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김문억
숫돌에 갈던 날을
급한 맘에 옥갈다가
빠진 이빨 날 하나가
허공에 가서 박혀있다
부도난 액땜을 하고 있다
부적으로 붙어 있다
아주 오래 전 이 작품을 쓴지가 거의 40년은 되는 거 같다
낮달이 발표 되면서 어디서 읽었는지 그 뒤로 나를 따라 왔다는 후배가 지금도 달섬문학회에서 같이 만나는 문우가 되어 있다.
태고부터 낮달은 수많은 시인들의 영원한 글동무가 되어 차고 이우는 중에 많은 시를 생산하고 있다.
가끔 수락산과 도봉 사이 허공 중천을 보면 김삿갓이 놓쳐서 깨뜨린 흰죽사발 같이 날이 예리한 낮달이 박혀있다
숫돌에 날을 간다고 한다면 무엇인가를 위한 연모의 씀씀이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다시 비유한다면 날을 세운다는 일은 어떤 성취를 위하여 준비를 한다는 말이 된다. 순리대로 얌전하게 눕혀서 천천히 날을 내지 못 하고 성급한 마음으로 빨리 날을 내고 싶었던지 날을 세워서 옥갈았던 시절이 있다. 무엇인가를 빨리 이루고자 했을 것이다. 젊은 날의 숫돌 질이 그랬다. 세워서 갈던 날이 넘어가는 바람에 이빨이 빠지고 낫날은 못 쓰게 된다. 부도가 나고 하던 일에 실수가 따르는 일이다. 하물며 빠진 이빨마저 챙겨 고치기는커녕 허공중천에 가서 비수처럼 박혀있다 실수로 이루지 못 한 사건들이 예리한 날로 나가서 위험하게 박혀있다 작품의 주인장은 실수투성이의 젊은 날에 놓쳐버린 날들을 그렇게 낮달로 은유하고 있다. 타다가 꺼져버린 소지종이 같은 부도난 수표 한 장으로 액땜을 하고 있는 부적이라 했다. 순리를 거역하고 성급한 욕망으로 잃어버린 날들을 회상하고 뉘우치면서 낮달이라는 시조 단수를 옮겨 본다
달을 유난히 사랑하고 흠모 해 왔던 나로서는 가다가 멈춰서있고 가다가 다시 돌아보며 미적거리는 낮달을 보면서 어머니와 딸의 이별 장면을 보기도 한다. 한 쪽 폐가 무너지면서 폐병을 앓던 누이의 가슴이 저랬다. 누이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시집과 친정 사이를 오고 가던 그니의 얼굴빛이 저렇게 핏기 없이 창백했다.
낮달은 시를 쓰는 나에게 더 많은 감정유발을 한다. 어느 경우는 김삿갓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금 간 쪽박 같기도 해서 몇 편의 낮달을 노래한 적 있지만 처음 쓴 이 작품에 애착이 더 간다. 어느 해 철원지방을 지나면서 바라 본 낮달의 형용은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실향민의 눈동자였고 그리움이 너무 많아서 필라멘트 끊어진 달이 휴전선 철책에 걸려 각혈을 하고 있었다.
낮달은 언제나 불이 꺼진 일그러진 달이다. 만월이 지나야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울어가는 하현달이지만 어둠이 오면 역시 불빛이 들어오면서 생기가 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래!
어여 가 뒤돌아 보지 말고
해 떨어지기 전에 어여 그만 가라니까?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