역시 고집함은 매한가지라는 것이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의 주장이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양자는 인(仁)에 해롭고, 묵자는 의(義)에 해로우며, 자막은 시중(時中; 때에 알맞음)에 해롭다고 풀이했다.
핵심은 집중무권(執中無權)에 있다. 융통성을 발휘하란 뜻이 아니다. 중용(中庸)을 취함에 저울추와 같이 정밀하게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또 다른 고집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요즘에 비유하면 보수와 진보, 어설픈 중도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저울추처럼 정확하게 중용과 시중을 지키고, 어짐과 의로움을 염두에 두라는 말이다.
양자와 묵자는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함께 등장한다.
"양자는 갈림길을 보고 통곡했다. 남쪽으로 갈 수도 북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묵자는 염색 안 된 명주실을 놓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노란색으로도 검은색으로도 물들여질 수 있어서였다."
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
墨子見練絲而泣之.
爲其可以黃可以黑.
기로(岐路)에 선 사람의 고뇌를 뜻하는 성어 곡기읍련(哭岐泣練)이 여기서 나왔다.
갈라지다는 뜻의 한자 기(岐)는 산(山)과 지(支)가 합쳐진 글자다. 지(支)는 잎이 달린 대나무 가지를 손에 쥔 모양이다. 갈라진 댓잎처럼 좌우로 펼쳐진 산길이 기(岐)다.
人生南北多岐路 將相神仙 也要凡人做,
百代興亡朝復暮 江風吹倒前朝樹.
인생살이 도처에 갈림길도 많지만, 장상과 신선은 범인들이 만드는 것, 백대의 흥망은 낮과 밤처럼 바뀌고, 강바람 불어와 고목을 쓰러뜨린다.
18세기에 지어진 풍자소설 유림외사(儒林外史) 역시 첫 문장에 갈림길이 나온다.
갑오경장 120주년을 맞아 한국이 다시 기로에 섰다. 마냥 곡기읍련할 수만은 없다. 저울추와 같이 확고한 줏대를 갖춤이 먼저일 터다.
▶️ 岐(갈림길 기)는 형성문자로 歧(기)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뫼 산(山; 산봉우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支(지, 기)로 이루어졌다. 본디 산의 이름이었으나, 음(音)을 빌어 두 갈래로 '갈라지다'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岐(기)는 문음무(文蔭武) 출신 외의 기예(技藝)로써 임관(任官)된 각류(各流) 출신의 한 가지. 천문관(天文官), 금루관(禁漏官), 화원(畫員), 녹사(錄事), 사자관(寫字官), 역관(譯官), 명과학(命課學), 치종교수(治腫敎授), 율원(律員) 등을 말함 등의 뜻으로 ①갈림길 ②산(山)의 이름 ③날아가는 모양 ④자라나는 모양 ⑤지각이 드는 모양 ⑥갈래짓다 ⑦높다 ⑧울퉁불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여러 갈래로 갈린 길을 기로(岐路), 어릴 때부터 지덕이 뛰어남을 기억(岐嶷), 의논이 일치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짐을 기이(岐貳), 매우 뛰어남을 기발(岐拔), 마음을 여러 갈래로 흩어뜨림을 기심(岐心), 여러 갈래나 길의 갈래가 많음을 다기(多岐), 나뉘어서 갈라짐 또는 그 갈래를 분기(分岐), 길이 갈리는 곳을 노기(路岐), 정도에 어긋나는 옳지 못한 길을 사기(邪岐), 딴 길 또는 딴 갈래를 별기(別岐), 양 갈래 가닥진 두 갈래를 양기(兩岐),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다기망양(多岐亡羊), 옆으로 난 샛길과 구불구불한 길이라는 뜻으로 일을 바른 길을 좇아서 순탄하게 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되고 억지스럽게 함을 이르는 말을 방기곡경(旁岐曲徑) 등에 쓰인다.
▶️ 路(길 로/노, 울짱 락/낙)는 ❶회의문자로 저마다 각각(各) 발로(足) 걸어 다니는 곳이라는 데서 길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路자는 '길'이나 '도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路자는 足(발 족)자와 各(각각 각)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各자는 발이 입구에 도달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各자의 본래 의미는 '오다'나 '도착하다'였다. 반면 足자는 성(城)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두 글자를 결합하면 '오고 가다'라는 뜻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路자는 통행이 빈번한 길이나 도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路(로)는 성(性)의 하나로 ①길, 통행(通行), 도로(道路) ②도리(道理), 도의(道義) ③방도(方道), 방법 ④사물의 조리(條理) ⑤중요한 자리 ⑥지위(地位), 요처(要處) ⑦길손, 나그넷길 ⑧거쳐 가는 길 ⑨수레 ⑩모(물건의 거죽으로 쑥 나온 귀퉁이) ⑪행정구획의 이름 ⑫크다 ⑬드러나다 ⑭고달프다, 피로하다 ⑮쇠망하다 ⑯모지다(모양이 둥글지 않고 모가 나 있다) ⑰길을 가다 ⑱바르다 그리고 ⓐ울짱, 울타리(락) ⓑ즐기다(락)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이다. 용례로는 버스나 기차가 정해 놓고 다니도록 되어 있는 길을 노선(路線), 거쳐 가는 길이나 과정을 노정(路程), 길바닥 또는 길 가는 도중을 노상(路上), 여관을 노실(路室), 길바닥 또는 길의 바닥 표면을 노면(路面), 여행의 비용을 노용(路用), 먼길에 지치고 시달리어 생긴 피로나 병을 노독(路毒), 길 옆이나 길의 옆을 노방(路傍), 먼 길을 가고 오고 하는데 드는 돈을 노자(路資), 내왕하는 길의 과정을 노중(路中), 길의 경로를 노차(路次), 도로나 철로의 바탕이 되는 땅바닥을 노반(路盤), 길의 양쪽 가장자리를 노변(路邊), 길의 너비를 노폭(路幅), 길이 갈리는 곳 또는 갈림길을 노기(路岐),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는 나아갈 길을 진로(進路), 통행하는 길을 통로(通路),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여러 갈래로 갈린 길로 갈림길을 기로(岐路),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길을 귀로(歸路), 여행하며 다니는 길을 여로(旅路), 도덕적으로 그릇되고 옳지 못한 길을 사로(邪路), 살아 나갈 길이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길을 활로(活路), 갈피를 잡을수 없는 길을 미로(迷路), 배가 다니는 길 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하늘의 길을 항로(航路), 기차나 전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레일 길을 선로(線路), 물을 보내는 통로를 수로(水路), 지나가는 길이나 밟아 온 순서를 경로(經路), 좁고 험한 길 또는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장애를 애로(隘路), 길가에서 사람을 협박하여 재물 따위를 빼앗는 짓을 이르는 말을 노상강도(路上强盜), 백성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평화롭고 모든 백성이 매우 정직한 모양을 이르는 말을 노불습유(路不拾遺), 길 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은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기생을 의미하여 일컫는 말을 노류장화(路柳墻花), 경쾌한 수레를 타고 익숙한 길을 간다는 뜻으로 일에 숙달되어 조금도 막힘이 없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경거숙로(輕車熟路), 한 길로 곧장 거침없이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일로매진(一路邁進), 높낮이가 없이 평탄하고 넓은 길이라는 뜻으로 앞이 환히 트여 순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을 탄탄대로(坦坦大路), 길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행로지인(行路之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