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후 보리스는 하얀 돛배가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은 빠르지 않았으나 가볍게 밀어줄 정도는 되었다. 보리스는 절벽 끝까지 가서 아슬아슬하게 발을 딛고 이솔렛의 배를 보았다.
아니, 이솔렛을 보았다. 얼마 후 그녀도 이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망토가 휘날리고 있어 눈어 잘 띄었다.
그리 멀지 않았다. 이솔렛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성채 위의 보리스에게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 말도 닿을 수 없는, 새들에게만 의미 있을 거리에서
서로에게 보이지 않을 열렬한 눈길이 오가고 있다···, 그렇게 바라본다 해도 누구 하나 탓할 사람이 없는 이곳이기에,
보리스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이솔렛은 보았다, 보리스가 두 팔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드는 것을, 그녀가 오래 전에 가르쳐 준 수신호··· 일리오스 사제가
만든 그것이었다. 그것의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이솔렛 한 명 밖에 없었다.
'여길 보세요.'
아아, 바라보고 있다. 이보다 더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 저 멀리 소년이 오른팔을 펴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왼팔을 구부려 겹치는 것, 그것은······.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 위였다. 이솔렛의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견딜 수 없게 된 그녀도 손을 올렸다. 그리고
똑같은 모양을 그렸다.
'네 곁에··· 있고 싶어.'
말로는 감히 표현하지 못했던 그들도 이 순간만은 더 없이 솔직했다. 보리스도 목이 메어오는 걸 느꼈다. 얼마나 곁에 있고 싶
었던가. 날마다 그녀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절은 한 계절도 못되는 빛처럼 빠르게 사라
져버렸다.
보리스는 다시 두 손목을 교차시키며 팔꿈치를 마름모꼴이 되도록 만들고는 높이 올려 보였다. 그것의 뜻은··· ···.
'약속하겠어요.'
무언의 대화는 어떤 말보다도 강했다. 진심보다 더한 진심이었다. 폭풍 같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휘몰아갔지만, 보
리스는 말없이 팔을 올리며 입안으로 뇌었다.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이솔렛이 대답하는 것이 보인다, 눈앞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아 급히 눈을 비볐는데 내용을 보고 다시 흐려져 버렸다.
'잊지 않아.'
바람이 눈물조차 흩날려갔다. 왜 이제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걸까. 더 일찍 전할 수 있었더라면 이 벅찬 마음으로 무
엇이라도 말하고,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 순간, 그들이 가진 짧은 수신호들만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가식도, 망설임도 섞일 수 없었다. 이솔렛이 처음 가르쳐
주며 했던 말대로 그것은 무언의 찬트였고, 말할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한 기원이었다. 배는 멀어지고 있고, 시간은 잡을 수 없
고,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보고 있다. 들리지 않는 찬트를 보내고 있다.
마주 서서 밀워왔던 말들을 이 순간 모두 쏟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하고 싶다, 정말로 말하고 싶다. 그러나 썰뭄섬
의 간조는 끝이 났고, 이솔렛은 서둘러 돌아가야만 했다. 두 사람 다 그게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좋았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알아버렸으니까. 눈에 담기조차 힘든 새파란 빛이 하늘과 바다 모두에서
쏟아졌다. 그 사람을 기다려도 좋다는 것 하나 때문에 모든 세상이 달라져 보얐다. 바다와 대륙으로 가로막혀 몇 십년이고 헤
어진다 해도, 영영 만나지 못한다 해도··· 다시는 변치 않을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
수신호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멀어졌다. 보리스는 손을 내리고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려는 것처럼
응시했다. 멀어지고 더 멀어져 작은 검조차 사라져버릴 때까지.
그것은 어쩌면 영원한 이별일지도 몰랐다.
<룬의 아이들ㅡ 윈터러 7 > 에서 일부 발췌
저자:전민희,퍼낸곳:(주)제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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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핀 슬픈 꽃 BnS.swf
문제시 삭제 하겠습니다.
첫댓글 엔젤설리
초6땐가.. 저거 새벽6시에 다읽었는데(밤새며읽다가...) 눈물 글썽글썽인 ㅠㅠ 진짜 울뻔했...
브금에 크리티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