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10) - 제7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29
- 알차게 보낸 시즈오카 문화탐방
5월 16일(목), 조선통신사의 자료와 역사를 가장 많이 간직한 시즈오카의 문화탐방일이다. 오전 9사 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오키츠(興津)행 버스에 올랐다. 10여분 지나 오키츠(興津)의 세이긴지(淸見寺) 앞에서 내리니 시즈오카 현내의 제반 안내를 해준 다케노 노보루(후쿠로이 시의원) 씨와 2년 전에도 이곳에서 일행을 안내한 오바타 미치히로(조선통신사를 비롯한 한국문화전문가, 15년간 평택대 교수로 재직하여 한국어에 능숙하다) 씨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
세이겐지는 일본에서 조선통신사가 남긴 서화와 글씨를 가장 많이 간직한 자료의 보고,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된 것만 33개가 있고 산문에서부터 본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물의 현판도 통신사 일행이 쓴 글씨의 복제품들이다. 정문에 큰 글씨의 동해명구(東海名區)라 쓴 현판은 1748년의 통신사 역관으로 온 현덕윤의 글씨, 전국을 돌아보며 명작을 많이 그린 방랑화가 야마시다 기요시가 쓰세이겐지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절경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1648년에 조선통신사로 참가한 박안기는 빛나는 구슬처럼 아름다운 세계라는 뜻의 현판 휘호를 남기기도. 그만큼 뛰어난 경치의 세이겐지는 태평양에 연한 바다와 울창한 숲이 사찰 앞뒤를 감싼 명찰, 천황을 비롯한 일본 유수의 세력가들이 이곳에서 묵거나 별장을 보유하기도 하였는데 철도가 개설되고 항만이 들어서면서 옛날의 정취가 많이 훼손되었다.
동해명구라 쓴 현판이 선명한 세이겐지의 입구, 절 앞으로 기차길이 뚫렸다
한 시간 여 오바타 미치히로 씨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조선통신사들이 남긴 시문과 글씨 등을 살피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소년 시절 인질로 머물며 공부한 작은 방과 그가 심었다는 와룡매(臥龍梅, 용이 기어가는 모습의 매화나무로 지금은 그 이후에 심은 것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도 돌아보았다. 환담하는 시간에 2년 전에 이곳을 탐방하였을 때 쓴 기록을 읽어주며 보고들은 것은 많은데 글로 쓴 것은 불과 몇 줄인 것을 아쉬워하기도. 와룡매를 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던 뉴턴의 생가에는 그때 있던 사과나무가 지금도 열매 맺고 있음을 회상하는 등 상상의 나래는 시공을 넘나든다.
천황이 묵었다는 어좌 앞 큰 방에서 도시락을 들고 12시 반에 세이켄지를 나서 시즈오카로 향하였다. 시즈오카 역에서 내려 먼저 찾은 곳은 호타이지(寶泰寺), 조선통신사들이 휴식하기 위하여 들렀다는 이 절의 정원은 지금보다 엄청나게 컸다는데 1711년의 통신사 일행 신유한은 이곳을 일본제일의 정원이라고 적었다. 2007년에 세운 평화상야등(平和常夜燈)의 화강암은 경상북도 영주산이라고 적혀 있기도.
오후 2시에 시즈오카 현청(縣廳)을 예방하였다. 회의실에서 현청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담소, 현청을 대표하여 가케가와 다카히사 지역외교부장이 환영의 인사를 한다. ‘한일우정걷기 참가자 여러분, 시즈오카에 잘 오셨습니다. 시즈오카는 조선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곳이고 세이켄지에는 휘호와 편액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네스코기억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많습니다. 저는 초대 시즈오카 서울사무소장을 지냈고 충청남도와 시즈오카 현은 교류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영광으로 여기며 이를 계기로 한일관계의 진전을 기대합니다. 도쿄까지 무사히 가시기 바랍니다.’ 선상규 회장의 인사, ‘시즈오카에서 조선통신사를 재현하는 행사를 하는 등 많은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조선통신사들이 추구했던 이해와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와 우정의 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시즈오카 현청 예방 후 기념촬영
현청 방문을 끝으로 숙소에 귀환,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로비로 내려오니 반가운 얼굴들이 여럿 등장한다. 시즈오카에서 도쿄까지 일정에 한국에서 다섯 분(손명곤, 최형우, 허원준, 김연히 양종실)이 새로 참가하고 일본팀에서도 기왕에 걸었던 요시가와와 고바야시 씨가 다시 합류하였다. 반갑게 인사, 소주와 과자를 선물로 가져온 한국 팀에 감사.
5시 40분부터 숙소 인근의 연회장에서 다케노 씨가 주선한 환영만찬을 가졌다. 다른 때와 달리 한일우정걷기 일행들만 참석한 오붓한 시간, 깔끔한 양식 메뉴와 향긋한 지역명주가 입맛을 돋우고 사진전문가 가나이 씨가 제작한 제7차 조선통신사의 서울~시즈오카 걷기의 주요장면을 영상으로 살피는 시간이 뜻깊다. 이어진 개인별 소감발표가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웠고. 만찬을 끝내니 저녁 9시가 가깝다. 만찬을 다케노 씨, 통역을 맡은 오바타 씨의 호의와 노고가 고맙다. 서둘러 숙소 행, 내일부터 일주일간 도쿄를 향하여 박차를 가하자.
때마침 이혜미자 씨의 생일이다. 축하만찬의 깜짝 이벤트로 케이크를 자르고 한 말씀, '조선통신사 1차부터 7차까지 참가하여 영광스럽다. 12차까지 꼭 참가하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 이번으로 시즈오카 탐방 세 번째, 횟수가 잦을수록 새로 알게 되는 것이 많고 깊이 들어가기에는 밑천이 짧다. 그 중의 하나, 금년으로 시즈오카 번영의 기초를 닦은 이마가와 요시미츠의 탄생 500주년을 기리는 이벤트가 많은 것에 놀랐다. 얼마 전 도요야케를 지나며 옛 치열한 전적지에서 오다 노부나카에게 패한 후 전사한 42세의 이마가와 오시미츠의 이름을 처음으로 눈 여겨 봤었다. 그런데 시즈오카에 들어서니 그의 탄생 500년을 조명하는 팸플릿이 자주 눈에 띈다. 내용을 살피니 그가 시즈오카의 기초를 닦은 희대의 전국다이묘(戰國大名)라며 그의 공적을 재평가하는 여러 행사를 기획중이라는 내용이다. 시즈오카의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가린 그의 진면목은 어떤 것이었을까, 역사에는 그런 사례들이 많은 것을 되새긴다. 만찬 때 옆자리에 앉은 오바타 미치히로 씨가 지닌 책(임진왜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로)을 일별하며 조선통신사의 역할과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기도. 걷기도 힘든데 보고 듣고 익히고 쓰느라 이래저래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