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경숙 씨 하면 농촌 출신이라는 것과 '외딴 방' 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2015년도에 표절시비에 휘말리면서 문단을 떠났는지, 어디 짱 박혀서 역작을
집필 중인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꽤 글재주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책을 선택할 때 저자가 누구냐 만 보고 책을 구입하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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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영 씨와 신경숙씨는63년생 갑장입니다. 개인적으로 공 지영 씨가 비주얼이
신경숙 씨보다 조금 더 제 취향인 것을 빼고는, 신경숙씨가 공 지영 씨보다 더 행복한
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남편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알다시피
지영 씨는 나이 쉰다섯에 3번을 이혼 했고 ‘위 녕‘이라는 딸내미를 부양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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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에 부모를 잘 만난 공지영이 연대를 다닐 때, 정읍에서 태어난 시골 출신 신경숙은
일하면서 산업체고등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다 1984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
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99년에 명지대 교수이자 문학 동네 편집위원인 남 진우(5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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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만나 ‘엄마를 부탁해‘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쓰기 역시 돈이
서포터해주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영 씨와 경숙 씨를 객관적으로
펼쳐 보면 지영 씨가 더 예쁘고 똑똑하기 때문에 팔자가 센 것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책만큼은 신경숙씨가 공 지영을 능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문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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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고 예술은 와인처럼 숙성기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엄마를 부탁해'가 가볍고 쉬운
책인 줄 알고 덤볐다가 일주일 이상 붙들고 끙끙댔더니 조금씩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2인칭 시점을 사용했는데 초반 몇 장은 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적응이 안
되서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아마도 3인칭 소설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거나 뭔가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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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는 내 상황 탓이겠지요. 사건의 시작은 엄마를 잃어버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엄마의 생일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생일을 같이 지내자고 하셨고
그 생일이 되어 부모님이 고향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언제나 자식들은
마중을 갔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발단에서 복선이 여지없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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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았습니다. 알아서 오신다던 부모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엄마를 잃어
버렸습니다. 실종신고를 하고 전단지를 뿌리고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시간이 한 참을
지나가도록 엄마를 찾지 못합니다. 그렇게 엄마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때서야 가족들은
엄마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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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식들 위해 자신을 모두 내어주고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전형적인 희생적
모성으로서의 어머니 모습을 가슴 저리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늙고
병들어 가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보살핌은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고 결국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과거 어느 지점에서 인지 강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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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아들이 있던 곳을 배회하며 걸인이 되어 떠돌고 엄마를 잃은 자녀들이 우왕좌왕
어머니를 찾아 헤매지만 도저히 만나지 못합니다. 그 와중에 해외여행을 가게 된 둘째
딸이 여행지에서 들리게 된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엄마를 부탁해요’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합니다. 이 소설이 많은 나라 말들로 번역이 될 정도로 세계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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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얻고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보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희생적 모성이 강조되고 미화되는 전통적 어머니상에 머물러 있다는 혹독한 비판적 평가도
나왔습니다. 저는 이 평가의 양면이 모두 일리 있다고 생각됩니다. 작가는 성모 마리아
에게 엄마와 함께 모성에 대한 결론도 부탁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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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일깨우는 것은 단지 가족 간의 정이나 어머니의 희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을 자기 생의 근원과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끌어가는 작품
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소중한 것은 그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삶에 대한 직관과 긍정을
새롭게 자리 잡게 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니 문득, 울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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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머니의 부재로 시작한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늦지 않았음을,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통절하게 깨우쳐주는 것이 아닐까?
엄마, 보고 싶어.
2017.10.7.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