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년주일 예배②
참고말씀: 삼상15:17,22,23; 16:7; 잠14:12; 사53:6; 마5:13; 롬11:29; 고전5:14; 9:27; 10:12; 15:10; 빌1:6; 2:12,13; 벧전4:10,11
읽을말씀: 계2:4,5
주제말씀: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첫째,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상)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주일, 곧 송년주일입니다. 송년(送年)이란 말 그대로 ‘묵은해를 보낸다’는 뜻이므로, 송년주일이란 한 해를 보내는 주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저무는 한 해를 잘 보내고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먼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왜 이 같은 점검이 필요합니까? 원래의 목표로부터 이탈하거나 어긋나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목표란 물론 우리가 세운 계획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워두신 인생의 목표를 말합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올 한 해 힘차게 달려왔습니까? 아니면 달려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고, 흔들어야 할 깃발을 잃어버린 채 엉뚱한 데로 달려왔습니까? 이제라도 우리의 방향과 목표를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주님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에베소 교인들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음을 책망하시면서,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계2:5 상)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처음 사랑 내지는 처음 행위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하) /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중)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리스도를 향해 처음에 가졌던 사랑과 헌신임과 동시에 성도와 이웃을 향한 사랑과 행위일 것입니다.
왜 그들은 이렇게 어긋나고 이탈하게 되었던 것입니까? 인간의 타락한 본성 때문입니다. 즉 이 타락한 본성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엉뚱한 길로 나아가게 되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상) 잘못된 판단 때문에 언제든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물론 어긋나거나 이탈될 때 갑자기 한꺼번에 되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서서히 그리하게 됩니다. 특정 대상에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다가도 대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그 대상과 오랫동안 함께 지낼수록 호감을 갖게 된다는 심리학 이론 ‘에펠탑 효과’처럼 말입니다. 이는 단순노출효과(more exposure effect)라고도 하는데, 처음에는 혐오스럽다고 비판을 받다가 나중에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의 상황에 빗대 표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경우도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습관들에 자꾸 노출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별히 청소년기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걸려내는 것 없이 무분별하고 빠르게 흡수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예배시간에 성경책을 안 가져오거나 테블릿PC로 대체하거나, 예배시간에 음료수나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거나, 찬양팀이 끝나면 루틴(routine)처럼 화장실이나 식수대에 다녀온다거나, 예배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게임, 채팅 등을 한다던가 말입니다.
누구한테 배웁니까? 여러분의 선배들입니다. 물론 선배들은 일일이 후배들에게 가르쳐준 일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후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순식간에 자기 것으로 흡수해 버립니다.
혹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다면,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다 정리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끊어내기를 원합니다. 서서히 물들어 가기보다는 1년 단위로, 또는 분기마다 점검하고 끊어내며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이를 무엇이라고도 합니까?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상)
그리하여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처음에 믿었던 순수한 신앙,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중)
둘째, 영적 긴장감과 거룩한 부담감을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하)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신다고 경고하셨습니까? 촛대를 옮겨버릴 것입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하)
촛대를 옮겨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주셨던 것들을 다시 회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면 그것을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붙잡지 않고 소홀히 하면 그것을 거두어 가시며,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그 건강도 거두어 가시며,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봉사하지 않으면 그 물질도 거두어 가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겸손할 때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삼상15:17)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을 때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하15:22,23)
본문은 누구를 향한 경고입니까? 에베소 교회입니다. 즉 그들이 끝까지 돌이키거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두신 촛대를 옮겨버릴 것을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촛대를 옮기시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가 해체되거나 없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삼상16:7 상)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견인(牽引) 교리를 믿습니다. 즉 한 번 택하신 백성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또는 끄는도다)...”(고전5:14 상)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합니까? 영적인 긴장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항상 영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도 항상 무엇을 가지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까? 영적인 긴장감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이 같은 영적인 긴장감뿐만 아니라, 직분을 맡은 사명자라면 무엇도 함께 가져야 합니까?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즉 항상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지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0,11)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다 한 것 같고, 내 힘으로 다 이룬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까? 이제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다 된 것임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하) 그리고 느슨해졌던 영적 긴장감의 허리띠를 바짝 동여매고 거룩한 부담감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