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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체코 연립정부는 최근 재정적자 증가나 고물가와 같은 거시경제적 문제 완화라는 기치 아래 국가 예산 확충을 위한 개혁 패키지를 내놓았다. 이 개혁의 과정에서 체코 정부가 설정한 주요 원칙은 ▲인건비 및 서비스 제공 비용 절감을 통한 저비용 고효율 정부 운영 ▲기존 조세제도의 일부 폐지·개편 등 행정 간소화 ▲생필품 대상 부가세(VAT) 인하 등을 통한 다수 국민의 생계 지원이다. 특히 조세 분야에서 체코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신규 조치에는 면세·감세혜택 축소, 조세제도 개편, 부가세율 조정 등이 있고, 이 중 대표적 사례로는 기업세율 인상(19%→21%), 주류세 인상, 식품(음료 제외)·주택·의약품에 부과되는 부가세 인하를 들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근본적 개혁안으로 홍보하는 체코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일각에서는 해당 개혁안이 단순한 수치 조정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현재 페트르 피알라(Petr Fiala) 체코 총리는 정부의 긴축 개혁안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압력을 행사하게 되면 개혁의 강도가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울러 체코 마케팅 조사 전문기업인 스템마크(STEM/MARK)의 2023년 5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약 75%가 정부의 긴축 기조 자체에는 동의하였으나, 정부안 그대로를 지지하는 응답자 비중은 10% 미만, 개혁안 중 일부에만 지지 의사를 밝힌 비중도 약 25%에 그쳐 반대 의견이 약 3분의 2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정부 재정 현황을 살펴보면 체코의 2022년도 세수액은 거의 7,900억 코루나(CZK, 한화 약 46조 원)에 달해 전년 대비 약 900억 코루나(한화 약 5조 3,000억 원) 수준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동년도 휘발유·경유 가격 급등에 따른 대응 차원에서 세율이 임시 인하된 연료세를 제외하면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에 힘입어 대다수 세목의 수입이 증가했으며, 늘어난 세수액 중 일부는 지방정부 예산 보조에 투입되기도 했다.
체코 정부가 제안한 긴축 개혁안의 주요 내용
체코 정부는 재정건전성 회복과 부채 및 재정적자 증대 방지를 취지로 입안된 개혁 패키지의 재정 확충 효과가 2024년에 941억 코루나(한화 약 5조 5,000억 원), 2024~2025년 합계 1,475억 코루나(한화 약 8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중에서 국가 운영비용 절감액 예상치는 약 112억 코루나(한화 약 6,600억 원), 공공기관 인건비 절감액은 약 97억 코루나(한화 약 5,700억 원) 수준이다. 피알라 총리가 소속된 우파 성향의 연립여당 시민민주당(ODS)은 당초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의 증세 조치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국내외적 상황이 시급하게 돌아가자 개혁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현재 체코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세 수입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기업세율도 유럽연합(EU) 27개국 중 위에서 16~18위 수준으로 평균 이하에 해당한다. 이번 조세 개혁안은 개인소득세, 기업세, 부가세, 물품세, 그리고 사치품 및 사행성 오락에 부과되는 죄악세(sin tax)1) 등 세목 전반의 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전의 부가세 구조를 단순화해 12%와 21%의 양대 세율로 이원화하는 조치도 함께 시행된다. 아울러 기존 면세조치 중 22개는 폐지 수순에 돌입한 반면,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주택·식품(음료 제외)·의약품에 부과되는 부가세는 기존의 15%에서 12%로 하향 조정될 예정이다.
<그림 1> 체코의 긴축 개혁안이 상정하는 부문별 국가예산 절감액(단위: 10억 코루나)
출처: 체코 재무부(2023)
체코 정부의 긴축 개혁안에서 조세 분야와 관련된 내용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EU 기준에서 낮은 편인 19%로 설정된 기업세율은 EU 평균에 보다 가까운 21%로 조정되며, 세율이 2%p 상승하면서 추가로 거두는 세수액은 모두 중앙정부 예산으로 편입된다. 또한 GDP 대비 부동산세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6위인 0.2%에 불과할 정도로 부동산 부문의 세부담이 전통적으로 낮았던 체코는 2025년부터 부동산세를 두 배로 늘리고 과세액에 물가상승률이 자동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화할 예정이다.
이번 조세 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 면세조치의 철폐 및 축소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면세조치의 수혜를 받는 기업가들이 절세액으로 고급 자가용을 구매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기업세 면세조치의 축소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개인소득세의 경우에도 배우자 공제액을 줄이고 근로자들이 제공받는 비현금형 서비스도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혁안이 제안되어 있다. 이외에 기존에 제공되던 면세조치가 철폐 혹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항목에는 사행성 오락 소득세, 선물용 와인 세액공제, 광물유 물품세, 자영업자용 임시근로계약(DPP) 세제혜택 등이 있다.
이외에 담배세와 도박세의 세율 인상도 예정되어 있는데, 2단계 차등세율을 적용받는 사행성 오락의 경우 복권 등에는 현행 35% 세율을 계속해서 적용하되, 당초 23%의 세금이 부과되던 스포츠토 토, 룰렛, 경마 등의 세율은 30%로 인상된다. 아울러 도박세 세입액의 중앙·지방정부 분배 방식도 바뀌어, 온라인 도박에서 발생하는 세입은 전부 국고에 귀속되고, 오프라인 도박 관련 세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65 대 35의 비율로 나누게 된다. 또한 이웃한 슬로바키아나 폴란드에 비해 낮은 수준에 있는 주류세율의 경우 2024년에는 10%p, 2025~2027년에는 연도별로 5%p씩 인상될 예정이다.
다음으로 체코는 고소득층의 사회적 고통 분담을 늘린다는 취지에서 23%의 개인소득세율을 적용받는 고소득구간의 최저기준을 평균임금의 4배에서 3배로 조정해2) 적용 대상을 늘리고자 한다. 또한 지금까지 증권판매소득에 적용되던 개인소득세 면세 혜택에 상한선이 신설되었다.
체코 정부의 조세 개혁안 중 또 하나의 중요 조치는 기존에 10%, 15%, 21%의 3개 과세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던 부가세를 12%와 21%의 양대 구조로 재편하는 일이다. 여기서 도서류는 부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며, 둘 중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12%의 세율을 적용받는 대상에는 사회·보건 차원에서 중요성을 지니는 물품, 그리고 기존에 10% 혹은 15%의 세율을 적용받던 물품이 있다. 체코 정부의 구상에 따르면 개혁 이후 부가세 세입은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줄어들게 되나, 일반 소비자가 부담하는 물품 가격이 낮아져 고물가가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체코 정부의 자문기관인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는 상술한 조세 개혁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거나 약간의 하향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표 1> 체코의 긴축 개혁안에 따른
예산지출 절감 및 세수 증대 기대액(단위: 10억 코루나)
출처: 체코 재무부(2023)
공공재정 견실화를 추진 중인 체코 정부는 조세 이외 여러 분야에서도 긴축안을 내놓았으며, 그 일환으로 각 행정부와 중앙정부 기관의 운영비를 5%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은 현재 지급 기준의 체계성 및 명확성 결여, 수혜자 급증, 기대효과 감소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고, 이를 인지한 체코 정부는 2024~2025년 대부분의 부(府)급 행정기관에서 지급하는 국가보조금을 약 544억 코루나(한화 약 3조 2,000억 원) 삭감할 예정이다.
한편 체코 정부의 개혁안에는 2024년부터 국가의 기능을 축소하면서 공공부문 급여를 2% 줄이는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이 조치는 공무원과 군·경 인력 전반에 적용되나, 다수의 교직 종사자는 적용 예외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조치의 배경에는 2024년 공무원 급여 액수가 도합 2,500억 코루나(한화 약 1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공공부문 인건비가 국가예산에 점차 많은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체코 정부는 기존에 사용자만이 부담금을 납입하던 근로자 질병보험도 개혁해 근로자도 소득의 0.6%를 납부하도록 할 방침이다. 체코는 지난 2009년에 질병보험의 근로자의 부담금 납입 의무를 폐지했지만, 해당 조치가 체계적인 검토 없이 이루어진 탓에 질병보험의 수입·지출 균형이 깨지면서 2019년부터는 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2022년의 적자폭은 80억 코루나(한화 약 4,700억 원)를 기록했다.
이외에 공공부문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확대하기 위한 기타 조치에는 ▲체코 문화사회기금(Cultural and Social Needs Fund)의 인건비 배정금을 운용자금의 2%에서 1%로 삭감 ▲체코 국세청 77개 지부 폐쇄 ▲실업급여 지급기준 강화 ▲기존·신규 계좌를 대상으로 한 저축장려 보조금(주택담보대출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제도)에 1,000코루나(한화 약 5만 9,000원) 상한선 신설 ▲민간은행의 저축장려상품 판매 허용 ▲정부 업무 디지털화 추진 ▲차량에 부과되는 도로이용요금 인상 ▲EU 기금과의 공동출자 활용비중 축소 ▲자영업자 세부담 인상 등이 있다.
긴축 개혁안에 대한 각계의 반응 및 비판
위에서 언급했던 STEM/MARK 설문조사에 참여한 체코 국민은 긴축 개혁안 내용 중에서 일부 식품류에 대한 감세, 담배 및 주류세 인상, 공공부문 급여 및 국가보조금 지급액 축소, 기업세 인상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을 보였지만, 자영업자 세부담 증대, 질병보험 근로자 부담금 부활, 도로이용요금 인상, 신문 및 의약품 부가세 인상, 재산세 인상에는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한편 체코 야당 측에서는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간접세 및 부가세를 조정하는 조세 개혁안의 내용에 비판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또한 체코 정부가 130억 코루나(한화 약 7,600억 원)가량의 예산 부족으로 판매내역 전자등록제(EET)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에도 반대하면서 본 제도의 재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체코 정부의 긴축 정책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주체에는 다수의 노동조합 및 고용주 협회, 두 명의 전임 대통령과 야당 세력이 있고, 이외에 전문가들은 필요 수준에 미달하는 조치, 수치 조정상의 미흡, 국가 전영역에 걸친 실질적 지출액 절감 계획의 부재, 일부 품목에 대한 개별 부가세 적용 결정의 비합리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이 중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조합들은 정부안 시행 이후 체코 가계의 생계 수준이 20%가량 저하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론: 향후 전망
체코가 상기한 재정적 체질 개선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이어진 재정적자 문제도 점차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체코의 GDP 대비 정부 재정지출 비중은 2020년 5.8%, 2021년 5.1%, 2022년 3.6% 등으로 점차 줄어들었고, 체코 재무부의 향후 추정치도 2023년 3.5%, 2024년 1.8%, 2025년 1.2%로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체코 국가경제위원회는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패키지가 공공기업에 도움을 주면서도 국가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자신을 보이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결정적인 장기적 해결책을 마련하려면 단순한 수치 조정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 개혁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체코 정부의 개혁안이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2025년에 이르러 일반 예산적자는 GDP의 2% 미만으로 떨어지고, 구조적 적자액은 2022년 대비 1%p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체코 재무위원회(Czech Fiscal Council)가 검토한 2023년도 예산 편성안에서 현대화기금(Modernization Fund) 및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으로 충당할 예정이었던 500억 코루나(한화 약 3조 원) 상당의 예산 확보 여부가 실제로는 불투명한 점, 그리고 기존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던 150억 코루나(한화 약 8,800억 원)가량의 특수 연금액 지급 소요가 발생한 점은 새로 등장한 부담요소이다. 무엇보다도 체코 정부는 2023년 연말까지의 재정적자 목표치를 당초 2,950억 코루나(한화 약 17조 원)로 잡았지만, 동년 5월을 기준으로 체코가 기록한 재정적자액이 이미 2,714억 코루나(한화 약 15조 9,000억 원)에 달했기 때문에 목표치 실현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며, 체코 재무위원회도 목표 달성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게다가 당초 2023년 4월에 공개할 예정이었던 2024~2026년 공공 지출 계획도 아직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체코 재무장관은 긴축 개혁안 추진을 강행해 2023년 말까지 일련의 구체적 조치를 공개하고 이 중 일부를 시행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측에서는 정부안에 담긴 일부 내용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발표하고 파업 준비단계에 돌입해 있다. 따라서 체코 정부의 개혁안이 당초 계획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 각주
1) 증세액: 맥주 11억 코루나(한화 약 640억 원), 담배 15억 코루나(한화 약 880억 원), 기타 주류 590억 코루나(한화 약 3,500억 원), 도박 390억 코루나(한화 약 2,300억 원)
2) 기존 16만 1,300코루나(한화 약 950만 원)에서 12만 1,000코루나(한화 약 710만 원)로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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