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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종합대책 집중분석] 비용절감 간접고용 안 된다더니 … 정책은 '파견확대'
말과 행동 엇박자 노동부 “바람직한 형태는 직접고용” 원론만 되풀이
2015.01.26 김학태 | tae@labortoday.co.kr
“도급이라는게 원래 우리 회사가 못하는 일을 더 잘하는 회사가 있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맡기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은 도급을 주는 이유가 비용절감밖에 없어요. 이거 안 바꾸면 우리 아이들도 평생 비정규직 해야 합니다.”
노동계 관계자의 말이 아니다. 현직에 있는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꽤 진지하게 한 얘기다. 하도급이든 파견이든 마찬가지다. 원래 목적은 자신의 회사보다 특정업무에서 실력이 뛰어난 다른 회사에 일을 맡기거나, 높은 전문지식·기술이 있는 인력을 활용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노동부 고위 관계자의 말처럼 ‘돈을 아끼는 게’ 하도급과 파견의 목적이 돼 버렸다. 기업들은 사내하도급이나 용역을 남발하고, 위장도급 의혹을 받는 게 불편하면 파견허용업무 확대를 요구한다.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틈만 나면 “기업들이 단순히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을 가급적 자제하고 직접고용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노동부는 현실 인식과 정책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파견이 사내하도급보다 낫다? '도찐 개찐'
정부가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파견허용업무 확대, 인력부족 산업에 대한 파견확대를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포함시키자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직접고용을 권고하면서 한편으로는 파견확대 정책을 추진한 탓이다.
노동부 관계자들은 “그나마 사내하도급이나 용역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규제를 받는 파견직이 근로조건이 좋기 때문에 파견으로 유도하는 것이 낫다”는 말만 되뇐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근로자 파견을 받은 사용사업주는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과 산업안전보건법상 건강진단의 경우 사용자 책임을 일부 진다. 사용사업주가 잘못해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파견사업주와 함께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이에 반해 사내하도급은 노동과 관련해 기껏해야 권고에 불과한 정부의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의 규제를 받을 뿐이다. 원청이 사내하도급 노동자를 책임질 의무가 없다. 도급인 것처럼 꾸며서 사내하도급 노동자에게 인사·노무권을 행사하면서 파견처럼 사용했을 경우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파견노동자의 월 임금총액은 169만7천원이다. 사내하도급을 포함한 용역노동자(153만4천원)보다 16만원 많다. 사회보험 가입 현황은 별반 차이가 없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가입률은 파견노동자가 높지만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용역노동자들이 높다.
그런데 통계상으로 파견노동자와 용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파견이냐 용역이냐”는 질문을 받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파악해서 답변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내하도급은 원청 규모에 따라 노동자들의 급여 차이가 크다. 완성차 회사의 사내하청은 1차에서 2·3차로 내려갈수록 급여가 가파르게 감소한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장은 “합법적인 파견영역에서는 대기업에 파견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고, 파견과 도급을 동시에 하는 인력회사들은 오히려 도급에서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며 “파견이 사내하도급보다 근로조건이 좋다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종합적으로 판단하라" 노동부 지침의 ‘배신’
간접고용을 강도 높게 규제할 수 없다면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싼값에 사내하도급을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인사·노무권을 행사하는 관행에 그나마 제동을 걸 수 있다. 동시에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줄여 나가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핀트가 빗나갔다.
노동부는 원청이 하청에 제공하는 산업안전·복지·훈련은 불법파견 징표에서 제외하도록 파견법을 개정하고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을 바꿀 계획이다.
원청이 하청에 산업안전이나 복지를 지원하는 것을 나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인사·노무권만 행사하지 않는다면 원·하청 상생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원청 대기업들이 불법파견 논란에 부담을 느껴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우려해 불법파견 징표에서 빼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본질일까. 중요한 것은 원청이 하청에 지원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싼맛에 하도급을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사용자처럼 부려먹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노동계는 파견과 도급을 분명하게 구분해 법에 명시하고, 도급인데도 파견처럼 사용하는 사업주를 엄정히 처벌하자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노동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노동부는 2007년 초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을 만들었다. 계기는 2004년 하반기와 2005년 초, 노동부가 현대자동차의 127개 업체 1만여명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것이었다.
노동부는 사건을 검찰에 넘겼지만 2년이 지난 뒤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논란이 일자 노동부는 법무부·검찰과 협의해 기존 ‘근로자 파견사업과 도급 등에 의한 사업의 구분에 관한 고시’를 폐지하고 지침을 만들었다.
종전 고시는 하청회사가 인사노무관리의 독립성이나 사업경영상의 독립성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불법파견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새로 만든 지침은 파견사업주(하청회사)가 사업주로서 실체가 있는지 먼저 판단하고, 실체가 있을 경우에는 하청 노동자가 사용사업주(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았는지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전 고시보다 세밀한 기준을 제시했는데, 문제는 단서였다. 원청의 업무 지휘·명령을 판단할 때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남긴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 대한 불법파견 조사 결과다. 노동부는 “협력업체들이 원청이 제공한 업무매뉴얼과 전산시스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원청이 협력업체 노동자를 평가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지침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위장도급으로 보기 어렵다”고 희한한 결론을 내렸다.
"언제까지 지침 기대나 … 파견법 개정하자"
노동계 우려대로 결정적인 불법파견 징표에도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적법도급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강문대 민변 노동위원장은 “종합적인 판단을 잘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불법파견 징표들이 발견됐음에도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지침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파견법에 도급과 파견의 기준을 명시하고, 기준을 어긴 도급은 불법파견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언제까지 장관의 명령에 불과한 지침에 근거해 불법파견을 방치할 수는 없다”며 “지침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파견법을 개정해 파견과 도급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