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치료
연약한 것은 도와주라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혼자 온전하거나 완전하게 짓지 않으셨다(돕는 배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약함을 담당하라고 하신다(롬 15:1). 하나님은 연약함은 용납하라고 하신다. 용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시인해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의지를 신뢰했기 때문에 기도의 핑요성과 절박성이 없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고후 12:7-10)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에 자신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귀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자신의 연약한 것에 대해 자랑하고 있다.
더 이상 약점에 인생을 걸지 말아야 한다. 연약함은 안고 가고 자신의 장점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약점을 개선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 장점을 발전키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제 연약함을 용납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연약함을 도우라. 나의 연약함을 도움을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연약함은 도와야 한다. 사람이 도울 수도 있고, 기구나 도구를 이용해서 연약함을 보완할 수 있다.
사람을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서로 도우며 살도록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
도움을 받을 때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도움 받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말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가 사람이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내가 늘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사람과 교제를 하면 연약함이 보일 것이다. 실망하지 말라. 그 부분이 우리가 도와야 할 부분이다.
돕는 일을 할 때는 도움을 받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도와주면 간섭하는 것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필요는 채워주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의 집합체다(창 1:29).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부족함이 있는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위한 기본이다.
부족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발전과 퇴보가, 행복과 불행이 나온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부족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채울 마음을 갖게 하고,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시편 기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 발전시킨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 이 과정을 통해 아담은 모든 짐승들에게 다 짝이 있는데 자신만 짝이 없는 것을 알았다. 배필이 없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배필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그래서 하와를 본 순간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다.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느끼기 전에 그것을 하라고 하면 힘들어합니다. 본인이 부족함을 느끼고, 필요를 느끼고 사모할 때 그 부족함을 채워주라.
사람의 부족함을 채울 때, 나 혼자 상대의 모든 부족함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그 부족함 가운데 내가 채워야 할 몫이 있고,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할 몫이 있다. 다 채워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채우고 남은 부분은 또 다른 사람이 채워 준다.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에 의해 채움 받아야 할 다양한 부족함이 있다. 또한 사람은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식적으로 채움 받아야 할 다양한 부족함이 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채워주어야 할 부족함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할 부족함이 있다(잠 3:13-18, 시 23:1, 시34:9-10).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죄가 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채워야 것을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채우려고 했던 우를 범했던 것이다(렘2:13)
허물은 덮어주라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사람의 허물이다(창 3:17-19). 사람에게 허물이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말이다(엡 2:1, 욥 13:23, 욥 14:17, 암 5:12).
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천국을 가지 위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다. 죄를 없애는 또 다른 방법은 지은 죄를 없애는 것이다. 죄는 용서 받으면 없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예수 믿고 회개하면 죄가 없어진다.
허물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 지침은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다(잠 17;9, 잠 10:12).
우리는 부모의 허물이 드러내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우리와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만약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드러내고 비방하면 허물이 있는 자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방 여자를 취한 것은 잘못이다. 허물이다.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이 틀렸다고 한 것이고 그러나 그 후에 한 말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 12:2). 이 말은 더 이상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지도자의 허물을 비방하면 이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이러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허물이 있는 사람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가 허물이 있지만 여전히 모세가 그들의 지도자임을 확인해 주신다(민 12:6-8, 9-10). 허물이 있는 지도자의 처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은 세우시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은 세우시고 페하시기도 한다.